[OSEN=스코츠데일(미국 애리조나주), 이상학 기자] 슈퍼 에이전트는 코리안 몬스터를 잊지 않고 있었다. 스캇 보라스(72)가 한국으로 돌아간 투수 류현진(37·한화 이글스)의 향후 메이저리그 복귀 가능성을 봤다. 현실적이지 않은 시나리오이지만 혹시 모를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보라스는 지난 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전날(4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3년 보장 5400만 달러에 옵트 아웃이 2개 포함된 계약을 한 FA 내야수 맷 채프먼(31)의 입단 기자회견에 참석한 것이다.
선수들에게 천사, 구단들에게 악마로 불리는 ‘슈퍼 에이전트’ 보라스에겐 악몽 같은 겨울이다. 한국인 외야수 이정후(26)가 6년 1억1300만 달러로 예상을 뛰어넘는 대박 계약을 따냈지만 나머지 고객들의 FA 계약 성적이 영 시원찮다. 해를 넘겨 2월 스프링 트레닝이 시작된 뒤에도 주요 고객들의 행선지를 결정하지 않고 장기전으로 끌고 갔지만 실패했다.
투타겸업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를 빼고 타자 FA 중 최대어로 꼽힌 외야수 코디 벨린저가 지난달 28일 원소속팀 시카고 컵스와 3년 보장 8000만 달러에 옵트 아웃 2개가 들어간 계약을 한 데 이어 내야수 최대어 채프먼마저 같은 형태의 계약으로 사실상 FA 재수를 택했다.
여전히 시장에 남은 ‘특급 FA 투수’ 블레이크 스넬과 조던 몽고메리의 상황도 좋지 않아 보인다. 보라스의 투수 FA 중 한 명이었던 류현진은 지난달 친정팀 한화와 8년 총액 170억원으로 KBO리그 역대 최고액에 계약하며 2013년부터 이어진 11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무리했다.
보라스는 지난해 11월9일 스코츠데일에서 열린 메이저리그 단장회의 때 “류현진에 대한 빅리그 팀들의 관심은 매우 높다. 내년에도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공을 던질 것이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채프먼 기자회견이 끝난 뒤 취재진에 둘러싸인 보라스에게 류현진 관련 질문도 나왔다.
보라스는 “류현진은 한국에서 매우 긴 계약을 제안받았는데 여기선 아주 짧은 옵션만 있었다. 그래서 그는 집에 돌아가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짧은 옵션’이라며 류현진이 다년 계약은 제안받지 못했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하지만 류현진은 지난달 23일 일본 오키나와에 차려진 한화 스프링캠프 합류를 위한 출국 현장에서 “다년 계약 얘기도 있었고, 충분한 1년 대우도 있었다”며 “다년 계약 오퍼를 수락하면 ‘건강하게 (한화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가 되면 마흔 살이 된다. 그래서 강력하게 거부했다. 최대 1년이었다”고 말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3년 계약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류현진은 1년 계약만 고집했다. 보라스는 “류현진은 대개 사실대로 말한다”며 그의 이 같은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했다.
류현진은 11년의 메이저리그 생활에 대해 “월드시리즈 등판, 완봉 경기, 평균자책점 1위를 기억한 2019년, 수술했던 날들이 떠오른다”면서 “투수가 할 수 있는 팔에 대한 수술은 다 했다. 그리고 복귀한 걸 위안으로 삼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빨리 지나갔다. 메이저리그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다”며 사실상 빅리그 커리어가 끝났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보라스는 아직도 류현진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는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끝났다는 말에 “(한화와 맺은) 이 계약에는 유연성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두고 보자”며 일말의 가능성을 봤다.
류현진이 한화와 체결한 8년 계약에는 FA가 될 수 있는 옵트 아웃이 포함돼 있다. 세부적인 옵트 아웃 내용은 양측 합의 하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지만 보라스가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복귀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은 이런 계약 내용 때문으로 보인다.
메이저리그의 전반적인 투수 부족 현상도 보라스가 류현진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꼽을 만하다. 보라스는 이날도 “지금 메이저리그 야구에선 투수 패닉이 일어나고 있다. 많은 구단들이 투수 문제 때문에 경쟁력이 위험에 처해있고, 생각을 바꾸고 있다. 엘리트 선발투수에 대한 요구가 확실히 커졌다”며 스넬과 몽고메리에게도 스프링 트레이닝 시작 이후로 4개 구단이 새로 관심을 표했다고 밝혔다. 여전히 시장에는 선발투수 수요가 높다는 의미다.
한편 지난달 23일 한화의 2차 스프링캠프지 오키나와에 합류한 류현진은 첫 날부터 45구 불펜 피칭을 하더니 26일엔 60구 불펜 피칭으로 투구수를 늘렸다. 이어 지난 2일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구장에서 라이브 피칭으로 4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65구를 던졌다. 최고 구속 139km 직구에 커브, 체인지업, 커터, 슬라이더 등 모든 구종을 점검했다.
류현진의 첫 실전 무대는 7일 대전 홈구장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리는 자체 청백전이다. 이어 시범경기에서 2경기 등판할 예정으로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오는 23일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의 정규시즌 개막전 선발투수로 12년 만에 KBO리그 공식 복귀전을 치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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