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부산, 조형래 기자] 김태형 감독의 롯데는 천신만고 끝에 첫 승을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내야진 경쟁에서 다소 후순위로 밀려나 있었던 최항(30)이 ‘복덩이’가 되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롯데는 29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프로야구 정규시즌 홈 개막전에서 3-1로 역전승을 거뒀다. 이로써 롯데는 개막 4연패 끝에 첫 승을 거뒀다. 올해 롯데에서 첫 시즌을 지휘하는 김태형 감독에게도 값진 첫 승이기도 하다.
첫 승을 거두기까지 고난과 악순환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23~24일 인천 SSG 개막 2연전, 26~27일 광주 KIA 2연전을 모두 내줬다. 한두 점차 접전 상황에서 내줬고 또 수비 집중력에서 아쉬움을 보이면서 허무하게 내주기도 했다. 타선의 전체적인 페이스도 뚝 떨어졌다. 페이스를 회복할만한 어떠한 계기도 만들지 못한 채 무기력한 경기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29일 경기를 앞두고 김태형 감독은 “시범경기 막판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 떨어져 있다. 이제 한두 명은 좀 맞아서 시너지 효과를 내고 같이 쳐주면 또 괜찮은데 앞에서 못 치면 뒤에서도 부담을 많이 가질 수밖에 없다”라면서 “일단 좀 맞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타자들을 믿어야 한다”라고 애써 웃었다.
안그래도 타선의 무게감이 부족한데 조금이나마 위압감을 심어줄 수 있는 거포 한동희도 내복사근 부상으로 이탈해 있다. 6월 상무 입대가 사실상 결정되어 있던 상황에서 두 달 간 최대한 한동희를 활용하려고 했던 김태형 감독의 구상도 완전히 어긋났다. 김 감독은 “상무에 붙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고 6월까지는 한동희가 중심 타선에서 좋은 역할을 해줬어야 했다. 그런데 부상이라서 선수도 아쉽고 나도 아쉽다”라며 “동희가 있는 것 하고 없는 것 하고 차이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안치홍도 지난해 FA 자격을 얻고 한화로 이적을 하며 2루가 무주공산이 됐고 3루도 공백이 생겼다. 이들의 부재를 채우기 위한 내야진 실험들이 이어지고 있다. 기본적인 선수층 자체는 넓어졌지만 딱 주전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선수가 없기에 다양한 선수들을 상대 투수와의 상성에 따라서 기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항은 경쟁과 실험의 대상에서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있었다. SSG 소속이었던 최항은 지난해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롯데의 지명을 받았다. 롯데는 2차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이미 한화의 오선진을 지명한 상황. 여기에 롯데는 최항까지 더했다.
2차 드래프트 3순위에 지명을 받으면서 생애 처음으로 이적을 했다. 역대 최다 홈런 신기록을 향해가고 있는 ‘홈런왕’ 최정의 동생으로 그늘에 가려져 있었는데, 이제 그늘을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 했다.
만약 한동희가 부상 없이 경기를 뛰었다면 최항의 자리는 어쩌면 없을 수 있었다. 노진혁 박승욱 김민성 등 수비에서 경쟁력이 있는 선수들이 많았고 타격에서도 최항이 비교 우위를 점한다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최항은 묵묵히 훈련했고 제한된 기회 속에서 자신을 어필하려고 했다. 그 결과 최항은 개막 엔트리까지 승선했고 팀의 첫 승까지 이끌었다.
29일 경기 최항의 시간은 6회였다. 최항은 7번 2루수로 선발 출장했다. 6회 2사 후 전준우의 솔로포로 1-1 동점을 만들었고 노진혁이 볼넷을 얻어냈다. 그리고 정훈이 혼신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유격수 내야안타를 이끌어내며 2사 1,2루 기회를 잡았다. 이후 최항 타석이 돌아왔다. 현재 팀 타선의 페이스라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 수도 있었다.
NC는 좌타자 최항을 맞이해 좌완 필승조인 임정호를 투입했다. 롯데는 김민성이라는 우타 내야수가 대타 자원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최항을 그대로 내세웠다. 김태형 감독의 뚝심이자 믿음이었다. 임정호는 좌타자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유형의 투수다. 하지만 최항은 임정호를 낯설어 하지 않았고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슬라이더를 받아쳐 좌중간 적시타를 뽑아냈다. 김태형 감독은 “최항의 좌투수 상대 타율이 괜찮았다. 그리고 최항 말고 쓸만한 카드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2-1로 역전했고 이후 유강남의 3루수 내야안타로 전력질주를 하면서 3-1 승리를 완성했다.최항처럼 2차드래프트 3라운드에 지명을 받은 선수의 몸값은 일괄적으로 2억원으로 책정되어 있다. 올해 연봉은 3100만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최항의 현재 활약상은 알토란 같다. 타격은 준수하고 다소 약점이라고 평가 받던 수비도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최항은 어느덧 복덩이로 거듭났고 현재 선수단에 윤활유를 바를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났다.
경기 후 최항은 “경기 전 계속 준비했던 것을 하자 생각했다. 결과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캠프 기간 동안 코치님들과 준비했던 부분 이어 나가고자 했던 것이 오늘 경기 내용으로 이어진 것 같다”라며 “팀의 첫 승에 기여할 수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 기쁜 것 같다. 무조건 이기겠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고 있으니 올 시즌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형인 최정의 그림자, 그늘에서 벗어난 최항은 꿋꿋하고 조용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2차 드래프트 성공기까지 준비하고 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