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7년 만에 야구장을 찾은 ‘회장님’도 함박 미소를 지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무려 25년 만에 개막 6경기에서 5승 1패를 거두며 ‘대전의 봄’을 알렸다.
지난 29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벌어진 한화의 2024년 홈 개막전은 경기 전부터 구장 주변이 수많은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박찬혁 대표이사 비롯해 한화 구단 관계자들도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움직였다. 구단주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홈 개막전을 맞아 야구장을 깜짝 방문한 것이다.
김승연 회장이 야구장을 방문한 것은 한화의 마지막 가을야구였던 지난 2018년 10월19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 이후 6년 만이었다. 이날은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괴물 투수’ 류현진이 12년 만에 대전 홈에서 복귀전을 치르는 날이었고, 김 회장이 직접 힘을 실어주기 위해 구장을 전격 방문했다.
경기가 시작되기 한참 전이었던 오후 4시경 김 회장이 야구장에 도착했고, 오후 4시36분부로 1만2000석 전 좌석이 일찌감치 매진됐다. 개막전 패배 이후 4연승을 질주하면서 한화를 향한 대전 팬심이 후끈 달아올랐고, 김 회장의 방문과 함께 이날 홈 개막전은 그야말로 축제 한마당 분위기였다.
3회부터 관중석에선 파도 타기 물결이 흘렀고, 5회 클리닝 타임 때는 한화의 상징과 같은 화려한 불꽃 놀이가 펼쳐졌다. 1루측 스카이박스에서 경기를 관전하던 김 회장도 테라스 쪽으로 나와 팬들의 환호에 손들어 화답했다.
김 회장의 방문에 한화 선수들도 힘을 냈다. 시즌 개막전이었던 지난 23일 잠실 LG 트윈스전에 3⅔이닝 6피안타 3볼넷 5실점 2자책 패전으로 아쉬움 남겼던 선발투수 류현진은 6이닝 8피안타 무사사구 9탈삼진 2실점 퀄리티 스타타로 호투했다. 최고 147km 직구와 최저 99km 커브로 완급 조절을 하고, 스트라이크존의 상하좌우를 폭넓게 활용한 커맨드로 KT 위즈 타선을 압도했다.
잘 던지던 류현진은 그러나 6회에만 안타 4개를 맞고 2실점하면서 동점을 허용, 복귀 첫 승이자 개인 통산 99승을 아깝게 놓쳤다. 이전 우리가 알던 한화였다면 그대로 무너졌을 경기였지만 확실히 달랐다. 류현진에 이어 한승혁(1⅓이닝)과 주현상(1⅔이닝)이 3이닝 무실점으로 동점 상황을 유지했고,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짜릿한 끝내기 안타로 3-2 승리를 거뒀다.
KT 구원투수 이상동을 상대로 선두타자 요나단 페라자의 좌월 2루타를 치고 나간 뒤 채은성이 포크볼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지만 노시환이 투볼에서 자동 고의4구로 1루에 걸어나갔다. 이어 안치홍이 이상동의 포크볼에 배트가 따라나가면서 3구 삼진을 당하며 흐름이 끊기는가 싶었지만 임종찬이 해결사로 나섰다. 초구 바깥쪽 낮은 포크볼을 밀어쳐 좌중간을 완벽히 갈랐다. 3-2 승리를 이끈 끝내기 2루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은 김 회장도 함박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경기 후 류현진은 “팀이 연승 중이었고, 오랜만에 최고의 회장님께서 먼길을 오셨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조금 더 집중했던 것 같다. 동기 부여가 됐다”며 김 회장의 방문이 힘이 됐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경기 전 주장 채은성과 투수 문동주를 따로 불러 격려하기도 했다.
이날 승리로 한화는 개막 6경기에서 5승1패를 기록했다. 암흑기 때 매년 시즌 초반부터 헤매던 한화가 아니다. 한화가 개막 6경기에서 5승1패를 거둔 것은 1988년, 1992년, 1998년, 1999년에 이어 구단 역대 5번째. 가장 최근이 25년 전인 1999년으로 당시 한화는 개막 6경기에서 5승1패로 시작을 한 뒤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 숙원을 풀었다.
올해도 1999년 이후 최고의 개막 스타트로 기대감을 갈수록 높이고 있다. 한화의 개막 이후 최고 성적은 1992년 전신 빙그레 시절로 당시 7승1패로 스타트를 끊었다. 1992년 한화는 정규리그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아직 시즌 극초반이긴 하지만 매년 초반부터 레이스에서 밀렸던 한화로선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수년간 강도 높은 리빌딩으로 인내하며 뿌린 씨앗들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무게감 있는 고참들의 합류로 신구 조화가 이뤄졌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지난해 채은성과 이태양에 이어 올해 류현진, 안치홍, 김강민, 이재원이 들어왔다. 투수나 야수 쪽에서 대체 불가급 선수들이 고참들이라 전체적인 팀 분위기를 누가 특별하게 휘어잡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잡히고 있다”며 “선수들도 상대팀과 우리 팀의 전력을 비교하고 계산하면서 올해는 괜찮겠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기대치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선수단 내부 분위기부터 달라졌다고 했다.
시즌 전부터 다크호스로 꼽힌 한화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여보니 초반부터 분위기를 타면서 무섭게 치고 나가고 있다. 투타에서 몇 가지 불안 요소는 있지만 5연승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린 한화의 초반 폭주가 KBO리그 판도를 뒤흔들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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