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벽을 내리친 투수가 결국 60일짜리 장기 부상자 명단으로 옮겨졌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대가는 최소 2개월 이탈이다. 텍사스 레인저스 좌완 불펜 브록 버크(28)가 그 주인공이다.
텍사스는 지난 19일(이하 한국시간) 버크를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서 60일짜리 부상자 명단으로 이동시켰다. ‘댈러스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버크는 이날 오전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에서 오른손 중수골 뼈를 고정시키는 수술을 받았다.
버크는 지난 14일 부상자 명단에 오른 바 있다. 그 전날(13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 부상을 입은 영향이었다. 12-3으로 크게 앞선 7회 3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버크는 여유 있는 상황에서 ⅔이닝 3피안타(1피홈런) 1사구 2탈삼진 4실점으로 난조를 보였다.
이닝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강판됐고, 스스로에게 화난 버크는 오른손으로 벽을 내리쳤다. 순간적으로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벽을 치다 오른손이 부러졌다. 공을 던지는 왼손은 아니지만 오른손이 부러진 만큼 정상적인 투구 동작이나 수비를 할 수 없었다. 결국 수술을 받고 장기 이탈하게 됐다.
부상당한 다음날 브루스 보치 텍사스 감독은 “선수들은 경쟁심이 강하고, 지는 것을 싫어하지만 그 열정에는 한계가 있다. 선을 넘은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며 “버크가 팀을 돕지 못했던 것에 화가 났다는 사실은 좋지만 현명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어 보치 감독은 “분명 버크가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생각할 시간이 없다. 그저 화가 나고, 좌절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잘하고 싶고, 지기 싫어하는 열정이다. 이런 모습을 처음 본 게 아니다”며 열정 넘치는 선수들에게 종종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평정심을 잃어 자해한 선수들이 종종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22년 당시 휴스턴 애스트로스 소속 투수 필 메이튼(현 탬파베이 레이스)이 자신의 라커를 주먹으로 때리다 오른 새끼손가락이 부러져 포스트시즌을 결장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투수 후아스카 이노아도 2021년 덕아웃 벤치를 주먹으로 치다 오른손이 골절돼 3개월을 결장했다.
메이저리그 최초로 1억 달러 FA 계약 시대를 연 투수 케빈 브라운도 2004년 뉴욕 양키스 시절 클럽하우스 벽과 선풍기, 전화기에 주먹을 내리치다 왼손 골절상을 입어 3주 넘게 결장했다. 일본프로야구에선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좌완 스기우치 도시야가 다이에 호크스 시절인 2004년 덕아웃 의자와 벽을 내리치며 기물을 파손하다 양손 모두 골절됐다.
KBO리그에서도 2010년 당시 KIA 타이거즈 투수 윤석민이 8⅓이닝 132구 3실점 역투에도 팀이 끝내기 패배를 당하자 홧김에 라커 문을 내리쳐 오른손 골절상으로 2개월을 날렸다. LG 트윈스 투수였던 봉중근도 2012년 시즌 첫 블론세이브를 범한 뒤 오른손으로 소화전을 내려치다 손등뼈가 부러지면서 2주를 이탈했다. 키움 히어로즈 내야수 송성문도 지난해 자신의 실책에 분을 참지 못하고 덕아웃 의자를 치다 오른손 중수골 골절로 한 달 반을 쉬었다.
한편 좌완 투수 버크는 2019년 메이저리그 데뷔 후 올해로 4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4시즌 통산 116경기(6선발·171⅔이닝) 12승10패21홀드 평균자책점 3.88 탈삼진 161개. 2019년 선발로 데뷔했지만 불펜으로 보직을 바꿨고, 2022년 52경기(82⅓이닝) 7승5패9홀드 평균자책점 1.97 탈삼진 90개로 호투를 펼치며 필승조로 올라섰다.
지난해에도 53경기(59⅔이닝) 5승3패12홀드 평균자책점 4.37 탈삼진 52개로 텍사스의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가 됐다. 그러나 올해는 5경기(3이닝) 평균자책점 15.00으로 크게 부진하다. 3이닝 동안 홈런 1개 포함 안타 9개를 맞고 1볼넷 1사구 5탈삼진 5실점으로 흔들렸다. 성적 부진에 자해 부상까지 겹치며 최악의 시즌이 되고 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