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강’인가, ‘부진의 늪’인가? 어정쩡한 처지다. 웃자니 볼썽사납게 비칠까 봐 조심스럽다. 그렇다고 울자니 잇단 행운에 겨워 악어의 눈물을 흘리냐고 비난받을까 봐 스스럽다. 쑥스러운 처지에 놓인 프랑스다.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 2024를 치르고 있는 프랑스가 어색한 형국에 맞닥뜨렸다. 8강에 올랐는데도 마냥 드러내 놓고 좋아할 수만은 없는 진군이다. 2승 2무,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아주 좋은 행보라고 하긴 뭣해도, 그런대로 봐줄 만한 걸음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외면적이다. 겉꺼풀을 들추고 들여다보면, 실제는 다른 양상이다. 시원하게 이긴 경기가 한 차례도 없다. 개가를 올린 두 판 모두 행운에 편승한 승리였다. 다시 말해 상대의 자책골이 나오지 않았더라면, 개선가를 부를 수조차 없었다. 참으로, 민망한 승리다. 어쩌면 8강에 진출하기는커녕 그룹 스테이지 관문조차 뚫지 못할 상황에 부닥쳤을지도 모른다.
프랑스는 FIFA(국제축구연맹) 세계 랭킹 2위(6월 20일 기준·이하 현지 일자)에 올라 있는 축구 강국이다. UEFA 회원국(55개) 가운데에선 으뜸이다. 근소한(1837.47-1,860.14점) 차로 아르헨티나에 뒤질 뿐이다.
그러나 유로 2024 마당에서, 프랑스는 아직까진 그에 걸맞은 자부심을 한껏 뽐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싶다.
그런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비집고 나온다. 자책골에 힘입어 맛본 승리의 단맛은 비단 이번 대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4년 전, 유럽 11개국에서 분산 개최된 유로 2020에서도 그랬다. 상대가 자신의 골문에 골을 넣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프랑스는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유로 2020 여정을 끝내야 했을지 모른다. 곧, ‘프랑스 = 자책골 승리’는 이미 4년이나 된 전통의 등식으로 화석화했다.
유로 2024에서, 프랑스는 두 차례 이겼다. 모두 ‘자책골 승리’의 행운에서 비롯한 2승이다. 그룹 스테이지 D 오스트리아전(6월 17일·1-0 승)과 녹아웃 스테이지 첫판인 16강 벨기에전(7월 1일·1-0 승)에서, 잇달아 행운의 여신을 맞아들였다.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뵈버와 벨기에의 얀 페르통언이 프랑스 승리의 1등 공신(?)이었다(표 참조). 두 자책골 모두 승패를 가른 결승 득점이었다.
‘베테랑’ 페르통언은 불명예 기록의 낙인이 찍혔다. 유로 역사상 최고령(37세 68일) 자책골 기록을 남겼다. 벨기에의 유로 역사상, 녹아웃 스테이지에서 자기 팀 골문 안으로 골을 넣은 최초의 선수로서도 남게 됐다.
2020 유로에서, 프랑스는 단 1승밖에 올리지 못했다. 그룹 스테이지 F 서전 상대였던 독일을 희생양 삼아 거둔 초라한 전과였다. 역시, 독일의 자책골에 편승한 행운의 1승(1-0)이었다. 독일의 마츠 후멜스가 프랑스에 1승을 ‘헌납’한 꼴로 귀결된 한판이었다. 결국 이 대회에서, 프랑스는 16강 진출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16강전에서 스위스를 만나 패퇴했다. 연장 접전(3-3) 끝에 승부차기(4-5)에서 분루를 삼켰다.
유로 무대에서, 프랑스가 자책골이 아닌, 스스로의 화력으로 승리한 기억은 무려 8년 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홈그라운드에서 열린 2016 대회 준결승전에서, 독일을 2-0으로 완파한 한판까지 소급된다. 당시, 앙투안 그리즈만이 두 골 모두를 터뜨렸다. 이 가운데 선제 결승골은 전반 추가 시간 2분에 페널티킥으로 넣었다. 이 대회 결승전에서, 프랑스는 포르투갈에 0-1로 져 준우승에 머물렀다.
유로 마당에서, 프랑스는 유독 자책골과 인연이 깊다. 상대의 자책골로 5득점하며 다른 어떤 팀보다 행운을 누렸다. 다시 한번 엿볼 수 있는 ‘프랑스 = 자책골 승리’ 등식이다.
한편, 이번 대회는 유달리 많은 자책골이 쏟아지고 있다. 총 10골(7월 1일 현재)이 나왔다. 유로 2020을 통틀어 나온 자책골과 같은 수치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