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폰햄 신조 쓰요시 감독과 글러브 이야기
[OSEN=백종인 객원기자] 특이한 외야수다. 공격력은 대단치 않다. 대신 수비가 발군이다. 빠른 발, 탁월한 판단력, 특급 어깨…. 그걸로 프로에서 자리를 잡았다. 주전 정도가 아니다. 골든글러브를 10번이나 수상했다. 후에 메이저리그까지 진출했다. 거기서도 클래스를 과시했다.
그런 외야수가 뜻밖의 이력을 밝혔다. 프로 17년 동안을 글러브 하나로 버텼다는 고백이다. 그것도 고가의 명품이 아니다. 고작 7만 원짜리다. 그걸 깁고, 덧대고, 꿰매 가면서 은퇴할 때까지 썼다는 얘기다.
동호인들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 요즘이다. 몇십만 원짜리 최신형 브랜드 제품을 사용한다. 그런데 프로 선수가, 그것도 메이저리그까지 뛴 수비수(?)가 낡고, 허름한 글러브 하나로 버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현재는 니폰햄 화이터즈의 감독인 신조 쓰요시(52)의 얘기다.
그는 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 몇 장을 올렸다. 이런 코멘트와 함께였다.
“글러브는 야구 선수에게 심장과 같은 것이다. 나는 이 7500엔 글러브 덕분에 아슬아슬한 플레이에서도 공이 안으로 들어와 줬고, 기억에 남는 플레이가 태어났다.”
사연도 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가르침이 있었다. ‘장사는 도구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씀에 따라 17년간의 프로 생활 동안 수선을 거듭하면서 한 번도 바꾸는 일 없이 현역 마지막까지 계속 사용했다.”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지금은 멋진 글러브가 많기 때문에 매년 바꾸는 선수의 기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프로라면 플레이로 (멋진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장비를 소중히 하는 인간은 사람도 소중하게 여기고, 다른 이들도 그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사실 신조 감독의 캐릭터는 뚜렷하다. 야구인보다는 연예인에 가깝다는 세평이다. 준수한 외모에 스타일이 좋고, 화려함을 즐긴다. 현역 시절에는 아이돌급 인기를 누렸다.
은퇴 후에는 아예 그 길로 나가기도 했다. TV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패널이었다. 탤런트, 크리에이터, 패션모델로도 활동했다. 그에게 빠질 수 없는 게 있다. 슈퍼카, 명품 브랜드(특히 옷과 액세서리), 고급 와인에 대한 애착도 유명하다.
그런 인물이지만 글러브 얘기가 나오면 딴사람이 된다.
프로 첫해(1990년)다. 드래프트 5번으로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했다. 지명 순위가 낮아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였다. 첫 월급으로 가장 먼저 구입한 게 있다. 바로 그 글러브다. 당시 가격이 7500엔(약 7만 원)이었다. 팀 로고와 등번호(그때는 63번, 후에 5번으로 변경)를 새겼다.
그리고 17년이 지났다. 유니폼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한신-뉴욕 메츠-샌프란시스코-다시 메츠). 마지막은 니폰햄 화이터즈에서 마무리했다. 은퇴식 때였다. 짙은 싱글에 멋진 머플러 차림으로 등장했다. 예의 모델 같은 모습이었다. 그 앞에는 낡은 글러브 하나가 놓였다.
“이건 무리다. 이제는 한계가 왔다. 그렇게 느꼈을 때도 내 곁을 지켜준 것이 이 친구였다”며 깊은 감회에 젖는 표정이었다.
몇 가지 일화도 있다. 사람들과 잘 지내는 타입이지만, 질색하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 글러브에 손을 대려 할 때다. “건드리지 마. 잘못해서 감각이 달라지면 안 돼”라며 펄쩍 뛴다.
미국에서는 오죽했겠나. 메츠 시절의 에피소드다. 허름한 글러브가 신기하다. 친한 동료가 끼워보겠다며 나섰다. 마찬가지로 화들짝 놀라는 반응이다. “손가락이 굵고 긴 네가 끼면 큰일 난다”며 정색했다는 후문이다.
고비도 몇 차례 있었다. 스파이크에 밟혀 찢어지기도 했다. 4번 정도의 대수술이 있었다는 기억이다. “아껴 두고 실전에서만 썼다. 연습용은 따로 있었다”는 설명이다.
장거리 이동이나 원정 때도 신주 모시듯 한다. 호텔 방에서는 항상 TV 위에 올려놓는다. 나름대로 습기, 온도에 조심하기 위해서라는 해석이다.
2006년이었다. 현역 마지막 경기 때다. 중견수 쪽으로 라인드라이브가 날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신조의 글러브에 걸렸다. 그런데 잡으면서 약간 손상이 생겼다. 강한 타구 속도를 이겨내지 못한 탓이다. 그야말로 최후를 함께 한 셈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2011년). 신조의 부친이 세상을 떠났다. ‘글러브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 인물이다. 야구만이 아니다. 삶의 스승이었다. 평생 힘든 일(조경업)만 했다. 가난을 벗어난 적이 없다. 하지만 아들의 뒷바라지는 멈춘 적이 없다.
어느 겨울이었다. 평생 뭘 사달라고 한 적 없는 고교생 아들의 푸념이다. “손이 시려, 훈련을 못하겠어요.” 그러자 아버지가 지갑을 연다. 작업용 장갑을 사려고 모아 뒀던 돈이다. 그걸로 털장갑을 마련해, 아들 손에 쥐어 준다.
장례 마지막 날이다. 고인을 보내 드릴 시간이다. 아들은 누운 아버지 곁(관)에 뭔가를 살포시 넣어 놓는다. 평생 소중했던 것, 그의 오늘을 있게 한 것, 17년간 고이 간직하던 것, 아버지와 자신의 꿈이 고스란히 깃든 것. 바로 그 7500엔 짜리 낡은 글러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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