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거나 나쁜 동재’ 이준혁, 궁상맞고 짠한 안티히어로 ‘박제’ [김재동의 나무와 숲]
입력 : 2024.10.1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OSEN=김재동 객원기자] 세상엔 세가지 종류의 인간이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좋거나 나쁜 놈. 대부분의 인간은 그 중 ‘좋거나 나쁜’ 축에 속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좋거나 나쁜 동재'(극본 황하정·김상원, 연출 박건호)의 서동재(이준혁 분)야말로 대표적인 캐릭터라 아니할 수 없다..

청주지검의 서동재 검사는 때빼고 광내는데 일가견이 있지만 모두가 알고 본인만 애써 부정하는 ‘똥차’다. 후배들이 줄줄이 승진하도록 헛물만 켠다. 이유는 ‘스폰서 검사’란 낙인이 주홍글씨처럼 찍혀버렸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서동재는 할 말이 있다. “누구는 스폰서 검사가 되고 싶어 됐냐고!”

지방대 출신 서동재는 명문대 집성촌 검찰에서 더부살이 하는 타지인이나 다름없다. 여기 저기, 이놈 저놈이 밀어주고 끌어주는 판이지만 서동재를 밀어주고 끌어줄 인맥은 검찰 내에 하나도 없다. ‘그러니 말라 죽으라고?’ 바퀴벌레 같은 근성의 소유자 서동재에겐 어림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서동재는 제 손으로 인맥을 만들기로 했다.

인맥 만들기? 별 거 아니다. 식사자리 한 번이면 된다. 내가 낼 수도 있지만 검사라서 그런지 대부분은 상대방이 내고 마는 가벼운 식사자리. 그렇게 받게 된 액면 그대로인 선의의 대접은 다음 번 만남으로 이어지고 세칭 ‘안면’이란 게 생긴다. 그리고 그 안면은 그대로 인맥이 된다.

그렇게 맺은 인맥은 과연 힘이 됐다. 다만 동시에 약점이 되고 치부가 될 수 있음을 간과했다. 그래서 서동재에게 붙은 딱지가 ‘스폰서 검사’다.

그런 서동재가 다시 한번 도약하려면 그럴듯한 사건을 맡아 해결해야 되는데 아무리 알랑방귀를 뀌어봐도 전미란(이항나 분) 부장검사께서는 허접 사건만 던져주신다.

그래서 맡은 사건이 교통법규 위반이 부른 1억 도자기 손괴사건. 원래는 서동재가 물먹은 인사에서 부부장으로 승진한 후배 조병건(현봉식 분)이 조사하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신임 부부장검사께서는 승진 기념 큰 사건을 맡아야 하시는 바람에 서동재에게 떨어진 일명 짬처리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갤러리로부터 1억 상당의 선물용 도자기를 구입해 트렁크에 싣고 가던 변호사 주정기(정희태 분)의 차량이, 떨어진 감자를 줍기 위해 갑자기 도로에 뛰어든 행복식당 이경학(김상호 분) 사장을 피하려다 중앙분리대를 들이받는 바람에 도자기가 파손된 것.

서동재가 보기에 참 보잘 것 없는 사건이지만 행복식당 사장이 합의를 거절하면서 종결이 난망이다. 그 행복식당 사장은 성질머리는 울끈불끈해도 없는 노인네들에게 천 원짜리 밥을 팔아 지역사회에선 나름 유명인이다.

서동재의 더듬이가 예민하게 움직인다. 이 유명인의 억울한 사건을 보기 좋게 해결하면 미담검사로 신분세탁이 가능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눈 앞의 이익이 보이자 서동재는 평소의 대충대충, 설렁설렁의 자세를 벗어던지고 기민하게 움직인다.

그 결과 주정기의 차량이 사고가 있기 전까지 행복식당 주변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더불어 고가의 예술품은 갤러리 측이 특송으로 보내지만 그 날따라 주정기가 우겨서 본인 차량에 실었다는 미심쩍은 정황도 파악했다. 확실히 뭔가가 있다.

그러던 차에 부장검사의 호출을 받고 나간 자리. 아는 얼굴이 하나 있다. 자신에게 ‘스폰서 검사’의 딱지를 안겨줬던 과거 악연 중 하나. 남완성(박성웅 분)이다. 남완성과는 박무성(엄효섭 분)의 소개로 만났다. 당시엔 하찮아 보였던 지방 토건업자로 자신이 격려차 등을 두드려 주었던 기억이 있는 인물이다.

그 남완성이 이제는 부장검사와 마주 앉아 자신에게 명함을 건넨다. 재개발 전문 이홍건설 대표의 명함을. 현재 자신이 맡고 있는 사건을 스치듯 언급하며.

그림이 그려진다. 행복식당 자리는 재개발 요충지다. 도자기 손괴사건은 이경학을 압박하기 위한 설계다. 이 흐뭇한 소식을 전하려 이경학의 집을 찾은 자리에서 서동재는 목격하고 만다. 마당을 파헤쳐 두 구의 시신을 꺼내놓고 있는 이경학의 모습을. 이경학이 이주를 거부한 내막은 바로 이 시체들 때문이었다.

등골 서늘해져 빠져 나가려던 서동재는 이경학에게 뒷통수를 가격당해 포박된다. ‘죽여? 말어?’고민에 빠진 이경학 앞에서 서동재의 혓바닥이 현란하게 춤춘다. 임기응변은 서동재의 패시브 스킬, 감언이설은 액티브 스킬이다.

남들 다 떠난 이 동네서 10년이면 사장님은 죗값을 치른 거나 진배없다. 자신은 검사이므로 이 시신들을 무연고 사망 처리해 줄 수 있다. 자신을 죽여 시체를 한 구 더 늘리면 온전히 사장님의 부담이지만 자신을 살리면 시체 두 구를 화장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덤으로 수십억의 돈다발도 안겨줄 수 있다.

낫 든 이경학과의 검찰청 동행-무연고 사망 확인서 출력- 이경학이 기뻐하는 틈에 탈출 시도-조병건까지 가세한 이경학과의 난투-김지희(정운선 분)의 회심의 뒷통수 가격이 이어지며 살인범 이경학 체포에 성공한다.

이경학은 체포됐지만 이홍건설은 행복식당 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런 남완성한테 이경학이 제안한다. 서동재를 죽여주면 땅을 넘기겠노라고.

‘그 부담을 내가 왜 져?’ 싶은 남완성은 서동재를 불러내 지시한다. 이경학을 설득해 땅을 자신에게 넘기게 하라고.

한때 등 두드려 주던 인간이 목에 깁스한 꼴도 볼썽사나운 판에 대놓고 명령? 서동재가 발끈할 때 남완성이 생뚱맞게 기억에도 없는 땅 얘기를 꺼낸다. 예전 자신은 서동재에게 땅문서를 건넸고 그 땅이 수 백 배 올라 이제는 수 십 억 규모의 뇌물이 되어버렸다고. 

집에 돌아와 온 방안을 헤집어 마침내 찾은 땅문서. ‘이런, 망할!’ 잘못 엮이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0년 이하의 자격정지가 떨어질 수 있는 수뢰죄를 감당해야 될 판이다. 서동재가 털어내지 못한 치부는 아직도 발목을 잡고 있었다.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는 이렇게 시작됐다.

2017년과 2020년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비밀의 숲’ 시리즈 스핀오프 드라마로 편성된 ‘좋거나 나쁜 동재’는 당시의 조연 서동재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당시에도 서동재는 바람이 닥치기 전에 누을 줄 아는 갈대 같은 유연성과 억새 같은 생명력으로 제 앞에 닥친 풍파를 헤쳐나갔었다. 보신과 출세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지만 일말의 양심과 의리만은 저버리지 않는 인간성의 소유자로 ‘느그동재’니 ‘우리동재’니 해가며 세간의 인기를 끌었었다.

서동재의 인기에는 대중의 공감이 함께 한다. 너무나 나 같고 너 같은 우리 속의 욕망, 하지만 겉치레에 얽매여 차마 표현 못하기 일쑤인 그 욕망을 제 안면 갈고 제 몸 굴려가며 속시원하게 표현해주니 찬사가 따를만 하다.

여기에 더해 이 스핀 오프 드라마 속 서동재는 부부장검사로 출발했던 ‘비밀의 숲’ 서동재의 행태를 고스란히 유지함으로써 ‘사람 고쳐쓰는 것 아니다’는 속설의 당위를 재확인하는 쾌감도 안긴다.

마치 김용의 무협소설 ‘녹정기’ 속 위소보를 연상시키는 속물 서동재. 이 궁상맞고 짠한 안티히어로가 이 가을을 유쾌하게 만든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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