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광주, 이상학 기자] 시즌이 끝난 줄 알았던 선수가 58일 만에 돌아왔다. 외국인 선수에게 쉽게 보기 힘든 대단한 워크에식이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외국인 투수 제임스 네일(31)이 복귀 약속을 지키며 한국시리즈 1차전을 빛냈다.
네일은 지난 21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KS·7전4선승제) 1차전에 선발등판, 5이닝 4피안타(1피홈런) 2볼넷 6탈삼진 1실점으로 호투했다. 0-1로 뒤진 상황에서 우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됐고, 네일은 패전 요건을 안은 채 내려갔지만 승패를 떠나 KIA에 큰 울림을 준 투구였다.
네일에겐 58일 만의 공식 경기 등판이었다. 지난 8월24일 창원 NC전에서 네일은 6회 맷 데이비슨의 강습 타구에 안면을 맞아 턱관절이 부러지는 끔찍한 사고를 당했다. 이튿날 곧바로 턱관절 고정술을 받은 네일은 남은 정규시즌을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없었다. 1위가 확정되지 않았던 KIA는 부상 대체 외국인 선수로 에릭 스타우트를 영입하며 혹시 모를 네일의 포스트시즌 복귀 길을 열어놓았다.
부상 당시만 해도 정규시즌은 물론 가을야구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몸이 재산인 외국인 선수들은 이럴 때 대부분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한다. 보너스 게임인 가을야구를 위해 무리하게 복귀 이유가 없었다. 올 시즌 26경기(149⅓이닝) 12승5패 평균자책점 2.53 탈삼진 138개로 충분한 성적을 낸 만큼 더욱 그랬다.
하지만 네일은 단순한 외국인 선수가 아니었다. 수술 후 예상보다 빠른 회복력을 보인 네일은 지난달 6일 광주 키움전을 앞두고 마스크를 쓴 채 마운드에 올랐다. 깜짝 시구자로 나서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수술 이후 쾌유를 비는 팬들의 메시지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시구 자청한 네일은 “외국인 선수로 KIA에 입단했지만 지금까지 팬들이 내게 보내준 응원은 단순한 응원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렇게 멋진 팬들과 동료들이 있는 KIA에 입단하게 돼 정말 큰 행운이다. 하루빨리 부상을 털어내 마운드에 설 수 있도록 준비 잘하겠다”고 약속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네일은 약속을 지켰다. KIA가 정규리그 우승으로 KS 직행을 확정했고, 네일은 실전 복귀에 속도를 냈다. 지난 9일과 14일 광주에서 각각 상무, 롯데를 상대로 연습경기에 나서 실전 복귀를 알렸다. 2~3이닝으로 빌드업하며 구위를 끌어올렸고, 첫 연습경기 때 1회를 마친 뒤 보호망을 치우며 강습 타구에 대한 트라우마도 극복했다.
이범호 KIA 감독은 KS 1차전을 선발투수로 네일과 양현종을 두고 고민한 끝에 네일로 결정했다. “올 시즌 최고의 투수였다. 평균자책점 1위(2.53)를 차지했다”며 절대적인 믿음을 보냈고, KS 1차전에서 제대로 보답을 받았다.
1회에는 1루수 서건창의 포구 실책, 3회에는 유격수 박찬호의 송구 실책이 나왔지만 네일은 흔들리지 않았다. 위기 관리 능력으로 실점 없이 막았다. 특히 3회 1사 3루에선 김헌곤의 투수 앞 원바운드 타구를 캐치한 뒤 3루 주자 류지혁을 쫓아 직접 태그 아웃시키는 기민함을 보였다.
4회에는 강민호, 김영웅, 박병호를 3타자 연속 삼진 처리했다. 네일의 주무기 스위퍼에 삼성 타자들이 꼼짝 못했다. 우타자 몸쪽으로 휘어지는 백도어성 스위퍼에 박병호도 그대로 얼어붙었다. 6회 김헌곤에게 불의의 솔로 홈런을 맞으며 선취점을 내줬지만 실투가 아니었다. 바깥쪽 낮은 스위퍼를 김헌곤이 잘 밀어친 것이었다.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승리는 거두지 못했지만 총 투구수 76개로 최고 시속 150km, 평균 147km 투심 패스트볼(38개), 스위퍼(31개) 중심으로 체인지업(6개), 직구(1개)을 섞어 던졌다. 6회 1-0으로 앞선 삼성 공격 중 우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며 KIA 쪽에 유리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성공적인 복귀를 알린 네일의 호투가 발판이 됐다.
경기 후 이범호 감독은 네일에 대해 “너무 잘 던졌다. 투구수 60개를 넘겼을 때도 구위가 굉장히 좋았다. 6회 한 이닝만 더 던지게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 상황에 위기가 오면 바꾸려고 했는데 솔로 홈런을 맞았다. 타자가 잘 친 거라서 개의치 않는다”며 “구위나 컨디션, 모든 면에서 네일이 제 모습을 찾아줬다. 앞으로 더 좋은 피칭이 예상된다”고 반겼다. KS가 5차전까지 이어지면 네일에게 한 번 더 등판 기회가 주어진다. 네일의 구위 회복을 확인한 것이 1차전 승패를 떠나 KIA에 큰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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