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의 축구話] 운명의 쿠웨이트전 선발은 ‘당연히’ 박주영
입력 : 2012.02.1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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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지난 주말 박주영(26, 아스널)에겐 좋고 나쁜 소식이 하나씩 날아들었다. 최강희 국가대표팀 감독의 부름이 ‘굿 뉴스’였지만 주말 선덜랜드 원정 엔트리 제외라는 ‘배드 뉴스’가 뒤따랐다.

박주영의 현재는 매우 어둡다. 왜 그런지 일일이 들춰봤자 속만 상하니 그냥 ‘안 좋다’라고만 해두자. 요즘 같으면 사실의 나열조차 박주영과 그의 팬에겐 고통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주영이 29일 쿠웨이트와의 대표팀 경기에서 정상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커진다. 최강희 감독과의 면담 자리에서 박주영은 국가대표팀 활동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그 말을 전하는 최강희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기대보다는 걱정이 보였다. 경기력을 유지시키기 위한 필수조건인 정기적 출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강희 감독은 박주영을 대표팀 소집명단에 포함시켰다. 다수의 해외파를 제외시킨 가운데서 내려진 결단이었기에 더 돋보였다. 대표팀 명단 발표 현장에서 최강희 감독은 “본인의 강한 의지”와 “기본 능력”을 발탁 근거로 들었다. 의지가 강하다는 것은 사실 양념에 불과하다. 대표팀 감독 앞에서 “저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할 선수는 없다. 진짜 이유는 최강희 감독이 박주영의 능력을 실전감각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썩어도 준치’라는 속담 그대로다. 박주영의 기본 능력이 경기력 저하를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박주영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 공격수다. 어린 나이에 K리그를 평정했을 뿐 아니라 유럽 1부 리그에서 3년간 붙박이 주전으로 뛰었다. 유럽 진출 후 득점수도 매 시즌 늘어났다. AS모나코의 전력을 감안하면 지난 세 시즌간 득점수(26골)는 나쁘지 않은 기록이다. 2005년 프로 데뷔 후 7년간 이어져온 그의 기본 능력, 즉 ‘클래스’가 아스널에 입단한 2011년 8월부터 지금까지 반 년 만에 감쪽같이 사라졌을 리 만무하다. 경기력의 고저는 선수의 기본 능력 범위 안에서 형성된다. 능력의 대역 자체가 높은 선수는 경기력의 최저점도 높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노후를 즐기던 티에리 앙리는 아스널로 ‘잠깐’ 와서 117분간 3골을 넣었다. ‘아저씨 몸매’ 이운재의 골에어리어 내 방어력은 여전히 K리그 최고 수준이다. 아스널 입단 후 치러진 국가대표팀 6경기(14골)에서 박주영은 5경기 8골을 기록했다. 팀 득점의 절반 이상을 혼자 넣었다. 아스널에서는 후보라고 한들 박주영이 대한민국 최고의 골잡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박주영의 대표팀 소집이 확정된 지금 관심의 초점은 이제 그의 쿠웨이트전 선발 여부로 옮겨간다. 최강희 감독의 심중에 들어가본 적은 없다. 하지만 당연히 박주영이 선발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긴급 투입된 최강희 감독에게 있어서 쿠웨이트전은 이른바 ‘끝판’이다. 실패하면 뒤가 아예 없다. 실패를 만회할 기회가 전혀 없는 경기에서 새로운 방법을 선택하기란 – 보통 ‘실험’이라고 표현하는 – 대단히 어렵고 부담스럽다. 당연히 최고의 카드를 뽑아야 한다. 필승 카드란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에 대한 비난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현실적 장점도 존재한다. 대기업의 IT 관리자들은 시장 일등제품의 도입을 선호한다. 왜냐면 실패해도 욕먹을 걱정이 덜하다는 직장 내 생존본능 때문이다. 한국 축구도 마찬가지다. 박주영으로도 안되면 그건 선수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2012년 한국 축구의 한계다. 진취적 사고는 긍정적이지만 쿠웨이트전은 진취에 따른 리스크가 너무 큰 경기다.

박주영의 암울한 현 상황과 최강희 감독의 배경으로 인해 대표팀 공격수 자리의 주인으로 이동국이 다시 한번 조명을 받는다. 최강희-이동국 전북 콤비는 두 번의 K리그 우승과 MVP로 국내 축구판을 평정했다. 이동국의 ‘클래스’ 역시 아시아 무대에서는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고(高)대역이다. 아시아 최고 클럽이 자웅을 가리는 AFC챔피언스리그에서 이동국의 존재감은 발군이다. 2011년 대회에서 그는 9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다. 많은 축구 팬들은 이동국의 대표팀 내 입지 구축을 방해하는 요소로 기회의 불공평을 든다. 선수 본인도 눈물을 흘렸듯이 오랜 기다림 끝에 다시 찾은 월드컵의 꿈도 2경기 교체 출전, 38분의 출전시간으로 허무하게 마감되었다. 이동국에게 좀 더 긴 출전시간이 부여되었다면 그의 활약도는 달라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언제나 ‘후배’ 박주영이 버티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영국 축구에서 흔히 쓰는 표현인 ‘Pecking order(집단 내 서열)’에서 뒤진 것이다. 지금 아스널에서 박주영에게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반 시장과 마찬가지로 1인자와 2인자의 경쟁은 항상 불공평하다. 공성(攻城)이 수성(守城)보다 당연히 더 어렵다.

최강희 감독은 박주영의 늦은 대표팀 합류 시점을 언급했다. 아르센 벵거 감독의 자비가 없는 한, 박주영은 29일 쿠웨이트전으로부터 이틀 전인 27일에야 대표팀에 합류한다. 이틀 만에 9시간의 시차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시차가 문제가 되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의 유럽파 선배들은 이미 그런 현실 속 난관을 뚫고 대표팀에 공헌했었다. 이동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선수들은 시차극복을 위한 요령을 제가끔 갖고 있다. 박주영 역시 3년 넘게 동일한 상황을 수 차례 경험했고 노하우도 쌓였을 것이다. 동료들과의 호흡 불안도 치명적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대표팀에 뽑힐 만한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뿐 아니라 주변 동료의 움직임까지 파악해내는 능력을 갖췄다고 봐야 한다.

물론 쿠웨이트전에서 최강희 감독은 여러 포지션에서 그 동안 대표팀 내에서 지켜져 왔던 우선순위에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최전방 공격수 자리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순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김신욱이란 카드도 등장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쿠웨이트전 준비의 출발점은 ‘지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실험이나 기대, 가능성보다는 ‘결과’가 최우선시되는 경기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대표팀은 1순위 공격수를 선발로 내세우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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