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윤진만 기자= ‘홍명보호’가 3년 4개월의 긴 여정을 끝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팀은 11일 새벽(한국시간) 일본과의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3/4위전을 끝으로 그 임무를 다했다. 한국은 숙적 일본을 2-0으로 완파하고 한국 올림픽 축구 사상 첫 메달 획득의 금자탑을 쌓았다. 18명의 선수 모두 병역 혜택도 받아 잊지 못할 올림픽으로 남았다.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기대 이상의 성과로 동메달은 크게 부각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올림픽 축구팀의 첫 출발과 런던까지 오는 과정은 김재범(유도), 양학선(체조), 김장미(사격) 등 금메달리스트들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선수 차출 난항, A대표팀과의 마찰, 부상 악재를 스스로 이겨낸 홍명보호는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며 한국 축구사를 새로 썼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박성화 감독의 수석코치로 본선을 경험한 홍명보 감독은 이듬해 U-20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지도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단 한 가지 올림픽 메달이었다. 이집트 월드컵은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회였다. 뚜렷한 스타 플레이어가 없어 홍명보, 서정원, 김태영 등 코칭스태프가 더 주목받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단단한 조직력으로 8강 신화를 썼다. 주장 구자철을 비롯해 홍정호, 김보경, 김민우, 조영철, 김영권, 이범영, 김승규 등은 스타 예감했다. 훗날 이들에겐 ‘홍명보의 아이들’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1년 뒤, 이 선수들을 주축으로 김정우, 박주영, 신광훈이 와일드카드로 참가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도 큰 성과를 남겼다. 준결승전에서 아랍에미리트(UAE)에 0-1로 일격을 맞고 3/4위전 끝에 동메달에 그쳤지만, 이란과의 3/4위전 후반전에 보인 정신력과 이를 통해 가슴 속에 새겨진 ‘팀’은 현 홍명보호 팀 정신의 기반이 됐다. 홍명보 감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선수들의 의지를 불태웠고, 와일드카드 공격수 박주영은 이란전 하프타임에 라커룸에서 선수들을 향해 눈물을 머금으며 “최선을 다하자”고 했고, 경기장 위에선 “한 발 더 뛰자”고 독려했다. 홍 감독과 박주영의 역할은 런던 올림픽 본선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국 축구 차세대 주자들의 급성장과 더불어 올림픽팀도 이집트 월드컵 8강, 아시안게임 동메달의 자신감을 토대로 나날이 발전해갔다. 올림픽 예선 과정에서 A대표팀과 23세 이하 선수 차출 문제가 불거지고 J리그 구단의 차출 불응이 이어지면서 최종예선 매경기 다른 선발 조합으로 출전해야 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박종우, 백성동 등 새 얼굴을 발탁하여 그 공백을 메웠다. 부상 낙마한 홍정호의 공백은 황석호가 채워 넣었다. 결과는 최종예선 무패 통과. 홍 감독은 아시안게임의 감동 주역 박주영도 병역 연기 논란에 휩싸인 상황이었지만 ‘팀’ 안에 그를 포함시켜 함께 본선 준비에 나섰다. 선수단은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고 말하고는 비행기에 올랐다.
뉴질랜드(2-1 승), 세네갈(3-0 승)과의 본선 대비 평가전 연승으로 쾌조의 상승세를 탄 홍명보호는 런던 착륙 전후로 수비수 장현수, 미드필더 한국영까지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런던 날씨만큼이나 어두운 구름이 올림픽팀 위에 떠있었다. 하지만 대회 뚜껑이 열리고 난적으로 여겨진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기대 이상의 전술 완성도를 펼치며 우려를 떨쳤다. 무득점 무승부로 끝났지만 수준급의 경기력과 투지는 8강을 넘어 첫 메달도 기대하게 만들었다. 스위스전 2-1 승, 가봉전 0-0 무승부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8년 만에 8강에 안착하고 영국 단일팀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우승 후보 0순위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서 0-3 대패하긴 했지만 일본을 2-0으로 꺾고 1291일간 드라마를 해피엔딩으로 마쳤다.
사진=이연수 기자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팀은 11일 새벽(한국시간) 일본과의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3/4위전을 끝으로 그 임무를 다했다. 한국은 숙적 일본을 2-0으로 완파하고 한국 올림픽 축구 사상 첫 메달 획득의 금자탑을 쌓았다. 18명의 선수 모두 병역 혜택도 받아 잊지 못할 올림픽으로 남았다.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의 기대 이상의 성과로 동메달은 크게 부각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올림픽 축구팀의 첫 출발과 런던까지 오는 과정은 김재범(유도), 양학선(체조), 김장미(사격) 등 금메달리스트들의 과정과 다르지 않다. 선수 차출 난항, A대표팀과의 마찰, 부상 악재를 스스로 이겨낸 홍명보호는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며 한국 축구사를 새로 썼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박성화 감독의 수석코치로 본선을 경험한 홍명보 감독은 이듬해 U-20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지도자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단 한 가지 올림픽 메달이었다. 이집트 월드컵은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회였다. 뚜렷한 스타 플레이어가 없어 홍명보, 서정원, 김태영 등 코칭스태프가 더 주목받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단단한 조직력으로 8강 신화를 썼다. 주장 구자철을 비롯해 홍정호, 김보경, 김민우, 조영철, 김영권, 이범영, 김승규 등은 스타 예감했다. 훗날 이들에겐 ‘홍명보의 아이들’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1년 뒤, 이 선수들을 주축으로 김정우, 박주영, 신광훈이 와일드카드로 참가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도 큰 성과를 남겼다. 준결승전에서 아랍에미리트(UAE)에 0-1로 일격을 맞고 3/4위전 끝에 동메달에 그쳤지만, 이란과의 3/4위전 후반전에 보인 정신력과 이를 통해 가슴 속에 새겨진 ‘팀’은 현 홍명보호 팀 정신의 기반이 됐다. 홍명보 감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선수들의 의지를 불태웠고, 와일드카드 공격수 박주영은 이란전 하프타임에 라커룸에서 선수들을 향해 눈물을 머금으며 “최선을 다하자”고 했고, 경기장 위에선 “한 발 더 뛰자”고 독려했다. 홍 감독과 박주영의 역할은 런던 올림픽 본선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국 축구 차세대 주자들의 급성장과 더불어 올림픽팀도 이집트 월드컵 8강, 아시안게임 동메달의 자신감을 토대로 나날이 발전해갔다. 올림픽 예선 과정에서 A대표팀과 23세 이하 선수 차출 문제가 불거지고 J리그 구단의 차출 불응이 이어지면서 최종예선 매경기 다른 선발 조합으로 출전해야 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박종우, 백성동 등 새 얼굴을 발탁하여 그 공백을 메웠다. 부상 낙마한 홍정호의 공백은 황석호가 채워 넣었다. 결과는 최종예선 무패 통과. 홍 감독은 아시안게임의 감동 주역 박주영도 병역 연기 논란에 휩싸인 상황이었지만 ‘팀’ 안에 그를 포함시켜 함께 본선 준비에 나섰다. 선수단은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고 말하고는 비행기에 올랐다.
뉴질랜드(2-1 승), 세네갈(3-0 승)과의 본선 대비 평가전 연승으로 쾌조의 상승세를 탄 홍명보호는 런던 착륙 전후로 수비수 장현수, 미드필더 한국영까지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런던 날씨만큼이나 어두운 구름이 올림픽팀 위에 떠있었다. 하지만 대회 뚜껑이 열리고 난적으로 여겨진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기대 이상의 전술 완성도를 펼치며 우려를 떨쳤다. 무득점 무승부로 끝났지만 수준급의 경기력과 투지는 8강을 넘어 첫 메달도 기대하게 만들었다. 스위스전 2-1 승, 가봉전 0-0 무승부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8년 만에 8강에 안착하고 영국 단일팀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준결승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우승 후보 0순위 브라질과의 준결승전에서 0-3 대패하긴 했지만 일본을 2-0으로 꺾고 1291일간 드라마를 해피엔딩으로 마쳤다.
사진=이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