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모스크바(러시아)] 김성민 기자= ‘푸티니즘’. 최근의 러시아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수식어는 없을 듯 하다. 정치, 경제를 불문하고 블라지미르 푸틴 대통령의 영향력이 러시아를 휘감고 있다. 푸틴의 지지율은 나날이 고공행진하고 있고, 이와 맞물려 모스크바를 비롯한 백•청•적 3색을 이뤄져 있는 러시아 국기가 창문마다 나부끼고 있다.
‘푸티니즘’은 스포츠 분야에도 이어진다. 유도 유단자에 스포츠광인 푸틴의 성향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혁신, 위상, 투자를 골자로 하는 ‘푸티니즘’은 지난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푸틴의 물적•인적 지원으로 러시아는 외국인 코치를 영입하고, 쇼트트랙 선수인 안현수(빅토르 안)와 우크라이나 출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타티아나 볼로소자를 비롯한 외국 유망 선수들의 귀화를 성사시켰다. 또한 ‘겨울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510억 달러(약 55조원)라는 사상 최대의 금액을 투자했다. 물론 소치 동계 올림픽은 투자만큼 성황리에 끝나지 못했지만.
그렇다면 축구는 어떨까. 푸틴이즘은 러시아 3대 프로스포츠 중 하나인 축구에 어떤 식으로 적용되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스포탈코리아>가 러시아 축구계 현장을 찾아가봤다.
빛- 선수 영입에 국적없다..개방화 전략
“출신은 상관없다. 스포츠 강국으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열린 마인드가 필요하다.”- 푸틴
지나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푸티니즘’ 또한 세계화되고 있는 스포츠 흐름을 역행하지는 못한다. 지난 소치 올림픽에서 빅토르 안을 비롯한 많은 외국 선수들이 러시아로 귀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축구 또한 ‘외국인 선수 제한’ 방침을 재조정하며 자국주의에서 벗어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축구협회가 지난 달 26일 모스크바 시내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러시아 축구 발전방안에 대한 컨퍼런스를 가졌다. 조직 위원회, 언론인, 팬 대표가 참가한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리그 운영, 홍보, 마케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고갔다.
요컨대, 홍보 분야에서는 러시아 국제 올림픽 대학원과의 정보 교류로 확실한 마케팅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예산 부문에서는 모스크바 쁠레하노바 경제 학과 TF팀과의 협업으로 물 샐틈 없이 돈 관리를 한다는 것이 주 맥락이다.
외부적 인프라 구축이외에도 인재양성에 대한 논의도 오갔는데, 러시아 축구협회는 양.질의 트레이너, 심판 양성을 위해 축구 인재 사관학교를 꾸릴 예정이다. 현재 러시아 협회 소속으로 UEFA(유럽축구연맹) 소속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원은 3,000여명 정도지만 2020년까지 10,000명으로 늘릴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날 컨퍼러스의 또 다른 화두는 외국인 선수 영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러시아 리그의 현 규정에 따르면 선발 명단에 포함될 수 있는 외국인 선수는 7명이다. 즉 상황에 따라 11명의 선발 명단에 ‘외국 선수 7+ 자국 선수 4’의 구성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러시아 축구협회는 상황에 따라 ‘외국 선수 10+ 자국 선수 1’의 구성도 허용할 가능성도 염두해 두고 있다. 이날 컨퍼런스에서 협회의 실무진, 언론인, 팬 대표들의 투표로 진행된 이 방안은 오는 5월 말에 투표 결과에 따라 다음 시즌부터 공식화될 전망이다.
이는 거스 히딩크 전 러시아 감독이 주장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2008년 러시아 지휘봉을 잡을 당시 러시아 축구의 발전을 위해 국내 리그에서 뛰고 있는 용병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린적 있다. 유망주의 발굴과 육성이 대표팀과 클럽팀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필드위에서 러시아 선수들이 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히딩크의 처방도 나름의 딜레마가 있었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외국인 선수 제한에 나선다면, 리그 경쟁력 하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리그가 자본의 힘을 등에 업고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낸 것에는 유명 해외 선수들의 활약을 빼 놓을 수 없다. 이런 이유에 현 시점에서는 외국인 선수를 어디까지로 제한하느냐도 쟁점이 된다.
현재 러시아 리그에서 외국 선수에 대한 규정은 말 그대로 러시아 국적이 아닌 것에 국한한다. 유럽의 많은 리그들이 유럽연합(EU)에 한정 지어 외국인선수 비율 제한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성격이다. 때문에 러시아 리그는 유럽축구연맹(UEFA)에 한정시킨 제도를 장착해 EU에 속하지 않은 이스라엘, 터키 선수까지 영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독일 리그를 본보기로 삼고 있다.
니꼴라이 똘스띠흐 러시아 축구 협회장도 ‘외국인 용병 수 제한’의 어두운 면을 꼬집었다. 러시아 리그가 유럽 축구의 또 다른 축이 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똘스띠흐 회장은 이날 컨퍼런스에서 “자국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오히려 선수들에게 안일함을 가져다 주고 있다. 4명의 선수들은 반드시 그라운드에 뛸 수 있다는 것이 수준급의 자국 선수들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지금 이 시점이 러시아 리그의 풍.흉을 좌우하는 시기라 생각한다. 외국 선수의 수와 함께 외국인 선수를 규정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고찰이 러시아가 유럽의 또 다른 중심 리그가 될 수 있는 발판이 됐으면 좋겠다 ”고 밝혔다.
같은 날 기자는 컨퍼런스 자리서 러시아 언론사 ‘인떼르 빡스’의 스포츠 팀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기자에게 건넨 첫 인사말이 뇌리에 남는다. ‘Спасибо за Ана (빅토르 안을 보내줘서 고맙다).’ 안현수와 같은 실력있는 선수를 러시아로 보내줘 감사한다는 뜻이다. 아직도 그 인사말이 머리속에 맴도는 것은 축구계에서도 제 2의 빅토르 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걱정 때문은 아닐지.
그림자: ‘올리가르히’, ‘푸티니즘’의 불안한 버팀목
파비오 카펠로 러시아 대표팀 감독은 전 세계 대표팀 감독중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다. 그는 현재 협회로부터 780만 유로(약 112억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전 세계 대표팀 감독 중에서는 가장 많은 금액이다. 지난 2006년 러시아의 첫 외국인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를 선임하는 부대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축구계에는 이를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바로 푸틴의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올리가르히’ 들이다.
올리가르히란 구소련 체재가 무너지고 러시아공화국으로 전환된 90년 대 초반 구소련 제국의 국유재산을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의 거래를 통해 헐값에 인수받아 막대한 재산을 갖게 된 신흥재벌을 말한다. 축구계에서는 로만 아브라모비치(첼시), 드미뜨리 리볼로프레프(AS 모나코), 슐레이만 케리모프(안지), 안톤 징가레비치(레딩) 등의 구단주들이 잘 알려진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축구 인사들이다. 이들은 러시아 축구의 굵직한 사건들을 일궈내는 주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러시아 축구협회의 ‘내셔널 프로젝트’다
2004년부터 러시아 축구협회는 유소년 프로그램 창출에 착수한 상황이다. 이중 20명의 직원들은 유소년 프로그램에 대한 법적-제도적 문제 해결 등을 담당하고 있다. 실질적인 인프라 확장에도 전력투구중인데, 러시아 축구 협회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대비해 전국에 140여개의 유소년 훈련장을 짓는 이른바 ‘내셔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금액이 예상되는 이 프로젝트의 자금줄은 올리가르히들이 맡고있다. 올리가르히 출신의 6개의 거대기업 회장들이 스폰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과의 협력 관계 속에 진행되고 있고, 수 많은 올리가르히들의 자금력으로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 축구의 근간을 만드는 일이 올리가르히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다.
축구판에서 올리가르히들의 활동은 양지에서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비공식적으로도 올리가르히들은 물심양면으로 러시아 축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지 취재 결과,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연봉 및 코치진들의 부대비용은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가 담당했었다. 러시아 현지기자에 전언에 따르면 히딩크 전 감독이 즐겨마시는 카푸치노의 비용까지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또한 현 카펠로 감독의 연봉과 대표팀 운영 비용은 디나모 모스크바의 하키팀, 축구팀 구단주들인 로덴베르그 형제들이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푸틴이 재선에 성공하고, 재계에서 영향력이 급증한 인물들이다. 이처럼 올리가리히들의 투자는 러시아 축구 저변 확대에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 영향도 못지 않다. 주요 현안의 투자 비용을 ‘올리가르히’들과 같은 개인 투자자에 맡기는 것은 변수가 많다. 잘 진행되던 프로젝트 또한 올리가리히들의 순간적 변심에 흔들리기 십상이다. 러시아 축구의 주요 현안인 ‘내셔널 프로젝트’가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의 투자 철회로(아브라모비치는 2004년부터 약 2억 달러(2.200억 원)에 이르는 금액을 투자했다.) 잠시 삐딱선을 탄 것도 같은 면면이다. 또한, 고액 연봉으로 ‘스타 감독 모시기’와 같은 방식은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바라보는 어긋난 스포츠 비즈니스다. 정치, 경제 상황에 따라 가변적 행보를 보일 수 있는 올리가르히들이 러시아 축구 발전의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수는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빛? 그림자? : 크림반도 축구팀 인수..원칙도 깬다
지난 3월 크림공화국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러시아로 넘어갔다. 소련 시절 니키타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에 의해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전됐던 시점을 기준으로 60년 만의 일이다. 이제는 실질적인 합병 절차만이 남았을 뿐이다.
맞물려, 축구클럽들의 합병 여부도 관심사다. 크림반도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리그 소속의 ‘타브리야 심페로폴’과 ‘세바스토폴’ 거취가 쟁점이다. 현재 두 구단은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를 탈퇴할 예정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사실상 두 클럽의 러시아리그로의 흡수는 기정사실화 돼있다. 러시아 축구협회 또한 이미 “크림 반도에 있는 우크라이나 1부리그 두 클럽을 러시아 리그 시스템 안에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기’와 ‘방식’에 대한 조율이 남은 상황인데, 걸림돌은 ‘방식’이다. 두 클럽이 러시아 1부리그로 들어오기에는 기존의 조건과 부합하지 않는다.
먼저 구장 여건이 문제다. 러시아 1부리그에 속하기 위해서는 최소 '1만 관중'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세바스토폴’의 경우는 5.000여석이 갓 넘는 소규모 구장을 갖고 있다. 스폰서의 문제 또한 빼 놓을 수 없다. ‘타브리야’와 ‘세바스토폴’ 등 크림 반도 축구 클럽은 우크라이나의 한 올리가르히로부터 구단 운영비의 절반 가량을 후원 받고 있다. 크림반도가 러시아 영토로 넘어간 이상,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의 도움을 받기는 사실상 어렵다. 결국 스폰서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크림반도의 최근 정세가 불안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빠른 시간에 새 스폰서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다른 걸림돌은 선수단 구성여부다. 두 클럽이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 편입하게 될 경우, ‘외국인 용병 제한법’에 어긋나게 된다. 러시아 축구협회의 규정에 따른 외국인 선수는 말 그대로 러시아 국적이 아닌 선수인데, ‘세바스토폴’에는 단 한명의 러시아 선수도 뛰지 않는다. ‘타브리야’에는 소수의 러시아 선수들이 소속돼있지만, 기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자국인들이었던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러시아로 귀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이유에 러시아 축구 협회는 구장의 리모델링, 스폰서 다원화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1부 리그가 아닌 2부, 3부 소속으로 클럽들을 인수하면 합병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까지 러시아 축구협회는 무리를 해서라도 1부리그의 합류를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축구의 전설이자, 축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씨모냔 니키타 파블로비치 또한 “크림 반도는 러시아인들의 한이 묻혀있는 곳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들이 러시아 축구의 또 다른 축으로 자리 잡게 만들어야 한다. 스포츠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최근의 흐름도 또 다른 이유다”며 세바스토폴과 타브리야의 1부 리그 합류를 확신했다. ‘하나된 러시아’를 강조하는 ‘푸티니즘’과 맥을 같이 하는 셈이다.
파블로비치 부회장이 말한 것처럼 크림반도는 러시아인들에게는 ‘크림전쟁’의 악몽이 서려있는 곳이다. 러시아 유명 시인이자 크림전쟁시 포병장교로 참전했던, 알렉산드르 푸시킨 조차도 “오 신이시여, 정녕 당신의 뜻입니까?”라며 울부짖었다. 우연히도 이러한 푸시킨의 명언은 당시 격전지이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축구 클럽의 연고지인 ‘세파스토폴’에서 탄생됐다. 만약 톨스토이가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크림반도의 모습을 보고 있다면 이렇게 말할수도 있겠다.
“오 푸틴이여, 이것이 정녕 당신의 뜻입니까?”
‘푸티니즘’은 스포츠 분야에도 이어진다. 유도 유단자에 스포츠광인 푸틴의 성향을 생각하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혁신, 위상, 투자를 골자로 하는 ‘푸티니즘’은 지난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푸틴의 물적•인적 지원으로 러시아는 외국인 코치를 영입하고, 쇼트트랙 선수인 안현수(빅토르 안)와 우크라이나 출신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인 타티아나 볼로소자를 비롯한 외국 유망 선수들의 귀화를 성사시켰다. 또한 ‘겨울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 510억 달러(약 55조원)라는 사상 최대의 금액을 투자했다. 물론 소치 동계 올림픽은 투자만큼 성황리에 끝나지 못했지만.
그렇다면 축구는 어떨까. 푸틴이즘은 러시아 3대 프로스포츠 중 하나인 축구에 어떤 식으로 적용되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스포탈코리아>가 러시아 축구계 현장을 찾아가봤다.
빛- 선수 영입에 국적없다..개방화 전략
“출신은 상관없다. 스포츠 강국으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열린 마인드가 필요하다.”- 푸틴
지나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푸티니즘’ 또한 세계화되고 있는 스포츠 흐름을 역행하지는 못한다. 지난 소치 올림픽에서 빅토르 안을 비롯한 많은 외국 선수들이 러시아로 귀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축구 또한 ‘외국인 선수 제한’ 방침을 재조정하며 자국주의에서 벗어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축구협회가 지난 달 26일 모스크바 시내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러시아 축구 발전방안에 대한 컨퍼런스를 가졌다. 조직 위원회, 언론인, 팬 대표가 참가한 이날 컨퍼런스에서는 리그 운영, 홍보, 마케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오고갔다.
요컨대, 홍보 분야에서는 러시아 국제 올림픽 대학원과의 정보 교류로 확실한 마케팅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예산 부문에서는 모스크바 쁠레하노바 경제 학과 TF팀과의 협업으로 물 샐틈 없이 돈 관리를 한다는 것이 주 맥락이다.
외부적 인프라 구축이외에도 인재양성에 대한 논의도 오갔는데, 러시아 축구협회는 양.질의 트레이너, 심판 양성을 위해 축구 인재 사관학교를 꾸릴 예정이다. 현재 러시아 협회 소속으로 UEFA(유럽축구연맹) 소속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원은 3,000여명 정도지만 2020년까지 10,000명으로 늘릴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날 컨퍼러스의 또 다른 화두는 외국인 선수 영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다. 러시아 리그의 현 규정에 따르면 선발 명단에 포함될 수 있는 외국인 선수는 7명이다. 즉 상황에 따라 11명의 선발 명단에 ‘외국 선수 7+ 자국 선수 4’의 구성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러시아 축구협회는 상황에 따라 ‘외국 선수 10+ 자국 선수 1’의 구성도 허용할 가능성도 염두해 두고 있다. 이날 컨퍼런스에서 협회의 실무진, 언론인, 팬 대표들의 투표로 진행된 이 방안은 오는 5월 말에 투표 결과에 따라 다음 시즌부터 공식화될 전망이다.
이는 거스 히딩크 전 러시아 감독이 주장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 2008년 러시아 지휘봉을 잡을 당시 러시아 축구의 발전을 위해 국내 리그에서 뛰고 있는 용병수를 제한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린적 있다. 유망주의 발굴과 육성이 대표팀과 클럽팀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이를 위해서는 실질적으로 필드위에서 러시아 선수들이 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히딩크의 처방도 나름의 딜레마가 있었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외국인 선수 제한에 나선다면, 리그 경쟁력 하락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 리그가 자본의 힘을 등에 업고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낸 것에는 유명 해외 선수들의 활약을 빼 놓을 수 없다. 이런 이유에 현 시점에서는 외국인 선수를 어디까지로 제한하느냐도 쟁점이 된다.
현재 러시아 리그에서 외국 선수에 대한 규정은 말 그대로 러시아 국적이 아닌 것에 국한한다. 유럽의 많은 리그들이 유럽연합(EU)에 한정 지어 외국인선수 비율 제한을 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성격이다. 때문에 러시아 리그는 유럽축구연맹(UEFA)에 한정시킨 제도를 장착해 EU에 속하지 않은 이스라엘, 터키 선수까지 영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독일 리그를 본보기로 삼고 있다.
니꼴라이 똘스띠흐 러시아 축구 협회장도 ‘외국인 용병 수 제한’의 어두운 면을 꼬집었다. 러시아 리그가 유럽 축구의 또 다른 축이 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다.
똘스띠흐 회장은 이날 컨퍼런스에서 “자국 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오히려 선수들에게 안일함을 가져다 주고 있다. 4명의 선수들은 반드시 그라운드에 뛸 수 있다는 것이 수준급의 자국 선수들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지금 이 시점이 러시아 리그의 풍.흉을 좌우하는 시기라 생각한다. 외국 선수의 수와 함께 외국인 선수를 규정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고찰이 러시아가 유럽의 또 다른 중심 리그가 될 수 있는 발판이 됐으면 좋겠다 ”고 밝혔다.
같은 날 기자는 컨퍼런스 자리서 러시아 언론사 ‘인떼르 빡스’의 스포츠 팀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기자에게 건넨 첫 인사말이 뇌리에 남는다. ‘Спасибо за Ана (빅토르 안을 보내줘서 고맙다).’ 안현수와 같은 실력있는 선수를 러시아로 보내줘 감사한다는 뜻이다. 아직도 그 인사말이 머리속에 맴도는 것은 축구계에서도 제 2의 빅토르 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걱정 때문은 아닐지.
그림자: ‘올리가르히’, ‘푸티니즘’의 불안한 버팀목
파비오 카펠로 러시아 대표팀 감독은 전 세계 대표팀 감독중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다. 그는 현재 협회로부터 780만 유로(약 112억 원)의 연봉을 받고 있다. 전 세계 대표팀 감독 중에서는 가장 많은 금액이다. 지난 2006년 러시아의 첫 외국인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를 선임하는 부대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축구계에는 이를 빠르게 추진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바로 푸틴의 뒤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올리가르히’ 들이다.
올리가르히란 구소련 체재가 무너지고 러시아공화국으로 전환된 90년 대 초반 구소련 제국의 국유재산을 사유화하는 과정에서 보리스 옐친 대통령과의 거래를 통해 헐값에 인수받아 막대한 재산을 갖게 된 신흥재벌을 말한다. 축구계에서는 로만 아브라모비치(첼시), 드미뜨리 리볼로프레프(AS 모나코), 슐레이만 케리모프(안지), 안톤 징가레비치(레딩) 등의 구단주들이 잘 알려진 러시아의 올리가르히 축구 인사들이다. 이들은 러시아 축구의 굵직한 사건들을 일궈내는 주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예가 러시아 축구협회의 ‘내셔널 프로젝트’다
2004년부터 러시아 축구협회는 유소년 프로그램 창출에 착수한 상황이다. 이중 20명의 직원들은 유소년 프로그램에 대한 법적-제도적 문제 해결 등을 담당하고 있다. 실질적인 인프라 확장에도 전력투구중인데, 러시아 축구 협회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대비해 전국에 140여개의 유소년 훈련장을 짓는 이른바 ‘내셔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금액이 예상되는 이 프로젝트의 자금줄은 올리가르히들이 맡고있다. 올리가르히 출신의 6개의 거대기업 회장들이 스폰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유럽축구연맹(UEFA)과의 협력 관계 속에 진행되고 있고, 수 많은 올리가르히들의 자금력으로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 축구의 근간을 만드는 일이 올리가르히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다.
축구판에서 올리가르히들의 활동은 양지에서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비공식적으로도 올리가르히들은 물심양면으로 러시아 축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지 취재 결과,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연봉 및 코치진들의 부대비용은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가 담당했었다. 러시아 현지기자에 전언에 따르면 히딩크 전 감독이 즐겨마시는 카푸치노의 비용까지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또한 현 카펠로 감독의 연봉과 대표팀 운영 비용은 디나모 모스크바의 하키팀, 축구팀 구단주들인 로덴베르그 형제들이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푸틴이 재선에 성공하고, 재계에서 영향력이 급증한 인물들이다. 이처럼 올리가리히들의 투자는 러시아 축구 저변 확대에서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 영향도 못지 않다. 주요 현안의 투자 비용을 ‘올리가르히’들과 같은 개인 투자자에 맡기는 것은 변수가 많다. 잘 진행되던 프로젝트 또한 올리가리히들의 순간적 변심에 흔들리기 십상이다. 러시아 축구의 주요 현안인 ‘내셔널 프로젝트’가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의 투자 철회로(아브라모비치는 2004년부터 약 2억 달러(2.200억 원)에 이르는 금액을 투자했다.) 잠시 삐딱선을 탄 것도 같은 면면이다. 또한, 고액 연봉으로 ‘스타 감독 모시기’와 같은 방식은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바라보는 어긋난 스포츠 비즈니스다. 정치, 경제 상황에 따라 가변적 행보를 보일 수 있는 올리가르히들이 러시아 축구 발전의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수는 없는 것도 같은 이유다.
빛? 그림자? : 크림반도 축구팀 인수..원칙도 깬다
지난 3월 크림공화국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러시아로 넘어갔다. 소련 시절 니키타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에 의해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로 이전됐던 시점을 기준으로 60년 만의 일이다. 이제는 실질적인 합병 절차만이 남았을 뿐이다.
맞물려, 축구클럽들의 합병 여부도 관심사다. 크림반도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리그 소속의 ‘타브리야 심페로폴’과 ‘세바스토폴’ 거취가 쟁점이다. 현재 두 구단은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를 탈퇴할 예정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사실상 두 클럽의 러시아리그로의 흡수는 기정사실화 돼있다. 러시아 축구협회 또한 이미 “크림 반도에 있는 우크라이나 1부리그 두 클럽을 러시아 리그 시스템 안에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기’와 ‘방식’에 대한 조율이 남은 상황인데, 걸림돌은 ‘방식’이다. 두 클럽이 러시아 1부리그로 들어오기에는 기존의 조건과 부합하지 않는다.
먼저 구장 여건이 문제다. 러시아 1부리그에 속하기 위해서는 최소 '1만 관중'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구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세바스토폴’의 경우는 5.000여석이 갓 넘는 소규모 구장을 갖고 있다. 스폰서의 문제 또한 빼 놓을 수 없다. ‘타브리야’와 ‘세바스토폴’ 등 크림 반도 축구 클럽은 우크라이나의 한 올리가르히로부터 구단 운영비의 절반 가량을 후원 받고 있다. 크림반도가 러시아 영토로 넘어간 이상,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의 도움을 받기는 사실상 어렵다. 결국 스폰서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크림반도의 최근 정세가 불안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빠른 시간에 새 스폰서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다른 걸림돌은 선수단 구성여부다. 두 클럽이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 편입하게 될 경우, ‘외국인 용병 제한법’에 어긋나게 된다. 러시아 축구협회의 규정에 따른 외국인 선수는 말 그대로 러시아 국적이 아닌 선수인데, ‘세바스토폴’에는 단 한명의 러시아 선수도 뛰지 않는다. ‘타브리야’에는 소수의 러시아 선수들이 소속돼있지만, 기준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자국인들이었던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러시아로 귀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이유에 러시아 축구 협회는 구장의 리모델링, 스폰서 다원화 등의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1부 리그가 아닌 2부, 3부 소속으로 클럽들을 인수하면 합병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재까지 러시아 축구협회는 무리를 해서라도 1부리그의 합류를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 축구의 전설이자, 축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씨모냔 니키타 파블로비치 또한 “크림 반도는 러시아인들의 한이 묻혀있는 곳이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들이 러시아 축구의 또 다른 축으로 자리 잡게 만들어야 한다. 스포츠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도 최근의 흐름도 또 다른 이유다”며 세바스토폴과 타브리야의 1부 리그 합류를 확신했다. ‘하나된 러시아’를 강조하는 ‘푸티니즘’과 맥을 같이 하는 셈이다.
파블로비치 부회장이 말한 것처럼 크림반도는 러시아인들에게는 ‘크림전쟁’의 악몽이 서려있는 곳이다. 러시아 유명 시인이자 크림전쟁시 포병장교로 참전했던, 알렉산드르 푸시킨 조차도 “오 신이시여, 정녕 당신의 뜻입니까?”라며 울부짖었다. 우연히도 이러한 푸시킨의 명언은 당시 격전지이자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축구 클럽의 연고지인 ‘세파스토폴’에서 탄생됐다. 만약 톨스토이가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크림반도의 모습을 보고 있다면 이렇게 말할수도 있겠다.
“오 푸틴이여, 이것이 정녕 당신의 뜻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