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그래프 시즌 예상: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2위(82승 80패)
시즌 최종 성적: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5위(64승 98패)
프롤로그
[스포탈코리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이 정도로 부진하리라 예상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그리고 이 이야기를 대체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대형 FA 계약의 실패? 아니면 팀의 팜을 모두 소진하고 보스턴 레드삭스로 떠난 데이브 돔브로스키? 그래도 2017시즌의 리뷰인 만큼 이 사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을 성싶다. 바로 마이크 일리치 전 구단주의 사망이다.
지난 2월, 일리치 구단주의 타계 소식이 디트로이트 전역을 뒤흔들었다. 생전의 일리치는 디트로이트 스포츠계의 영웅이었다. 도시가 파탄에 이르렀을 적에도 디트로이트 지역의 스포츠 구단들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신의 호주머니를 아낌없이 열었던 일리치의 씀씀이가 있었다. 일리치는 사회 환원이라는 면에서도 도시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일리치가 숨을 거두자 많은 디트로이트 선수들이 애도를 표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팀 초기화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뒤숭숭한 상황에서 2017시즌을 맞이한 디트로이트는 예상을 한참 밑도는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쳤다. 공교로운 시점에 시작된 부진이었지만 신임 경영진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려웠다. 마이크 일리치로부터 구단 사업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일리치는 자녀들을 직접 지도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었고, 부임 당시부터 인터뷰를 통해 물심양면으로 구단 운영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허나 하필이면 그가 구단주 자리를 물려받은 바로 그 순간부터, 그동안 곪아왔던 디트로이트의 문제점들이 속수무책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심하게 곪았던 부분은 역시 페이롤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디트로이트는 계속해서 과감한 씀씀이를 과시하며 선수들과 연장 혹은 FA 계약을 체결해왔다. 그 결과 연봉 총액은 2011년 이래로 매년 상승일로를 걸었고, 이번 시즌에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55,000달러차로 추격하며 전체 4위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이는 지갑을 ‘열 줄 안다’는 일리치 가문에게도 부담스러운 수준의 지출이다.
디트로이트의 개막전 25인 로스터 페이롤 변화 추이
2011: 106,953,000달러
2012: 133,475,000달러
2013: 148,693,600달러
2014: 163,635,500달러
2015: 172,792,250달러
2016: 198,593,000달러
2017: 199,750,600달러
디트로이트는 이미 2년 전에 이러한 결말을 경고하는 실패를 경험했던 적이 있다. 지난 2015시즌,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줄을 이은 디트로이트는 74승 87패를 기록하면서 지구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스타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그들의 이탈을 이겨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프론트는 2016시즌을 앞두고 2건의 대형 계약을 추가로 체결하면서 턱밑까지 차올랐던 연봉 수준을 오히려 더 끌어올렸다(저스틴 업튼, 조던 짐머맨).
유망주들을 지나치게 소진했다는 점 역시 심각한 문제였다. 디트로이트의 전임 단장 데이브 돔브로스키는 유망주를 팔아 넘길 때의 과감함이 메이저리그에서 제일을 다투는 인물로, 지나가는 구단마나 남아나는 유망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형의 단장이다. 그는 디트로이트 재임 기간에도 활용해보지 않은 수많은 유망주들을 공격적으로 팔아 넘겼다.
이 두 가지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버린 끝에 나타난 결과가 바로 2017시즌 디트로이트의 공중분해였다. 주축 선수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했던 이번 시즌, 디트로이트는 트레이드 데드라인 시점에 이미 와일드카드 경쟁으로부터 8경기나 뒤쳐져 있었다. 팀의 미래를 그려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왔지만 미래를 맡길 만한 유망주도, 페이롤의 여유도 마땅치 않았다. 시즌 종료와 함께 몇몇 선수들이 FA로 풀려날 예정이기는 했지만, 그 비용으로 다시 대형 FA를 잡는다면 또다른 악순환에 빠져들게 되리라는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사실상 선수단 초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결국 디트로이트의 스타 군단은 시즌 도중에 여기저기로 해체되고 말았다. FA로 풀려날 예정이었던 J.D. 마르티네스와 옵트아웃이 유력해 보였던 저스틴 업튼이 각자 새로운 행선지를 찾았고, 팀의 간판스타였던 저스틴 벌랜더 역시 웨이버 트레이드를 통해 컨텐더 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향했다. 한편 2014시즌부터 부진을 거듭해온 왕년의 스타 아니발 산체스는 시즌이 끝난 뒤 바이아웃 금액 500만 달러를 받고 팀을 떠났다.
시즌 종료와 함께 사령탑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브래드 아스머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아빌라 단장의 선택을 이해한다. 그가 나에게 새 계약을 제시했다 하더라도 내가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구단은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는 디트로이트의 구단 운영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디트로이트는 이어서 신임 감독으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벤치 코치였던 론 가든하이어를 선임했다.
최고의 선수 – 마이클 풀머
시즌 성적: 10승 12패 164.2이닝 114삼진 1완투 ERA 3.83 fWAR 3.5
부상으로 25경기에 선발로 등판하는 데 그치기는 했지만, 시즌 도중 타팀으로 떠난 선수들을 제외하면 팀내에서 가장 높은 WAR을 기록하면서 선전했다. 3.83이라는 평균자책점은 그리 낮다고 보기 어려웠지만 내용은 훨씬 준수한 편이었다. 특히 피홈런을 9이닝당 0.71개로 억제하면서 해당 부문에서 전체 선발투수 가운데 2위에 올랐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9이닝당 볼넷 허용(2.19개)과 이닝당 출루 허용(1.15회)에서도 11위에 올랐다.
그러나 사실 2017년은 풀머에 대한 감탄보다는 불안요소를 더 많이 남긴 해였다. 앞서 말했듯 부상에 신음하면서 규정 이닝을 간신히 채운 시즌이었고, 거기에 팔꿈치 수술로 시즌을 마쳤다는 사실이 우려를 한층 증폭시켰다. 토미 존 수술이 아니라는 점은 다행이지만, 수술은 수술인 만큼 내년에 얼마나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가 적잖이 염려되는 상황이다.
떨어진 탈삼진 능력도 불안요소다. 풀머의 9이닝당 탈삼진은 지난 시즌에도 7.47개로 그리 높지 않았지만, 이번 시즌에는 6.23개로 더 떨어지고 말았다. 이는 규정이닝을 소화한 선발투수들 가운데 뒤에서 7번째에 해당한다. 인플레이 타구를 유도해 타자를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투수들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탈삼진 능력은 필수적인 만큼, 반드시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지점이다.
이처럼 명과 암이 공존하는 시즌을 보낸 풀머가 팀내 최고의 선수로 꼽혔다는 사실은 이번 시즌의 디트로이트가 얼마나 형편없는 팀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그나마 경합을 펼쳐볼 만했던 선수로는 닉 카스테야노스가 있었다. 0.490의 장타율과 세 자릿수에 이르는 타점은 훌륭했으나, 0.320의 낮은 출루율과 -7.8의 UZR을 기록한 최악의 3루 수비가 심각한 걸림돌이었다. 시즌 막판에 우익수로 포지션을 옮겨 가서는 173이닝만에 -5.3의 UZR을 적립하는 설상가상의 수비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선수 – 미겔 카브레라
시즌 성적: 469타수 117안타 16홈런 60타점 110삼진 54볼넷 0.249/0.329/0.399 fWAR -0.2
무수히 많았던 기대 이하의 디트로이트 선수들 중에서 미겔 카브레라가 선정된 이유는 딱 한 가지, 그들 중 가장 큰 기대를 받은 선수였다는 것이다. 그동안 디트로이트가 매년마다 포스트시즌을 염두에 두고 시즌을 구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카브레라의 꾸준한 맹활약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카브레라의 올 시즌 fWAR은 -0.2. 규정 타석을 채운 메이저리그 선수들 가운데 뒤에서 11위에 해당하는 끔찍한 성적이었다.
카브레라의 몸상태는 시즌 초반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2개의 허리디스크로 인해 WBC부터 만성적인 등 통증에 시달리며 경기를 치러왔던 것이다. 나이도 어느덧 만 34세. 앞으로도 카브레라에게 6년 동안 1억 8400만 달러를 지출해야 하는 디트로이트는 디스크 재발을 막기 위해 2018시즌부터 카브레라의 지명타자 출전 비중을 늘려 컨디션 관리에 더 신경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야구 외적인 상황들도 카브레라를 괴롭혔다. 고국 베네수엘라에 거주하는 카브레라의 가족과 친구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유괴 위협에 시달렸다. 항간에는 그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특정 단체’에게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떠돌았다. 카브레라는 소셜 미디어에 영상을 게시해 자신의 현재 상황과 이에 대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어떤 선수라도 이런 환경에서는 자신의 실력을 100퍼센트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현재진행형의 ‘먹튀’인 조던 짐머맨 역시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선수다. 계약 첫해였던 지난 시즌부터 부상으로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더니, 올 시즌에는 29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6.08의 처참하기 그지없는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내년부터는 연봉이 무려 2400만 달러까지 올라가게 되는 만큼, 반등하지 못할 경우에는 역대 최악의 대형 계약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리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발전한 선수 – 셰인 그린
시즌 성적: 4승 3패 9세이브 67.2이닝 73탈삼진 ERA 2.66 fWAR 0.6
본래 셰인 그린은 2014시즌이 끝나고 성사된 뉴욕 양키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디트로이트에 합류했던 선수다. 당시의 삼각 트레이드에는 그린 외에도 로비 레이(디트로이트->애리조나), 디디 그레고리우스(애리조나->양키스)가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가장 즉시 전력감이라 평가받았던 그린은 이적 후 한동안 전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015시즌에는 6.88의 평균자책점으로 무너졌고, 2016시즌에도 5.82를 기록하면서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만약 이번 시즌에도 부진이 이어졌다면 그레고리우스와 레이의 맹활약을 지켜보는 디트로이트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뻔했다. 다행히도 그린은 올 시즌 9이닝당 탈삼진 개수를 무려 9.71개까지 끌어올리면서 위력적인 불펜 투수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저스틴 윌슨이 시카고 컵스로 떠난 후반기에는 팀의 마무리투수 보직까지 꿰찼다.
그간의 기대에 부응해낸 고무적인 시즌이었지만, 동시에 적잖은 숙제를 받아 들게 된 시즌이기도 했다. 가장 큰 과제는 9이닝당 4.52개까지 치솟은 볼넷 허용이다. 그 배경에는 지난 시즌에 비해 확연하게 좋아진 상대 타자들의 ‘볼’에 대한 대처가 있었다. 그린의 O-Swing%(스트라이크 존 바깥의 공에 대한 스윙 확률)은 34.3%에서 24.3%로 크게 줄어들었고, 배트를 끌어냈을 경우에도 58.9%에서 63.2%로 늘어난 O-Contact%(스트라이크 존 바깥의 공에 스윙했을 경우의 컨택트 비율) 때문에 예년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허용한 타구들의 질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했다. 약한 타구의 비율은 지난 시즌의 25.1%에서 12.8%로 감소한 반면, 강한 타구의 비율은 지난 시즌의 25.1%에서 41.3%까지 증가했다. 이러한 지표들은 그린이 앞으로 장타 억제에 어려움을 겪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상기한 두 가지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는 올 시즌의 성공적인 활약을 꾸준하게 재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키포인트 – 저스틴 벌렌더의 트레이드와 그 유산들
지난 8월 31일, 디트로이트 스포츠의 상징이었던 저스틴 벌랜더가 팀을 떠났다. 디트로이트의 팬들은 참담한 심경을 표출했다. 그가 있을 동안 팀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구단 프론트가 팀을 이 지경까지 끌고 왔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소셜 미디어를 휩쓸었다. 그들 중에는 벌랜더가 휴스턴에서나마 우승 반지를 거머쥐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 트레이드는 디트로이트의 한 시대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역할을 했다. 2017년 동안에만 벌랜더를 비롯해 저스틴 업튼, J.D 마르티네스, 아니발 산체스 등이 팀을 떠났다. 그리고 이러한 주축 선수들의 이탈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그 자리는 유망주들, 그리고 잠시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스탑갭’ 선수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한편 벌랜더의 트레이드는 본격적인 리빌딩의 ‘첫 단추’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반대급부로 받아온 유망주들이 모두 수준급의 가치를 인정받아온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르티네스와 업튼의 트레이드가 남겨준 아쉬움을 어느 정도 상쇄시킨 트레이드이기도 했다.
디트로이트는 올 여름 업튼과 마르티네스의 반대급부로 총 5명의 선수를 받아 들었다. 이 가운데 MLB Pipeline이 시즌 종료 후 발표한 팀내 유망주 순위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선수는 14위의 그레이슨 롱과 15위의 다웰 루고. 트레이드 전까지 마르티네스와 업튼이 보여줬던 훌륭한 타격 페이스를 감안하면 실로 아쉬운 수준의 대가였다. 특히 마르티네스의 트레이드는 현지에서 애리조나가 마르티네스를 ‘훔쳤다(steal)’는 표현이 등장했을 정도로 짙은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해까지 디트로이트의 팜이 리그에서 가장 빈약한 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상대팀에서 10위 안에 드는 양질의 유망주들을 데려왔어야 했다.
두 선수의 트레이드에서 이렇게 실수를 저질렀던 아빌라 단장은, 그러나 프랜차이즈 스타 벌랜더의 유산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확보해냈다. 양질의 유망주를 여럿 데리고 있던 휴스턴을 상대로 장사에 나섰던 것이 주효했다. 이 트레이드를 통해 우완투수 프랭클린 페레즈, 외야수 대즈 카메론, 포수 제이크 로저스 총 3명의 선수가 팀에 합류했다. MLB Pipeline의 유망주 순위에서도 각각 팀내 1위, 5위, 7위를 차지한 이들은 마르티네스와 업튼이 남긴 유산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급의 유망주라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메이저리그 전체 순위에서 40위를 차지한 페레즈는 19세의 나이로 AA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정상급의 투수 유망주다.
벌랜더의 트레이드는 아주 극적으로 성사된 트레이드이기도 했다. 한동안 10/5 권리를 통해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있던 벌랜더가 웨이버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마감되기 직전 드디어 마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는 시카고 컵스와의 거래를 통해서도 하이메 칸델라리오, 이삭 파레데스 등의 수준급 유망주들을 얻어냈지만, 역시 리빌딩 원년의 가장 중대한 성과는 벌랜더의 유산들이었다. 이 트레이드가 없었다면 리빌딩의 제대로 된 첫 단추를 끼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총평
2017년 한 해 동안 디트로이트는 수많은 정들었던 얼굴들과 이별해야 했다. 일리치 구단주는 세상을 떠났고, 벌랜더는 더이상 팀의 기둥이 아니게 되었다. 디트로이트의 전설인 짐 릴랜드 전 감독마저 ‘성장통’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의 아픈 한 해였다. 그러나 디트로이트에게는 앞으로 이어질 더 많은 성장통들을 감내할 각오가 필요하다.
2018시즌을 끝으로 디트로이트는 2루수 이안 킨슬러와 지명타자 빅터 마르티네스를 떠나보내게 된다. 이들이 떠나고 나면 팀에 남은 고액 연봉자의 수는 2020년까지 계약되어 있는 짐머맨과 2024년까지 계약되어 있는 카브레라, 단 둘까지 줄어든다. 물론 그후에도 가시밭길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빈자리를 꿰찰 유망주는 물론이고, 다음 세대까지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해줄 선수들조차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17시즌의 여러 트레이드를 통해 상당히 많은 유망주들을 영입했지만, 디트로이트의 팜 시스템은 여전히 메이저리그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트레이드 매물로 내놓을 선수들조차 마땅치 않아진 앞으로의 디트로이트에게 남은 유망주 수급 방법은 사실상 드래프트와 국제 유망주 계약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7시즌을 꼴찌로 마치면서 2018년 드래프트의 전체 1픽을 확보했다는 것은 호재 아닌 호재라 할 수 있다. 이에 발맞춰 디트로이트 구단은 3명의 데이터 분석가를 추가로 고용하고, 스카우팅 부서를 더욱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한편, 론 가든하이어가 신임 사령탑으로 디트로이트를 이끌게 되었다는 것 또한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가든하이어는 과거에 지구 라이벌인 미네소타 트윈스를 이끌고 6번의 우승을 차지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무렵 디트로이트를 이끌었던 감독이 팀의 전설인 짐 릴랜드였고, 그 릴랜드와 가든하이어가 한때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었다는 사실은 이번의 감독 선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다만 팀을 이끄는 방식이 구식(old school)에 가깝고 세이버메트릭스에 취약하다는 비판이 존재하는 만큼, 급변하는 오늘날의 리그 환경에서 과거의 역량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는 다소 미지수다.
2017시즌부터 본격적인 ‘데이터 초기화’에 들어간 디트로이트. 아직은 지울 내용도, 새로 깔아야 할 내용도 산적해 있는 상태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라는 최근의 사례는 이러한 전면적 리빌딩으로 인한 암흑기가 단시일내에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허나 이 시간을 잘 견뎌낸다면 디트로이트도 언젠가 다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휴스턴과 벌랜더처럼 말이다.
야구공작소
이해인 칼럼니스트
출처: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시즌 최종 성적: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5위(64승 98패)
프롤로그
[스포탈코리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이 정도로 부진하리라 예상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그리고 이 이야기를 대체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대형 FA 계약의 실패? 아니면 팀의 팜을 모두 소진하고 보스턴 레드삭스로 떠난 데이브 돔브로스키? 그래도 2017시즌의 리뷰인 만큼 이 사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을 성싶다. 바로 마이크 일리치 전 구단주의 사망이다.
지난 2월, 일리치 구단주의 타계 소식이 디트로이트 전역을 뒤흔들었다. 생전의 일리치는 디트로이트 스포츠계의 영웅이었다. 도시가 파탄에 이르렀을 적에도 디트로이트 지역의 스포츠 구단들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신의 호주머니를 아낌없이 열었던 일리치의 씀씀이가 있었다. 일리치는 사회 환원이라는 면에서도 도시의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일리치가 숨을 거두자 많은 디트로이트 선수들이 애도를 표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팀 초기화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뒤숭숭한 상황에서 2017시즌을 맞이한 디트로이트는 예상을 한참 밑도는 성적으로 전반기를 마쳤다. 공교로운 시점에 시작된 부진이었지만 신임 경영진의 탓으로 돌리기는 어려웠다. 마이크 일리치로부터 구단 사업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일리치는 자녀들을 직접 지도했을 정도로 야구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인물이었고, 부임 당시부터 인터뷰를 통해 물심양면으로 구단 운영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허나 하필이면 그가 구단주 자리를 물려받은 바로 그 순간부터, 그동안 곪아왔던 디트로이트의 문제점들이 속수무책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심하게 곪았던 부분은 역시 페이롤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디트로이트는 계속해서 과감한 씀씀이를 과시하며 선수들과 연장 혹은 FA 계약을 체결해왔다. 그 결과 연봉 총액은 2011년 이래로 매년 상승일로를 걸었고, 이번 시즌에는 보스턴 레드삭스를 55,000달러차로 추격하며 전체 4위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이는 지갑을 ‘열 줄 안다’는 일리치 가문에게도 부담스러운 수준의 지출이다.
디트로이트의 개막전 25인 로스터 페이롤 변화 추이
2011: 106,953,000달러
2012: 133,475,000달러
2013: 148,693,600달러
2014: 163,635,500달러
2015: 172,792,250달러
2016: 198,593,000달러
2017: 199,750,600달러
디트로이트는 이미 2년 전에 이러한 결말을 경고하는 실패를 경험했던 적이 있다. 지난 2015시즌, 주전 선수들의 부상이 줄을 이은 디트로이트는 74승 87패를 기록하면서 지구 최하위로 추락하고 말았다. 스타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만큼 그들의 이탈을 이겨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디트로이트의 프론트는 2016시즌을 앞두고 2건의 대형 계약을 추가로 체결하면서 턱밑까지 차올랐던 연봉 수준을 오히려 더 끌어올렸다(저스틴 업튼, 조던 짐머맨).
유망주들을 지나치게 소진했다는 점 역시 심각한 문제였다. 디트로이트의 전임 단장 데이브 돔브로스키는 유망주를 팔아 넘길 때의 과감함이 메이저리그에서 제일을 다투는 인물로, 지나가는 구단마나 남아나는 유망주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유형의 단장이다. 그는 디트로이트 재임 기간에도 활용해보지 않은 수많은 유망주들을 공격적으로 팔아 넘겼다.
이 두 가지 문제가 곪을 대로 곪아버린 끝에 나타난 결과가 바로 2017시즌 디트로이트의 공중분해였다. 주축 선수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신음했던 이번 시즌, 디트로이트는 트레이드 데드라인 시점에 이미 와일드카드 경쟁으로부터 8경기나 뒤쳐져 있었다. 팀의 미래를 그려야만 하는 상황이 찾아왔지만 미래를 맡길 만한 유망주도, 페이롤의 여유도 마땅치 않았다. 시즌 종료와 함께 몇몇 선수들이 FA로 풀려날 예정이기는 했지만, 그 비용으로 다시 대형 FA를 잡는다면 또다른 악순환에 빠져들게 되리라는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사실상 선수단 초기화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결국 디트로이트의 스타 군단은 시즌 도중에 여기저기로 해체되고 말았다. FA로 풀려날 예정이었던 J.D. 마르티네스와 옵트아웃이 유력해 보였던 저스틴 업튼이 각자 새로운 행선지를 찾았고, 팀의 간판스타였던 저스틴 벌랜더 역시 웨이버 트레이드를 통해 컨텐더 팀인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향했다. 한편 2014시즌부터 부진을 거듭해온 왕년의 스타 아니발 산체스는 시즌이 끝난 뒤 바이아웃 금액 500만 달러를 받고 팀을 떠났다.
시즌 종료와 함께 사령탑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브래드 아스머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아빌라 단장의 선택을 이해한다. 그가 나에게 새 계약을 제시했다 하더라도 내가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구단은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는 디트로이트의 구단 운영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디트로이트는 이어서 신임 감독으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벤치 코치였던 론 가든하이어를 선임했다.
최고의 선수 – 마이클 풀머
시즌 성적: 10승 12패 164.2이닝 114삼진 1완투 ERA 3.83 fWAR 3.5
부상으로 25경기에 선발로 등판하는 데 그치기는 했지만, 시즌 도중 타팀으로 떠난 선수들을 제외하면 팀내에서 가장 높은 WAR을 기록하면서 선전했다. 3.83이라는 평균자책점은 그리 낮다고 보기 어려웠지만 내용은 훨씬 준수한 편이었다. 특히 피홈런을 9이닝당 0.71개로 억제하면서 해당 부문에서 전체 선발투수 가운데 2위에 올랐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9이닝당 볼넷 허용(2.19개)과 이닝당 출루 허용(1.15회)에서도 11위에 올랐다.
그러나 사실 2017년은 풀머에 대한 감탄보다는 불안요소를 더 많이 남긴 해였다. 앞서 말했듯 부상에 신음하면서 규정 이닝을 간신히 채운 시즌이었고, 거기에 팔꿈치 수술로 시즌을 마쳤다는 사실이 우려를 한층 증폭시켰다. 토미 존 수술이 아니라는 점은 다행이지만, 수술은 수술인 만큼 내년에 얼마나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할 수 있을지가 적잖이 염려되는 상황이다.
떨어진 탈삼진 능력도 불안요소다. 풀머의 9이닝당 탈삼진은 지난 시즌에도 7.47개로 그리 높지 않았지만, 이번 시즌에는 6.23개로 더 떨어지고 말았다. 이는 규정이닝을 소화한 선발투수들 가운데 뒤에서 7번째에 해당한다. 인플레이 타구를 유도해 타자를 처리하는 능력이 뛰어난 투수들에게도 일정 수준 이상의 탈삼진 능력은 필수적인 만큼, 반드시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지점이다.
이처럼 명과 암이 공존하는 시즌을 보낸 풀머가 팀내 최고의 선수로 꼽혔다는 사실은 이번 시즌의 디트로이트가 얼마나 형편없는 팀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다. 그나마 경합을 펼쳐볼 만했던 선수로는 닉 카스테야노스가 있었다. 0.490의 장타율과 세 자릿수에 이르는 타점은 훌륭했으나, 0.320의 낮은 출루율과 -7.8의 UZR을 기록한 최악의 3루 수비가 심각한 걸림돌이었다. 시즌 막판에 우익수로 포지션을 옮겨 가서는 173이닝만에 -5.3의 UZR을 적립하는 설상가상의 수비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가장 실망스러웠던 선수 – 미겔 카브레라
시즌 성적: 469타수 117안타 16홈런 60타점 110삼진 54볼넷 0.249/0.329/0.399 fWAR -0.2
무수히 많았던 기대 이하의 디트로이트 선수들 중에서 미겔 카브레라가 선정된 이유는 딱 한 가지, 그들 중 가장 큰 기대를 받은 선수였다는 것이다. 그동안 디트로이트가 매년마다 포스트시즌을 염두에 두고 시즌을 구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카브레라의 꾸준한 맹활약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카브레라의 올 시즌 fWAR은 -0.2. 규정 타석을 채운 메이저리그 선수들 가운데 뒤에서 11위에 해당하는 끔찍한 성적이었다.
카브레라의 몸상태는 시즌 초반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2개의 허리디스크로 인해 WBC부터 만성적인 등 통증에 시달리며 경기를 치러왔던 것이다. 나이도 어느덧 만 34세. 앞으로도 카브레라에게 6년 동안 1억 8400만 달러를 지출해야 하는 디트로이트는 디스크 재발을 막기 위해 2018시즌부터 카브레라의 지명타자 출전 비중을 늘려 컨디션 관리에 더 신경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야구 외적인 상황들도 카브레라를 괴롭혔다. 고국 베네수엘라에 거주하는 카브레라의 가족과 친구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유괴 위협에 시달렸다. 항간에는 그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특정 단체’에게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떠돌았다. 카브레라는 소셜 미디어에 영상을 게시해 자신의 현재 상황과 이에 대한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어떤 선수라도 이런 환경에서는 자신의 실력을 100퍼센트 발휘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현재진행형의 ‘먹튀’인 조던 짐머맨 역시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선수다. 계약 첫해였던 지난 시즌부터 부상으로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더니, 올 시즌에는 29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6.08의 처참하기 그지없는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내년부터는 연봉이 무려 2400만 달러까지 올라가게 되는 만큼, 반등하지 못할 경우에는 역대 최악의 대형 계약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리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발전한 선수 – 셰인 그린
시즌 성적: 4승 3패 9세이브 67.2이닝 73탈삼진 ERA 2.66 fWAR 0.6
본래 셰인 그린은 2014시즌이 끝나고 성사된 뉴욕 양키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디트로이트에 합류했던 선수다. 당시의 삼각 트레이드에는 그린 외에도 로비 레이(디트로이트->애리조나), 디디 그레고리우스(애리조나->양키스)가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가장 즉시 전력감이라 평가받았던 그린은 이적 후 한동안 전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015시즌에는 6.88의 평균자책점으로 무너졌고, 2016시즌에도 5.82를 기록하면서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만약 이번 시즌에도 부진이 이어졌다면 그레고리우스와 레이의 맹활약을 지켜보는 디트로이트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뻔했다. 다행히도 그린은 올 시즌 9이닝당 탈삼진 개수를 무려 9.71개까지 끌어올리면서 위력적인 불펜 투수로 거듭나는 데 성공했다. 저스틴 윌슨이 시카고 컵스로 떠난 후반기에는 팀의 마무리투수 보직까지 꿰찼다.
그간의 기대에 부응해낸 고무적인 시즌이었지만, 동시에 적잖은 숙제를 받아 들게 된 시즌이기도 했다. 가장 큰 과제는 9이닝당 4.52개까지 치솟은 볼넷 허용이다. 그 배경에는 지난 시즌에 비해 확연하게 좋아진 상대 타자들의 ‘볼’에 대한 대처가 있었다. 그린의 O-Swing%(스트라이크 존 바깥의 공에 대한 스윙 확률)은 34.3%에서 24.3%로 크게 줄어들었고, 배트를 끌어냈을 경우에도 58.9%에서 63.2%로 늘어난 O-Contact%(스트라이크 존 바깥의 공에 스윙했을 경우의 컨택트 비율) 때문에 예년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
허용한 타구들의 질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했다. 약한 타구의 비율은 지난 시즌의 25.1%에서 12.8%로 감소한 반면, 강한 타구의 비율은 지난 시즌의 25.1%에서 41.3%까지 증가했다. 이러한 지표들은 그린이 앞으로 장타 억제에 어려움을 겪게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상기한 두 가지의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는 올 시즌의 성공적인 활약을 꾸준하게 재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키포인트 – 저스틴 벌렌더의 트레이드와 그 유산들
지난 8월 31일, 디트로이트 스포츠의 상징이었던 저스틴 벌랜더가 팀을 떠났다. 디트로이트의 팬들은 참담한 심경을 표출했다. 그가 있을 동안 팀이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구단 프론트가 팀을 이 지경까지 끌고 왔다는 것에 대한 분노가 소셜 미디어를 휩쓸었다. 그들 중에는 벌랜더가 휴스턴에서나마 우승 반지를 거머쥐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 트레이드는 디트로이트의 한 시대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역할을 했다. 2017년 동안에만 벌랜더를 비롯해 저스틴 업튼, J.D 마르티네스, 아니발 산체스 등이 팀을 떠났다. 그리고 이러한 주축 선수들의 이탈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그 자리는 유망주들, 그리고 잠시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스탑갭’ 선수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한편 벌랜더의 트레이드는 본격적인 리빌딩의 ‘첫 단추’로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반대급부로 받아온 유망주들이 모두 수준급의 가치를 인정받아온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르티네스와 업튼의 트레이드가 남겨준 아쉬움을 어느 정도 상쇄시킨 트레이드이기도 했다.
디트로이트는 올 여름 업튼과 마르티네스의 반대급부로 총 5명의 선수를 받아 들었다. 이 가운데 MLB Pipeline이 시즌 종료 후 발표한 팀내 유망주 순위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오른 선수는 14위의 그레이슨 롱과 15위의 다웰 루고. 트레이드 전까지 마르티네스와 업튼이 보여줬던 훌륭한 타격 페이스를 감안하면 실로 아쉬운 수준의 대가였다. 특히 마르티네스의 트레이드는 현지에서 애리조나가 마르티네스를 ‘훔쳤다(steal)’는 표현이 등장했을 정도로 짙은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해까지 디트로이트의 팜이 리그에서 가장 빈약한 편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상대팀에서 10위 안에 드는 양질의 유망주들을 데려왔어야 했다.
두 선수의 트레이드에서 이렇게 실수를 저질렀던 아빌라 단장은, 그러나 프랜차이즈 스타 벌랜더의 유산 하나 만큼은 확실하게 확보해냈다. 양질의 유망주를 여럿 데리고 있던 휴스턴을 상대로 장사에 나섰던 것이 주효했다. 이 트레이드를 통해 우완투수 프랭클린 페레즈, 외야수 대즈 카메론, 포수 제이크 로저스 총 3명의 선수가 팀에 합류했다. MLB Pipeline의 유망주 순위에서도 각각 팀내 1위, 5위, 7위를 차지한 이들은 마르티네스와 업튼이 남긴 유산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급의 유망주라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메이저리그 전체 순위에서 40위를 차지한 페레즈는 19세의 나이로 AA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정상급의 투수 유망주다.
벌랜더의 트레이드는 아주 극적으로 성사된 트레이드이기도 했다. 한동안 10/5 권리를 통해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있던 벌랜더가 웨이버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마감되기 직전 드디어 마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디트로이트는 시카고 컵스와의 거래를 통해서도 하이메 칸델라리오, 이삭 파레데스 등의 수준급 유망주들을 얻어냈지만, 역시 리빌딩 원년의 가장 중대한 성과는 벌랜더의 유산들이었다. 이 트레이드가 없었다면 리빌딩의 제대로 된 첫 단추를 끼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총평
2017년 한 해 동안 디트로이트는 수많은 정들었던 얼굴들과 이별해야 했다. 일리치 구단주는 세상을 떠났고, 벌랜더는 더이상 팀의 기둥이 아니게 되었다. 디트로이트의 전설인 짐 릴랜드 전 감독마저 ‘성장통’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의 아픈 한 해였다. 그러나 디트로이트에게는 앞으로 이어질 더 많은 성장통들을 감내할 각오가 필요하다.
2018시즌을 끝으로 디트로이트는 2루수 이안 킨슬러와 지명타자 빅터 마르티네스를 떠나보내게 된다. 이들이 떠나고 나면 팀에 남은 고액 연봉자의 수는 2020년까지 계약되어 있는 짐머맨과 2024년까지 계약되어 있는 카브레라, 단 둘까지 줄어든다. 물론 그후에도 가시밭길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빈자리를 꿰찰 유망주는 물론이고, 다음 세대까지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해줄 선수들조차 찾아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17시즌의 여러 트레이드를 통해 상당히 많은 유망주들을 영입했지만, 디트로이트의 팜 시스템은 여전히 메이저리그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트레이드 매물로 내놓을 선수들조차 마땅치 않아진 앞으로의 디트로이트에게 남은 유망주 수급 방법은 사실상 드래프트와 국제 유망주 계약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7시즌을 꼴찌로 마치면서 2018년 드래프트의 전체 1픽을 확보했다는 것은 호재 아닌 호재라 할 수 있다. 이에 발맞춰 디트로이트 구단은 3명의 데이터 분석가를 추가로 고용하고, 스카우팅 부서를 더욱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한편, 론 가든하이어가 신임 사령탑으로 디트로이트를 이끌게 되었다는 것 또한 상당히 흥미로운 대목이다. 가든하이어는 과거에 지구 라이벌인 미네소타 트윈스를 이끌고 6번의 우승을 차지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 무렵 디트로이트를 이끌었던 감독이 팀의 전설인 짐 릴랜드였고, 그 릴랜드와 가든하이어가 한때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었다는 사실은 이번의 감독 선임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다만 팀을 이끄는 방식이 구식(old school)에 가깝고 세이버메트릭스에 취약하다는 비판이 존재하는 만큼, 급변하는 오늘날의 리그 환경에서 과거의 역량을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는 다소 미지수다.
2017시즌부터 본격적인 ‘데이터 초기화’에 들어간 디트로이트. 아직은 지울 내용도, 새로 깔아야 할 내용도 산적해 있는 상태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라는 최근의 사례는 이러한 전면적 리빌딩으로 인한 암흑기가 단시일내에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허나 이 시간을 잘 견뎌낸다면 디트로이트도 언젠가 다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휴스턴과 벌랜더처럼 말이다.
야구공작소
이해인 칼럼니스트
출처: Baseball Reference, Fangrap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