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성적-75승 68패 1무 (5위, WC결정전 패배)
[스포탈코리아] SK의 왕조 시절은 구단과 팬 모두가 그리워하는 과거다. 하지만 옛 영광에 미련을 가지면 가질수록 새로운 왕조는 오기 힘든 법이다. 한국시리즈에 나서지 못한 지 어언 5년차가 되는 2017년, 2000년 창단 이후 SK가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00~02, 04~06의 3년 연속이 최다).
그리고 SK는 과감한 변화를 선택했다. 수뇌부의 개편이 눈에 띄었다. 2009년 겨울부터 단장을 맡아온 민경삼이 물러나고 염경엽 전 넥센 감독이 새로운 단장이 됐다. 감독 또한 올드스쿨 스타일의 김용희가 물러나고, 휴스턴 벤치코치였던 트레이 힐만이 새롭게 부임했다. 코치진에서 인천 SK를 상징하던 인사들도 떠나 보내고, 외국인 코치들을 대거 영입했다.
십수년간 주축으로 활약한 선수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부상과 부진으로 자연스럽게 출장 기회를 잃었다. 공교롭게도 SK 왕조의 황태자라고 할 수 있는 김광현까지 토미존 수술을 받고 시즌 아웃됐다. SK의 2017시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롭고, 또 어색한 시즌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위해 힐만은 수비 시프트를 꺼내들었고, 시범경기부터 다양한 전략을 시도했다(힐만이 재직했던 휴스턴은 작년 2052번으로 가장 많은 수비 시프트를 사용한 구단이었다).
SK는 시즌 초반 새롭게 합류한 외국인 선수의 부재와 KIA 타이거즈와의 트레이드로 인해 선수단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태에서 개막 6연패라는 최악의 첫발을 내딛었지만 재빨리 원궤도에 복귀했다. 4월 21일의 경기는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킨 대표적인 경기였다. 이날 SK는 3개의 홈런에 깜짝 스퀴즈 번트를 버무려 멋진 역전승을 만들어냈다.
‘팀홈런 1위’라는 압도적 화력에 전략적 유연함이 더해진 힐만호는 점점 전력이 안정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6월까지 매달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뒀고, 특히 6월엔 17승 9패로 고공행진했다. 그리고 2017시즌 전반기를 48승 1무 39패, 승률 0.552에 승패마진 +9로 끝마쳤다. 리그 3위에 2위와 2게임 차에 불과한 호성적이었다.
하지만 전반기에 너무 많은 힘을 쓴 탓일까, 주축 타자들과 불펜의 부진으로 후반기엔 그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후반기를 루징 시리즈로 시작하더니 8월까지 14승 22패에 그쳤다. 전반기까지만 해도 내심 우승권을 노리던 SK는 와일드카드 진출을 다투는 신세가 됐다.
다행히 시즌 막바지에 이를수록 가을야구 경쟁팀들이 뒤쳐졌고 9월 12승 7패로 뒷심을 발휘한 덕에 SK는 2년 만에 가을야구 진출을 이뤄냈다. 용두사미의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2012년 이후 5년 만의 첫 70+승 시즌이자 5할 시즌이었다. 지난 2년 연속으로 69승에 그쳤던 SK 입장에서는 진일보한 셈이다.
Good Thing: 더 새롭고, 더 강해진 타선
작년 182홈런으로 단일시즌 팀 홈런 기록을 경신한 SK는 올해 더욱 강한 대포군단의 위용을 보여줬다. 시즌 초반부터 팀 홈런 1위로 치고 나가더니 시즌 끝까지 정상을 내주지 않았다. 특히 전반기 마감 당시 다른 구단들이 100홈런도 넘지 못한 상황(2위 두산, KIA 99홈런)에서 SK는 153홈런을 기록해 한 차원 높은 홈런 생산력을 보였다. 결국 올 시즌 SK의 최종 팀 홈런 수는 234개로, 역대 단일시즌 팀 최다 홈런 신기록을 다시 한번 갈아치웠다. 4.21%의 홈런 비율도 역대 최고 수치다(종전 2003년 삼성 - 213홈런, 4.06 HR%).
무엇보다 SK 타선의 장점은 홈런이 특정 소수에게 편중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46개의 홈런왕 최정을 필두로 4명의 20홈런 타자가 나왔으며, 선발 라인업 정원에 해당하는 9명이 10개 이상의 홈런을 쳐냈다. 이 9명의 평균 홈런 수는 22개로, 만약 SK가 이들을 수비 위치에 상관없이 선발 라인업에 넣었다면, 상대팀은 SK를 만날 때마다 22홈런 타자들로 꽉 찬 타선을 상대해야 했던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 두 자릿수 홈런을 쳐낸 타자들의 상당수가 새로운 얼굴이라는 것이다. 작년에 두 자릿수 홈런을 쳤던 7명 중 4명(고메즈∙최승준∙이재원∙김강민)이 명단에서 사라졌고, 작년 팀 내 홈런 2위였던 정의윤의 홈런 개수는 27개에서 15개로 폭락했다. 제 자리를 지킨 선수는 2년 연속 홈런왕인 최정과 개수를 조금 늘린 박정권이 유이했다.
하지만 그 공백을 다른 선수들이 120% 메워줬다. 대체 외국인 타자인 제이미 로맥(31홈런)은 시즌 중반 합류했음에도 팀 내 홈런 2위에 올랐고, 잊혀진 타자나 다름없던 나주환(19홈런)은 부활했다. 거포 유망주였던 한동민(29홈런)과 김동엽(22홈런)은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주포로 성장했다. 군에서 전역한 정진기(11홈런)는 제 4의 외야수로서 힘을 보탰고, 이적생 이홍구도 10홈런으로 장타자로서의 이미지를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홈런의 반대급부로, SK 타선은 대체적으로 컨택 능력이 취약했고, 성급히 배트를 내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많은 삼진과 낮은 출루율을 불러왔다. 홈런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루상에 많은 주자가 있는 것이 중요한데, SK는 그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SK의 팀 출루율은 0.341로 리그 8위에 머물렀다. 팀에서 리그 평균 출루율(0.353)보다 높은 선수가 5명에 불과하고, 이중 상위 타선 선수는 신예 조용호(출루율 0.365) 한 명에 불과했다. 출루율 향상은 SK 타선의 최대 과제로 남았다.
MVP – 최정
익숙한 얼굴들이 떠나고 새로운 얼굴들이 들어온 상황에서, 흔들림 없이 SK를 지탱한 최정. 그는 어느덧 ‘소년장사’라는 앳된 별명보다 ‘천하장사’이라는 원숙한 별명이 더 어울리는 나이가 됐다. 약관의 나이부터 SK 왕조의 핫코너를 지킨 지도 벌써 10년, 올해 만 30세 시즌을 보낸 최정은 개인 통산 2번째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작년 테임즈와 함께 공동 홈런왕에 오르며 토종 거포의 자존심을 지켰던 최정은 올해 46홈런으로 리그 유일의 40홈런 타자로 우뚝 섰고 2년 연속 40홈런-100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구단 역사상 단일시즌 최다 홈런∙타점을 올린 타자로 자리매김하며 역대 3루수 단일시즌 최다 홈런 기록까지 경신했다(종전 페르난데스 45홈런).
올스타전에서도 구단 최초로 MVP에 선정되는 활약을 보인 최정은 올시즌 홈런∙장타율∙OPS 1위, 타점 5위, WAR 3위로 MVP 투표에서도 2위에 올랐다.
가장 발전한 선수 – 한동민
올시즌 SK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는 최정이었다. 하지만 ‘메가-히트 상품’은 단연 한동민이다. 이전부터 파워 툴을 인정받았던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임한 첫 풀타임 시즌에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4월에 4경기 연속 홈런으로 홈런 레이스에서 치고 나가더니, 6월 중 홈런∙타점 선두에 등극하며 이른바 ‘동미니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최정과 함께 홈런왕을 다투며 26홈런 64타점 OPS 1.058로 전반기를 마무리짓고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후반기에 진입해 잠시 침체에 빠지는 듯 했으나 차곡차곡 홈런을 쌓아가던 한동민은 뜻밖에 시련을 겪고 만다. 8월 8일 도루를 시도하다가 슬라이딩 도중 끔찍한 발목 부상을 당한 것이다. 시즌 아웃을 부른 큰 부상이었고, 이로써 한동민은 SK 최초의 30홈런 좌타자가 될 기회를 훗날로 미루게 됐다(공교롭게도 부상날은 한동민의 생일 전날이었다).
하지만 올시즌 보여준 한동민의 퍼포먼스는 그가 내년에 건강하게 복귀한다면 SK 홈런 군단의 차세대 리더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한동민이 103경기 동안 출전하면서 쌓은 WAR은 3.75로, 풀타임 출전을 가정 시 리그 10위 안에 들 수 있는 페이스다.
LVP – 김강민
오랫동안 SK의 주전 중견수로서 타선에 활력을 더했던 김강민은 2014시즌 이후 4년 56억원의 FA 계약으로 그 동안의 기여를 보상받았다. 하지만 계약 이후 그의 행보는 ‘FA 먹튀’를 향해 가고 있다. 작년엔 팀의 주장으로서 나름대로 제 몫은 해 줬지만 올해는 극심한 부진으로 주전 중견수 자리를 내주게 됐다.
올 시즌 그의 역할은 대타∙대수비∙대주자에 한정됐는데, 김강민이 기록한 시즌 WAR은 0.03은 정확히 ‘대체선수’ 수준에 불과했다. 김강민의 연봉에 비하면 많이 아쉬우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강민과의 계약이 내년을 끝으로 만료된다는 점이다.
Bad Thing: 도박 실패, 믿음마저 무너진 불펜진
올시즌 SK의 약점은 뚜렷했다. 바로 부실한 불펜진이었다. 타선의 넉넉한 지원과 선발투수의 퀄리티스타트 피칭에도 불구하고 불펜진의 방화로 승리를 놓친 경기가 수두룩했다. 올시즌 SK의 불펜은 평균자책점을 비롯해 각종 지표에서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오히려 팀의 자랑이었던 불펜진이었다.
*갑자기 무너진 SK 불펜진
<2015~2016>
WAR: 18.11 (2위)
ERA: 4.73 (3위)
WPA: -2.72 (2위)
블론: 24회 (최소 1위)
세이브 성공율: 72.1% (2위)
<2017>
WAR: 3.89 (10위)
ERA: 5.63 (7위)
WPA: -7.32 (8위)
블론: 22 (최소 10위)
세이브 성공율: 57.8% (9위)
그렇다면 왜 한 시즌 만에 불펜이 무너졌을까? 견고했던 2015~2016년의 주요 불펜 투수들은 정우람, 윤길현, 박희수, 채병용, 김주한 등을 꼽을 수 있다. SK 불펜은 2015시즌 후 정우람과 윤길현이 FA로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예 김주한과 베테랑 채병용이 분전하며 안정감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시즌을 앞두고는 김주한의 성장과 강속구를 지닌 서진용의 각성을 기대할 수 있었다. 특히 서진용은 올시즌 마무리 투수로 내정될 정도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서진용은 한 달여 만에 5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마무리 자리에서 내려왔고, 김주한은 작년부터 누적된 피로에 지친 모습을 보였다(ERA: 전반기 4.99 / 후반기 8.83). 또한 경험으로 뒤를 받쳐줘야 할 박희수(48경기 ERA 6.63), 채병용(43경기 6.84)마저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SK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던 불펜 요원인 박정배(61경기 7세이브 16홀드 68이닝 ERA 3.57)를 시즌 내내 중용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박정배의 활약이 없었다면, SK의 5강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Key Point: 김광현 공백 지운 선발진
2017시즌에 들어가기 전, 팀 에이스인 김광현의 이탈은 SK에 가장 큰 부담이었다. 외국인 에이스 메릴 켈리가 팀에 남았지만, 새로운 외국인 투수 스캇 다이아몬드가 김광현만큼 해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토종 선발투수인 윤희상은 하락세를 타고 있었고, 잠수함 선발투수 박종훈이 실질적 2선발이었다.
부담이 커진 켈리는 올시즌 한번 더 발전을 이뤄냈다. 당초 켈리는 안정된 제구로 이닝 이터 능력을 인정받아왔으나 탈삼진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진 못했다. 하지만 제구력을 더 가다듬고 구속을 끌어올린 덕분에 K/9에서 큰 향상을 이뤄냈다(6.83→8.95). 거기에 타선지원까지 풍족하게 받은 켈리는 올해 30경기 16승 7패 ERA 3.60으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당초 기량이 베일에 싸여있던 다이아몬드 또한 24경기 10승 7패 ERA 4.42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토종 선발 듀오인 박종훈과 문승원의 성장이었다. 독특한 투구폼으로 ‘긁히는 날’에는 언터처블의 구위를 보여준 박종훈은, 최대 과제인 제구력 향상의 실마리를 풀었다. 지난 시즌 기록한 5.85의 BB/9을 3.63으로 대폭 낮췄다. 볼넷이 줄어들자 경기당 소화 이닝이 늘었고 ERA가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신인 드래프트 1라운더 출신으로 군 문제까지 해결한 대졸 신인 문승원은 시즌 중 한차례 완투승도 해내는 등 29경기에 선발 등판하며 선발진에 안착했다.
마치며
천신만고 끝에 5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간 SK는 NC와 상대하기 위해 마산으로 내려갔다. 준플레이오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2연승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1차전을 임하는 마음가짐은 무겁지 않았다. 선발투수로 나서는 메릴 켈리는 한국시리즈 1차전에 나서도 손색없을 선수이고 NC의 선발 맨쉽은 부상 이후 하향세를 그리던 투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켈리가 1회부터 홈런 2방을 얻어맞더니 8실점하며 3회에 조기 강판을 당하고 말았다. 정진기의 2홈런 3타점 활약을 포함해 팀타선은 5점을 지원해줬지만, 사실상 승부는 첫 3이닝에 결정났다. 패배의 표면적인 이유는 켈리의 부진과 함께 그를 일찍 내리지 못한 탓이었다. 그러나 힐만의 입장에서는 켈리 대신 불펜진에게 7이닝 이상을 맡길 수 없었다. SK 불펜은 가을야구 진출 팀들 중에서 가장 약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2017년의 마지막 경기에서 SK는 내년에 반드시 개선해야할 점을 재확인한 셈이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개선점을 확인한 SK, 내년에는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세대교체가 진행된 상황에서 SK에게 필요한 작업은 장점 최대화가 아닌 약점 최소화를 통해 베스트 팀을 만드는 것이다.
야구공작소
김태근 칼럼니스트
기록 출처: Statiz, Fangraphs
[스포탈코리아] SK의 왕조 시절은 구단과 팬 모두가 그리워하는 과거다. 하지만 옛 영광에 미련을 가지면 가질수록 새로운 왕조는 오기 힘든 법이다. 한국시리즈에 나서지 못한 지 어언 5년차가 되는 2017년, 2000년 창단 이후 SK가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00~02, 04~06의 3년 연속이 최다).
그리고 SK는 과감한 변화를 선택했다. 수뇌부의 개편이 눈에 띄었다. 2009년 겨울부터 단장을 맡아온 민경삼이 물러나고 염경엽 전 넥센 감독이 새로운 단장이 됐다. 감독 또한 올드스쿨 스타일의 김용희가 물러나고, 휴스턴 벤치코치였던 트레이 힐만이 새롭게 부임했다. 코치진에서 인천 SK를 상징하던 인사들도 떠나 보내고, 외국인 코치들을 대거 영입했다.
십수년간 주축으로 활약한 선수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부상과 부진으로 자연스럽게 출장 기회를 잃었다. 공교롭게도 SK 왕조의 황태자라고 할 수 있는 김광현까지 토미존 수술을 받고 시즌 아웃됐다. SK의 2017시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롭고, 또 어색한 시즌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위해 힐만은 수비 시프트를 꺼내들었고, 시범경기부터 다양한 전략을 시도했다(힐만이 재직했던 휴스턴은 작년 2052번으로 가장 많은 수비 시프트를 사용한 구단이었다).
SK는 시즌 초반 새롭게 합류한 외국인 선수의 부재와 KIA 타이거즈와의 트레이드로 인해 선수단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태에서 개막 6연패라는 최악의 첫발을 내딛었지만 재빨리 원궤도에 복귀했다. 4월 21일의 경기는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킨 대표적인 경기였다. 이날 SK는 3개의 홈런에 깜짝 스퀴즈 번트를 버무려 멋진 역전승을 만들어냈다.
‘팀홈런 1위’라는 압도적 화력에 전략적 유연함이 더해진 힐만호는 점점 전력이 안정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6월까지 매달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뒀고, 특히 6월엔 17승 9패로 고공행진했다. 그리고 2017시즌 전반기를 48승 1무 39패, 승률 0.552에 승패마진 +9로 끝마쳤다. 리그 3위에 2위와 2게임 차에 불과한 호성적이었다.
하지만 전반기에 너무 많은 힘을 쓴 탓일까, 주축 타자들과 불펜의 부진으로 후반기엔 그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후반기를 루징 시리즈로 시작하더니 8월까지 14승 22패에 그쳤다. 전반기까지만 해도 내심 우승권을 노리던 SK는 와일드카드 진출을 다투는 신세가 됐다.
다행히 시즌 막바지에 이를수록 가을야구 경쟁팀들이 뒤쳐졌고 9월 12승 7패로 뒷심을 발휘한 덕에 SK는 2년 만에 가을야구 진출을 이뤄냈다. 용두사미의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2012년 이후 5년 만의 첫 70+승 시즌이자 5할 시즌이었다. 지난 2년 연속으로 69승에 그쳤던 SK 입장에서는 진일보한 셈이다.
Good Thing: 더 새롭고, 더 강해진 타선
작년 182홈런으로 단일시즌 팀 홈런 기록을 경신한 SK는 올해 더욱 강한 대포군단의 위용을 보여줬다. 시즌 초반부터 팀 홈런 1위로 치고 나가더니 시즌 끝까지 정상을 내주지 않았다. 특히 전반기 마감 당시 다른 구단들이 100홈런도 넘지 못한 상황(2위 두산, KIA 99홈런)에서 SK는 153홈런을 기록해 한 차원 높은 홈런 생산력을 보였다. 결국 올 시즌 SK의 최종 팀 홈런 수는 234개로, 역대 단일시즌 팀 최다 홈런 신기록을 다시 한번 갈아치웠다. 4.21%의 홈런 비율도 역대 최고 수치다(종전 2003년 삼성 - 213홈런, 4.06 HR%).
무엇보다 SK 타선의 장점은 홈런이 특정 소수에게 편중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46개의 홈런왕 최정을 필두로 4명의 20홈런 타자가 나왔으며, 선발 라인업 정원에 해당하는 9명이 10개 이상의 홈런을 쳐냈다. 이 9명의 평균 홈런 수는 22개로, 만약 SK가 이들을 수비 위치에 상관없이 선발 라인업에 넣었다면, 상대팀은 SK를 만날 때마다 22홈런 타자들로 꽉 찬 타선을 상대해야 했던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 두 자릿수 홈런을 쳐낸 타자들의 상당수가 새로운 얼굴이라는 것이다. 작년에 두 자릿수 홈런을 쳤던 7명 중 4명(고메즈∙최승준∙이재원∙김강민)이 명단에서 사라졌고, 작년 팀 내 홈런 2위였던 정의윤의 홈런 개수는 27개에서 15개로 폭락했다. 제 자리를 지킨 선수는 2년 연속 홈런왕인 최정과 개수를 조금 늘린 박정권이 유이했다.
하지만 그 공백을 다른 선수들이 120% 메워줬다. 대체 외국인 타자인 제이미 로맥(31홈런)은 시즌 중반 합류했음에도 팀 내 홈런 2위에 올랐고, 잊혀진 타자나 다름없던 나주환(19홈런)은 부활했다. 거포 유망주였던 한동민(29홈런)과 김동엽(22홈런)은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주포로 성장했다. 군에서 전역한 정진기(11홈런)는 제 4의 외야수로서 힘을 보탰고, 이적생 이홍구도 10홈런으로 장타자로서의 이미지를 팬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홈런의 반대급부로, SK 타선은 대체적으로 컨택 능력이 취약했고, 성급히 배트를 내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많은 삼진과 낮은 출루율을 불러왔다. 홈런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루상에 많은 주자가 있는 것이 중요한데, SK는 그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SK의 팀 출루율은 0.341로 리그 8위에 머물렀다. 팀에서 리그 평균 출루율(0.353)보다 높은 선수가 5명에 불과하고, 이중 상위 타선 선수는 신예 조용호(출루율 0.365) 한 명에 불과했다. 출루율 향상은 SK 타선의 최대 과제로 남았다.
MVP – 최정
익숙한 얼굴들이 떠나고 새로운 얼굴들이 들어온 상황에서, 흔들림 없이 SK를 지탱한 최정. 그는 어느덧 ‘소년장사’라는 앳된 별명보다 ‘천하장사’이라는 원숙한 별명이 더 어울리는 나이가 됐다. 약관의 나이부터 SK 왕조의 핫코너를 지킨 지도 벌써 10년, 올해 만 30세 시즌을 보낸 최정은 개인 통산 2번째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작년 테임즈와 함께 공동 홈런왕에 오르며 토종 거포의 자존심을 지켰던 최정은 올해 46홈런으로 리그 유일의 40홈런 타자로 우뚝 섰고 2년 연속 40홈런-100타점을 기록했다. 또한 구단 역사상 단일시즌 최다 홈런∙타점을 올린 타자로 자리매김하며 역대 3루수 단일시즌 최다 홈런 기록까지 경신했다(종전 페르난데스 45홈런).
올스타전에서도 구단 최초로 MVP에 선정되는 활약을 보인 최정은 올시즌 홈런∙장타율∙OPS 1위, 타점 5위, WAR 3위로 MVP 투표에서도 2위에 올랐다.
가장 발전한 선수 – 한동민
올시즌 SK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는 최정이었다. 하지만 ‘메가-히트 상품’은 단연 한동민이다. 이전부터 파워 툴을 인정받았던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임한 첫 풀타임 시즌에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4월에 4경기 연속 홈런으로 홈런 레이스에서 치고 나가더니, 6월 중 홈런∙타점 선두에 등극하며 이른바 ‘동미니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에도 최정과 함께 홈런왕을 다투며 26홈런 64타점 OPS 1.058로 전반기를 마무리짓고 생애 첫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후반기에 진입해 잠시 침체에 빠지는 듯 했으나 차곡차곡 홈런을 쌓아가던 한동민은 뜻밖에 시련을 겪고 만다. 8월 8일 도루를 시도하다가 슬라이딩 도중 끔찍한 발목 부상을 당한 것이다. 시즌 아웃을 부른 큰 부상이었고, 이로써 한동민은 SK 최초의 30홈런 좌타자가 될 기회를 훗날로 미루게 됐다(공교롭게도 부상날은 한동민의 생일 전날이었다).
하지만 올시즌 보여준 한동민의 퍼포먼스는 그가 내년에 건강하게 복귀한다면 SK 홈런 군단의 차세대 리더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한동민이 103경기 동안 출전하면서 쌓은 WAR은 3.75로, 풀타임 출전을 가정 시 리그 10위 안에 들 수 있는 페이스다.
LVP – 김강민
오랫동안 SK의 주전 중견수로서 타선에 활력을 더했던 김강민은 2014시즌 이후 4년 56억원의 FA 계약으로 그 동안의 기여를 보상받았다. 하지만 계약 이후 그의 행보는 ‘FA 먹튀’를 향해 가고 있다. 작년엔 팀의 주장으로서 나름대로 제 몫은 해 줬지만 올해는 극심한 부진으로 주전 중견수 자리를 내주게 됐다.
올 시즌 그의 역할은 대타∙대수비∙대주자에 한정됐는데, 김강민이 기록한 시즌 WAR은 0.03은 정확히 ‘대체선수’ 수준에 불과했다. 김강민의 연봉에 비하면 많이 아쉬우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강민과의 계약이 내년을 끝으로 만료된다는 점이다.
Bad Thing: 도박 실패, 믿음마저 무너진 불펜진
올시즌 SK의 약점은 뚜렷했다. 바로 부실한 불펜진이었다. 타선의 넉넉한 지원과 선발투수의 퀄리티스타트 피칭에도 불구하고 불펜진의 방화로 승리를 놓친 경기가 수두룩했다. 올시즌 SK의 불펜은 평균자책점을 비롯해 각종 지표에서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오히려 팀의 자랑이었던 불펜진이었다.
*갑자기 무너진 SK 불펜진
<2015~2016>
WAR: 18.11 (2위)
ERA: 4.73 (3위)
WPA: -2.72 (2위)
블론: 24회 (최소 1위)
세이브 성공율: 72.1% (2위)
<2017>
WAR: 3.89 (10위)
ERA: 5.63 (7위)
WPA: -7.32 (8위)
블론: 22 (최소 10위)
세이브 성공율: 57.8% (9위)
그렇다면 왜 한 시즌 만에 불펜이 무너졌을까? 견고했던 2015~2016년의 주요 불펜 투수들은 정우람, 윤길현, 박희수, 채병용, 김주한 등을 꼽을 수 있다. SK 불펜은 2015시즌 후 정우람과 윤길현이 FA로 이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예 김주한과 베테랑 채병용이 분전하며 안정감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시즌을 앞두고는 김주한의 성장과 강속구를 지닌 서진용의 각성을 기대할 수 있었다. 특히 서진용은 올시즌 마무리 투수로 내정될 정도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서진용은 한 달여 만에 5개의 블론세이브를 기록하며 마무리 자리에서 내려왔고, 김주한은 작년부터 누적된 피로에 지친 모습을 보였다(ERA: 전반기 4.99 / 후반기 8.83). 또한 경험으로 뒤를 받쳐줘야 할 박희수(48경기 ERA 6.63), 채병용(43경기 6.84)마저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SK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었던 불펜 요원인 박정배(61경기 7세이브 16홀드 68이닝 ERA 3.57)를 시즌 내내 중용할 수 밖에 없었다. 만약 박정배의 활약이 없었다면, SK의 5강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Key Point: 김광현 공백 지운 선발진
2017시즌에 들어가기 전, 팀 에이스인 김광현의 이탈은 SK에 가장 큰 부담이었다. 외국인 에이스 메릴 켈리가 팀에 남았지만, 새로운 외국인 투수 스캇 다이아몬드가 김광현만큼 해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토종 선발투수인 윤희상은 하락세를 타고 있었고, 잠수함 선발투수 박종훈이 실질적 2선발이었다.
부담이 커진 켈리는 올시즌 한번 더 발전을 이뤄냈다. 당초 켈리는 안정된 제구로 이닝 이터 능력을 인정받아왔으나 탈삼진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진 못했다. 하지만 제구력을 더 가다듬고 구속을 끌어올린 덕분에 K/9에서 큰 향상을 이뤄냈다(6.83→8.95). 거기에 타선지원까지 풍족하게 받은 켈리는 올해 30경기 16승 7패 ERA 3.60으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당초 기량이 베일에 싸여있던 다이아몬드 또한 24경기 10승 7패 ERA 4.42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토종 선발 듀오인 박종훈과 문승원의 성장이었다. 독특한 투구폼으로 ‘긁히는 날’에는 언터처블의 구위를 보여준 박종훈은, 최대 과제인 제구력 향상의 실마리를 풀었다. 지난 시즌 기록한 5.85의 BB/9을 3.63으로 대폭 낮췄다. 볼넷이 줄어들자 경기당 소화 이닝이 늘었고 ERA가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신인 드래프트 1라운더 출신으로 군 문제까지 해결한 대졸 신인 문승원은 시즌 중 한차례 완투승도 해내는 등 29경기에 선발 등판하며 선발진에 안착했다.
마치며
천신만고 끝에 5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간 SK는 NC와 상대하기 위해 마산으로 내려갔다. 준플레이오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2연승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1차전을 임하는 마음가짐은 무겁지 않았다. 선발투수로 나서는 메릴 켈리는 한국시리즈 1차전에 나서도 손색없을 선수이고 NC의 선발 맨쉽은 부상 이후 하향세를 그리던 투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켈리가 1회부터 홈런 2방을 얻어맞더니 8실점하며 3회에 조기 강판을 당하고 말았다. 정진기의 2홈런 3타점 활약을 포함해 팀타선은 5점을 지원해줬지만, 사실상 승부는 첫 3이닝에 결정났다. 패배의 표면적인 이유는 켈리의 부진과 함께 그를 일찍 내리지 못한 탓이었다. 그러나 힐만의 입장에서는 켈리 대신 불펜진에게 7이닝 이상을 맡길 수 없었다. SK 불펜은 가을야구 진출 팀들 중에서 가장 약체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2017년의 마지막 경기에서 SK는 내년에 반드시 개선해야할 점을 재확인한 셈이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개선점을 확인한 SK, 내년에는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젊은 선수들의 성장으로 세대교체가 진행된 상황에서 SK에게 필요한 작업은 장점 최대화가 아닌 약점 최소화를 통해 베스트 팀을 만드는 것이다.
야구공작소
김태근 칼럼니스트
기록 출처: Statiz, Fangrap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