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그래프 예상 성적: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 (90승 72패)
시즌 최종 성적: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 (101승 61패) /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
프롤로그
[스포탈코리아] SI(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옳았다.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1955년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메이저리그의 장구한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수준의 뼈를 깎는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마친 결과물이었다. 2011년부터 3년간 106패, 107패, 111패를 기록했던 ‘휴스턴 고등학교’는 3시즌 만에 리그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오프시즌 동안 브라이언 맥캔, 조시 레딕, 찰리 모튼 등을 영입하며 기존의 강력한 전력을 한층 더 보강했던 만큼, 휴스턴의 아메리칸리그 제패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구상대로만 흘러간 시즌은 아니었다. 2015시즌 선발로 19승을 올렸던 콜린 맥휴가 시즌 출발부터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고 말았고, 2016시즌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줬던 조 머스그로브 역시 극도의 부진에 빠졌다. 8월에는 팀 전체가 한 달간 11승 17패를 기록하면서 선두 수성에 애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101승과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해피 엔딩을 맞이할 수 있던 것은 중심을 잡아준 신예 야수들과 튼실한 잇몸이 되어준 불펜진의 활약 덕분이었다. 냉철함을 잃지 않고 ‘신의 한 수’를 만들어낸 제프 르나우 단장 이하 프런트 및 코칭스태프의 역할도 컸다.
Trust the Process
르나우 사단은 5년 전부터 2017시즌 우승을 목표로 삼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수단을 운영해왔다. 그 첫 단계는 ‘리셋’이었다. 휴스턴은 스타급 플레이어들을 타팀으로 보내면서 페이롤을 감축했고, 탱킹을 불사하며 좋은 신인들을 얻어내기 위해 애썼다. 전력도 우승권과는 차이가 있고, 유망주 팜도 풍족하지 않았던 당시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한때는 그 여파로 팬들마저 등을 돌리면서 2013시즌 휴스턴 지역 시청률 0.0%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인내의 세월은 조금씩 팀에 변화를 안겨주었다.
2014시즌부터는 유의미한 변화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호세 알투베는 휴스턴의 중심 선수로 성장하며 처음으로 200안타 시즌을 만들어냈고, 조지 스프링어 역시 리그를 대표하는 엘리트 유망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시즌을 거듭하면서도 전문가들은 휴스턴의 대권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를 지우지 않았다. 알투베를 제외하면 리그 판도를 바꿔 놓을 만큼의 에이스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르나우 사단이 많은 기회를 부여한 신예 선수들은 아직 2%가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이 팀의 주축이었던 만큼, ‘if’라는 수식어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렇지만 올 시즌은 달랐다. 휴스턴에서만 뛰어온 20대 야수 5인방은 완벽하게 그 물음표를 지워버렸다. 이번 시즌 총 124홈런을 합작한 호세 알투베, 조지 스프링어, 카를로스 코레아, 알렉스 브레그먼, 마윈 곤잘레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지난 시즌 94홈런을 합작했던 이들은 홈런은 30개를 늘리면서도 삼진은 557삼진에서 483삼진으로 74개를 감소시켰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휴스턴은 한 시즌 만에 최다 삼진 팀에서 최소 삼진 팀으로 변모했다.
삼진만이 아니었다. 휴스턴은 올 시즌 팀 타율, 출루율, 장타력, OPS, 타점, 득점 모두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적당히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휴스턴 타선은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역대급’ 타선으로 진화했다.
젊은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면서 베테랑들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이들을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굳어졌다. 맥캔은 휴스턴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포수 자리를 완벽히 메꿔주었고, 포스트시즌에도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카를로스 벨트란은 “타선 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클럽하우스 리더로 삼기 위해 데려왔다”던 르나우의 말대로 거칠게 리듬을 타는 팀 타선의 중심을 잡아줬다.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간 타선에 비하면 투수진은 다소 부침이 있었다. 선발진의 새로운 주축으로 떠올랐던 랜스 맥컬러스와 조 머스그로브는 부상 여파 속에 각각 118.2이닝, 109.1이닝을 투구하는 데 그쳤다. 맥컬러스가 8월 중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르나우 사단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그림에 한 획의 수정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그 선택이 바로 저스틴 벌랜더였다.
벌랜더의 영입은 자칫 ‘부실공사’로 끝날 수 있었던 휴스턴의 리빌딩에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웨이버 트레이드 마감 시한 2초를 남기고 영입을 성사시킨 탓에 처음에는 패닉 바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젊은 투수들이 이렇다 할 결과를 내주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벌랜더 영입마저 실패했을 경우 맞이하게 될 후폭풍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벌랜더는 9월 내내 연승가도를 달리면서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고, 이후의 토너먼트에서도 ‘빅 게임 피쳐’다운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MVP – 호세 알투베
시즌 성적: 타율 0.346 출루율 0.410 장타율 0.547 OPS 0.957 24홈런 32도루
이제는 리그가 인정한 슈퍼스타가 됐다. 뉴욕 양키스의 애런 저지를 무난히 따돌리고 MVP 레이스에서 승리한 그를 팀내 MVP로 선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시즌 커리어 최다인 24개의 홈런과 0.338의 타율, 0.928의 OPS를 기록하며 MVP 투표에서 3위에 올랐던 알투베는 올 시즌 이 기록들을 또 한 번 갈아치웠다.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는 모두 커리어 하이였고, 여기에 4년 연속 3할과 200안타 기록도 달성했다. 이렇다 할 약점이 없는 선수였고, 거기에 기복도 없었다. 전반기 86경기에서 13개의 홈런과 0.347의 타율을 기록했던 알투베는 후반기 67경기에서도 11개의 홈런과 0.344의 타율을 기록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초반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가장 중요했던 5차전에서 동점 홈런포를 가동하면서 자신이 왜 MVP인지를 증명해냈다.
이렇게 완벽했던 그에게도 시즌을 앞두고 설정해 둔 목표가 있었다. 바로 ‘루킹 삼진 줄이기’였다. 자신이 다른 평균적인 신체조건을 가진 선수들에 비해 스트라이크 존 판정에서 손해를 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로 2015시즌만 해도 전체 삼진 중 19.4%에 불과했던 알투베의 루킹 삼진 비율은 2016시즌에는 34.3%로 2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알투베는 올 시즌이 개막하기 전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초구 타격’에 임할 것이라는 인터뷰를 남겼고, 이를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초구의 알투베’는 올 시즌 타팀 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2016시즌 48개였던 초구 안타는 62개로 14개가 늘었으며, 이 가운데 무려 10개가 홈런이었다. 초구 타율 역시 0.375에서 0.449로 껑충 뛰었다. 궁극적인 목적이었던 루킹 삼진을 줄이는 것 역시 달성했다. 알투베는 올 시즌 총 62개의 삼진을 당했는데, 이 중 루킹 삼진의 비율은 26.2%였다. 전 시즌보다 8% 이상이 줄어든 수치다.
이렇듯 알투베는 사소한 약점들마저 하나하나 보완해 나가는 현재진행형의 선수다. 28세의 나이로 2018시즌을 맞이하는 만큼, 커리어 하이를 다시 한 번 경신해낼 여지도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 내년에는 어떤 새로운 동기부여를 통해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MIP – 마윈 곤잘레스, 브래드 피콕
마윈 곤잘레스: 타율 0.303 출루율 0.377 장타율 0.530 OPS 0.907 23홈런 90타점
*수비 6포지션 소화(유격수 포함)
브래드 피콕: 132이닝 13승 2패 ERA 3.00 WHIP 1.19 161탈삼진 57볼넷
곤잘레스는 지난 2012년 휴스턴에서 데뷔한 이래 대부분의 시간을 백업 멤버로 보냈다. 그의 최대 강점은 ‘다양한 수비 포지션’이었다. 곤잘레스는 올 시즌에도 내야 전 포지션과 코너 외야수를 소화했고, 이 중 어느 포지션에서도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가장 많이 출전한 포지션인 유격수에서 281.1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기록한 실책은 단 2개에 불과했고, 수비율 역시 0.984에 이르렀다. 100이닝 이상 소화한 기타 포지션(외야, 1루, 2루, 3루)에서도 이와 비슷한 수비율을 기록했던 곤잘레스는 그야말로 리그 최고의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올 시즌 곤잘레스는 타격에서 완전히 다른 선수로 탈바꿈했다. 커리어 첫 3할 타율(0.303)을 기록하면서 23개의 홈런을 쏘아 올린 것이다. 시즌 초에는 백업 선수로만 곤잘레스를 기용했던 A.J. 힌치 감독도 시즌 중반부터는 곤잘레스를 라인업 카드에 넣고 다른 선수들을 번갈아 쉬게 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 이처럼 최고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발돋움한 곤잘레스는 아메리칸리그 MVP 투표에서도 19위를 차지하며 놀랄 만한 시즌을 보냈다.
투수진의 ‘깜짝 스타’로 떠오른 브래드 피콕의 활약은 더 놀라웠다. 피콕은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마이너리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투수였다. ‘휴스턴 고등학교’시절이 막을 내리기 전인 2014시즌 당시 빅리그에서 131.2이닝을 선발로 투구했던 경력이 있기는 하지만, 이때의 성적도 4승 9패 평균자책점 4.72로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피콕이 선발투수로 21경기에 나서게 될 것을 예측했던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피콕은 기존 선발투수들의 부상으로 발생한 공백을 틈타 풀타임 선발투수로 성장했다.
올 시즌 피콕에게서 관찰된 가장 큰 변화는 투심 패스트볼 장착이었다. 원래 피콕은 평균 92.5마일 남짓의 포심 패스트볼이 투구의 70% 이상을 차지했던 투수로, 투구 패턴이 매우 단조롭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올 시즌 평균 91.7마일의 투심 패스트볼을 장착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 투심 패스트볼이 25% 정도의 투구 지분을 차지하면서 포심 패스트볼의 비중을 30%대로 낮추고 나자, 상대 타선이 이전처럼 패스트볼에 쉽게 대처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 3년 사이 패스트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포심 패스트볼 투구시 기록
2014년(131.2이닝) – 1359구 피칭 / 75피안타 / 피안타율 0.279 / 피장타율 0.498
2017년(132이닝) – 662구 피칭 / 22피안타 / 피안타율 0.195 / 피장타율 0.265
패스트볼을 끊임없이 통타 당했던 3년 전과 대비해도 피콕의 평균 구속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2014년 92.7마일을 기록했던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은 올 시즌에도 92.5마일이었다. 그러나 투심 패스트볼을 장착한 올 시즌 피콕은 무려 11.0개의 9이닝당 탈삼진을 기록했고, 이처럼 압도적인 탈삼진 능력을 앞세워 13승 2패라는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베테랑 선발투수 마이크 파이어스가 FA로 팀을 떠난 만큼, 내년 시즌에는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 진입을 노려볼 수 있을 전망이다.
애스트로스는 여전히 미래진행형
휴스턴은 2017시즌에도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행보를 보이지는 않았다. 시즌 중 저스틴 벌랜더를 영입해오기는 했지만, 벌랜더는 앞으로도 2년이나 더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선수다. 즉 필사적인 ‘반년 렌탈’에 해당하는 영입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저 대부분의 퍼즐이 휴스턴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프런트의 시즌 전 구상대로 맞아 들어가면서 이룩해낸 우승이었다.
그만큼 칭찬받아 마땅한 선수들이 너무 많았던 시즌이었다. 커리어 첫 올스타에 뽑힌 크리스 데븐스키, 전반기 최고의 소방수였던 켄 자일스, 팀내 4위의 bWAR을 기록하며 선전한 조시 레딕까지. 다른 팀이었다면 팀의 주축으로 주목받았을 선수들이 올 시즌의 휴스턴에서는 ‘조연’ 역할에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들이 조연으로 힘써주었기에 휴스턴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언급된 선수들은 모두 내년 시즌에도 휴스턴과 함께하게 될 예정이다.
SI는 휴스턴의 우승을 2017년이라고 예상했지만, 사실 휴스턴의 프런트가 예상한 우승 시점은 이보다는 조금 나중이었다. 휴스턴은 앞으로도 최소 2시즌간 올 시즌 가동했던 막강한 라인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한 알투베, 스프링어, 코레아는 각각 2020시즌, 2021시즌, 2022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취득한다. 거기에 올 시즌 유망주 딱지를 뗀 알렉스 브레그먼을 필두로 외야의 유망주 데릭 피셔와 카일 터커가 순차적으로 빅리그 무대에 진입하고 있다. 휴스턴의 타선은 아직도 ‘정점’에 오르지 않았다.
투수진 역시 리빌딩이 완전히 마무리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맥컬러스와 머스그로브를 중심으로 투수진을 젊게 개편하려던 움직임은 본격적인 우승 레이스에 돌입하면서 잠시 나중으로 미루게 됐지만, 올 시즌 팀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던 베테랑 선발투수 마이크 파이어스가 FA로 떠나가면서 내년 시즌에는 더 많은 기회가 젊은 투수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휴스턴의 유망주들 중에서는 도미니카산 영건 듀오인 프란시스 마르테스와 데이빗 파울리노가 근시일 내에 로테이션에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2016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더 포레스트 휘트니도 유력한 선발 후보다. 휘트니는 올 시즌 싱글 A와 더블 A를 오가면서 9이닝당 1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고, 평균자책점 2.83의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다만 팀에서 어디까지나 선발 자원으로 분류하고 있는 만큼, 급하게 빅리그로 불러 올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휴스턴의 내년 시즌 성패는 궤도에 오른 타선보다는 변수가 많은 투수진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휴스턴은 스토브리그에서 이미 이번 포스트시즌의 교훈을 발판 삼아 불펜 투수 조 스미스, 헥터 론돈과 계약을 체결했다. 빅네임 FA보다는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선수들을 먼저 데려온 것이다.
휴스턴 프런트와 선수단, 그리고 팬 모두는 알고 있다. 앞으로 몇 년간 애스트로스를 대표할 인물들은 올 시즌 우승을 일궈낸 자신들이라는 것을.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꾸고 있는 꿈은 여전히 ‘미래진행형’이다.
야구공작소
홍지일 칼럼니스트
기록 출처: Baseball Reference, Fangraphs
시즌 최종 성적: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1위 (101승 61패) / 창단 첫 월드시리즈 우승
프롤로그
[스포탈코리아] SI(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가 옳았다.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1955년 팀 창단 이래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메이저리그의 장구한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수준의 뼈를 깎는 리빌딩을 성공적으로 마친 결과물이었다. 2011년부터 3년간 106패, 107패, 111패를 기록했던 ‘휴스턴 고등학교’는 3시즌 만에 리그의 주인공으로 거듭났다.
오프시즌 동안 브라이언 맥캔, 조시 레딕, 찰리 모튼 등을 영입하며 기존의 강력한 전력을 한층 더 보강했던 만큼, 휴스턴의 아메리칸리그 제패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구상대로만 흘러간 시즌은 아니었다. 2015시즌 선발로 19승을 올렸던 콜린 맥휴가 시즌 출발부터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고 말았고, 2016시즌 상당한 가능성을 보여줬던 조 머스그로브 역시 극도의 부진에 빠졌다. 8월에는 팀 전체가 한 달간 11승 17패를 기록하면서 선두 수성에 애를 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101승과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해피 엔딩을 맞이할 수 있던 것은 중심을 잡아준 신예 야수들과 튼실한 잇몸이 되어준 불펜진의 활약 덕분이었다. 냉철함을 잃지 않고 ‘신의 한 수’를 만들어낸 제프 르나우 단장 이하 프런트 및 코칭스태프의 역할도 컸다.
Trust the Process
르나우 사단은 5년 전부터 2017시즌 우승을 목표로 삼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선수단을 운영해왔다. 그 첫 단계는 ‘리셋’이었다. 휴스턴은 스타급 플레이어들을 타팀으로 보내면서 페이롤을 감축했고, 탱킹을 불사하며 좋은 신인들을 얻어내기 위해 애썼다. 전력도 우승권과는 차이가 있고, 유망주 팜도 풍족하지 않았던 당시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한때는 그 여파로 팬들마저 등을 돌리면서 2013시즌 휴스턴 지역 시청률 0.0%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인내의 세월은 조금씩 팀에 변화를 안겨주었다.
2014시즌부터는 유의미한 변화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호세 알투베는 휴스턴의 중심 선수로 성장하며 처음으로 200안타 시즌을 만들어냈고, 조지 스프링어 역시 리그를 대표하는 엘리트 유망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시즌을 거듭하면서도 전문가들은 휴스턴의 대권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를 지우지 않았다. 알투베를 제외하면 리그 판도를 바꿔 놓을 만큼의 에이스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르나우 사단이 많은 기회를 부여한 신예 선수들은 아직 2%가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이 팀의 주축이었던 만큼, ‘if’라는 수식어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렇지만 올 시즌은 달랐다. 휴스턴에서만 뛰어온 20대 야수 5인방은 완벽하게 그 물음표를 지워버렸다. 이번 시즌 총 124홈런을 합작한 호세 알투베, 조지 스프링어, 카를로스 코레아, 알렉스 브레그먼, 마윈 곤잘레스가 그 주인공이었다. 지난 시즌 94홈런을 합작했던 이들은 홈런은 30개를 늘리면서도 삼진은 557삼진에서 483삼진으로 74개를 감소시켰다. 이러한 변화에 힘입어 휴스턴은 한 시즌 만에 최다 삼진 팀에서 최소 삼진 팀으로 변모했다.
삼진만이 아니었다. 휴스턴은 올 시즌 팀 타율, 출루율, 장타력, OPS, 타점, 득점 모두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1위를 차지했다. ‘적당히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휴스턴 타선은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이 폭발하면서 ‘역대급’ 타선으로 진화했다.
젊은 선수들이 기대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면서 베테랑들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이들을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굳어졌다. 맥캔은 휴스턴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포수 자리를 완벽히 메꿔주었고, 포스트시즌에도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카를로스 벨트란은 “타선 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클럽하우스 리더로 삼기 위해 데려왔다”던 르나우의 말대로 거칠게 리듬을 타는 팀 타선의 중심을 잡아줬다.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흘러간 타선에 비하면 투수진은 다소 부침이 있었다. 선발진의 새로운 주축으로 떠올랐던 랜스 맥컬러스와 조 머스그로브는 부상 여파 속에 각각 118.2이닝, 109.1이닝을 투구하는 데 그쳤다. 맥컬러스가 8월 중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르나우 사단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그림에 한 획의 수정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그 선택이 바로 저스틴 벌랜더였다.
벌랜더의 영입은 자칫 ‘부실공사’로 끝날 수 있었던 휴스턴의 리빌딩에 ‘신의 한 수’로 작용했다. 웨이버 트레이드 마감 시한 2초를 남기고 영입을 성사시킨 탓에 처음에는 패닉 바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젊은 투수들이 이렇다 할 결과를 내주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벌랜더 영입마저 실패했을 경우 맞이하게 될 후폭풍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벌랜더는 9월 내내 연승가도를 달리면서 팀을 포스트시즌으로 이끌었고, 이후의 토너먼트에서도 ‘빅 게임 피쳐’다운 결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MVP – 호세 알투베
시즌 성적: 타율 0.346 출루율 0.410 장타율 0.547 OPS 0.957 24홈런 32도루
이제는 리그가 인정한 슈퍼스타가 됐다. 뉴욕 양키스의 애런 저지를 무난히 따돌리고 MVP 레이스에서 승리한 그를 팀내 MVP로 선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시즌 커리어 최다인 24개의 홈런과 0.338의 타율, 0.928의 OPS를 기록하며 MVP 투표에서 3위에 올랐던 알투베는 올 시즌 이 기록들을 또 한 번 갈아치웠다.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는 모두 커리어 하이였고, 여기에 4년 연속 3할과 200안타 기록도 달성했다. 이렇다 할 약점이 없는 선수였고, 거기에 기복도 없었다. 전반기 86경기에서 13개의 홈런과 0.347의 타율을 기록했던 알투베는 후반기 67경기에서도 11개의 홈런과 0.344의 타율을 기록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초반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가장 중요했던 5차전에서 동점 홈런포를 가동하면서 자신이 왜 MVP인지를 증명해냈다.
이렇게 완벽했던 그에게도 시즌을 앞두고 설정해 둔 목표가 있었다. 바로 ‘루킹 삼진 줄이기’였다. 자신이 다른 평균적인 신체조건을 가진 선수들에 비해 스트라이크 존 판정에서 손해를 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제로 2015시즌만 해도 전체 삼진 중 19.4%에 불과했던 알투베의 루킹 삼진 비율은 2016시즌에는 34.3%로 2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알투베는 올 시즌이 개막하기 전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초구 타격’에 임할 것이라는 인터뷰를 남겼고, 이를 실제로 실행에 옮겼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초구의 알투베’는 올 시즌 타팀 투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2016시즌 48개였던 초구 안타는 62개로 14개가 늘었으며, 이 가운데 무려 10개가 홈런이었다. 초구 타율 역시 0.375에서 0.449로 껑충 뛰었다. 궁극적인 목적이었던 루킹 삼진을 줄이는 것 역시 달성했다. 알투베는 올 시즌 총 62개의 삼진을 당했는데, 이 중 루킹 삼진의 비율은 26.2%였다. 전 시즌보다 8% 이상이 줄어든 수치다.
이렇듯 알투베는 사소한 약점들마저 하나하나 보완해 나가는 현재진행형의 선수다. 28세의 나이로 2018시즌을 맞이하는 만큼, 커리어 하이를 다시 한 번 경신해낼 여지도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 내년에는 어떤 새로운 동기부여를 통해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가 주목된다.
MIP – 마윈 곤잘레스, 브래드 피콕
마윈 곤잘레스: 타율 0.303 출루율 0.377 장타율 0.530 OPS 0.907 23홈런 90타점
*수비 6포지션 소화(유격수 포함)
브래드 피콕: 132이닝 13승 2패 ERA 3.00 WHIP 1.19 161탈삼진 57볼넷
곤잘레스는 지난 2012년 휴스턴에서 데뷔한 이래 대부분의 시간을 백업 멤버로 보냈다. 그의 최대 강점은 ‘다양한 수비 포지션’이었다. 곤잘레스는 올 시즌에도 내야 전 포지션과 코너 외야수를 소화했고, 이 중 어느 포지션에서도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가장 많이 출전한 포지션인 유격수에서 281.1이닝을 소화하는 동안 기록한 실책은 단 2개에 불과했고, 수비율 역시 0.984에 이르렀다. 100이닝 이상 소화한 기타 포지션(외야, 1루, 2루, 3루)에서도 이와 비슷한 수비율을 기록했던 곤잘레스는 그야말로 리그 최고의 유틸리티 플레이어였다.
그런데 이것이 끝이 아니다. 올 시즌 곤잘레스는 타격에서 완전히 다른 선수로 탈바꿈했다. 커리어 첫 3할 타율(0.303)을 기록하면서 23개의 홈런을 쏘아 올린 것이다. 시즌 초에는 백업 선수로만 곤잘레스를 기용했던 A.J. 힌치 감독도 시즌 중반부터는 곤잘레스를 라인업 카드에 넣고 다른 선수들을 번갈아 쉬게 하는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 이처럼 최고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발돋움한 곤잘레스는 아메리칸리그 MVP 투표에서도 19위를 차지하며 놀랄 만한 시즌을 보냈다.
투수진의 ‘깜짝 스타’로 떠오른 브래드 피콕의 활약은 더 놀라웠다. 피콕은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마이너리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투수였다. ‘휴스턴 고등학교’시절이 막을 내리기 전인 2014시즌 당시 빅리그에서 131.2이닝을 선발로 투구했던 경력이 있기는 하지만, 이때의 성적도 4승 9패 평균자책점 4.72로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피콕이 선발투수로 21경기에 나서게 될 것을 예측했던 이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피콕은 기존 선발투수들의 부상으로 발생한 공백을 틈타 풀타임 선발투수로 성장했다.
올 시즌 피콕에게서 관찰된 가장 큰 변화는 투심 패스트볼 장착이었다. 원래 피콕은 평균 92.5마일 남짓의 포심 패스트볼이 투구의 70% 이상을 차지했던 투수로, 투구 패턴이 매우 단조롭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올 시즌 평균 91.7마일의 투심 패스트볼을 장착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 투심 패스트볼이 25% 정도의 투구 지분을 차지하면서 포심 패스트볼의 비중을 30%대로 낮추고 나자, 상대 타선이 이전처럼 패스트볼에 쉽게 대처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 3년 사이 패스트볼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포심 패스트볼 투구시 기록
2014년(131.2이닝) – 1359구 피칭 / 75피안타 / 피안타율 0.279 / 피장타율 0.498
2017년(132이닝) – 662구 피칭 / 22피안타 / 피안타율 0.195 / 피장타율 0.265
패스트볼을 끊임없이 통타 당했던 3년 전과 대비해도 피콕의 평균 구속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2014년 92.7마일을 기록했던 포심 패스트볼의 구속은 올 시즌에도 92.5마일이었다. 그러나 투심 패스트볼을 장착한 올 시즌 피콕은 무려 11.0개의 9이닝당 탈삼진을 기록했고, 이처럼 압도적인 탈삼진 능력을 앞세워 13승 2패라는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베테랑 선발투수 마이크 파이어스가 FA로 팀을 떠난 만큼, 내년 시즌에는 개막부터 선발 로테이션 진입을 노려볼 수 있을 전망이다.
애스트로스는 여전히 미래진행형
휴스턴은 2017시즌에도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행보를 보이지는 않았다. 시즌 중 저스틴 벌랜더를 영입해오기는 했지만, 벌랜더는 앞으로도 2년이나 더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선수다. 즉 필사적인 ‘반년 렌탈’에 해당하는 영입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저 대부분의 퍼즐이 휴스턴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프런트의 시즌 전 구상대로 맞아 들어가면서 이룩해낸 우승이었다.
그만큼 칭찬받아 마땅한 선수들이 너무 많았던 시즌이었다. 커리어 첫 올스타에 뽑힌 크리스 데븐스키, 전반기 최고의 소방수였던 켄 자일스, 팀내 4위의 bWAR을 기록하며 선전한 조시 레딕까지. 다른 팀이었다면 팀의 주축으로 주목받았을 선수들이 올 시즌의 휴스턴에서는 ‘조연’ 역할에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들이 조연으로 힘써주었기에 휴스턴은 창단 첫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언급된 선수들은 모두 내년 시즌에도 휴스턴과 함께하게 될 예정이다.
SI는 휴스턴의 우승을 2017년이라고 예상했지만, 사실 휴스턴의 프런트가 예상한 우승 시점은 이보다는 조금 나중이었다. 휴스턴은 앞으로도 최소 2시즌간 올 시즌 가동했던 막강한 라인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한 알투베, 스프링어, 코레아는 각각 2020시즌, 2021시즌, 2022시즌을 마치고 FA 자격을 취득한다. 거기에 올 시즌 유망주 딱지를 뗀 알렉스 브레그먼을 필두로 외야의 유망주 데릭 피셔와 카일 터커가 순차적으로 빅리그 무대에 진입하고 있다. 휴스턴의 타선은 아직도 ‘정점’에 오르지 않았다.
투수진 역시 리빌딩이 완전히 마무리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맥컬러스와 머스그로브를 중심으로 투수진을 젊게 개편하려던 움직임은 본격적인 우승 레이스에 돌입하면서 잠시 나중으로 미루게 됐지만, 올 시즌 팀에서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던 베테랑 선발투수 마이크 파이어스가 FA로 떠나가면서 내년 시즌에는 더 많은 기회가 젊은 투수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휴스턴의 유망주들 중에서는 도미니카산 영건 듀오인 프란시스 마르테스와 데이빗 파울리노가 근시일 내에 로테이션에 합류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2016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더 포레스트 휘트니도 유력한 선발 후보다. 휘트니는 올 시즌 싱글 A와 더블 A를 오가면서 9이닝당 14개의 탈삼진을 기록했고, 평균자책점 2.83의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다만 팀에서 어디까지나 선발 자원으로 분류하고 있는 만큼, 급하게 빅리그로 불러 올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휴스턴의 내년 시즌 성패는 궤도에 오른 타선보다는 변수가 많은 투수진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휴스턴은 스토브리그에서 이미 이번 포스트시즌의 교훈을 발판 삼아 불펜 투수 조 스미스, 헥터 론돈과 계약을 체결했다. 빅네임 FA보다는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선수들을 먼저 데려온 것이다.
휴스턴 프런트와 선수단, 그리고 팬 모두는 알고 있다. 앞으로 몇 년간 애스트로스를 대표할 인물들은 올 시즌 우승을 일궈낸 자신들이라는 것을.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꾸고 있는 꿈은 여전히 ‘미래진행형’이다.
야구공작소
홍지일 칼럼니스트
기록 출처: Baseball Reference, Fangraph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