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이슈] 왜 화살이 홍명보로 향하나, 그래서 ‘줄 없는’ 김판곤의 일침은 일리 있다
입력 : 2024.09.28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대전] 이현민 기자= “나는 뭐 아무것도 없었다. 지하 10층부터 시작해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누구보다 간절하고 지도자로서 한 번 잘해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김판곤 감독이 ‘친정’ 울산 HD 지휘봉을 잡은 후 던진 메시지다.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다. 줄도 없다. 오로지 실력으로 K리그1 디펜딩 챔피언 팀까지 맡게 됐다. 앞서 축구 변방인 홍콩과 말레이시아를 이끌며 축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6년 전 그는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 선임위원장 직책을 맡았다. 파울루 벤투(아랍에미리트) 감독을 선임했다. 풍파 속에서도 김판곤 감독은 벤투 감독의 든든한 지지자였다. 4년 동안 다져진 한국 축구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업적을 달성했다.

연령별 대표팀 역시 승승장구했다. 김판곤 감독이 선택한 김학범(제주유나이티드) 감독은 U-23 대표팀을 이끌고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다. U-20 대표팀의 정정용(김천상무) 감독은 2019 FIFA U-20 월드컵 준우승에 올랐다.




김판곤 감독이 국가대표감독 선임위원장 임무를 수행하던 시기에 홍명보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였다. 홍명보 감독은 전무시절 한국형 축구인 'MIK(메이드 인 코리아)'를 도입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안타깝게도 프로젝트를 완성하지 못한 채 2020년 12월 울산으로 건너오게 됐다. 표류상태였는데, A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하고 나서 차근차근 진행해가고 있다.

“더 이상 일본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 연령별 대표팀 시스템을 확실히 구축하고, 연계를 통해 우수 자원을 발굴해야 한다.”

홍명보 감독이 누누이 강조했던 말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한국 축구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늘 있었다.



현재 U-19 대표팀 수장은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의 고교 시절 은사로 과거 포항스틸러스의 풀뿌리 축구가 자리 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창원 감독이다. 올해 초 신생팀 부산 동명대학교를 창단 두 달도 안 돼 전국 대회 정상에 올려놓았다.

U-17 대표팀 역시 포항스틸러스 코치, 감독, 유소년 디렉터를 거치며 수년 동안 내공을 쌓은 백기태 감독을 내정했다.

대한축구협회는 다수의 후보군을 추린 뒤 면접 및 발표를 진행했고, 이창원 감독과 백기태 감독이 팀을 맡게 됐다.

현재 두 감독은 서서히 색을 입혀가며 연령별 선수들이 팀적, 개인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홍명보 A대표팀 감독과 수시로 소통하며 ‘연계성’을 강화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모두 팩트다.

홍명보 감독은 울산의 17년 무관 한을 풀었다. 창단 처음으로 2연속 K리그1을 제패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팀들이 대거 참여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진출권도 따냈다. K리그 팀을 대표해 부와 명예까지 얻게 됐다.

물론 홍명보 감독이 시즌 중 울산 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시즌 전, 시즌 초였다면 데미지가 덜 했을 텐데, 이 점은 안타깝다. 레전드를 역적으로 부르는 울산 팬들의 실망감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홍명보 감독이 업적을 세운 건 팩트다.

현재 쟁점 중 하나는 ‘실패했던 감독을 왜 또 앉혔고, 선임 절차 과정이 투명했느냐’다.

10년 전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은 쓴 잔을 들이켰다. 색을 입힐 시간이 부족했다. 브라질로 떠나기 전부터 뒤숭숭했다. 땅 투기 논란에 휩싸였다. 일반적인 이사였다. 확대 해석 생산됐다.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직후 선수단과 관계자들이 참석한 식사 자리에서 공개된 영상은 한인회에서 준비한 격려의 의미였다. 초청된 게스트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애쓰는데 무시하고 외면하면 그 또한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전언. 정작 현지에서는 큰 논란이 되지 않았다.

국내에서 부풀려졌다. 정말 큰 문제였다면 홍명보 감독이 해명 기자회견을 열었을 것이다.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의 영웅, 레전드 홍명보니까’ 유독 사람들이 엄격한 잣대를 가했다. 실제로 언론조차 대면한 자리에서 묻지 않았다. 왜냐, 사실과 다르다는 걸 알 사람은 다 안다.

본인도 실패를 인정했다. “기회가 된다면 만회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10년 만에 지휘봉을 잡고 전술적인 다양성을 가미하기 위해 수석코치(주앙 아로소)를 영입했고, 코칭스태프 구축을 통해 북중미 월드컵에서 호성적을 약속했다. 이미 출항했고, 평가는 나중 일이다.

만약, 홍명보 감독이 이대로 물러난다면 대안은 있나. 해답도 없이 무작정 궁지로 내몰고 사퇴까지 언급하는 건 능사가 아니다.

홍명보 감독을 무작정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왜, 화살이 홍명보 감독에게 향하느냐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홍명보 감독의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이번 선임은 4선 연임의 포석, 특정 대학의 카르텔 등.

정몽규 회장은 결재권자다. 한 조직의 수장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결단을 내렸을 때 이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절차적 정당성에 위배 된다면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지난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전체 회의를 열고, 현안 질의를 진행했다.

정몽규 회장은 국회의원들을 질문 세례에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답답했다. 리더로서 의문을 가지기 충분했다. 이런 가운데 홍명보 감독은 꿋꿋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분위기에 휩쓸려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대한축구협회 내부에 있는 혹을 도려내야 한다. 군대를 예로 들면 장급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해성,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빼앗으려하고, 옆에서 누군가 정몽규 회장에게 바람을 넣는 그런 악의 축을 색출한 뒤 걸러내야 한다.

통상 협회, 연맹, 구단 등 어느 조직이든 비선출과 선출이 있다. 비선출인 행정 직원들은 속된 말로 뺑이를 친다. 반면, 선출들은 과거 축구로 한 획을 그었다고 전관예우를 받는다. 협회 내에도 존재한다. 이를 지켜보는 비선출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다. 선출들이 행정을 못하고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각 분야의 정통한 전문가가 전문성을 갖고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면서 합의점을 맞춰가야 한다.

김판곤 감독도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27일 울산과 대전하나시티즌의 K리그1 32라운드 경기(1-0 울산 승)가 끝난 직후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최근 이슈인 대한축구협회 관련 질문을 받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 세계적 감독들에게 PPT는 우스운 일

“이런 질문에 답할 타이밍을 찾았다. 오늘은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코끼리 다리만 보면 이렇게 생긴 줄 안다. 내가 벤투 감독을 선임할 때 모든 걸 검증했다는 건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중국과 브라질에서 실패를 했고, 그리스에서 의심이 있었다. 완전한 후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검증을 했다. 우리가 국내든 외국이든 최고 레벨 지도자에게 PPT를 요구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에베르 르나르 감독에게 나를 한 번만 만나달라고 했다. 내가 준비한 비디오를 보여줬다. 그에게 ‘당신이 지구 끝에 있다면 끝까지 쫓아가겠다’고 말했다. 르나르 감독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심지어 한번은 잠비아에 있을 때다.”

“라커룸에서 리더십, 선수 장악력, 경기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부분, 언론 응대, 관계자를 통해 알아보니 성품도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르나르 감독에게 ‘당신이 공항에 등장하는 날 우리나라가 난리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키케 플로레스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스카우트 개념으로 감독을 만났다. 자기 인생에서 얼마나 이 자리가 중요한지 이런 걸 검증했다. 케이로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석코치였다. 이란을 그렇게 만들었듯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 “감독에게 면박주고 힘을 빼고... ” 정치인들·유튜버들에게 일침

“오해를 안 하셨으면 좋겠다. 스카우트면 스카우트 개념이다. 단지 그거 하나다. 아쉬운 점은 아시안컵이 끝나고 그림을 봐도 축구협회 발언과 위원장의 발언을 매체를 통해 접했을 때 어떤 지도자를 모셔야 할까에 관한 방향성이 없었다. 오합지졸 위아래도 없는 선후배. 누가 한 팀을 만들고 빠른 시간 내에 누가 그렇게 할 것인가를 찾았다. 이런 목적을 갖고 국민들을 설득했다면 이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감독, 외국 감독 중에 누구를 뽑아야 하는지 간단한 오해에서 비롯됐다. 에너지를 어디에 써야할지, 지혜롭게 팀을 정비해야 하는 시기다. 벌써 두 경기를 했다. 내일모레 두 경기가 있다. 이런데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감독에게 면박을 주면서 힘을 빼고 팀을 와해시키고. 정치인들 유튜버하시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지혜롭게 풀어가야 한다. 월드컵에 못 나가면 누가 책임지나.”

■ 대한축구협회에 직격탄... “내부에서 누군가 건의하고 어렵게 만들어”

“너무 속상하다. 두 분의 위원장님이 너무 안타깝다. 실수는 할 수 있다. 협회에 한마디 하겠다. 위원장에게 전력강화위원회와 대표팀을 운영하고, 감독을 선임·평가하고. 그런 모든 권한을 줬을 때 어떤 결과가 나왔나. 가장 강력한 대표팀에 연령별 대표팀도 안정적이었다. 모든 철학이 똑같았다. 시스템 속에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왜 어느 날 그 권한을 빼앗았는지, 계약 기간이 있는데, 이 사태에 관해 축구협회 내부에서 누군가 건의하고 이런 결정을 내려 대표팀을 어렵게 만들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사태를 빨리 수습했으면 한다. 내일모레 명단 발표다. 감독과 선수들에게 집중해야 한다. 잘못된 건 뭐라고 하고 감독에게 책임을 지라고 하면 된다. 나중에 평가할 시간이 있다. 월드컵은 중요하다. 이만큼만 하겠다.”

사진=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뉴스1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