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멜버른(호주), 이후광 기자] 한화 이글스가 은퇴 위기에 몰렸던 방출 포수 이재원(36)을 영입한 이유가 스프링캠프 사흘 만에 입증됐다. 팀 내 어린 포수들은 물론 투수들에게도 아낌없는 조언을 건네며 아기 독수리들의 어설픈 날갯짓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단기간에 한화 스프링캠프의 특급 멘토로 자리매김한 이재원이다.
지난 3일 호주 멜버른의 멜버른 볼파크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의 2024 스프링캠프 3일차 훈련. 경기장 한편에 마련된 불펜장에서 캠프 두 번째 불펜피칭이 진행된 가운데 이재원은 포수 마스크를 쓰고 불펜장에 앉아 문동주, 김범수 등 팀 내 기대주들의 공을 받았다.
이재원은 노련한 포구는 물론 멘토 역할을 자청하며 투수들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건넸다. 1군 통산 1426경기를 뛴 베테랑 포수답게 조언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묵직한 구위를 선보인 김범수를 향해 “홀드왕 가자”라고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는가 하면 공이 힘 있게 들어오지 않자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던져라. 공이 날리는 건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생각하고 던지는 것과 그냥 잘 던지는 건 전혀 다르다”라고 금세 냉정함을 보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남지민의 커브에 “신이 준 커브다”라는 찬사를 보냈고, 불펜피칭을 마치고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신인 황준서를 향해 “공을 던질 줄 아는 투수다”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문동주와 불펜피칭 배터리호흡을 이룬 뒤 투구를 함께 복기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이 모든 걸 지켜본 최원호 감독은 "경험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 동안 이재원이 얼마나 많은 공을 받아봤겠나. 투수들 공을 보면 느껴지는 게 있을 것"이라며 "사실 투수들 공에서 수치화 되지 않는 건 직접 받아보거나 치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서 감독 또한 투수들의 컨디션을 파악하려고 할 때 포수에게 직접 묻는다”라고 이재원의 경험을 높이 샀다.
이재원은 인천고를 나와 2006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류현진을 제치고 SK(현 SSG)의 1차 지명을 받았다. 이재원은 공격과 투수 리드가 일품인 포수로 성장했고, 2018시즌 130경기 타율 3할2푼9리 134안타 17홈런 57타점 맹타로 팀 우승에 공헌하며 4년 69억 원 무옵션 전액 보장 FA 계약에 골인했다.
이재원은 69억 원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 431경기에 나서 타율 2할4푼2리 21홈런 154타점 OPS .651의 초라한 성적표를 제출했다. 계약 첫해는 139경기 타율 2할6푼8리 12홈런을 남겼지만 2020시즌 80경기 타율 1할8푼5리 2홈런, 2021시즌 107경기 타율 2할8푼 3홈런에 이어 2022년 105경기 타율 2할1푼 4홈런으로 부진을 거듭했다. 그해 도루 저지율 또한 9.8%로 리그 최하위였다.
이재원은 2022시즌 KBO리그 최초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에 공헌한 통합우승 포수가 됐지만 결코 웃을 수 없었다. 한국시리즈 성적 또한 11타석 9타수 무안타에 그쳤기 때문. 결국 FA 권리 행사 없이 SSG 잔류를 결정했고, 종전 10억 원에서 무려 9억 원이 삭감된 1억 원에 2023시즌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지난 시즌 또한 27경기 타율 9푼1리 2타점으로 반전에 실패하며 은퇴 위기가 찾아왔다.
SSG 구단에 방출을 요청한 이재원은 지난해 12월 말 연봉 5000만 원에 한화와 입단 계약을 체결하며 현역을 연장했다. 한화는 이재원의 풍부한 경험을 높이 사며 최재훈, 박상언의 뒤를 받치는 백업 포수로 전격 낙점했다.
이재원은 스프링캠프 포수조 훈련 또한 시종일관 밝고 의욕에 찬 모습으로 임하고 있다. 지난 2일 훈련 메이트인 최재훈의 포구가 완벽하게 이뤄지자 “좋다 재훈이!”라며 파이팅을 불어넣었고, 최재훈 뒤에 서서 주심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힘찬 기합과 함께 스트라이크콜도 외쳤다. 베테랑 포수답게 본인의 차례 때는 노련한 포구를 선보였는데 프레이밍에서 확실히 관록이 느껴졌다.
이재원의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김정민 배터리코치는 모든 과정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김 코치는 “단 이틀만으로 모든 평가를 내릴 순 없지만 준비했던 훈련이 원하는 방향대로 진행되고 있다. 선수들이 비시즌 동안 준비를 잘해왔다고 볼 수 있다. 첫 단추를 잘 꿴 느낌이다”라며 “나도 팀을 옮겨봤지만 오랜 기간 한 팀에서 뛰다가 새 팀으로 오면 서먹할 수 있다. 그런데 이재원은 원래부터 같이 뛴 선수 같다”라고 평가했다.
‘이재원 효과’를 향한 남다른 기대감도 엿볼 수 있었다. 김 코치는 “이재원은 경험이 많고 우승까지 해 본 선수다. 우리 팀에는 위닝 스피릿이 필요한데 이재원 뿐만 아니라 김강민, 안치홍 등이 그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을 듯하다”라고 바라봤다.
한때 무옵션 69억 원을 받던 클래스는 어디가지 않았다. 한화가 이재원을 영입한 이유가 불과 스프링캠프 시작 사흘 만에 입증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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