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스코츠데일(미국 애리조나주), 이상학 기자] “엄청 기대된다. 신기할 것 같다.”
‘바람의 손자’ 이정후(25.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일찌감치 개막전 1번타자로 예고됐다. 밥 멜빈 샌프란시스코 감독은 1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의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프링 트레이닝 투수·포수조 훈련 첫 날을 맞아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이정후를 개막전 1번타자로 공표했다.
멜빈 감독은 “이정후가 개막전 리드오프가 아니면 충격을 받을 것 같다. 부상이 없는 한 개막전 선발로 나간다”고 밝혔다. 한국 취재진을 향해서 “개막전에 와도 좋다”며 웃음을 지어보이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오는 3월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2024시즌 개막전을 갖는다.
멜빈 감독의 개막전 1번타자 예고에 이정후는 “전 처음 듣는데요”라며 웃은 뒤 “개막전을 샌디에이고와 하기 때문에 엄청 기대된다. (김)하성이형은 워낙 잘했고, 나만 잘하면 같이 1번 타순에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같은 팀에 뛰던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서 리드오프로 만나면 신기할 것 같다. 나와 하성이형에게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한국야구사를 봤을 때도 없었던 일을 우리가 하는 것이다”고 기대했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서 개막전에 한국인 선수들이 1번 타순에 선발로 나서 맞붙은 적이 없었다. 이정후와 김하성이 나란히 리드오프로 선발 라인업에 들면 한국야구사에 의미 있는 최초의 역사가 된다.
이정후는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에서 7년간 5번의 개막전 선발출장을 했다. 그 중 4번이 3번 중심타순으로 나머지 1번은 8번 하위타순이었다. 이정후는 “개막전 리드오프는 태어나서 처음하는 것이다. 기대가 된다. 그렇게 나갈 수 있도록 준비 잘하겠다. 내가 꿈꿔왔던 생활을 하고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지금은 개막전 리드오프를 목표로 열심히 해야 한다”고 눈앞의 목표를 설정했다.
샌디에이고에선 김하성의 리드오프 출격이 유력하다. 샌디에이고의 경우 3월20~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LA 다저스 상대로 MLB 월드투어 서울 시리즈를 먼저 치르고 미국으로 돌아오는데 펫코파크 홈 개막전이다.
김하성은 지난해 6월 중순부터 1번타자로 고정돼 타격 생산력을 극대화하며 리드오프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1번 타순에서 73경기 선발출장해 타율 2할6푼8리(287타수 77안타) 11홈런 35타점 42볼넷 58삼진 출루율 .365 장타율 .418 OPS .783으로 활약했다. 지난해 김하성 다음으로 1번타자로 많이 나선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도 리드오프로 들어갈 수 있지만, 후안 소토가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되면서 헐거워진 중심타선에 배치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17~2020년 4년간 키움 히어로즈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가까워진 두 선수는 밥 멜빈 감독이라는 연결 고리도 있다. 멜빈 감독은 2022~2023년 샌디에이고 감독으로 김하성에게 믿음과 기회를 줬다. 김하성은 멜빈 감독의 지지 속에 2022년 주전 유격수로 떠올랐고, 지난해 2루를 중심으로 내야 전 포지션을 커버하며 내셔널리그(NL)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아시아 내야수 최초 골드글러브였다.
멜빈 감독은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샌디에이고와 남은 1년 계약을 파기하며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했다. 여기서 또 다른 한국인 선수 이정후를 만났다. 멜빈 감독은 “샌디에이고에서 김하성이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대개 처음 오는 선수들은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이정후도 김하성과 같은 유형의 성격인 것 같다. 선수들과 쉽게 대화하면서 편하게 지내고 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좋아 보인다”며 김하성에 빗대 이정후의 팀 적응력을 칭찬했다.
이정후도 멜빈 감독에 대해 “하성이형을 통해 얘기를 많이 들었다. 감독님도 하성이형을 워낙 좋아한다. 하성이형이 한국 선수들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줬다. 나도 거기에 걸맞게 좋은 플레이를 하겠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다”며 “여기에 온 뒤로 행동을 조심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왔고, 내가 잘해야 샌프라시스코와 MLB에서 한국 선수들에게 좋은 이미지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책임감도 보였다.
한편 이정후는 이날 투수·포수조 소집 첫 날이지만 일부 야수들과 함께 야외에서 타격과 수비 훈련을 소화했다. 담장 밖으로 홈런 타구도 4~5개가량 만들어내며 쾌조의 타격감을 뽐냈다.
이달 초부터 미리 애리조나에 와서 몸을 만들고 있는 이정후는 메이저리그식 스프링 트레이닝에 대해 “훈련량이 다르다. 한국에서 했던 것보다 훈련량이 많고, 조금 더 체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시설을 전부 다 이용할 수 이는 시간도 충분히 주어진다. 여러 가지 훈련을 할 수 있다”고 한국과 차이점을 설명했다.
이어 “프리 배팅도 오늘 처음 쳤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라인드라이브로 치려고 했는데 넘어간 것도 있었다. 운동장이 너무 커서 홈런을 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시범경기가 얼마 안 남은 만큼 몸을 빨리 끌어올려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타격폼에 대해서도 “원래 치던 대로 치고 있다. 빠른 볼도 쳐보고 계속 연습하면서 조금씩 여기에 맞춰 변화되고 있다. 억지로 바꾼 건 아니고 여기 공을 치기 위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샌프란시스코 내부에서 이정후를 향한 기대치가 높지만 외부에서 보는 시선도 남다르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도 15일 2024년 올-루키 팀으로 각 포지션별 최고 신인들을 예상했다. 외야수 3명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린 이정후의 예상 성적은 134경기 홈런 12개, OPS .784, wRC+ 115, WAR 3.4.
MLB.com은 ‘굉장한 선구안과 공 맞히는 기술을 가진 이정후는 어떤가? 이 선수는 그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일지도 모른다’고 이정후를 소개하면서 ‘자이언츠의 새로운 주전 중견수는 KBO리그 통산 3947번의 타석에서 타율 3할4푼을 기록하며 삼진은 304개에 불과했다. 스티머는 이정후가 삼진율 9.1%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지난해 내셔널리그(NL) 타격왕 루이스 아라에즈(마이애미 말린스·7%) 다음으로 좋은 수치’라고 전망했다.
이정후의 예상 타율(.291)도 아라에즈,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애틀랜타 브레이브스), 프레디 프리먼(LA 다저스)에 이어 NL 4위로 예측됐다. MLB.com은 ‘한국에서 7시즌 중 5시즌 동안 한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이정후가 메이저리그에서 얼마나 많은 장타를 보여줄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지만 그의 순수 타격 능력과 수비력을 감안하면 WAR은 외야수 상위 15위 안에 들 것이다’고 긍정적인 예상치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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