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 김동윤 기자]
김하성(29)이 2024시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주전 유격수로 낙점됐다. 지난해 2억 8000만 달러(약 3740억 원) 계약으로 유격수 잰더 보가츠(32)를 영입한 지 딱 1년 만이다. 샌디에이고의 과감한 선택에 갑부 구단에 익숙한 뉴욕의 언론도 크게 놀랐다.
미국 매체 뉴욕 포스트는 18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가 2억 8000만 달러어치 결정을 내렸다. 보가츠가 2루수로 이동한다"고 보도했다.
앞선 17일 마이클 쉴트 샌디에이고 감독은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에 위치한 '피오리아 스포츠 컴플렉스'에서 취재진과 만나 2024시즌 김하성을 유격수, 보가츠를 2루수로 각각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골드글러브 유틸리티 부문 수상자 김하성의 수비를 조금 더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쉴트 감독은 김하성을 유격수로 기용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보가츠를 위한 옹호를 했다. 그는 "지난해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유격수 보가츠는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기록을 봐도 마찬가지였다"며 "난 보가츠를 유격수로 기용한 것을 잘못됐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보가츠는 지난해 샌디에이고에서 정말 훌륭한 유격수로 활약했다"고 칭찬했다. 이어 "그러나 이제 우린 키미(김하성·Kimmy)라는 골드글러브 수상자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는 결코 보가츠를 위해서만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가츠는 김하성이 유격수로서 가치가 있으며, 좋은 동료라는 것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샌디에이고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지난해 보가츠에게 2억 8000만 달러라는 거액의 계약을 안겨준 데에는 '유격수'로서 공격력이 뛰어난 점이 작용했다. 2013년 빅리그에 데뷔한 보가츠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만 1264경기 타율 0.292, 156홈런 683타점 752득점 74도루, 출루율 0.356 장타율 0.458을 기록했다. 2019년 155경기 타율 0.309 33홈런 117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39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긴 했으나, 그는 기본적으로 두 자릿수 홈런이 보장되는 타자에 불과했다. 20홈런을 넘긴 시즌도 10년 중 3년에 불과했고 3할 타율 시즌도 4번뿐이었다. 그렇다고 유격수로서 대단한 수비를 보여준 선수도 아니었다. 보스턴에서 10년간 단 한 번도 골드글러브 수상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리그 평균 이상의 유격수 수비에 같은 포지션에서 그만한 공격력까지 갖춘 선수가 없었기에 가치가 높았다. 유격수로서 실버슬러거를 5차례 수상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여기에 최근 FA 시장에서 공격력 좋은 내야수들이 나날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기에 보가츠는 고액의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유격수와 2루수는 계약 규모부터 대우가 다르다. 미국 연봉 통계 매체 스포트랙에 따르면 2024년 2월 18일 기준 메이저리그 내야수 계약 규모 상위 20명 중 유격수는 7명, 2루수는 4명이다. 2루수 4명은 12년 3억 6500만 달러의 무키 베츠(LA 다저스)가 1위, 11년 2억 8000만 달러의 보가츠(샌디에이고)가 10위, 7년 1억 7500만 달러의 마커스 시미언(텍사스 레인저스)이 18위, 7년 1억 6350만 달러의 호세 알투베(휴스턴 애스트로스)가 20위인데 이 중 순수 2루수 출신은 시미언과 알투베뿐이다. 계약 당시 베츠는 외야수, 보가츠는 유격수로서 분류됐고, 이들은 각각 팀 사정에 따라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을 뿐이다.
따라서 2억 8000만 유격수 보가츠를 1년 만에 2루수로 전환하기로 한 건 사실상 가치 판단에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그 대상이 4년 2800만 달러 계약의 마지막 해인 김하성이라면 샌디에이고의 선택은 조금 더 과감했다고 볼 수 있다. 샌디에이고는 올 시즌 후 FA가 될 것이 유력한 김하성과 앞으로 10년은 더 봐야 할 보가츠 중 후자를 더 밀어줄 수 있었으나, 김하성을 선택했다. 괜히 뉴욕 포스트가 "보가츠의 샌디에이고 유격수 시절은 엄청난 가격표가 붙었음에도 짧게 끝났다"고 놀라워한 것이 아니다.
보가츠 본인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보가츠는 2010년 보스턴 산하 마이너리그 루키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1684경기 중 단 한 번의 공식경기에서 2루수로 뛴 적이 없는 선수다. 보스턴 시절에는 어떤 유격수가 와도 자신의 자리를 사수했던 쇠고집이기도 하다. 2022년 콜로라도 로키스 출신 올스타 유격수 트레버 스토리(32)가 보스턴으로 FA 이적할 당시 보가츠는 2루수 이동 요구에 구단에 항의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매체 NBC 스포츠는 "유격수에 대한 보가츠의 자부심을 고려하면 그가 샌디에이고로 와서 기꺼이 포지션 변경에 동의할지는 불분명하다"며 "보스턴이 FA로 영입한 유격수 스토리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보가츠에게 유격수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니 화를 냈다. 그래서 보스턴은 보가츠 대신 스토리를 2루로 옮겼다"고 전한 바 있다.
그러면서 2022년 스프링캠프에서 보가츠의 발언도 소개했다. NBC 스포츠에 따르면 보가츠는 "난 유격수다. 내 평생 뛰어온 포지션이며 많은 자부심을 느낀 곳이다. 그동안 내 수비지표를 보면 지난 몇 년간 괜찮았다"며 "포지션 변경은 생각해 본 적 없다. 유격수를 뛰고 있는데 내가 왜 2루나 3루를 생각하겠나. 아무런 의미 없는 질문이다. 유격수로 뛰면서 (수비적으로) 더 나아지려 노력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보가츠의 고집을 꺾은 것이 김하성의 수비였다. 지난해 김하성은 2루수로 106경기(98선발) 856⅔이닝, 3루수로 32경기(29선발) 253⅓이닝, 유격수로 20경기(16선발) 153⅓이닝 등 총 3개 포지션에서 1263⅓이닝을 뛰었다.
샌디에이고의 '유격수 보가츠' 계획을 1년 만에 포기할 만큼 김하성은 여러 수비 지표에서 경쟁자를 압도했다. 최신 수비지표 OAA(Outs Above Average·리그 평균보다 얼마나 더 많은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는가를 집계한 지표)에서 김하성은 +9개, 보가츠는 +3개를 기록했다. 김하성은 20경기(16선발) 153⅓이닝, 보가츠는 146경기(146선발) 1285⅔이닝으로 누적에서 불리한 면이 있었음에도 유격수 OAA 부문에서 보가츠는 +3개로 김하성(0개)보다 크게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전통적인 수비지표 DRS(Defensive Run Saved·수비수가 얼마나 많은 실점을 막아냈는가를 측정한 지표)에서는 차이가 더 벌어졌다. 필딩바이블에서 집계한 DRS에서 모든 포지션 통틀어 김하성은 +16점, 보가츠는 -4점을 기록했고, 유격수 부문만 따로 집계했을 때도 김하성이 보가츠보다 3점을 더 팀에 벌어다 줬다. 이뿐 아니라 골드글러브 수상 집계에 공식으로 들어가는 미국야구연구협회(SABR)가 개발한 수비 지수(SDI)에서도 +9점으로 포지션 불문 내셔널리그 9위, 2루수 중 1위에 이름을 올렸고, 끝내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메이저리거 내야수 최초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그 탓에 지난해 시즌 종료 후 미국 매체 디 애슬레틱은 "샌디에이고가 보가츠에게 다음 시즌(2024년) 포지션 변동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팀 내에서는 김하성이 유격수로 이동하는 게 최고의 조합이라 믿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 시즌을 치르고 나자 유격수 자부심이 높던 보가츠도 단번에 변화를 받아들였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에 따르면 보가츠가 2루수 포지션 이동에 동의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5초였다. 샌디에이고의 스프링캠프 첫 훈련이 열리기 전 쉴트 감독과 A.J. 프렐러 단장은 보가츠에게 포지션 전환 의향을 물었다. 이에 보가츠는 "내가 샌디에이고에 온 유일한 이유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다. 이기기 위한 길이라면 그렇게 해도 좋다"며 "2년 후에 그렇게 할 것이라면 지금 당장 시작하자"라고 답했다.
한 번 인정하니 그다음은 쉬웠다. 보가츠는 "난 2~3년 안에 최고의 2루수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 그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포지션에 상관없이 최고가 되고 싶다"며 "나는 유격수로서 샌디에이고와 계약했다. 하지만 수비적으로 김하성을 많이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하성도 샌디에이고 구단과 보가츠의 어려운 결단에 깊은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샌디에이고 지역 라디오 매체 '97.3 더 팬'과 인터뷰에서 김하성은 "쉴트 감독으로부터 유격수 이동 소식을 들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포지션인 유격수를 하게 된 건 내겐 정말 큰 동기부여"라면서 "보가츠는 매우 친절했다. 2루수 이동에 대해 매우 열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말 고맙다. 내가 보가츠의 입장이었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까를 생각하면 그를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치켜세웠다.
구단과 경쟁자의 통 큰 결정으로 김하성은 FA를 앞두고 몸값을 크게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됐다. 주전 유격수 발표 전에도 이미 지난해 활약을 통해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 최소 연 2000만 달러의 계약을 따낼 것으로 평가받은 김하성이다. 디 애슬래틱의 샌디에이고 담당 기자 데니스 린은 지난달 "만약 샌디에이고가 시즌 개막 전에 예상치 못한 일을 해낸다면 2024년을 포함해 김하성에게 1억 3000만 달러(약 1734억원)에서 1억 5000만 달러(약 2003억 원) 사이를 보장하는 7년 연장 계약"이라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날(18일) MLB.com 역시 다음 오프시즌 포지션별 최고의 FA 선수를 소개하면서 김하성을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분류했다. MLB.com은 "김하성은 이번 명단에서 2루수나 유격수로 분류할 수 있었다. 그는 어느 포지션에서든 엘리트 수준의 수비를 보여줄 수 있는 선수로 실제로 지난해 2루수로 이동해 커리어 첫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라고 극찬했다. 이어 "김하성은 올해 다시 유격수로 복귀한다. 그는 3루에서도 뛸 수 있고 현시점에서는 2025년에 김하성을 데려갈 팀이 그를 어디에 배치할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유틸리티로 분류했다"라고 설명했다.
만약 유격수로서 지금의 수비력을 유지하고 공격 면에서 조금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총액 2억 달러(약 2671억 원) 계약도 더 이상 꿈은 아니다. 가장 최근 사례가 2023년 시카고 컵스로 이적한 유격수 댄스비 스완슨(30)으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6시즌 동안 타율 0.255, OPS 0.738에 그쳤다. 하지만 FA를 앞두고 마지막 시즌인 2022년 김하성을 제치고 내셔널리그 유격수 골드글러브를 수상했고, 이 타이틀을 바탕으로 7년 1억 7700만 달러(약 2364억 원)의 대형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 스타뉴스 & starnewskore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잰더 보가츠(왼쪽)이 17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 스포츠 컴플렉스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스프링캠프에서 김하성을 안고 있다. |
김하성이 17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 스포츠 컴플렉스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스프링캠프에서 수비 훈련을 하고 있다. |
미국 매체 뉴욕 포스트는 18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가 2억 8000만 달러어치 결정을 내렸다. 보가츠가 2루수로 이동한다"고 보도했다.
앞선 17일 마이클 쉴트 샌디에이고 감독은 미국 애리조나주 피오리아에 위치한 '피오리아 스포츠 컴플렉스'에서 취재진과 만나 2024시즌 김하성을 유격수, 보가츠를 2루수로 각각 기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골드글러브 유틸리티 부문 수상자 김하성의 수비를 조금 더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쉴트 감독은 김하성을 유격수로 기용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보가츠를 위한 옹호를 했다. 그는 "지난해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유격수 보가츠는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기록을 봐도 마찬가지였다"며 "난 보가츠를 유격수로 기용한 것을 잘못됐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보가츠는 지난해 샌디에이고에서 정말 훌륭한 유격수로 활약했다"고 칭찬했다. 이어 "그러나 이제 우린 키미(김하성·Kimmy)라는 골드글러브 수상자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는 결코 보가츠를 위해서만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가츠는 김하성이 유격수로서 가치가 있으며, 좋은 동료라는 것을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샌디에이고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지난해 보가츠에게 2억 8000만 달러라는 거액의 계약을 안겨준 데에는 '유격수'로서 공격력이 뛰어난 점이 작용했다. 2013년 빅리그에 데뷔한 보가츠는 보스턴 레드삭스에서만 1264경기 타율 0.292, 156홈런 683타점 752득점 74도루, 출루율 0.356 장타율 0.458을 기록했다. 2019년 155경기 타율 0.309 33홈런 117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39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긴 했으나, 그는 기본적으로 두 자릿수 홈런이 보장되는 타자에 불과했다. 20홈런을 넘긴 시즌도 10년 중 3년에 불과했고 3할 타율 시즌도 4번뿐이었다. 그렇다고 유격수로서 대단한 수비를 보여준 선수도 아니었다. 보스턴에서 10년간 단 한 번도 골드글러브 수상을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리그 평균 이상의 유격수 수비에 같은 포지션에서 그만한 공격력까지 갖춘 선수가 없었기에 가치가 높았다. 유격수로서 실버슬러거를 5차례 수상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여기에 최근 FA 시장에서 공격력 좋은 내야수들이 나날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기에 보가츠는 고액의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잰더 보가츠(왼쪽)와 김하성. /AFPBBNews=뉴스1 |
김하성. /AFPBBNews=뉴스1 |
유격수와 2루수는 계약 규모부터 대우가 다르다. 미국 연봉 통계 매체 스포트랙에 따르면 2024년 2월 18일 기준 메이저리그 내야수 계약 규모 상위 20명 중 유격수는 7명, 2루수는 4명이다. 2루수 4명은 12년 3억 6500만 달러의 무키 베츠(LA 다저스)가 1위, 11년 2억 8000만 달러의 보가츠(샌디에이고)가 10위, 7년 1억 7500만 달러의 마커스 시미언(텍사스 레인저스)이 18위, 7년 1억 6350만 달러의 호세 알투베(휴스턴 애스트로스)가 20위인데 이 중 순수 2루수 출신은 시미언과 알투베뿐이다. 계약 당시 베츠는 외야수, 보가츠는 유격수로서 분류됐고, 이들은 각각 팀 사정에 따라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했을 뿐이다.
따라서 2억 8000만 유격수 보가츠를 1년 만에 2루수로 전환하기로 한 건 사실상 가치 판단에 실패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그 대상이 4년 2800만 달러 계약의 마지막 해인 김하성이라면 샌디에이고의 선택은 조금 더 과감했다고 볼 수 있다. 샌디에이고는 올 시즌 후 FA가 될 것이 유력한 김하성과 앞으로 10년은 더 봐야 할 보가츠 중 후자를 더 밀어줄 수 있었으나, 김하성을 선택했다. 괜히 뉴욕 포스트가 "보가츠의 샌디에이고 유격수 시절은 엄청난 가격표가 붙었음에도 짧게 끝났다"고 놀라워한 것이 아니다.
보가츠 본인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보가츠는 2010년 보스턴 산하 마이너리그 루키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1684경기 중 단 한 번의 공식경기에서 2루수로 뛴 적이 없는 선수다. 보스턴 시절에는 어떤 유격수가 와도 자신의 자리를 사수했던 쇠고집이기도 하다. 2022년 콜로라도 로키스 출신 올스타 유격수 트레버 스토리(32)가 보스턴으로 FA 이적할 당시 보가츠는 2루수 이동 요구에 구단에 항의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 매체 NBC 스포츠는 "유격수에 대한 보가츠의 자부심을 고려하면 그가 샌디에이고로 와서 기꺼이 포지션 변경에 동의할지는 불분명하다"며 "보스턴이 FA로 영입한 유격수 스토리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보가츠에게 유격수 자리를 비워달라고 하니 화를 냈다. 그래서 보스턴은 보가츠 대신 스토리를 2루로 옮겼다"고 전한 바 있다.
그러면서 2022년 스프링캠프에서 보가츠의 발언도 소개했다. NBC 스포츠에 따르면 보가츠는 "난 유격수다. 내 평생 뛰어온 포지션이며 많은 자부심을 느낀 곳이다. 그동안 내 수비지표를 보면 지난 몇 년간 괜찮았다"며 "포지션 변경은 생각해 본 적 없다. 유격수를 뛰고 있는데 내가 왜 2루나 3루를 생각하겠나. 아무런 의미 없는 질문이다. 유격수로 뛰면서 (수비적으로) 더 나아지려 노력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김하성. /AFPBBNews=뉴스1 |
김하성의 2023년 내셔널리그 골드글러브 유틸리티 부문 수상을 알리는 그래픽. /사진=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 공식 SNS |
그런 보가츠의 고집을 꺾은 것이 김하성의 수비였다. 지난해 김하성은 2루수로 106경기(98선발) 856⅔이닝, 3루수로 32경기(29선발) 253⅓이닝, 유격수로 20경기(16선발) 153⅓이닝 등 총 3개 포지션에서 1263⅓이닝을 뛰었다.
샌디에이고의 '유격수 보가츠' 계획을 1년 만에 포기할 만큼 김하성은 여러 수비 지표에서 경쟁자를 압도했다. 최신 수비지표 OAA(Outs Above Average·리그 평균보다 얼마나 더 많은 아웃카운트를 잡아냈는가를 집계한 지표)에서 김하성은 +9개, 보가츠는 +3개를 기록했다. 김하성은 20경기(16선발) 153⅓이닝, 보가츠는 146경기(146선발) 1285⅔이닝으로 누적에서 불리한 면이 있었음에도 유격수 OAA 부문에서 보가츠는 +3개로 김하성(0개)보다 크게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전통적인 수비지표 DRS(Defensive Run Saved·수비수가 얼마나 많은 실점을 막아냈는가를 측정한 지표)에서는 차이가 더 벌어졌다. 필딩바이블에서 집계한 DRS에서 모든 포지션 통틀어 김하성은 +16점, 보가츠는 -4점을 기록했고, 유격수 부문만 따로 집계했을 때도 김하성이 보가츠보다 3점을 더 팀에 벌어다 줬다. 이뿐 아니라 골드글러브 수상 집계에 공식으로 들어가는 미국야구연구협회(SABR)가 개발한 수비 지수(SDI)에서도 +9점으로 포지션 불문 내셔널리그 9위, 2루수 중 1위에 이름을 올렸고, 끝내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메이저리거 내야수 최초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그 탓에 지난해 시즌 종료 후 미국 매체 디 애슬레틱은 "샌디에이고가 보가츠에게 다음 시즌(2024년) 포지션 변동을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 팀 내에서는 김하성이 유격수로 이동하는 게 최고의 조합이라 믿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잰더 보가츠(왼쪽)와 김하성. /AFPBBNews=뉴스1 |
김하성. /AFPBBNews=뉴스1 |
한 시즌을 치르고 나자 유격수 자부심이 높던 보가츠도 단번에 변화를 받아들였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에 따르면 보가츠가 2루수 포지션 이동에 동의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5초였다. 샌디에이고의 스프링캠프 첫 훈련이 열리기 전 쉴트 감독과 A.J. 프렐러 단장은 보가츠에게 포지션 전환 의향을 물었다. 이에 보가츠는 "내가 샌디에이고에 온 유일한 이유는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다. 이기기 위한 길이라면 그렇게 해도 좋다"며 "2년 후에 그렇게 할 것이라면 지금 당장 시작하자"라고 답했다.
한 번 인정하니 그다음은 쉬웠다. 보가츠는 "난 2~3년 안에 최고의 2루수 중 한 명이 될 수 있다. 그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포지션에 상관없이 최고가 되고 싶다"며 "나는 유격수로서 샌디에이고와 계약했다. 하지만 수비적으로 김하성을 많이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하성도 샌디에이고 구단과 보가츠의 어려운 결단에 깊은 감사의 뜻을 나타냈다. 샌디에이고 지역 라디오 매체 '97.3 더 팬'과 인터뷰에서 김하성은 "쉴트 감독으로부터 유격수 이동 소식을 들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원래 포지션인 유격수를 하게 된 건 내겐 정말 큰 동기부여"라면서 "보가츠는 매우 친절했다. 2루수 이동에 대해 매우 열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말 고맙다. 내가 보가츠의 입장이었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까를 생각하면 그를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고 치켜세웠다.
구단과 경쟁자의 통 큰 결정으로 김하성은 FA를 앞두고 몸값을 크게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됐다. 주전 유격수 발표 전에도 이미 지난해 활약을 통해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 최소 연 2000만 달러의 계약을 따낼 것으로 평가받은 김하성이다. 디 애슬래틱의 샌디에이고 담당 기자 데니스 린은 지난달 "만약 샌디에이고가 시즌 개막 전에 예상치 못한 일을 해낸다면 2024년을 포함해 김하성에게 1억 3000만 달러(약 1734억원)에서 1억 5000만 달러(약 2003억 원) 사이를 보장하는 7년 연장 계약"이라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이날(18일) MLB.com 역시 다음 오프시즌 포지션별 최고의 FA 선수를 소개하면서 김하성을 유틸리티 플레이어로 분류했다. MLB.com은 "김하성은 이번 명단에서 2루수나 유격수로 분류할 수 있었다. 그는 어느 포지션에서든 엘리트 수준의 수비를 보여줄 수 있는 선수로 실제로 지난해 2루수로 이동해 커리어 첫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라고 극찬했다. 이어 "김하성은 올해 다시 유격수로 복귀한다. 그는 3루에서도 뛸 수 있고 현시점에서는 2025년에 김하성을 데려갈 팀이 그를 어디에 배치할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유틸리티로 분류했다"라고 설명했다.
만약 유격수로서 지금의 수비력을 유지하고 공격 면에서 조금 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총액 2억 달러(약 2671억 원) 계약도 더 이상 꿈은 아니다. 가장 최근 사례가 2023년 시카고 컵스로 이적한 유격수 댄스비 스완슨(30)으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6시즌 동안 타율 0.255, OPS 0.738에 그쳤다. 하지만 FA를 앞두고 마지막 시즌인 2022년 김하성을 제치고 내셔널리그 유격수 골드글러브를 수상했고, 이 타이틀을 바탕으로 7년 1억 7700만 달러(약 2364억 원)의 대형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 스타뉴스 & starnewskore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