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피오리아(미국 애리조나주), 이상학 기자] 이제는 다른 팀이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과 존중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밥 멜빈(6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과 김하성(29·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이 이심전심을 주고받았다.
메이저리그 올해의 감독상만 3차례(2007·2012·2018년) 수상한 20년 경력의 베테랑 멜빈 감독은 김하성에게 은인 같은 존재다. 2021년 샌디에이고 입단 첫 해 내야 백업으로 제한된 기회 속에 혹독한 적응기를 보냈지만, 2022년 멜빈 감독 부임과 함께 주전으로 도약했다.
주전 유격수였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가 손목 부상과 금지약물 적발에 따른 출장정지 징계로 이탈한 것이 컸지만 멜빈 감독의 믿음과 지지 없이는 불가능했다. 멜빈 감독은 김하성에게 주전 유격수 기회를 주며 전폭적으로 밀어줬다. 보장된 출장 기회 속에 김하성도 비로소 기량을 꽃피웠다.
지난해 ‘거물 유격수’ 잰더 보가츠가 FA로 영입되면서 김하성은 2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멜빈 감독은 2루수를 중심으로 3루수, 유격수 등 김하성을 여러 군데 투입하며 내셔널리그(NL) 유틸리티 부문 골드글러브 수상의 발판을 마련했다. 6월 중순부터 1번타자로 고정시키며 김하성의 타격 잠재력까지 이끌어냈다.
멜빈 감독은 샌디에이고와 1년 계약이 남은 상태에서 A.J. 프렐러 단장과 불화 속에 샌프란시스코로 ‘이직’했다. 팀을 떠났지만 2년간 함께한 김하성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아시아 내야수 최초로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김하성에게 축하 메시지 보냈고, 이에 감동한 김하성이 직접 장문의 편지를 손으로 써서 “당신이 2년간 날 지켜줬다”며 화답하기도 했다.
멜빈 감독의 믿음과 신뢰 속에 ‘예비 FA’로서 가치도 높인 김하성은 지난겨울 트레이드설이 계속 끊이지 않았다. 골드글러브 4회 유격수 브랜든 크로포드가 FA로 빠지면서 확실한 유격수가 없는 샌프란시스도 김하성에게 관심 가질 만한 팀 중 하나로 꼽혔다. 키움 히어로즈에서 함께한 한국인 외야수 이정후와 한솥밥을 먹게 될 가능성도 주목받았다.
하지만 샌디에이고가 지난 17일(이하 한국시간) 스프링 트레이닝 선수단 전체 소집 첫 날 김하성과 보가츠의 키스톤 콤비 포지션 스위치를 공식화한 뒤 트레이드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샌디에이고는 혹시 모를 김하성의 트레이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보가츠에게 2루수 이동에 대한 통보를 최대한 늦게 했다. 김하성의 유격수 복귀를 결정한 만큼 지금 형태로 시즌을 맞이할 게 유력하다.
멜빈 감독도 김하성 트레이드 가능성을 낮게 봤다. 26일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스타디움에서 김하성 트레이드 영입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은 멜빈 감독은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당장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올해 김하성이 트레이드될 일은 없어 보인다”면서도 “시즌 후 FA로 데려올 수만 있다면 찬성이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트레이드는 상대팀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샌디에이고 역시 김하성과 함께 최소 전반기까지는 순위 경쟁을 노릴 분위기다. 하지만 연장 계약이 되지 않고 FA가 된다면 김하성이 샌디에이고에 남을 가능성은 떨어진다. 올해 샌프란시스코 주전 유격수로 기회를 받을 유망주 마르코 루시아노 성장이 더디다면 FA 김하성이 더 끌릴 수밖에 없다.
FA로 재회를 바라는 멜빈 감독의 코멘트를 김하성도 봤다. 27일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의 시범경기를 마친 뒤 김하성은 “멜빈 감독님은 나의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만들어주신 분이다. 그래서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내가 열심히 뛰었던 부분을 좋게 봐주셔서 감독님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다. 나도 (감독님과 한 팀에서) 다시 할 수 있다면 영광이다”며 화답의 메시지를 보냈다.
물론 김하성의 1순위는 샌디에이고 잔류다. 스프링 트레이닝 초반부터 그는 “샌디에이고가 너무 좋다. 떠나기 싫다. 다른 팀에 가면 샌디에이고 팬들처럼 이렇게 나를 좋아해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팀에 애정을 표했다. 실제 샌디에이고 구단도 내달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개막을 앞두고 김하성을 주인공으로 한 특별 영상을 제작하는 등 물밑에서 연장 계약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합리적인 선에서 조건만 맞춘다면 김하성이 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고액 장기 계약을 남발하면서 페이롤에 유동성이 떨어지는 샌디에이고는 지역 TV 중계권을 가진 밸리스포츠 모기업 다이아몬드스포츠 그룹의 파산 문제로 주요 수입원이 끊겨 구단 재정이 넉넉치 못한 형편이다. 김하성의 가치는 나날이 치솟는데 이를 감당할 여력이 부족하다. 기존 장기 계약자 중 최소 1명은 트레이드하는 식으로 선수단의 군살을 빼야 김하성에게 제대로 된 오퍼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만약 샌디에이고와의 연장 계약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멜빈 감독과 이정후가 있는 샌프란시스코가 김하성의 새로운 행선지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당장 트레이드는 어렵지만 FA로 김하성을 원하는 멜빈 감독의 바람이 시즌 뒤 이뤄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