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서프라이즈(미국 애리조나주), 이상학 기자] “정후 팀만 빼놓고 아무데나 좋으니…”
‘바람의 아들’ KBO리그 레전드 이종범(54) 전 LG 트윈스 코치는 현재 미국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에서 메이저리거가 된 아들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스프링캠프 기간 빌린 집에서 같이 살고 있다. 하지만 출근지가 다르다. 이정후가 인근 샌프란시스코 캠프지로 향하는 반면 이종범 코치는 60km가량 떨어진 서프라이즈의 텍사스 레인저스 캠프지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메이저리그 스프링 트레이닝은 따로 쉬는 날이 없어 매일 아침 6시가 되면 출근길에 나선다.
지난달 19일부터 텍사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있는 이 코치는 “매일 아침 6시에 출발해서 이곳에 온다. 여기 와서 새로운 것을 많이 보고 느낀다. 한국이나 일본은 질보다 연습량이라면 이곳은 100명 이상 선수가 있어 마이너리그도 단계별, 파트별로 선수들을 세심하게 가르친다. 아침 7시30분부터 코칭스태프가 미팅을 하는데 ‘작년에 어떤 팀이 이 플레이 하나 때문에 플레이오프에 못 나갔다’는 식으로 영상을 보며 세심하게 분석한다”고 놀라워했다.
KIA 타이거즈에서 등번호 7번이 영구 결번된 이 코치는 선수로서 화려한 커리어만큼 지도자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2013~2014년 한화 이글스 작전주루코치를 시작으로 2015~2018년 방송 해설위원을 거쳐 2019~2023년 LG 2군 총괄코치, 1군 작전코치, 2군 타격코치, 퓨처스 감독, 1군 주루코치 등 여러 보직을 맡았다. 2020년에는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 연수를 다녀왔고, 국가대표팀 코치도 지냈던 이 코치이지만 미국 메이저리그는 그에게도 신세계다.
아들 이정후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이 코치도 LG 코치직을 관두고 미국행을 결심했다. 아들을 뒷바라지하면서 미국 야구를 배워보기로 했고, 지도자 연수 팀을 알아봤다. 6년 1억1300만 달러로 특급 대우를 받은 아들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에 갈 것으로 보였는데 이 코치는 지금 텍사스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 코치는 “정후에게 내가 아빠이기도 하지만 야구 선배이기도 하다. 내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연수를 가는 게 정후한테도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같은 팀에 있으면 서로 불편하다. 보라스 코퍼레이션을 통해 내가 따로 이력서를 내서 ‘애리조나에 캠프지가 있는 팀 중 아무데나 좋으니 정후 팀만 빼달라’고 했다”고 텍사스로 오게 된 배경을 밝혔다. 이정후도 “아버지께서 미국에 공부하러 오신 것이다. 나를 통해 우리 구단에서 하는 것보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알아서 하신다고 했다”고 말했다.
텍사스에는 과거 롯데 자이언츠에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통역을 했던 커티스 정(한국명 정윤현)이 스카우트로 몸담고 있다. 1995~1997년 해태 투수 출신으로 함께한 인연이 있었고, 연수 과정을 연결해줬다. 또한 캠프 현장에선 마이너리그 수비 코디네이터 케니 홈버그가 이 코치를 돕고 있다. 이 코치는 “케니의 아버지가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허구연 KBO 총재님과 같이 코치를 했다고 하더라”며 한국과 이어진 인연에 신기해했다. 허 총재는 1990~1991년 토론토 산하 마이너리그 코치로 2년을 지낸 바 있다.
아들을 메이저리거로 키워내고, 사위(고우석)까지 2명의 빅리거 가족을 둔 이 코치이지만 ‘야구인 이종범’으로서 삶이 또 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온 그에게 딱 하나 남은 꿈이라면 프로야구 1군 감독이다. 지금 텍사스에서 새벽 6시부터 출근길에 올라 야구 공부에 매진하는 것도 미래를 위한 자기 투자다.
다양한 훈련 장면을 휴대폰 영상을 찍어 보관하고, 구단의 여러 데이터 및 자료도 수집 중인 이 코치는 “이곳의 좋은 시스템을 잘 배워서 한국에 가면 프로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야구에도 재능 기부를 생각하고 있다. 미국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새롭고 변화된 부분이 많이 보인다”며 “한국에서 프로팀 감독이 된다면 좋겠지만 앞으로 한국야구가 어떻게 준비하고 성장을 해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올림픽, 프리미어12,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대회에서 다른 나라들과 견줄 수 있을지도 생각하고 있다. 결국 선수 기본기가 중요한데 성인이 된 뒤에는 고치기 어렵다. 어릴 때부터 기본기를 잘 다질 수 있는 시스템을 배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남은 캠프 기간 ‘메이저 투어’도 계획에 잡혀있다. 캠프 초청 선수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면 브루스 보치(69) 감독과도 함께할 시간이 주어진다. 지난해 텍사스에 부임하자마자 팀을 창단 첫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은 보치 감독은 샌프란시스코 시절 포함 월드시리즈 우승만 4번이나 한 ‘명장’이다. 이 코치는 “보치 감독께서 어떻게 선수들에게 리더십을 발휘하는지 옆에서 보고 싶다”고 기대하며 “남은 기간 캠프에 전념한 뒤 텍사스와 관계를 계속 이어가는 쪽으로 얘기하고 있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