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부산, 조형래 기자] “위축 될까봐요.”
한화 이글스의 류현진(37)은 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시범경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76구 6피안타 무4사구 6탈삼진 2실점의 피칭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오는 23일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의 정규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치르는 마지막 리허설이었고 이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76개의 공을 던지면서 포심 패스트볼 40개, 체인지업 16개, 커브 12개, 커터 8개의 공을 구사했다. 최고 구속은 144km를 찍었다. 시범경기 첫 등판이던 12일 대전 KIA전(4이닝 62구 3피안타 3탈삼진 1실점)에서 기록한 최고 구속 148km보다는 덜 나왔지만 흠잡을 데 없는 제구력을 보여줬다. 시범경기 2경기 9이닝 동안 단 한 개의 4사구도 허용하지 않으면서 ‘컨트롤 아티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안타를 맞기는 했지만 정타로 맞은 타구는 없었다. 그만큼 제구력으로 상대 타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리고 영리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활용하면서 6개의 탈삼진을 뽑아냈다. 다만 2실점 과정이 류현진을 비롯한 모두에게 아쉬움이 남았다.
3회말 2사 후 노진혁에게 내야안타를 허용했다. 류현진 쪽으로 향했고 글러브로 막았지만 아웃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레이예스에게 우전 안타를 내주면서 2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그리고 전준우를 상대로 우익수 방면 뜬공을 유도했다. 평범한 뜬공 타구가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우익수 임종찬이 타구가 뜬 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타구의 낙구 지점은 임종찬이 서 있는 곳보다 한참 아래에 있었다. 모두가 잡는 줄 알았던 타구였는데 임종찬은 공을 잃어버렸다. 2루수 황영묵이 뒤늦게 쫓아갔지만 타구를 잡을 수 없었고 결국 주자들이 모두 홈을 밟았다. 류현진 입장에서는 허무하게 2실점을 허용했다. 류현진도 타구가 뜬 뒤 덕아웃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타구가 놓친 것을 보고 다시 마운드로 올라가야 했다. 심리적으로 동요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그러나 류현진은 에이스답게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상황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게 스스로 해결했다. 계속된 2사 2루에서 만난 유강남을 상대로 혼신의 3구 삼진을 뽑아냈다. 초구 124km 체인지업을 바깥쪽으로 던져서 스트라이크를 선점했고 2구 째 143km 패스트볼을 몸쪽으로 붙였다. 2스트라이크. 그리고 다시 한 번 몸쪽으로 143km를 패스트볼을 찔러 넣었다. 보더라인에 절묘하게 걸치는 공으로 유강남을 얼렸다. 3구 삼진으로 3회를 스스로 마무리 지었다.
경기 후 류현진에게 당시 상황을 물었다. 그는 유강남을 3구 삼진으로 잡을 때 심리적인 동요가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에 “전혀 없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서 타구를 놓친 임종찬의 마음을 더 헤아렸다. 2001년생의 임종찬(23)은 류현진과 14살 차이. 대선배에게 실점을 안기는 실책을 했으니 후배 야수의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그래도 마음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자신이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류현진은 “투수가 더 집중해서 그 다음 타자에게 맞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만약에 그런 상황 이후에 투수가 흔들리면 실수를 했던 야수가 더 위축될 것이고 더 어려워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실수나 실책이 있고 난 뒤에는 항상 더 집중을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강남이가 운이 좀 없었던 것 같다”라면서 자신의 희생양을 위로했다.
임종찬은 그래도 타석에서 수비 실수를 완벽하게 만회했다. 임종찬은 지난 16일 경기에서도 4안타 맹타를 휘둘렀는데 류현진이 등판한 이날에도 3안타 4타점으로 맹활약 했다. 수비에서의 아쉬움을 공격에서 말끔하게 씻었고 또 선배를 도와줬다.
한화 구단 유튜브 채널인 ‘이글스TV’에는 류현진이 자신 앞에서 쭈뼛 거리던 임종찬을 보고 살짝 볼터치를 하고 지나가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실수를 한 후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로하고 다독였다.지난 2012년까지 프로야구 무대에서 활약했던 류현진은 당시 ‘탈KBO급’의 개인 기량을 갖고 있었지만 류현진의 기량을 팀이 받쳐주지 못했다. 류현진이 한화에 머물렀던 기간에도 팀은 하위권을 맴돌았다. 류현진은 당시 한화를 먹여 살린 ‘소년가장’이었다. 25세의 소년가장은 빅리그 무대에 진출하려고 마음을 먹었고 포스팅시스템으로 세계 최고의 무대의 최고 명문인 LA 다저스에 입단했다. 류현진은 떠나면서도 한화에 이적료 2573만7737달러, 당시 환율로 280억원을 안기고 떠났다. 이 금액은 한화의 서산 전용훈련장 건립에 대부분 쓰여졌다.
그리고 12년 만에 한화로 컴백했다. 이제는 소년가장이 아닌, 어엿한 진짜 가장이 되어 돌아왔다. 성숙한 팀의 리더로 성장했고 “은퇴는 한화에서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돌아왔다. 빅리그 오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건강할 때 한화로 돌아오고 싶다는 의지를 표출하면서 8년 170억원의 역대 최고액 계약으로 컴백했다. 한화도 류현진의 상황을 이해하고 기다리면서 지극정성을 다했고 류현진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대우를 했다.
류현진이 리더가 된 한화는 5강의 다크호스로 꼽힌다. 류현진 복귀와 함께 채은성, 안치홍 등 FA 시장에서 투자도 감행했다. 류현진이 리더로 군림하고 있는 한화는 과연 어디까지 달라지고 비상할 수 있을까.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