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의 좌완 에이스 카일 하트(32)가 외국인 선수 사상 최초로 투수 4관왕을 바라보고 있다. 다른 해였더라면 유력한 MVP 후보였을 텐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 김도영(21·KIA)의 잠재력이 완전히 폭발하면서 하트 활약이 다소 묻힌 감이 있지만 MVP 경쟁자이자 대항마로 레이스를 달구기 시작했다.
하트는 지난 4일 창원 키움전에 선발등판, 6이닝 1피안타(1피홈런) 3볼넷 1사구 12탈삼진 1실점 퀄리티 스타트로 NC의 13-6 완승과 5연승을 이끌었다. 탈삼진 12개는 개인 한 경기 최다 기록. 4회 김건희에게 맞은 솔로 홈런이 유일한 실점이었다.
5회까지 60개의 공으로 삼진 10개를 잡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키움 간판 김혜성도 3연타석 삼진으로 하트 공에 맥을 못 췄다. PTS 기준 최고 시속 149km 직구를 중심으로 커터, 투심,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5가지 구종을 고르게 구사했다. 5가지 구종 전부 삼진을 잡는 결정구로 쓸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좌타자 상대 바깥쪽 슬라이더, 우타자 상대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좌우 타자를 모두 속일 수 있는 무기들이 확실했다. 상하좌우 폭넓게 쓰면서 보더라인에 걸치는 제구에 공격적인 승부까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지난 6월21일 문학 SSG전부터 개인 8연승을 질주한 하트는 시즌 13승(2패)째를 따내며 원태인(삼성)과 함께 이 부문 공동 1위에 올랐다. 평균자책점을 2.35에서 2.31로 낮추며 1위를 지켰고, 탈삼진도 169개로 늘리며 공동 1위에서 단독 1위가 됐다. 여기에 승률(.867)까지 투수 4개 부문에서 1위에 랭크됐다. 공식 타이틀은 아니지만 WHIP(1.01), 피안타율(.212)도 1위.
KBO리그에서 투수 4관왕은 단 3명이 5번밖에 달성하지 못했다. 1989~1991년 해태 선동열이 3년 연속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 4개 부문 1위를 휩쓸었다. 1996년 한화 구대성은 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구원으로 트리플 크라운은 아니었지만 4개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이어 2011년 KIA 윤석민이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까지 트리플 크라운 포함 4관왕을 이뤘다. 그 이후 지난해까지 12년간 투수 4관왕은 나오지 않았다.
외국인 투수로는 누구도 4관왕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NC 에릭 페디가 다승(20승), 평균자책점(2.00), 탈삼진(209개) 3개 부문 1위로 외국인 투수 최초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지만 승률(.769) 5위로 4관왕에 실패했다. 페디조차 하지 못한 4관왕을 하트가 눈앞에 두고 있다.
8월에 감기 몸살 후유증으로 3주 공백이 있었지만 복귀하자마자 3경기 연속 승리투수가 되며 26개의 삼진을 추가했다. 단숨에 다승과 탈삼진 1위 탈환에 성공하며 4관왕에 성큼 다가섰다. 평균자책점 2위 제임스 네일(KIA)이 타구에 턱을 맞아 시즌 아웃되면서 2.53으로 끝난 가운데 하트가 대량 실점으로 크게 무너지지 않는 이상 이 부문 1위는 유력해 보인다. 탈삼진도 2위 헤이수스와 격차를 9개로 벌렸고, 승률도 박영현(KT·.833)보다 3푼 이상 높아 안정권이다. 가장 큰 변수는 다승인데 원태인에게 뒤지지만 않으면 된다. 공동 1위라도 4관왕이 가능하다.
투수 4관왕은 MVP 보증수표였다. 1989~1990년 선동열, 1996년 구대성, 2011년 윤석민은 투수 4관왕으로 MVP까지 차지했다. 그러나 1991년 선동열은 빙그레 젊은 거포 장종훈에게 MVP를 내줬다. 그해 장종훈은 홈런, 안타, 타점, 득점, 장타율 등 타격 5개 부문 1위로 투수 4관왕 선동열을 제쳤다.
올해 하트도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년 같았으면 MVP 1순위로 손색없는 성적인데 하필 김도영의 기량이 만개한 시즌이다. 김도영은 올 시즌 126경기 타율 3할4푼4리(485타수 167안타) 35홈런 98타점 126득점 36도루 출루율 .419 장타율 .645 OPS 1.064를 기록 중이다. 공식 타이틀로 1위에 오른 건 득점·장타율 2개 부문이지만 OPS 1위, 홈런 2위, 타율·출루율 3위, 안타 4위, 타점·도루 6위로 공격 전 부문에서 6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타고투저 시즌인 것을 감안하면 하트의 투수 4관왕에 조금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할 만하다. 하지만 시즌 내내 김도영의 화제성이 너무나 대단하다. 역대 최연소·최소경기 30홈런-30도루, 최초 월간 10홈런-10도루, 최초의 4타석 내추럴 사이클링히트 등 각종 기록으로 폭발적인 팬심을 이끌어냈다. 4월, 6월 월간 MVP도 두 번이나 받았다. 소속팀 KIA도 1위를 질주하면서 정규시즌 우승을 앞두고 있다. 반면 하트의 NC는 9위로 가을야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트에겐 조금 더 강력한 임팩트가 필요하다. 지난해 MVP 페디의 경우 20승과 200탈삼진 그리고 1점대에 근접한 평균자책점으로 주목받았다. 잔여 시즌 최대 5경기 정도 추가 등판이 예상되는 하트는 200탈삼진은 기대할 만하지만 20승은 불가능하다. 1점대 평균자책점도 앞으로 23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야 가능한 만큼 어렵다. 현실적으로 김도영을 제칠 수 있는 임팩트 있는 기록은 어렵지만 투수 4관왕의 희소성은 타고투저 시즌에 더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MVP 레이스에서 김도영을 안심 못하게 만든 하트의 투수 4관왕 페이스가 시즌 마지막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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