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 채준 기자]
1980년대에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덴버그(Ray Oldenburg)는 '제3의 장소'라는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집을 제1의 장소라 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직장을 제2의 장소라 한다면 이도저도 아닌 그밖의 장소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경쟁적이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직장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집의 편안함이 소비주의에 지배당한 현대인의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측가능하고 그래서 새로움이 없는 집을 잠시라도 떠나고 싶은 욕망을 버릴 수 없다. 다양성과 예측불가능성 속에서 가벼운 유대감과 자유를 느끼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때를 막론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들려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닌다. 제3의 장소는 이처럼 이른바 비공식적 공적 생활(informal public life)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올덴버그는 산업화 이후 미국에서 제3의 장소가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은 사람들로부터 '집 밖의 집'에서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즐거움을 빼앗았다. 주지하다시피 사회적 고립과 초연결사회의 고독은 미국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도시 지역은 상업성과 기능성에 경도되고 자극적 오락, 경쟁과 과시문화가 넘쳐나는 공간에 의해 지배당한 지 오래다. 농어촌 지역도 급격한 공동체문화의 실종을 경험하고 있다.
사실 올덴버그가 말하는 제3의 장소는 그리 특별한 장소는 아니다. 동네 카페나 서점, 선술집, 미용실 등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일 수 있는 주변의 평범한 공간들이다. 하지만 이런 공간들은 점차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으로서 플렉스(flex)를 추구하거나 경직된 분위기로 변질되어 버렸다. 오늘날 지자체 곳곳에서 15분 도시를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공동체 해체와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공공이 만드는 시설이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는 지역민의 '제3의 장소'가 되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도시에서 집중 육성하는 문화 앵커나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지 역시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많은 주변 사람들이 편하게 들락거릴 수 있는 제3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공공에서 운영하는 공간 중 제3의 공간이라고 부를 만한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카페, 독립서점, 훠궈 프랜차이즈 등의 알려진 사례들은 대부분 민간이 운영하는 곳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공공 특유의 딱딱한 분위기,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일종의 경외감(?), 지역 주민의 니즈를 반영하지 않는 공급자적 시각 등 여러 가지가 있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의지가 아닐까 한다. 수익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오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지역민들이 집과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을 왜 찾으려 하는지 그 원인을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생겨난 공공 공간 중에서 제3의 장소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곳이 있어 눈에 띈다. 의정부문화도시센터가 운영하는 '이음'이 바로 그곳이다. 의정부역사 3층에 마련된 이 공간은 공공으로서는 드물게 제3의 공간을 표방하며 오가는 승객들과 시민들이 편안하게 오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커피와 차를 마시면서 지하철 여행의 피로를 잠시 날려버리는 휴식 공간이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와 담소를 나누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미술전시가 열리기도 하고, 예술품이 판매되기도 하며, 간편한 음악회가 개최되기도 한다. 실제 이음은 이 모든 기능을 감당하도록 설계되고 운영될 예정이다. 이음의 정체성은 사실 모호하다. 굳이 정체성을 꼽자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편안함인데 그게 이 시대에는 소중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찾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많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올덴버그는 제3의 공간의 특성으로 접근성, 편의성, 상호작용성, 유희성, 다양성 등을 들었다. 그런가 하면 에드워드 소자(Edward Soja)는 상호작용성, 개방성, 다양성을, 크리스티안 미쿤다(Christian Mikunda)는 편의성, 평등성, 상호작용성, 유희성을 꼽았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평등성, 비일상성, 다양성, 상호작용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있다. 이들보다 할 걸음 앞서 제3의 공간이 필요함을 역설했던 우리의 건축가 김수근은 비생산성, 창조성, 가변성, 유희성, 복합성 등을 특징으로 들었다. 이들의 생각을 종합해 보면 제3의 공간은 '누구나 편리하게 접근가능'해야 하고, '비일상적이고 재미있는 놀거리'가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제한 없는 주제를 놓고 격의 없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우선 이음은 최적의 교통접근성을 가지고 있는 장소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한 층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되니 누구나 편리하게 접근가능하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심리적 접근성이다. 우선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안내데스크를 두고 편안하고 따뜻한 환대를 해 보면 어떨까? 지역민들이 돌아가면서 안내를 맡아준다면 금상첨화다.
둘째, 비일상적이고 재미있는 다양한 놀거리를 위해서는 다양한 이벤트가 수시로 지속적으로 열리면 좋겠다. 시민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미술전시도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1주 정도의 간격으로 지속적으로 교체 전시된다면 보다 많은 시민들이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회도 마찬가지이다. 대중/순수예술, 하위/주류문화를 가리지 않는 포용성은 기본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격의 없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개방적인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매일 주제를 바꿔가며 시민 대상의 오픈 토론회를 상시 개최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식 토론회말고 느슨한 연대 모임 같은 거 말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이음은 제3의 장소를 표방한 그 자체로 이미 제3의 장소에 절반 이상 이르렀다. 이제 남은 건 보다 많은 시민이 편안한 마음으로 와서 이음을 즐기게 하는 디테일이다. 의정부문화도시센터의 도전을 응원하며, 공공에서 운영하는 많은 공간이 '제3의 장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선영 홍익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채준 기자 cow75@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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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경쟁적이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직장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렇다고 집의 편안함이 소비주의에 지배당한 현대인의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측가능하고 그래서 새로움이 없는 집을 잠시라도 떠나고 싶은 욕망을 버릴 수 없다. 다양성과 예측불가능성 속에서 가벼운 유대감과 자유를 느끼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때를 막론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들려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다닌다. 제3의 장소는 이처럼 이른바 비공식적 공적 생활(informal public life)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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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덴버그는 산업화 이후 미국에서 제3의 장소가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은 사람들로부터 '집 밖의 집'에서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즐거움을 빼앗았다. 주지하다시피 사회적 고립과 초연결사회의 고독은 미국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도시 지역은 상업성과 기능성에 경도되고 자극적 오락, 경쟁과 과시문화가 넘쳐나는 공간에 의해 지배당한 지 오래다. 농어촌 지역도 급격한 공동체문화의 실종을 경험하고 있다.
사실 올덴버그가 말하는 제3의 장소는 그리 특별한 장소는 아니다. 동네 카페나 서점, 선술집, 미용실 등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일 수 있는 주변의 평범한 공간들이다. 하지만 이런 공간들은 점차 인스타그래머블한 공간으로서 플렉스(flex)를 추구하거나 경직된 분위기로 변질되어 버렸다. 오늘날 지자체 곳곳에서 15분 도시를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러한 공동체 해체와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공공이 만드는 시설이 추구하는 목표 중 하나는 지역민의 '제3의 장소'가 되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도시에서 집중 육성하는 문화 앵커나 문화적 도시재생 사업지 역시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많은 주변 사람들이 편하게 들락거릴 수 있는 제3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공공에서 운영하는 공간 중 제3의 공간이라고 부를 만한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카페, 독립서점, 훠궈 프랜차이즈 등의 알려진 사례들은 대부분 민간이 운영하는 곳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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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유는 무엇일까? 공공 특유의 딱딱한 분위기,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일종의 경외감(?), 지역 주민의 니즈를 반영하지 않는 공급자적 시각 등 여러 가지가 있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의지가 아닐까 한다. 수익에 대한 부담이 없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오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지역민들이 집과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을 왜 찾으려 하는지 그 원인을 알아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 생겨난 공공 공간 중에서 제3의 장소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곳이 있어 눈에 띈다. 의정부문화도시센터가 운영하는 '이음'이 바로 그곳이다. 의정부역사 3층에 마련된 이 공간은 공공으로서는 드물게 제3의 공간을 표방하며 오가는 승객들과 시민들이 편안하게 오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커피와 차를 마시면서 지하철 여행의 피로를 잠시 날려버리는 휴식 공간이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거나 친구와 담소를 나누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미술전시가 열리기도 하고, 예술품이 판매되기도 하며, 간편한 음악회가 개최되기도 한다. 실제 이음은 이 모든 기능을 감당하도록 설계되고 운영될 예정이다. 이음의 정체성은 사실 모호하다. 굳이 정체성을 꼽자면 누구나 찾을 수 있는 편안함인데 그게 이 시대에는 소중해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찾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많아져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올덴버그는 제3의 공간의 특성으로 접근성, 편의성, 상호작용성, 유희성, 다양성 등을 들었다. 그런가 하면 에드워드 소자(Edward Soja)는 상호작용성, 개방성, 다양성을, 크리스티안 미쿤다(Christian Mikunda)는 편의성, 평등성, 상호작용성, 유희성을 꼽았다.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평등성, 비일상성, 다양성, 상호작용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있다. 이들보다 할 걸음 앞서 제3의 공간이 필요함을 역설했던 우리의 건축가 김수근은 비생산성, 창조성, 가변성, 유희성, 복합성 등을 특징으로 들었다. 이들의 생각을 종합해 보면 제3의 공간은 '누구나 편리하게 접근가능'해야 하고, '비일상적이고 재미있는 놀거리'가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제한 없는 주제를 놓고 격의 없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우선 이음은 최적의 교통접근성을 가지고 있는 장소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한 층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되니 누구나 편리하게 접근가능하다. 그러면 이제 남은 건 심리적 접근성이다. 우선 에스컬레이터 입구에 안내데스크를 두고 편안하고 따뜻한 환대를 해 보면 어떨까? 지역민들이 돌아가면서 안내를 맡아준다면 금상첨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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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비일상적이고 재미있는 다양한 놀거리를 위해서는 다양한 이벤트가 수시로 지속적으로 열리면 좋겠다. 시민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미술전시도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이 1주 정도의 간격으로 지속적으로 교체 전시된다면 보다 많은 시민들이 방문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회도 마찬가지이다. 대중/순수예술, 하위/주류문화를 가리지 않는 포용성은 기본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격의 없는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개방적인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매일 주제를 바꿔가며 시민 대상의 오픈 토론회를 상시 개최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식 토론회말고 느슨한 연대 모임 같은 거 말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이음은 제3의 장소를 표방한 그 자체로 이미 제3의 장소에 절반 이상 이르렀다. 이제 남은 건 보다 많은 시민이 편안한 마음으로 와서 이음을 즐기게 하는 디테일이다. 의정부문화도시센터의 도전을 응원하며, 공공에서 운영하는 많은 공간이 '제3의 장소'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선영 홍익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채준 기자 cow75@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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