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상학 기자] “형들한테 받은 거에 비하면…진짜 한참 모자라죠.”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투수 이태양(34)은 지난달 말 은퇴를 앞둔 선배들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같은 한화 소속인 정우람(39), 이명기(37)를 위해 후배들과 함께 서산에서 미니 은퇴식을 열었고, SSG에서 은퇴를 예고한 추신수(42)의 마지막 대전 원정에 맞춰 따로 식사 자리를 갖고 선물을 전하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은퇴식 날이었던 지난달 29일 정우람은 이태양이 마련한 자리를 떠올리며 “내가 이런 자리를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고마웠다. 태양이가 ‘이렇게 해줄 수 있는 선배가 있어 고맙다’고 하더라. 야구 선배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닌가 싶다. 태양이를 비롯해 자리를 만들어준 후배들에게 너무나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울컥했다. 관중석에서 정우람의 은퇴식을 지켜본 이태양도 눈물을 흘렸다.
정우람의 은퇴식에 앞서 이태양은 마지막 대전 원정을 찾은 추신수를 위해서도 따로 특별한 자리를 가졌다. 2021~2022년 SSG에서 2년을 함께하며 통합 우승의 기쁨을 나눴던 두 사람은 등번호에 얽힌 추억이 있다. 2021년 시즌을 앞두고 SSG에 전격 합류한 추신수가 등번호 17번을 양보한 이태양에게 수천만원 상당의 명품 시계를 선물해 화제가 됐고, 특별한 인연으로 발전했다. 2022년 시즌을 마친 뒤 이태양이 한화로 FA 이적했지만 다른 팀이 되어서도 잊지 않았다.
추신수는 지난 1일 SSG가 KT와의 5위 결정전 타이브레이커에서 패하면서 현역 생활을 마쳤고, 이태양도 SNS를 통해 추신수와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올리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2년 동안 함께 플레이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전직 메이저리거와 같이 야구를 했었다는 게 큰 행복이었습니다. 옆에서 보면서 좋은 영향력을 많이 받아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선물도 많이 받았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한국 야구의 GOAT, 다시 한 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감사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태양은 이렇게 은퇴 선배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 것에 대해 “제가 그만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후배들을 챙기는 게 당연한 것 같아도 쉽지 않다. 선배에게 받은 만큼 후배도 나이가 들면 그만큼은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수 형과 우람이 형한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형들한테 받은 것에 비하면 진짜 한참 모자라다. 그런 마음을 표시한 것이다”고 이야기했다.
지난 7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재활을 진행 중인 이태양에겐 개인적으로 아쉬운 한 해였다. 시범경기 때 이석증으로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었고, 10경기(3선발·9⅓이닝) 2패 평균자책점 11.57로 부진했다. 구위가 떨어졌는데 팔꿈치 통증 때문이었다. 복귀를 위해 다시 공을 던졌지만 7월10일 퓨처스리그 등판을 끝으로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하며 시즌 아웃됐다.
이태양은 “그동안 팔꿈치에 불편함이 있었다. 주사를 맞고 계속 던져보려고 했지만 (재활 이후) 다시 경기에 던져보니 쉽지 않겠더라. 그래서 빨리 수술을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다”며 “이후 열심히 재활을 잘하고 있다. 이번 달 중순, 20일경에 공도 던지기 시작할 것이다”고 근황을 알렸다.
이태양은 2021~2023년 3년 연속 선발과 구원을 오가는 전천후 투수로 활약했다. 팀이 필요로 하는 자리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나섰다. SSG 소속이었던 2021년 40경기(14선발) 103⅔이닝, 2022년 30경기(17선발) 112이닝을 던진 이태양은 FA 계약으로 한화에 돌아온 지난해 50경기(12선발) 100⅓이닝을 소화했다. 3년 연속 100이닝 돌파로 3년간 총 120경기(43선발) 316이닝을 기록했다. 이 기간 KBO리그에서 120경기 이상 던진 투수 48명 중 300이닝 이상 던진 투수는 이태양이 유일했다. 경기수가 많은 투수는 이닝수가 적기 마련인데 전천후로 나선 이태양은 자주 나서서 많이 던졌다. 팔에 무리가 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일종의 안식년을 보내게 된 이태양은 “투수 팔은 소모품이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1년을 보낸 게 개인적으로도 너무 아쉽지만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한다”며 “2015년 토미 존 수술을 했고, 2017년 뼛조각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재활을 많이 해봐서 크게 어렵진 않다. (재활 기간이 길지 않아) 내년 시즌 초반부터 던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니까 인대 수술보다 덜 지루하다. 이번 달 ITP(단계별 투구 프로그램)를 시작하고, 내년 스프링캠프 때 정상적인 피칭에 들어가서 구위를 끌어올리면 시즌 초반부터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내년 시즌 초반 합류 의지를 드러냈다. 김경문 한화 감독은 “넉넉히 잡아 5~6월쯤에는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태양이 서두르지 않고 완벽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한화는 시즌 막판 선발투수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로테이션 두 자리가 구멍 나며 5강이 좌절됐다. 전천후 투수 이태양이 건강하게 돌아온다면 이런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태양은 “우리 팀이 5강 문턱까지 갔다가 아쉽게 막판에 처졌다. 결국 조금의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떨어진 건데 그 부분에서 제가 도움이 되고 싶다”며 “내년에 새 야구장이 들어선다.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니 저도 팀도 더 좋은 기억들을 남길 수 있게 준비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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