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후광 기자] 다승은 공동 3위인데 평균자책점 최하위권에 큰 경기에서 잇따라 약한 모습을 보였다. ‘예비 FA’ 엄상백(28·KT 위즈)은 스토브리그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
프로야구 KT 위즈의 마법의 가을 여정이 지난 11일 LG 트윈스와의 준플레이오프 5차전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KBO리그 최초 5위 결정전 승리, 최초 와일드카드 결정전 업셋에 이어 준플레이오프 5차전 끝장승부를 성사시켰지만, 아쉽게 정규시즌 3위 LG의 벽을 넘지 못했다.
KT의 2024시즌 종료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스토브리그에서 FA 자격을 얻는 마법사들을 향해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KT는 투수 엄상백, 우규민, 내야수 심우준, 오재일이 FA 집토끼로 분류되는데 그 가운데 KBO리그 FA 시장의 투수 최대어로 꼽히는 엄상백의 거취 및 계약 규모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엄상백은 덕수고를 나와 201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KT 1차 지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프로에 입성했다. 하지만 입단 초기 그를 향한 기대감은 금세 애증으로 바뀌었다. 좋은 재능과 구위를 갖고도 늘 제구 난조에 시달리며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 막내 구단의 1군 진입 초창기 시절 애증의 엄주곤(엄상백-주권-정성곤) 트리오의 엄이 바로 엄상백이었다.
엄상백은 2019시즌을 마치고 국군체육부대(상무)에 입대해 2년 동안 퓨처스리그를 폭격, 군 입대를 커리어 전환점으로 삼았다. 첫해 남부리그서 10승 4패 평균자책점 1.68로 2관왕(다승, 평균자책점)을 차지한 뒤 2021년 기세를 이어 11경기 6승 무패 1홀드 평균자책점 1.46으로 호투했다. 피안타율이 .218에 불과했고, 사사구가 9개인 반면 탈삼진은 75개에 달하는 압도적 투구에 힘입어 ‘상무 언터처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21년 군에서 돌아온 엄상백은 10경기 4승 1패 평균자책점 4.10으로 1군 분위기를 익힌 뒤 이듬해 풀타임 시즌을 맞아 KT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투수로 성장했다. 시즌 초반 부상 이탈한 에이스 윌리엄 쿠에바스의 공백을 훌륭히 메우더니 아예 선발로 정착해 10승 투수로 거듭나며 고영표, 소형준과 함께 막강 토종 트리오를 구축했다.
엄상백은 그해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전천후 투수로 뛰다가 배제성을 제치고 선발로 정착해 33경기 11승 2패 평균자책점 2.95 커리어하이를 썼다. 9월 25일 NC 다이노스전에서 데뷔 첫 10승, 10월 8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첫 선발 10승을 차례로 달성했고, 승률 .846를 기록하며 KBO리그 대표 에이스 김광현(.813·SSG 랜더스)을 제치고 승률왕을 거머쥐었다.
지난해에는 막바지 갈비뼈 미세골절을 당하며 20경기 111⅔이닝을 소화하는 데 그쳤다. 기록은 7승 6패 평균자책점 3.63. 그럼에도 2015년 데뷔 때부터 꾸준히 기회를 얻고 마운드에 오른 결과 올해 예비 FA 시즌을 맞이했다.
엄상백의 예비 FA 시즌 성적은 29경기 13승 10패 평균자책점 4.88. 전반기 17경기 7승 7패 평균자책점 5.18로 고전하다가 후반기 12경기 6승 3패 평균자책점 4.50으로 반등했다. 그 결과 다승 공동 3위, 탈삼진 6위(159개)에 올랐지만, 선발투수의 기본 자질인 평균자책점(19위), 이닝(156⅔이닝, 14위), 퀄리티스타트(9회, 공동 27위)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피홈런도 26개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
엄상백은 또 하나의 FA 쇼케이스로 여겨진 큰 경기 또한 지배하지 못했다. 10월의 첫날 5위 결정전 선발투수로 나서 4⅔이닝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2실점 73구로 5회를 채우지 못했고, 6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도 4이닝 6피안타 2볼넷 2탈삼진 4실점 81구 조기 강판됐다. 그리고 마지막 5차전 명예회복에 나섰지만, 2이닝 4피안타 2탈삼진 3실점(2자책)으로 또 다시 조기 강판의 아픔을 겪었다. 엄상백의 3경기 평균자책점은 6.75(10⅔이닝 9자책)에 달한다.
그럼에도 엄상백의 시장 가치는 높게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엄상백은 병역 의무를 마친 28살의 젊은 정상급 선발 자원이며, 2022시즌부터 3시즌 연속 풀타임 선발을 소화했다. 시속 150km가 넘는 포심패스트볼, 체인지업, 커터 등을 적재적소에 곁들여 삼진을 잡는 능력도 뛰어나다. 이닝 소화력, 피홈런 부문에서는 물음표가 붙지만, 그가 3, 4선발임을 감안했을 때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
원소속팀 KT 또한 엄상백이 잔류해야 2025시즌 외국인선수 2명에 고영표, 엄상백, 소형준으로 이른바 막강 5선발을 구축할 수 있다. KT 이강철 감독은 시즌 내내 줄곧 엄상백이 잘할 때마다 “더 잘하면 비싸져서 안 된다”라고 내부 FA 단속을 원하는 뉘앙스를 풍겼고, 에이스 고영표 역시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한 뒤 “엄상백이 수원 화성의 창룡문에서 FA 계약 인증샷을 찍었으면 좋겠다”라고 잔류를 기원했다.
엄상백은 과연 KT에 남을까. 그리고 남는다면 KT가 어느 정도 금액으로 집토끼를 단속할까. 반대로 KT를 떠난다면 어떤 구단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투수 최대어를 품을까. 다가오는 스토브리그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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