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연휘선 기자] N년 전 오늘(1월 31일) 연예계에서는 과연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합병증으로 30년 넘는 세월을 투병으로 고생한 한국 여자 농구계 거인 김영희가 세상을 떠났다. 더한 과거에는 가요계 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산업에 누구보다 큰 영향을 끼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했다.
다사다난했던 1월 31일, 그 날로 OSEN 타임머신을 돌려봤다.
# 故 김영희, 합병증으로 떠난 '여자 농구 거인'
지난 2023년 1월 31일, 전 여자 농구선수 김영희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세.
2m 5cm의 큰 키를 자랑한 김영희는 현역 시절 한국 여자 농구계 최장신 센터였다. 동주여중, 숭의여고를 거쳐 실업팀 한국화장품에서 선수로 뛴 그는 1983년 농구대잔치에서 여자부 득점, 리바운드 1위는 물론 인기상과 최우수선수상을 휩쓸었다.
특히 고인은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도 활약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은메달,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까지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것. 이에 힘입어 1984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수훈받았다.
화려한 운동선수로서의 이력 이면에는 소위 '거인증'으로 불리는 말단비대증 투병이 있었다. 한창 선수생활 중이던 1987년, 말단비대증 판정을 받은 김영희는 얼마 못 가 농구를 그만둬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각종 합병증과 더불어 뇌종양, 저혈당, 갑상선 질환, 장폐색 등이 그를 괴롭혔다.
이로 인해 고인의 말년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물론 후배 농구선수 서장훈이 직접 김영희를 찾아 각각 보조금과 금전적 도움을 건네기도 했을 정도다. 이에 김영희는 TV조선 '스타다큐-마이웨이(약칭 마이웨이)' 등의 방송에서 근황을 공개하며 서장훈에 대한 고마움을 직접 밝힌 바 있다.
곤궁한 상황에도 김영희는 장애인 어린이를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사회적 활동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큰 키를 향한 편견 어린 시선에 우울증을 앓기도 했으며, 결국 악화되는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빈소도 없이 장례만 치른 쓸쓸한 최후였다. 다만 후배 농구인들이 고인을 추모했다. 이에 여자프로농구 리그에서 경기 시작 전 고인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는 등 애도를 표했다.
#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지난 1996년 1월 31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했다.
서태지는 30년 전 이 날,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성균관 유림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를 발표했다.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줬다"라며 은퇴를 선언한 서태지의 발표에 전국이 충격에 휩싸였다.
'문화 대통령'이라는 말을 낳을 정도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사랑받은 서태지와 아이들인 만큼 지상파 3사가 앞다퉈 메인 뉴스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와 은퇴 선언을 보도했다.
충격을 받은 팬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를 반대하며 서태지는 물론 멤버인 양현석, 이주노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 가운데 일부 골수팬들은 서태지가 실제 사용했떤 물건을 가지고 나오며 난장판을 벌이기까지 했다.
tvN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주연 중 한 명인 조윤진(민도희)을 서태지 광팬으로 묘사하며 해체 당시 상황에 대해 전했다. 작품에서 조윤진은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소식에 식음을 전폐하며 앓아 누웠다. 이에 극 중 연인인 삼천포(김성균)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물론 서태지의 집에서 변기까지 뜯어오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그런가 하면 해체 이후 서태지와 아이들은 각각 서태지, 양현석, 이주노 개별 활동을 전개했다. 서태지는 계속해서 솔로 가수로 활동하며 배우 이은성과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양현석은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K팝을 견인하고 있다. 이주노는 개인 활동을 하던 중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SNS를 통해 꿋꿋하게 근황을 공개하며 팬들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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