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1988년 서울올림픽 메달의 꿈을 수포로 돌린 한국축구의 상처는 너무나 컸다. 낙담의 도를 지나쳐 “이제 축구는 망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패배의식에 젖어가던 한국 축구의 소생을 위해서는 무언가 신선한 자극을 주어야 했고 실망한 축구팬들을 위무하고 다시 관중을 스탠드로 불러들이기 위한 처방이 필요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러한 처방의 하나로 국내 성인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전혀 새로운 모습의 전국선수권대회를 마련했다.
축구협회는 프로위원회와 프로 5개 구단의 동의를 얻어 1988년 11월15일 개막예정이던 제43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 상금제를 도입, 총 1억원의 상금을 걸고 프로 5 개구단과 아마추어 실업 및 대학팀이 토너먼트로 패권을 겨루게 함으로써 종전 아마추어 선수권대회를 유럽 남미에서 전통적으로 실시하는 실질적인 FA(축구협회)컵 대회로 격상시킨 것이다.
이 ‘돈 잔치’의 우승 팀에는 3,000만원, 준우승 팀에는 1,500만원, 3위 팀에는 1,000만원, 4위 팀에는 500만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또한 16강 진출 팀에는 150만원, MVP상품은 승용차 1대, 베스트 11과 득점왕에 50만원이 수여 되는 등 ‘떡고물’도 푸짐했다.
FA컵 대회는 고액의 상금 외에도 초반부터 녹다운제로 진행,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만 했다. 장기 레이스에만 익숙했던 프로팀들이 아마추어 팀들에 일격을 당해 탈락하는 이변과 파란이 기대돼 더욱 흥미를 고조시킨 것이다.
당초 좋은 의도로 추진 된 FA컵 대회를 두고 몇몇 프로팀들이 시근퉁한 반응을 보이며 불참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으며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었다.
포철의 이회택 감독, 현대 김호 감독 등은 “프로축구에 전력투구하느라 탈진한 선수들이 아마추어 대회에서 신명나게 뛸 수 있겠느냐.”는 말로 대회 참여에 부정적인 태도를 표명했다.
그러나 한국축구의 회생의 대명제가 가로 놓여 있는 이상 이들의 대회 참여는 처음부터 불가피했던 게 사실이다. 숱한 잡음 속에 전국선수권대회(FA컵)는 결국 예정대로 11월15일 동대문운동장에서 개막, 주택은행과 상업은행전을 시작으로 대장정에 돌입했다.
시드를 받아 16강전부터 합류한 프로 5개 구단은 현격한 기량의 우위를 과시하며 현대-럭키금성, 대우-유공이 4강 고지를 점령했고 대우와 럭키금성이 결승에서 맞붙어 국내 성인축구의 최강의 자리를 다투게 됐다.
그러나 무슨 마가 씌웠는지 마음먹고 마련한 1억짜리 대회는 11월26일 결승전이 최길수 주심 의 경기 운영 잘못에 대한 럭키금성의 항의와 고의 실점, 대회 본부에 분노를 터뜨린 관중들의 그라운드 난입으로 아수라장을 이루며 빈사의 한국축구에 더 큰 멍울만을 남겨 놓았다. 대우의 4-1 승리는 무의미했다.
축구협회는 11월28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 대우 구단에 양해 하에 ‘연내 재경기’를 결의 했으나 대우 측은 “대회 규정을 무시한 결정이어서 명분 없이 따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대우 측은 “4대1 스코어가 왜 백지화돼야 하나. 회장 구단이라고 손해만 봐야 하는가.”고 항변하며 납득할 조치를 요구했다.
축구협회의 설득과 축구팬들의 거센 압력으로 재경기는 12월25일 엄동속의 동대문운동장에서 벌어져 대회 MVP 조민국의 25m 중거리 슛 결승골로 럭키금성이 2-1로 역전승 했다. 럭키금성으로서는 1985년 프로리그 우승이후 ‘만년 꼴찌’라는 불명예를 씻으며 왕중왕에 올랐지만 뒷맛은 찝찝했다.
결과적으로 1988년 FA컵 대회는 앞만 보고 질주해온 한국축구가 간과했던 치부를 들춰보였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확인’과 ‘실감’을 대회 개최의 최대 성과로 남긴 채 마무리 되었다.
김덕기(스포탈코리아 대표)
패배의식에 젖어가던 한국 축구의 소생을 위해서는 무언가 신선한 자극을 주어야 했고 실망한 축구팬들을 위무하고 다시 관중을 스탠드로 불러들이기 위한 처방이 필요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이러한 처방의 하나로 국내 성인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전혀 새로운 모습의 전국선수권대회를 마련했다.
축구협회는 프로위원회와 프로 5개 구단의 동의를 얻어 1988년 11월15일 개막예정이던 제43회 전국축구선수권대회에 상금제를 도입, 총 1억원의 상금을 걸고 프로 5 개구단과 아마추어 실업 및 대학팀이 토너먼트로 패권을 겨루게 함으로써 종전 아마추어 선수권대회를 유럽 남미에서 전통적으로 실시하는 실질적인 FA(축구협회)컵 대회로 격상시킨 것이다.
이 ‘돈 잔치’의 우승 팀에는 3,000만원, 준우승 팀에는 1,500만원, 3위 팀에는 1,000만원, 4위 팀에는 500만원의 상금이 주어졌다. 또한 16강 진출 팀에는 150만원, MVP상품은 승용차 1대, 베스트 11과 득점왕에 50만원이 수여 되는 등 ‘떡고물’도 푸짐했다.
FA컵 대회는 고액의 상금 외에도 초반부터 녹다운제로 진행,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만 했다. 장기 레이스에만 익숙했던 프로팀들이 아마추어 팀들에 일격을 당해 탈락하는 이변과 파란이 기대돼 더욱 흥미를 고조시킨 것이다.
당초 좋은 의도로 추진 된 FA컵 대회를 두고 몇몇 프로팀들이 시근퉁한 반응을 보이며 불참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으며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었다.
포철의 이회택 감독, 현대 김호 감독 등은 “프로축구에 전력투구하느라 탈진한 선수들이 아마추어 대회에서 신명나게 뛸 수 있겠느냐.”는 말로 대회 참여에 부정적인 태도를 표명했다.
그러나 한국축구의 회생의 대명제가 가로 놓여 있는 이상 이들의 대회 참여는 처음부터 불가피했던 게 사실이다. 숱한 잡음 속에 전국선수권대회(FA컵)는 결국 예정대로 11월15일 동대문운동장에서 개막, 주택은행과 상업은행전을 시작으로 대장정에 돌입했다.
시드를 받아 16강전부터 합류한 프로 5개 구단은 현격한 기량의 우위를 과시하며 현대-럭키금성, 대우-유공이 4강 고지를 점령했고 대우와 럭키금성이 결승에서 맞붙어 국내 성인축구의 최강의 자리를 다투게 됐다.
그러나 무슨 마가 씌웠는지 마음먹고 마련한 1억짜리 대회는 11월26일 결승전이 최길수 주심 의 경기 운영 잘못에 대한 럭키금성의 항의와 고의 실점, 대회 본부에 분노를 터뜨린 관중들의 그라운드 난입으로 아수라장을 이루며 빈사의 한국축구에 더 큰 멍울만을 남겨 놓았다. 대우의 4-1 승리는 무의미했다.
축구협회는 11월28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 대우 구단에 양해 하에 ‘연내 재경기’를 결의 했으나 대우 측은 “대회 규정을 무시한 결정이어서 명분 없이 따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대우 측은 “4대1 스코어가 왜 백지화돼야 하나. 회장 구단이라고 손해만 봐야 하는가.”고 항변하며 납득할 조치를 요구했다.
축구협회의 설득과 축구팬들의 거센 압력으로 재경기는 12월25일 엄동속의 동대문운동장에서 벌어져 대회 MVP 조민국의 25m 중거리 슛 결승골로 럭키금성이 2-1로 역전승 했다. 럭키금성으로서는 1985년 프로리그 우승이후 ‘만년 꼴찌’라는 불명예를 씻으며 왕중왕에 올랐지만 뒷맛은 찝찝했다.
결과적으로 1988년 FA컵 대회는 앞만 보고 질주해온 한국축구가 간과했던 치부를 들춰보였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확인’과 ‘실감’을 대회 개최의 최대 성과로 남긴 채 마무리 되었다.
김덕기(스포탈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