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구라다 시즌2] 류현진의 탁월한 접착력에 대해
입력 : 2014.03.2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스페셜9 제휴] A형의 장점 : 성실하고, 의리가 강하다. 예의 바르다. 친절하다. 착실하다.
A형의 단점 : 낯가림이 심하다. 우유부단하며, 자신감이 없다. 의기소침, 소극적, 수동적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혈액형의 특징이다. 류현진도 A형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야구할 때는 그렇지 않은데 평소에는 잘 삐친다”며 소심한 면이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A형 같지 않다. 특히나 ‘낯가림이 심하다’라는 부분에서 그렇다. 혈액형으로 인간형을 분류하는 작업은 도대체 신뢰가 가지 않는다.

야구 선수들의 성격은 혈액형 보다 오히려 포지션으로 나누는 게 맞을 때가 많다. ‘투수형’과 ‘타자형’으로.

타자들은 점수를 내고, 상대를 공격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개인 단위가 아니라 협업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비율이 크다. 훈련도 팀이나 유닛을 이뤄서 한다. 공격에서나, 수비에서나 작전과 사인 플레이 등을 많이 익힌다. 그래서인지 외향적 성격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끼리끼리 잘 모여 다니는 특성이 있다.

반면에 투수는 혼자 하는 작업이 대부분이다. 개인 사업자에 가깝다. 그리고 업무의 특성이 지키는 일이다 보니 공격성 보다는 차분함, 치밀함이 요구될 때가 많다. 또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과 맞는다. 친하게 지내는 동료도 같은 투수들이거나, 호흡을 맞추는 포수 정도다.

예전에 미국에서 뛰던 한국인 투수 A는 극단적인 예에 속한다. 평소에도 낯가림이 심했던 그는 야구장에 오면 훈련 시간 외에는 라커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언어 문제도 있는데다 성격까지 그러니 동료 선수나 코치들과 가까이 지내지 못했다. 그가 오랜 시간 빅리그에서 버티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류현진은 ‘무지+어마’하게 특이한 캐릭터를 가졌다.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투수답지(?) 않은 성격이다. 그의 탁월한 친화력은 신분, 나이, 국적, 피부색, 언어를 모두 초월한다.


사진 = 구대성과 수트 차림으로 기념 사진. 류현진 트위터

머나먼 이번 호주 원정 길에서도 특별한 캐릭터를 아낌 없이 과시했다. 그는 시드니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구대성을 찾았다. 고교를 갓 졸업하고 프로 입단해서 만난 전설 같은 선배였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달려가 만난듯 말끔한(?) 수트 차림으로 구대성과 기념 사진을 찍어 “레전드와 만남! 선배님 반갑습니다!”는 멘션과 함께 개인 SNS 계정에 올렸다.

그는 “웬만하면 형이라고 하는데, 감히 그렇게 부르지 못하는 분”이라며 구대성에 대한 각별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다. 어려우면 서먹하기 마련인데, 그렇지도 않다(아마도 이게 가장 그의 특이한 캐릭터인 것 같다). 훈련 중 스스럼 없이 다가가 한참 동안 신상 얘기를 주고 받기도 한다. 심지어 호주에서 돈을 얼마나 받는 지도 캐물었다니 참 철 없고, 천진난만한 영혼이 아닐 수 없다.

불편하고 어려울 법한 분들과 잘 지내는 특이한 천성은 김인식 전 감독과의 관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작년 시즌 때마다 자신의 신인시절 은사였던 김 감독에게 전화나 문자를 올리며 인사를 전했다고 한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했겠는가. 그라운드에서 장난칠 때 보면 영락없는 장난꾸러기인데 이럴 때 보면 속깊은 구석이 딴사람 같다.


사진 = 라커에서 동료들과 카드 게임을 즐기는 모습. LA 다저스 트위터

상식을 깨는 그의 파격 행보(?)는 라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어제(20일) 다저스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온 사진이다. 친한 동료 후안 유리베(34) 핸리 라미레즈(30)와 쭈그리고 앉아 보드 게임 ‘Go Fish’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털보 윌슨 같은 쟁쟁한 선배들은 오히려 뒷전이다. 어느 새 라커의 주인이 돼 있다.

그 뿐 아니다. 애리조나 캠프에서는 매팅리 감독과 탁구로 맞짱을 뜨기도 했다. 높은 사람과 이렇게 친하게 잘 지내는 처세는 대체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이 야수들은 야수들끼리, 투수들은 투수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이 99번 투수는 내야수들과도 절친으로 지내는 흔치 않은 케이스다. 영어도 잘 안되고, 특히나 스페인어는 더 서툴텐데 도대체 무슨 언어로 소통을 하는 지 몰라도 어색함이라고는 눈 씻고 찾을 수가 없다. (그와 어울리는 대부분은 중남미계 선수들이다. 커쇼나 그레인키, 이디어 같은 주축 백인 선수들과는 그만큼 친하게 지내는 것 같지 않다. 여기에 대한 얘기는 다음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사실 선수들에게 그라운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라커 생활이다. 어울리지 못하고, 기가 죽으면 야구가 즐거울 리 없다. 왜 아니겠는가. 일반 회사 생활도 그렇지 않나. 대개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둘째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사이가 좋아야 출근길이 편하다.

이 한 컷의 사진은 그가 팀 내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년 밖에 안 된 신출내기 아시아 출신 선수가 팀의 핵심이 되는 선수들과 라커 한 가운데서 이렇게 놀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대단하다는 말로 밖에는 설명이 안된다. 이건 친화력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순간) 접착력이라고 불러야 하나? 어딜 가나 착착 잘 붙고, 어울리는 능력 말이다. 보면 볼수록 희한하고 괜찮은 캐릭터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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