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스페셜9 제휴] 이제는 그의 발가락마저도 지극한 관심의 대상이 됐다. 주인 닮아 통통하고 귀여운 오른쪽 엄지 발가락이 며칠째 팬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처음에는 검은색 피가 살짝 비치는 발톱 사진이 SNS를 통해 유통돼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그제(26일)는 여기에 붕대를 감은 모습까지 퍼졌다. 저러다 커트 실링의 ‘핏빛 양말’에 이어, ‘핏빛 엄지’로 유명해 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때만 해도 상태는 간단치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발톱이 빠질 지도 모르고, 여기에 따라 당분간 등판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가 기정사실화 됐다. 스스로는 이글스 시절에도 이것 때문에 고생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심했던 적은 없다고 했다. 통증 때문에 스파이크를 신지도 못할 정도니…. 피칭은 고사하고, 훈련도 제대로 받기 힘든 상태였다. 등판 한두번은 걸러야 할 상황으로 보였다. 자칫 염증이 심해지면 제법 오랫동안 고생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많았다.
그런데 하루만에 극적인 반전이 이뤄졌다. 병원에서 발톱을 자르고 오더니 한결 괜찮아졌다는 것이다. 이젠 스파이크를 다시 신을 수 있게 됐다. 정말 다행이었다. 미국에도 허준 같은 명의가 있구나 싶었다. 이제는 아픈 커쇼 대신 본토 개막전 선발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며칠 간 온, 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엄지발가락에 대한 관심은 정말로 다양했다. ‘발톱을 뽑으면 된다 or 안된다’ ‘2주 안에 치료된다’ ‘한달은 갈 것이다’ ‘괴물은 본래 회복이 빠르다’ 같은 의학적인 의견 제시부터 ‘발톱에 무좀이 있다’ ‘은근 귀엽게 생겼다’ 같은 참신한(?) 시각도 돋보였다.
그의 엄지 발톱 상태와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무척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그 얘기를 해야 한다. 그런 발톱을 하고도 53개를 더 던졌다는 사실 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삐끗한 것은 3회초 공격 때였다. 3루를 돌다가 급히 멈추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와 올 시즌 처음 다저스의 3루 코치를 맡은 로렌조 번디가 원망스러웠다. 기껏 홈으로 돌리다가 갑자기 멈추라는 사인을 주는 바람에 육중한 몸이 급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다. ABS 장치가 없으니 당연히 어딘가에 부담이 갔을테고, 그게 하필 엄지 발가락이었다.
당시에도 뭔가 좋지 않은듯 베이스 위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번디 코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등을 한번 두들기기도 했다. 그는 통증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는듯 계속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후속 푸이그의 좌전 적시타 때 홈을 밟았다.
눈여겨 볼 장면은 곧이은 4회초 수비 때 나왔다. 이상이 생기고 난 뒤에 맞은 첫 타자는 9번 (투수) 트레버 케이힐이었다. 류현진은 여기서 초구를 릴리스한 뒤 깡총 발을 몇 번 뛴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얼굴을 찡그렸다. 그때는 강렬한 시드니 태양 때문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통증 때문이었던 것 같다. 힘껏 내딛으며 온 힘을 실어야 하는 오른발이었으니 오죽 했겠는가. 다음 타자 폴락 때도 그랬다. 몇 차례 얼굴을 찡그리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외야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혹시라도 상대가 볼까봐.
5회에는 공을 던지다가 내딛는 (오른)발이 미끄러져 휘청하기도 했다. 애꿎은 마운드 흙을 파기도 했지만, 아마도 칼날 같은 통증이 몰려왔으리라. 눈치 빠른 3루수 유리베가 올라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유심히 보면 이날 마운드 흙을 고를 때도 평소와 달리 왼발만 사용했다.)
그날 그의 투구수는 87개였다. 1회-17개, 2회-17개, 3회-16개, 4회-18개, 5회-19개. 3회 이후 53개는 발톱이 들린 다음에 통증을 느끼면서 던진 것이었다. 어쩐지 평소 보다 구속이 떨어진다는(87~89마일) 느낌도 그래서인 것 같다.
물론 1승이 보이는 데 욕심 나지 않을 투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고통을 참으며 3이닝이나 막아낸다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투구폼은 수만번 이상의 엄청난 반복 훈련으로 완성된다. 특히 아주 복잡한 매커니즘으로 이뤄졌다. 혹시 어느 한 부분에 이상이 생기면 전체적으로 균형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밸런스가 깨진다는 것은 곧 부상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발에 이상이 생겼다고 평소와 다른 동작으로 무리하게 되면 종아리, 허벅지, 허리, 팔꿈치, 어깨 같은 곳에 영향을 끼쳐 몇 개월짜리 큰 부상으로 이어질 지 모른다.
발에 조그만 티눈이 생겨도 일상이 불편하다. 세상 만사 꼼짝 하기가 싫어진다. 그런데 발톱이, 그것도 엄지가, 통째로 들린 상태였다. 단순히 걷는 것도 아니고, 그런 발로 전력 투구를 해야 했다. 무려 53번이나. 절뚝임 한번 없이,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싫은 표정 없이… 자신에게 맡겨진 미션을 꿋꿋이 수행했다.
평소에는 장난기 많은 캐릭터다. 짓궂을 때도 있다. 그런데 스파이크를 신고 그라운드에 서면 딴사람이 된다. 삼진 당할 때마다 허리 아프다, 어깨 아프다고 투정부리는 어느 쿠바 선수와는 본질이 다른 의식 구조를 가진 플레이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사진=게티이미지
이때만 해도 상태는 간단치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발톱이 빠질 지도 모르고, 여기에 따라 당분간 등판이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가 기정사실화 됐다. 스스로는 이글스 시절에도 이것 때문에 고생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심했던 적은 없다고 했다. 통증 때문에 스파이크를 신지도 못할 정도니…. 피칭은 고사하고, 훈련도 제대로 받기 힘든 상태였다. 등판 한두번은 걸러야 할 상황으로 보였다. 자칫 염증이 심해지면 제법 오랫동안 고생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많았다.
그런데 하루만에 극적인 반전이 이뤄졌다. 병원에서 발톱을 자르고 오더니 한결 괜찮아졌다는 것이다. 이젠 스파이크를 다시 신을 수 있게 됐다. 정말 다행이었다. 미국에도 허준 같은 명의가 있구나 싶었다. 이제는 아픈 커쇼 대신 본토 개막전 선발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며칠 간 온, 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궜던 엄지발가락에 대한 관심은 정말로 다양했다. ‘발톱을 뽑으면 된다 or 안된다’ ‘2주 안에 치료된다’ ‘한달은 갈 것이다’ ‘괴물은 본래 회복이 빠르다’ 같은 의학적인 의견 제시부터 ‘발톱에 무좀이 있다’ ‘은근 귀엽게 생겼다’ 같은 참신한(?) 시각도 돋보였다.
그의 엄지 발톱 상태와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무척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우리는 그 얘기를 해야 한다. 그런 발톱을 하고도 53개를 더 던졌다는 사실 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삐끗한 것은 3회초 공격 때였다. 3루를 돌다가 급히 멈추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와 올 시즌 처음 다저스의 3루 코치를 맡은 로렌조 번디가 원망스러웠다. 기껏 홈으로 돌리다가 갑자기 멈추라는 사인을 주는 바람에 육중한 몸이 급브레이크를 걸어야 했다. ABS 장치가 없으니 당연히 어딘가에 부담이 갔을테고, 그게 하필 엄지 발가락이었다.
당시에도 뭔가 좋지 않은듯 베이스 위에 한동안 앉아 있었다. 번디 코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등을 한번 두들기기도 했다. 그는 통증을 느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는듯 계속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후속 푸이그의 좌전 적시타 때 홈을 밟았다.
눈여겨 볼 장면은 곧이은 4회초 수비 때 나왔다. 이상이 생기고 난 뒤에 맞은 첫 타자는 9번 (투수) 트레버 케이힐이었다. 류현진은 여기서 초구를 릴리스한 뒤 깡총 발을 몇 번 뛴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얼굴을 찡그렸다. 그때는 강렬한 시드니 태양 때문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통증 때문이었던 것 같다. 힘껏 내딛으며 온 힘을 실어야 하는 오른발이었으니 오죽 했겠는가. 다음 타자 폴락 때도 그랬다. 몇 차례 얼굴을 찡그리는 장면이 중계 화면에 잡혔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외야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혹시라도 상대가 볼까봐.
5회에는 공을 던지다가 내딛는 (오른)발이 미끄러져 휘청하기도 했다. 애꿎은 마운드 흙을 파기도 했지만, 아마도 칼날 같은 통증이 몰려왔으리라. 눈치 빠른 3루수 유리베가 올라와 근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기도 했다. (유심히 보면 이날 마운드 흙을 고를 때도 평소와 달리 왼발만 사용했다.)
그날 그의 투구수는 87개였다. 1회-17개, 2회-17개, 3회-16개, 4회-18개, 5회-19개. 3회 이후 53개는 발톱이 들린 다음에 통증을 느끼면서 던진 것이었다. 어쩐지 평소 보다 구속이 떨어진다는(87~89마일) 느낌도 그래서인 것 같다.
물론 1승이 보이는 데 욕심 나지 않을 투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고통을 참으며 3이닝이나 막아낸다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투구폼은 수만번 이상의 엄청난 반복 훈련으로 완성된다. 특히 아주 복잡한 매커니즘으로 이뤄졌다. 혹시 어느 한 부분에 이상이 생기면 전체적으로 균형이 무너지기 십상이다. 밸런스가 깨진다는 것은 곧 부상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발에 이상이 생겼다고 평소와 다른 동작으로 무리하게 되면 종아리, 허벅지, 허리, 팔꿈치, 어깨 같은 곳에 영향을 끼쳐 몇 개월짜리 큰 부상으로 이어질 지 모른다.
발에 조그만 티눈이 생겨도 일상이 불편하다. 세상 만사 꼼짝 하기가 싫어진다. 그런데 발톱이, 그것도 엄지가, 통째로 들린 상태였다. 단순히 걷는 것도 아니고, 그런 발로 전력 투구를 해야 했다. 무려 53번이나. 절뚝임 한번 없이,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싫은 표정 없이… 자신에게 맡겨진 미션을 꿋꿋이 수행했다.
평소에는 장난기 많은 캐릭터다. 짓궂을 때도 있다. 그런데 스파이크를 신고 그라운드에 서면 딴사람이 된다. 삼진 당할 때마다 허리 아프다, 어깨 아프다고 투정부리는 어느 쿠바 선수와는 본질이 다른 의식 구조를 가진 플레이어다.
백종인 /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사진=게티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