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만남- 양승호] 천생 야구쟁이, 그의 게임은 지금 몇회?
입력 : 2015.05.1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타뉴스 김재동 기자]
양승호 전 롯데감독./사진= 김창현 기자
양승호 전 롯데감독./사진= 김창현 기자


“털 건 털고 가셔야 될 것 같아서...” 어렵사리 말을 꺼내면서도 가슴 한 켠이 묵직하다.

잠깐 시선이 허공에 멈칫하더니 이내 아래로 떨구어진다. “변명의 여지가 없죠. 법적으로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그때문에 죗값을 치른 것이고.. 사랑을 주셨던 팬 분들에게 용서를 비는 마음뿐입니다.”

처음 만난 전 롯데 양승호 감독(55)은 뜻밖에 다변이었다. 강정호 추신수 류현진과 이대호 오승환등 해외파의 얘기로 시작해 지난겨울의 롯데 파동을 거쳐 올 시즌 프로야구 전망까지를 얘기하도록 그의 낮고 빠른 목소리엔 어딘지 들뜬 기색이 곁들여 있었다. 그리고 예의 그 사건을 꺼냈을 때,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한 듯 함에도 그의 음색은 삽시간에 가라앉아 버렸다.

2012년 10월 30일 롯데구단이 양승호 감독의 사퇴를 공식 발표했을 때 여론은 많이들 아쉬워했다. 그해 12월4일 은퇴야구인들의 모임 일구회는 올해의 감독상을 우승한 류중일 감독이 아닌 양승호 감독에게 안겼다. 롯데를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은 공로가 남다르다는 평가였다. 우승을 채근하는 구단에 ‘2년 내 우승 못하면 관두겠다’고 약속한 바에 따라 계약기간 1년을 남겨두고 자진사퇴한 그는 찬사 받는 감독이었다. 그리고 올해의 감독상 수상 몇 일후인 12월13일 인천지검은 고려대 감독시절의 배임수재혐의로 그를 구속했다.

입을 다문 그에게 다시 물었다. 개인사는 접어두고 국내 학원스포츠 전반의 현실에 대해 이야길 해달라고. 양승호 감독은 초, 중, 고, 대학에 이어 프로야구 프론트 및 감독까지를 두루 섭렵한 유일한 야구인으로 학원스포츠의 현실에 대해서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말을 고르듯 잠시 뜸을 들인 양감독은 “학교에서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문제다”라고 입을 뗀다. “예전엔 학원스포츠가 학교의 명예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졌다. 모교애에 기초한 동문들의 결집력도 대단했다. 당연히 학교 측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학교 측이 부담을 학부모에게 떠넘기는 모양새를 취해왔고 일정시점부터는 학교 측의 지원 없이 모두 학부모 주머니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런 현실이 항상 위험성을 내포한다”고 지적했다.

양감독은 “아이를 맡긴 부모들은 내 아이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길 원한다. 한사람이 가르치기 보다는 두 사람이, 인스트럭터가 필요하면 인스트럭터도 써주길 바라고.. 학부모들은 ‘우리가 십시일반 돈을 더 걷을테니 능력있는 사람 모셔오세요 한다. 이런 시스템으로 흘러온 세월이 한 20년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좀 더 구체적인 운영실례를 물어보았다. 양감독은 “고려대 같은 경우 야구부 예산을 2억 준다. 알아서 쓰라고 한다. 전지훈련 한번 다녀오고, 공 사고, 배트 사고, 코칭스태프 월급 나가고 , 지방경기 다녀오고 하면 참 허무하게 스러진다. 그러면 동문들을 들볶는다. 선배들의 후원도 한 두 번이다. 후원하겠다는 학부모들이 나온다. 학교 측은 후원금을 학부모 개인 명의로 받길 원치 않는다. ‘학부모 일동’을 전제로 수납한다. 자기 자식을 부탁하는 학부모로서는 후원주체를 분명히 하길 원하고 그래서 감독에게 주고자 한다. 하지만 감독이 받아서 그대로 학교에 넣어도 받는 그 순간 배임이 된다”고 말한 후 문득 말을 멈춘다. 어쩐지 자기변명 같이 느껴져 설까.

2009년 당시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양감독은 재판이 진행되는 내 “개인적으로 착복한 적 없고 야구부 운영비로 썼다”고 일관되게 주장했었다. 학교 측에서도 그와 관련한 통장내역을 법정에 제출하기도 했었다.

다시 한번 한숨을 몰아쉰 양 감독은 “전 LG 단장하던 최종준씨가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으로 있을 때 코칭스태프 등 지도자들 월급을 어느 정도 해주자는 얘기가 나왔었다. 하지만 흐지부지 됐다”면서 “고생이 나 하나로 끝나면 좋은데 학원스포츠의 시스템에 변화가 없으면..”하면서 말끝을 흐린다.

양승호 전 롯데감독./사진= 김창현 기자
양승호 전 롯데감독./사진= 김창현 기자


그 같은 인생의 큰 변곡점을 겪으며 느낀 소회도 궁금했다. “8개월 열흘 가량 수감돼 있으면서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봤다. 어르신(부친)이 주위에 친구가 많지 않다 하셨는데. 난 참 많다고 생각했었다. 뭐 실제로 친구들은 많은데.. 어려운 시기에 마음속 친구가 많지 않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꼈다. 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고 그 사람의 능력을 좋아하는 것임을 알았다. 능력이 있어야 어쨌든 베풀 여지가 생기니까..” 씁쓸한 인생의 속살을 들여다 본 처연함이 설핏 안색에 어린다. 하지만 이내 생기를 되찾는다. “대신 가족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싸늘한 세간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아빠를 믿어주고 여전히 자랑스럽게 생각해주는 점이 참 감사했다. 집사람과도 결혼 후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결국 가족밖에 없구나’ 느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둔 양감독은 “지금 딸이 숙대 의류학과 장학생이다. 그 아이 고3때 내가 그런 일을 당해 항상 안타까움이 남는다. 공부나 제대로 됐겠나. 지금 고 3인 아들도 공부를 제법 잘한다. 이과생인데 이번 중간고사에서 수학은 전교 1등을 했다”고 별 쑥스런 기색도 없이 자랑한다.

“아직 야구를 못떠났다”고 말하는 그에게 물어봤다. 감독의 리더십은 어때야 한다고 보는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 경우는 감독도 팀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감독이 꼭 권위가 있어야만 돌아간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감독이 놓치는 부분은 코칭스태프가, 코칭스태프가 못하는 부분은 고참 선수들이, 서로서로 소통하면서 끌어가야 한다고 본다. 롯데 감독시절 내 방문은 닫혀있던 적이 없다. 프론트에선 권위와 관련해 말들이 있었지만 감독방이 닫혀있으면 선뜻 들어서기가 주저스러울 것 아닌가? 코치든 선수든 기자든 할 말이 있는 이들은 누구든 주저 말고 들어오라는 뜻이었고 다행히 2년간 팀을 끌어오는데 보탬이 되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이어 프론트와의 관계에 대해선 “필드는 감독의 영역이다. 프론트가 필드에 관여하려 한다면 그건 감독이 막아내야 한다. 내가 부임 초 연패에 빠졌을 때 프론트에선 남은 경기 수가 어떻고 우승하자면 얼마나 이겨야 되고 하면서 쪼기도 했다. 그때 난 ‘연패 하면 연승할 때도 있는 거지. 좀 가만히 있어요’ 하고 입을 막아버렸다. 가끔 경기가 안풀린다 싶으면 구단의 따가운 시선은 아랑곳없이 홍성흔 조성환등 고참 선수들 몇 불러 술사먹이면서 ‘니들이 좀 해줘라’ 당부도 했다. 나도 프론트 생활을 7년 해봤다. 강한 프론트는 간섭이 아니라 구분을 명확히 짓고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프론트다“고 강조한다.

양승호 감독은 페넌트레이스를 ‘144게임에서 72게임 지기’라고 표현한다. “팀을 바꾸려면 비록 연패를 하더라도 바꾸려는 방향으로 꾸준히 밀고나가는 뚝심이 필요하다. 안된다고 바꾸고 바꾸고 하다보면 옛날로 돌아가고 만다”고 설파한다.

양승호 감독은 지난해 12월1일부터 1월 초까지 제주서 리틀팀 3팀이랑 고교팀 한 팀을 지도해주었고 2월1일부터 한 달간은 미야자키서 소프트뱅크와 오릭스 훈련을 참관했다. 조만간 메이저리그도 견학할 예정이란다. 갑장으로 친하게 지내는 강정호 아버지와도 스케줄을 조율중이란 말도 곁들인다. 이대호가 꼬치구이 집 잘하는 델 알아두었다고 초청하니 일본도 들러야 될 모양이고.. 3년을 떨어져 지냈지만 여전히 야구는 그를 들뜨게 하고 수다스럽게 한다.

'천생 야구쟁이' 양승호는 지금 몇 회를 치르고 있는 걸까? 그의 페넌트레이스는 지금 몇 게임이나 치러졌고 몇 게임을 이겼으며 몇 게임을 지고 있는 걸까? 연패의 수렁은 또 어떻게 극복할런지?.. 그의 승부가 궁금하다.








김재동 기자 zait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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