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성적 – 68승 75패 1무 (8위)
[스포탈코리아] 트윈스 팬들이라면 모두가 가슴 한 켠에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암흑기를 거치며 번번이 희망고문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라는 씁쓸한 야구 격언까지 생기며 트윈스 팬들의 이런 희망고문은 조롱거리가 되곤 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매년 반복됐고, 팀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어느 때건 트윈스가 잘 나갈 때면 선수도, 코칭 스태프도 그리고 팬들까지도 늘 쫓기는 듯 보였다.
패배론이 낙인처럼 적용되던 이 시절에서 벗어난 지 5년이 지났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여러 가지 체질 개선 노력으로 만년 하위권의 이미지를 벗어내는 데는 분명 성공했다. 그리고 2018시즌을 앞두고 리그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타자, 김현수를 영입해 확실한 성적 향상을 도모했다. 하지만 ‘이 맛에 현질하는 느낌’도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는 잊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고 말았다. 2위부터 8위까지. 2011시즌 이후 가장 가파른 롤러코스터를 탔던 LG트윈스에겐 올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암흑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픈 기억 속 LG트윈스는 투타 밸런스가 붕괴됐던 팀이었다. 하지만 그 때와 비교해 올 시즌 LG트윈스 투수진은 역대 최악으로 평가 받아도 지나치지 않다. 분명 지난 몇 년간 강해진 불펜으로 지키는 야구를 선보이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팀 그대로다. 그러나 빈약한 타선에만 신경 쓰고 있는 사이, 투수진의 뎁스가 얇아지는 것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 만일 외국인 투수 듀오가 리그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투수지표의 좋지 못한 기록을 굉장히 많이 갈아치웠을 것이다. 그나마 10승을 챙긴 차우찬, 임찬규가 있는 선발진은 다승 승수 덕에 민낯을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지표를 열어보면 선발진, 불펜진을 막론하고 심각했던 최악의 투수진 성적표를 확인할 수 있다.
*LG의 투수 WAR 총 합은 13.05 / 외국인 투수 WAR 합 11.28은 10개 구단 중 1위
유난히 춥던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류중일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며 트윈스 팬들은 더욱 더 짜임새 있는 야구와 함께, 과거 삼성의 지키는 야구와 같은 단단한 투수진을 기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LG트윈스가 플레이오프 진출했을 때처럼 확실한 필승조가 필요했다. 하지만 레이스 시작부터 삐걱댔다. 2년 전, 낙차 큰 커브로 뒷문을 든든히 지켜줬던 임정우가 사생활 문제와 함께 팀에서 이탈해 버린 것이다. 그와 함께 마무리 투수 경쟁을 했던 정찬헌조차 부상으로 1차 전지훈련은 함께 하지 못했고, LG의 마무리 투수는 다시 공석이 되었다.
그러나, 돌고 돌아 정찬헌이 팀의 마무리 투수로 낙점됐다. 선택은 이해할 수 있다. 전지훈련에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팀의 기존 불펜진 중 속구의 구속이 가장 빠른 선수였고, 2017시즌 7개의 세이브를 챙겼던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당초 충분한 선택지가 없었다. 과거 LG의 뒷문을 책임졌던 봉중근, 신정락, 이동현, 진해수는 더 이상 예전의 구위가 아니었다. 그렇게 김지용과 정찬헌만이 필승조에 남은 선수였고, 둘 중 그나마 구속이 빠른 정찬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러했음에도 LG 투수진은 시즌 초반 좋은 페이스를 보였다. 외국인 선발투수 소사와 윌슨이 경기당 7이닝 가까이 소화하며 불펜진의 과부하를 최소화했고, 임찬규와 차우찬이 결과와 상관없이 이닝을 많이 소화해주며 불펜진의 약점을 덜 노출시킬 수 있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도 팀은 꾸준히 필승조에 올릴 선수들을 테스트해야만 했다. 하지만 고우석 외에는 기량이 발전한 불펜 투수가 없었다. 결국 팀은 임찬규와 차우찬 등 국내 선발진의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시점부터 뿌리 채 흔들리고 말았다.
심지어 김지용은 시즌 도중 토미존 수술로 다음 시즌까지도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김지용마저 없자 투수진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7월 21일 두산과의 맞대결에서는 8-1로 앞서고 있던 경기를 불펜진이 단 2이닝 만에 13실점을 하며 자멸한 경기도 있었다. 이런 경기를 몇 차례 하면서도 등판하는 투수진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2군에서는 손주영, 이강욱, 전인환, 배재준 등의 선수가 많은 등판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1군 코칭스태프는 9월이 넘어서야 이 중에서 배재준을 활용했을 뿐, 다른 선수들은 눈도장을 받지 못했다. 현 시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광은-강승호 트레이드는 LG트윈스가 얼마나 당시 절박했는지를 전적으로 보여준 일이다.
결국 소사와 윌슨은 이런 상황 속에서 시즌 내내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던져야 했다. 그들은 분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팀의 패배였다. 한 두 경기뿐 아니라, 후반기 내내 같은 패턴이 지속됐다. LG 코칭 스태프는 이런 현실을 지속적으로 부정했다. 팀이 끝까지 5위 싸움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올 시즌 불펜 투수진 운용이 실패라는 것을 지난 10월 6일에서야 인정했다. 두산과의 최종전에서 보여진 차우찬의 134구 완투는 진작 보였어야 했던 LG 투수진의 민낯이었다.
신바람은 늘 곰 앞에서 막히고 말았다
가을야구를 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KBO리그가 타고투저의 양상을 보이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불펜진이 썩 좋지 못한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사례는 다수 있었다. 단, 그런 팀들은 적어도 에이스 투수가 등판하는 날 타선도 같이 폭발해 흐름을 타고 연승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LG가 기록한 유의미한 연승은 시즌 초 2위까지 갈 수 있었던 ‘8연승’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흐름을 타야할 시기엔 번번이 곰 앞에서 막히고 말았다.
두산베어스는 올 시즌 LG트윈스에게 15승 1패를 기록했다. 그 유일한 1패는 시즌 최종전에서의 차우찬의 역투 덕분이다. 같은 구장을 쓰는 라이벌 팀으로서 너무 일방적인 기록으로 두 팀 간의 맞대결에서는 역대 최초의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LG는 순위가 하락하기 시작한 7월 이후 두산과 무려 11번의 맞대결을 펼쳤다. 두산 입장에서는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였지만, LG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잔혹동화였다.
LG가 유독 두산에게 밀렸던 원인 중에는 기본적인 전력 차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LG 팀 스스로가 너무나도 두산 상대 1승에 조급함을 보였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연패를 하면서 보여준 수많은 역전패 경기는 모두가 다소 아쉬운 경기 운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두산은 늘 ‘1패 정도는 할 수 있다’라는 마인드로 신예 선수를 선발투수로 기용하는 등 다양한 용병술을 내세웠지만, 그것이 되려 조급한 상대방 덕에 호재로 작용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두산은 7회 이후에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며 흐름을 바꾸고 이에 LG는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다. ‘야구가 아무리 못해도 승률 3할을 할 수 있다’라고 했지만, 정확한 승리 공식이 적용될 경우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두 팀의 대결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이 맛에 현질', 유일하게 봤던 희망
LG가 이렇게 심각했던 투수진, 그리고 처참했던 라이벌전 성적에도 불구하고 8월 말 까지 순위싸움을 펼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타선 때문이었다. 4년간 115억이라는 엄청난 액수로 LG에 입단한 김현수는 ‘이맛현(이 맛에 현질한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낼 만큼 LG 타선의 활력소 역할을 했다. 실제로 김현수는 4월에 0.387의 타율과 1.138의 OPS를, 그리고 5월에는 0.412의 타율에 1.077의 OPS를 기록했다. 후반기에 부상으로 이탈하지 않았더라면 LG가 순위경쟁을 조금 더 오래 했을지도 모른다.
김현수가 중심을 잡아주자 그동안 잠재력을 뽐내지 못했던 선수들도 덩달아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채은성이 가장 돋보였다. 2016시즌 혜성같이 등장해 3할 타율을 기록하며 LG의 새로운 우익수로 자리 잡았지만, 지난 시즌에는 장타력이 0.1이상 하락하며 ‘똑딱이’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 보란 듯 25개의 홈런을 때려냄과 동시에 무려 119타점을 쓸어 담았다. 119타점은 리그 전체 4위의 기록이다. 시즌 중에도 좌익수와 중견수는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곤 했지만 우익수만큼은 바뀌지 않았던 이유다.
이 밖에도 올 시즌엔 이형종, 이천웅, 유강남 등 그동안 완전히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던 선수들이 비로소 자리매김했다. 김현수를 1루수로 기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형종과 이천웅은 타격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유강남은 타격 뿐 아니라 투수 리드와 프레이밍에서 리그 최정상급 포수라는 찬사를 받으며 시즌을 보냈다. 이들은 모두 라인업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내년에도 동일한 역할로 타선에 희망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함은 여전히 떨칠 수 없다. 팀의 외야진은 리그에서도 손꼽힐만큼 성장했지만, 내야는 그렇지 못했다. 올 시즌 야심차게 영입한 메이저리그 경력의 3루수 아도니스 가르시아는 부상으로 제대로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 양석환은 1루와 3루를 오가면서 경기를 소화했지만 다음 시즌 군 입대로 자리를 비운다. 2루수 역시 시즌 중 강승호를 SK로 보내면서 사실상 올 시즌은 정주현에게 의존했다. 압도적인 외야진에 비해 부족했던 내야수들의 다음 시즌 분발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 발 빠른 변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하자 팀은 빠르게 변화를 선택했다. 양상문 단장은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를 대신해 차명석 전 투수코치가 단장으로 선임됐다. 차명석 단장이 부임하자, 여기저기 많은 인사이동이 있었다. 대부분의 트윈스 팬들은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아직 리그에서 내년 시즌을 위한 팀 구성이 계속되고 있기에 새로운 코칭스태프 선임에 제약이 있지만, 적어도 가장 많은 폭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트윈스 팬들은 더 이상 과정으로만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동안 숱한 변화를 봐왔다. 타 팀에서 우승을 수차례 이끌었던 감독을 선임하기도 하고, 국내 최고의 타격코치도 영입해 봤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코칭스태프가 바뀌는 만큼 팀의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고 많은 선수들을 경쟁시키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당장 다음 시즌에는 눈앞의 숙제가 산적해 있다. LG트윈스는 현재 필승조가 없다. 승리를 반드시 지켜줄 만큼 좋은 구위를 보인 투수가 후반기엔 존재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올해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에 뽑혔던 이정용의 이름이 거론될 정도다. 더 이상 지난날 플레이오프 당시 불펜진만을 믿어선 안 될 일이다.
타선도 마찬가지다. 외야진의 포화, 그리고 내야진의 부진으로 인해 시즌 중에는 1루수로 김현수를 기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김현수의 부상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귀결됐다. 이에 팀은 현재 새 외국인타자를 1루수로 영입할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2루수와 3루수 문제는 여전히 뚜렷한 대책이 없다. 홍창기, 윤대영, 김재율 등 1군에서 간간히 모습을 보였던 선수들은 정작 이 포지션에 들어설 수 없다. 팀은 이렇듯 새로운 선수 영입뿐 아니라 트레이드 시도, 선수단 군 문제 해결 등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할 것이다.
이제 다음 시즌이면 마지막 우승을 한 해로부터 25년째가 된다. 이렇게 긴 세월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그 시계’는 언제쯤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또 얼마나 더 농익어야 LG 팬들은 20년이 넘도록 잠든 우승 축하 기념주를 가슴 속에서 마실 수 있을까.
야구공작소
홍지일 칼럼니스트 / 에디터=황규호, 나유민
기록 출처: STATIZ
[스포탈코리아] 트윈스 팬들이라면 모두가 가슴 한 켠에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암흑기를 거치며 번번이 희망고문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라는 씁쓸한 야구 격언까지 생기며 트윈스 팬들의 이런 희망고문은 조롱거리가 되곤 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매년 반복됐고, 팀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어느 때건 트윈스가 잘 나갈 때면 선수도, 코칭 스태프도 그리고 팬들까지도 늘 쫓기는 듯 보였다.
패배론이 낙인처럼 적용되던 이 시절에서 벗어난 지 5년이 지났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우승을 차지하진 못했지만, 여러 가지 체질 개선 노력으로 만년 하위권의 이미지를 벗어내는 데는 분명 성공했다. 그리고 2018시즌을 앞두고 리그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타자, 김현수를 영입해 확실한 성적 향상을 도모했다. 하지만 ‘이 맛에 현질하는 느낌’도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는 잊었다고 생각했던 지난날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고 말았다. 2위부터 8위까지. 2011시즌 이후 가장 가파른 롤러코스터를 탔던 LG트윈스에겐 올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암흑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픈 기억 속 LG트윈스는 투타 밸런스가 붕괴됐던 팀이었다. 하지만 그 때와 비교해 올 시즌 LG트윈스 투수진은 역대 최악으로 평가 받아도 지나치지 않다. 분명 지난 몇 년간 강해진 불펜으로 지키는 야구를 선보이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팀 그대로다. 그러나 빈약한 타선에만 신경 쓰고 있는 사이, 투수진의 뎁스가 얇아지는 것을 미처 챙기지 못했다. 만일 외국인 투수 듀오가 리그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투수지표의 좋지 못한 기록을 굉장히 많이 갈아치웠을 것이다. 그나마 10승을 챙긴 차우찬, 임찬규가 있는 선발진은 다승 승수 덕에 민낯을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지표를 열어보면 선발진, 불펜진을 막론하고 심각했던 최악의 투수진 성적표를 확인할 수 있다.
*LG의 투수 WAR 총 합은 13.05 / 외국인 투수 WAR 합 11.28은 10개 구단 중 1위
유난히 춥던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류중일 감독이 새롭게 부임하며 트윈스 팬들은 더욱 더 짜임새 있는 야구와 함께, 과거 삼성의 지키는 야구와 같은 단단한 투수진을 기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LG트윈스가 플레이오프 진출했을 때처럼 확실한 필승조가 필요했다. 하지만 레이스 시작부터 삐걱댔다. 2년 전, 낙차 큰 커브로 뒷문을 든든히 지켜줬던 임정우가 사생활 문제와 함께 팀에서 이탈해 버린 것이다. 그와 함께 마무리 투수 경쟁을 했던 정찬헌조차 부상으로 1차 전지훈련은 함께 하지 못했고, LG의 마무리 투수는 다시 공석이 되었다.
그러나, 돌고 돌아 정찬헌이 팀의 마무리 투수로 낙점됐다. 선택은 이해할 수 있다. 전지훈련에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팀의 기존 불펜진 중 속구의 구속이 가장 빠른 선수였고, 2017시즌 7개의 세이브를 챙겼던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당초 충분한 선택지가 없었다. 과거 LG의 뒷문을 책임졌던 봉중근, 신정락, 이동현, 진해수는 더 이상 예전의 구위가 아니었다. 그렇게 김지용과 정찬헌만이 필승조에 남은 선수였고, 둘 중 그나마 구속이 빠른 정찬헌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러했음에도 LG 투수진은 시즌 초반 좋은 페이스를 보였다. 외국인 선발투수 소사와 윌슨이 경기당 7이닝 가까이 소화하며 불펜진의 과부하를 최소화했고, 임찬규와 차우찬이 결과와 상관없이 이닝을 많이 소화해주며 불펜진의 약점을 덜 노출시킬 수 있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도 팀은 꾸준히 필승조에 올릴 선수들을 테스트해야만 했다. 하지만 고우석 외에는 기량이 발전한 불펜 투수가 없었다. 결국 팀은 임찬규와 차우찬 등 국내 선발진의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시점부터 뿌리 채 흔들리고 말았다.
심지어 김지용은 시즌 도중 토미존 수술로 다음 시즌까지도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김지용마저 없자 투수진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7월 21일 두산과의 맞대결에서는 8-1로 앞서고 있던 경기를 불펜진이 단 2이닝 만에 13실점을 하며 자멸한 경기도 있었다. 이런 경기를 몇 차례 하면서도 등판하는 투수진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2군에서는 손주영, 이강욱, 전인환, 배재준 등의 선수가 많은 등판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1군 코칭스태프는 9월이 넘어서야 이 중에서 배재준을 활용했을 뿐, 다른 선수들은 눈도장을 받지 못했다. 현 시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광은-강승호 트레이드는 LG트윈스가 얼마나 당시 절박했는지를 전적으로 보여준 일이다.
결국 소사와 윌슨은 이런 상황 속에서 시즌 내내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던져야 했다. 그들은 분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팀의 패배였다. 한 두 경기뿐 아니라, 후반기 내내 같은 패턴이 지속됐다. LG 코칭 스태프는 이런 현실을 지속적으로 부정했다. 팀이 끝까지 5위 싸움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올 시즌 불펜 투수진 운용이 실패라는 것을 지난 10월 6일에서야 인정했다. 두산과의 최종전에서 보여진 차우찬의 134구 완투는 진작 보였어야 했던 LG 투수진의 민낯이었다.
신바람은 늘 곰 앞에서 막히고 말았다
가을야구를 할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KBO리그가 타고투저의 양상을 보이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불펜진이 썩 좋지 못한 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사례는 다수 있었다. 단, 그런 팀들은 적어도 에이스 투수가 등판하는 날 타선도 같이 폭발해 흐름을 타고 연승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LG가 기록한 유의미한 연승은 시즌 초 2위까지 갈 수 있었던 ‘8연승’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흐름을 타야할 시기엔 번번이 곰 앞에서 막히고 말았다.
두산베어스는 올 시즌 LG트윈스에게 15승 1패를 기록했다. 그 유일한 1패는 시즌 최종전에서의 차우찬의 역투 덕분이다. 같은 구장을 쓰는 라이벌 팀으로서 너무 일방적인 기록으로 두 팀 간의 맞대결에서는 역대 최초의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LG는 순위가 하락하기 시작한 7월 이후 두산과 무려 11번의 맞대결을 펼쳤다. 두산 입장에서는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였지만, LG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잔혹동화였다.
LG가 유독 두산에게 밀렸던 원인 중에는 기본적인 전력 차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LG 팀 스스로가 너무나도 두산 상대 1승에 조급함을 보였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연패를 하면서 보여준 수많은 역전패 경기는 모두가 다소 아쉬운 경기 운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두산은 늘 ‘1패 정도는 할 수 있다’라는 마인드로 신예 선수를 선발투수로 기용하는 등 다양한 용병술을 내세웠지만, 그것이 되려 조급한 상대방 덕에 호재로 작용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두산은 7회 이후에 주전급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며 흐름을 바꾸고 이에 LG는 스스로 자멸하고 말았다. ‘야구가 아무리 못해도 승률 3할을 할 수 있다’라고 했지만, 정확한 승리 공식이 적용될 경우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두 팀의 대결에서 여실히 보여줬다.
'이 맛에 현질', 유일하게 봤던 희망
LG가 이렇게 심각했던 투수진, 그리고 처참했던 라이벌전 성적에도 불구하고 8월 말 까지 순위싸움을 펼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타선 때문이었다. 4년간 115억이라는 엄청난 액수로 LG에 입단한 김현수는 ‘이맛현(이 맛에 현질한다)’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낼 만큼 LG 타선의 활력소 역할을 했다. 실제로 김현수는 4월에 0.387의 타율과 1.138의 OPS를, 그리고 5월에는 0.412의 타율에 1.077의 OPS를 기록했다. 후반기에 부상으로 이탈하지 않았더라면 LG가 순위경쟁을 조금 더 오래 했을지도 모른다.
김현수가 중심을 잡아주자 그동안 잠재력을 뽐내지 못했던 선수들도 덩달아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채은성이 가장 돋보였다. 2016시즌 혜성같이 등장해 3할 타율을 기록하며 LG의 새로운 우익수로 자리 잡았지만, 지난 시즌에는 장타력이 0.1이상 하락하며 ‘똑딱이’라는 비아냥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시즌 보란 듯 25개의 홈런을 때려냄과 동시에 무려 119타점을 쓸어 담았다. 119타점은 리그 전체 4위의 기록이다. 시즌 중에도 좌익수와 중견수는 계속해서 주인이 바뀌곤 했지만 우익수만큼은 바뀌지 않았던 이유다.
이 밖에도 올 시즌엔 이형종, 이천웅, 유강남 등 그동안 완전히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했던 선수들이 비로소 자리매김했다. 김현수를 1루수로 기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형종과 이천웅은 타격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유강남은 타격 뿐 아니라 투수 리드와 프레이밍에서 리그 최정상급 포수라는 찬사를 받으며 시즌을 보냈다. 이들은 모두 라인업에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내년에도 동일한 역할로 타선에 희망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함은 여전히 떨칠 수 없다. 팀의 외야진은 리그에서도 손꼽힐만큼 성장했지만, 내야는 그렇지 못했다. 올 시즌 야심차게 영입한 메이저리그 경력의 3루수 아도니스 가르시아는 부상으로 제대로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다. 양석환은 1루와 3루를 오가면서 경기를 소화했지만 다음 시즌 군 입대로 자리를 비운다. 2루수 역시 시즌 중 강승호를 SK로 보내면서 사실상 올 시즌은 정주현에게 의존했다. 압도적인 외야진에 비해 부족했던 내야수들의 다음 시즌 분발이 절실히 필요하다.
한 발 빠른 변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가을 야구 진출에 실패하자 팀은 빠르게 변화를 선택했다. 양상문 단장은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를 대신해 차명석 전 투수코치가 단장으로 선임됐다. 차명석 단장이 부임하자, 여기저기 많은 인사이동이 있었다. 대부분의 트윈스 팬들은 이를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아직 리그에서 내년 시즌을 위한 팀 구성이 계속되고 있기에 새로운 코칭스태프 선임에 제약이 있지만, 적어도 가장 많은 폭의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트윈스 팬들은 더 이상 과정으로만 끝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동안 숱한 변화를 봐왔다. 타 팀에서 우승을 수차례 이끌었던 감독을 선임하기도 하고, 국내 최고의 타격코치도 영입해 봤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많은 코칭스태프가 바뀌는 만큼 팀의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고 많은 선수들을 경쟁시키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당장 다음 시즌에는 눈앞의 숙제가 산적해 있다. LG트윈스는 현재 필승조가 없다. 승리를 반드시 지켜줄 만큼 좋은 구위를 보인 투수가 후반기엔 존재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올해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에 뽑혔던 이정용의 이름이 거론될 정도다. 더 이상 지난날 플레이오프 당시 불펜진만을 믿어선 안 될 일이다.
타선도 마찬가지다. 외야진의 포화, 그리고 내야진의 부진으로 인해 시즌 중에는 1루수로 김현수를 기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김현수의 부상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귀결됐다. 이에 팀은 현재 새 외국인타자를 1루수로 영입할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2루수와 3루수 문제는 여전히 뚜렷한 대책이 없다. 홍창기, 윤대영, 김재율 등 1군에서 간간히 모습을 보였던 선수들은 정작 이 포지션에 들어설 수 없다. 팀은 이렇듯 새로운 선수 영입뿐 아니라 트레이드 시도, 선수단 군 문제 해결 등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할 것이다.
이제 다음 시즌이면 마지막 우승을 한 해로부터 25년째가 된다. 이렇게 긴 세월동안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그 시계’는 언제쯤 주인을 찾을 수 있을까. 또 얼마나 더 농익어야 LG 팬들은 20년이 넘도록 잠든 우승 축하 기념주를 가슴 속에서 마실 수 있을까.
야구공작소
홍지일 칼럼니스트 / 에디터=황규호, 나유민
기록 출처: STAT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