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성적 - 정규시즌 2위(78승 65패 1무), 한국시리즈 우승(팀 역사상 4번째)
[스포탈코리아] 최후의 승자는 비룡이었다. 작년부터 팀 컬러가 된 홈런포는 여전했다. 올해 SK의 타선이 진보한 부분은 리그 3위에 오른 출루율과 도루였다. 정상급 1번 타자가 된 노수광이 밥상을 차렸고 뒤이어 나오는 한동민, 로맥, 이재원은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 작년 5.28점에 그친 경기당 득점이 5.76점으로 리그 3위에 올랐다.
투수진의 성과 또한 대단했다. 작년에 5.33점이었던 경기당 실점이 5.06점으로 줄었다. 두산 투수진이 허용한 5.25점이 2위인 점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차이다. 이는 복귀한 에이스 김광현을 필두로 한 선발 투수진의 역할이 크다. 김광현에 이어 켈리, 산체스, 박종훈, 그리고 문승원은 4.17점의 현격하게 낮은 평균자책점을 합작했다. 2위인 넥센 선발 투수진은 4.73에 불과하다.
투타에서 축이 잡힌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당연했다. 정규시즌을 2위로 마감한 SK 와이번스는 포스트시즌 열한 경기 동안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은” 명경기를 펼쳤다.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는 단 하나의 스트라이크를 남기고 뼈아픈 동점을 허용했지만 끝내 물러서지 않고 승리를 따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64.6%의 압도적인 정규시즌 승률을 기록한 상대와 맞붙었지만, 어느 구장에서든 타오른 홈런포와 철벽 투수진을 앞세워 V4를 달성했다.
최고의 선수 – 김광현, 이재원
팔꿈치 인대 부상을 털고 돌아온 김광현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수술 이후에 오히려 구속이 증가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던 걸까. 김광현은 데뷔 이후 가장 높은 탈삼진율과 가장 낮은 볼넷 허용률을 동시에 기록했다. 규정이닝에 오직 8이닝 모자란 136이닝을 소화하면서 그는 평균자책점 2.98을 기록했다. ‘만일’ 그가 규정이닝을 소화했다면 린드블럼에 이어 평균자책점 2위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광현을 평상시에 무리하게 쓰지 않은 구단의 결정은 해피 엔딩으로 돌아왔다. 힘을 비축한 에이스는 포스트시즌에서 1선발로 나서서 맹활약했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는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54km/h에 이르는 강속구를 던지며 승리를 직접 확정 지었다.
OPS 1을 넘긴 제이미 로맥도, 국내 대졸 최초로 담장을 40번 이상 넘긴 한동민도 MVP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SK의 안방마님 이재원을 MVP로 꼽고 싶다. 고작(?) OPS 0.9를 넘긴 이재원을 간과할 수 없는 근거는 아래 표에 있다.
10개 구단 체제였던 이래 KBO리그는 OPS 평균이 0.8에 육박했지만 이는 수비 능력이 우선시되는 포지션일수록 낮아진다. 따라서 수비가 가장 어렵다고 평가 받는 포수는 OPS 0.7만 넘겨도 평균에 해당한다. 이는 양의지, 강민호같이 공수를 겸비한 몇 안 되는 포수가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기도 하다. 올해 이재원은 본인이 바로 그 포수에 해당함을 몸소 성적으로 증명했다.
포스트시즌 도중에 발꿈치 뼈에 멍이 드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분투한 것 또한 조명할 가치가 있다. 시즌 중에 아쉬웠던 26.7%의 도루 저지율을 뒤로하고 12번의 도루 시도 가운데 5번을 저격에 성공했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번트 동작에 뒤이어 홈런을 때려내면서 시리즈 우세에 못을 박았다.
발전한 선수 – 김태훈, 노수광
2009년 1차 지명을 받은 김태훈은 그 동안 높은 기대에 못 미치는 투수였다. 하지만 불과 1년 사이에 그는 팀은 물론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전천후 자원으로 발돋움했다. 못내 아쉬웠던 SK 불펜에서는 7~8회를 확실하게 책임졌고, 김광현이 이닝 관리를 위해 로테이션을 거를 때 선발로도 곧잘 나섰다.
단지 ‘평균 이상’에 불과했던 그의 빠른 공과 슬라이더는 각각 4km/h, 8km/h가 늘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비시즌 동안 김광현에게 전수받았다는 슬라이더다. 올해 김태훈이 슬라이더를 던졌을 때 타자들은 무려 45.6%의 헛스윙률(헛스윙/스윙)을 기록했다. 세밀한 제구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코치진의 합류도 오히려 그가 자신 있게 공을 뿌리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좋아진 구위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김태훈은 작년보다 이닝을 훨씬 많이 소화하는 동시에 더욱 많은 삼진을 잡아냈다.
2017년 4월, SK와 기아는 4:4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SK에서 기아로 넘어간 이명기와 김민식이 2017시즌 KIA의 우승에 일조했지만, 반대급부로 넘어온 노수광은 당시까지 큰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러나 올 시즌 그는 트레이드의 승패를 섣불리 평가하지 말라는 교훈을 알려줬다. 준수한 타격, 민첩한 주루 그리고 탄탄한 수비 삼박자를 자랑하며 SK가 가장 필요했던 외야수 겸 1번 타자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노수광은 높은 0.383의 출루율을 바탕으로 SK 타선이 생산해내는 홈런의 가치를 높였다.
아쉬웠던 선수 – 산체스, 최정
시즌 초까지만 하더라도 앙헬 산체스에 ‘아쉬움’이라는 수식어가 붙일 사람이 있었을까. 그러나 산체스는 시즌을 거듭하면서 점점 실망을 안겼다. 8월 12일 기아 상대로 0.1이닝 동안 10실점을 한 경기는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 자체였다. 10월부터 포스트시즌까지는 결국 불펜으로만 나서게 됐다.
물론 이는 산체스의 부상 이력을 살펴봤을 때 어느 정도 계산 내의 행보였다. 2015시즌 후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서 2016시즌을 건너뛰고 2017시즌에 복귀해 고작 67.2이닝만을 던졌다. 바꿔 말해 2018시즌부터 풀타임 선발을 소화할 만한 체력을 갖출 수는 없었다. SK 프런트는 산체스에게 시즌 막판 휴식을 부여하고 불펜으로 전환시키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OPS 0.915를 기록한 주전 3루수를 아쉽다고 표현하는 건 우승팀만이 부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닐까. 그러나 그 선수가 다름 아닌 ‘최정’이라면 이해 못 할 일만은 아니다. 올해로 만 31세가 된 최정은 예전보다 컨택에 어려움을 겪으며 전반적인 성적이 떨어졌다. 그의 삼진비율은 올해 규정타석을 소화한 선수들 가운데 3위에 해당한다. 이런 부진은 뚜렷한 전조증상 없이 찾아왔기에 누구보다 본인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 나온 극적인 동점포는 그가 내년에 다시 반등하리라는 신호 아니었을까.
각종 선입견을 극복하다
2018시즌 SK 와이번스는 ‘야구계의 뿌리 깊은 선입견’에 결정적인 어퍼컷을 날렸다. 세간에서는 ‘한 방’에 의존하는 야구는 한계가 있다고 주의를 했고, 홈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타율이 낮았던 로맥과의 계약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다. 그러나 SK 구단은 최적의 타구 각도 및 타구 속도에 대해 일찌감치 객관적으로 연구했다. ‘일정 각도로 강한 타구를 날릴 수 있는 능력’은 타율보다 안정적이며, 예측이 가능하다. 보란 듯이 로맥은 올 시즌에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수비에 대한 선입견 또한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올 시즌 SK의 야수진은 116개의 실책을 범하며 그 부문 2위에 올랐다. 종종 선보인 수비 시프트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인플레이 타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처리하는지,’ 즉 ‘수비 효율(DER: Defensive Efficiency Ratio)’을 살피지 않은 게으른 분석에 기인했다. 이에 따르면 SK 수비 능력은 좋은 쪽으로 2위였다.
SK의 불펜에 대한 평가 또한 높지는 않았다. 서진용의 성장은 더뎠고 김주한은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시즌을 일찍 마쳤다. 박정배와 윤희상은 필승조로 시작했으나 아쉬움을 남겼다. 실제로 정규시즌에 SK는 58%의 세이브 성공률로 리그 7위에 머무르는데 그쳤다.
하지만 2일 혹은 3일마다 휴식일이 주어지는 포스트시즌 단기전은 다른 이야기였다. 김태훈과 정영일, 김택형, 그리고 산체스를 전면에 앞세운 SK의 소방수들은 포스트시즌 통틀어서 2.8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어느 팀보다 단단한 모습을 보여줬다. 야구계의 많은 전문가들이 뒷문이 헐겁다는 기존 이미지를 근거로 한국시리즈에서 SK의 열세를 예측했지만, 비룡은 이마저도 타파한 것이다.
잔치는 끝났다
우승의 기쁨에 취해있을 팬들에게 너무 야박한 말일까. 그러나 우승팀 SK에게도 오프시즌에 당면한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감독의 교체다. 2년 임기를 마친 힐만은 우승을 끝으로 미국으로 돌아갔고 그동안 단장직을 수행하던 염경엽이 감독을 맡게 됐다. 염경엽은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 넥센 감독으로서 팀을 성공적으로 가을야구로 이끈 바 있다. 과연 그가 감독으로서의 첫 우승을 SK에서 맛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선수 구성에도 변화가 있다. 우선 지난 4년간 최고의 활약을 펼친 메릴 켈리가 MLB로 향하면서 팀과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일찌감치 켈리의 역수출을 예감한 SK는 캐나다 국가대표팀 출신의 94년생 우완 투수 브록 다익손을 영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선발투수 한 자리와 3루수, 그리고 포수는 정해지지 않았다. 산체스의 후반부 부진을 체력 부족으로 해석할 지, 아니면 본모습으로 해석할 지에 따라 선발투수의 가닥은 잡힐 것이다. 이재원과 최정은 FA자격을 취득했다. SK와 두 선수 사이의 협상을 따라가는 것도 스토브리그의 재미일 것이다.
우승하기가 무섭게 여러 과제를 껴안은 SK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어느 구단보다 확고한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를 활용해서 타자들에게는 이상적인 발사각을, 야수들에게는 수비 시프트를, 투수들에게는 빠른 공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약 10년 전에 이룩한 왕조의 흐릿한 향기에 취해있지 않고 세대교체를 훌륭하게 이뤄냈다. 동시에 ‘스포테인먼트’라는 기치를 내세워 팬들을 매료시켰다. 올바른 방향을 아는 팀은 어느 난관이 오더라도 꿋꿋이 전진할 것이다. 역대 5번째 업셋을 이룩한 2018시즌처럼 말이다.
사진 출처=SK 와이번스 홈페이지 제공
야구공작소
박광영 칼럼니스트 / 에디터=이제금, 박승종, 이예림
기록 출처: STATIZ.COM, 스포츠투아이
[스포탈코리아] 최후의 승자는 비룡이었다. 작년부터 팀 컬러가 된 홈런포는 여전했다. 올해 SK의 타선이 진보한 부분은 리그 3위에 오른 출루율과 도루였다. 정상급 1번 타자가 된 노수광이 밥상을 차렸고 뒤이어 나오는 한동민, 로맥, 이재원은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그 결과 작년 5.28점에 그친 경기당 득점이 5.76점으로 리그 3위에 올랐다.
투수진의 성과 또한 대단했다. 작년에 5.33점이었던 경기당 실점이 5.06점으로 줄었다. 두산 투수진이 허용한 5.25점이 2위인 점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차이다. 이는 복귀한 에이스 김광현을 필두로 한 선발 투수진의 역할이 크다. 김광현에 이어 켈리, 산체스, 박종훈, 그리고 문승원은 4.17점의 현격하게 낮은 평균자책점을 합작했다. 2위인 넥센 선발 투수진은 4.73에 불과하다.
투타에서 축이 잡힌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당연했다. 정규시즌을 2위로 마감한 SK 와이번스는 포스트시즌 열한 경기 동안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은” 명경기를 펼쳤다.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는 단 하나의 스트라이크를 남기고 뼈아픈 동점을 허용했지만 끝내 물러서지 않고 승리를 따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64.6%의 압도적인 정규시즌 승률을 기록한 상대와 맞붙었지만, 어느 구장에서든 타오른 홈런포와 철벽 투수진을 앞세워 V4를 달성했다.
최고의 선수 – 김광현, 이재원
팔꿈치 인대 부상을 털고 돌아온 김광현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수술 이후에 오히려 구속이 증가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던 걸까. 김광현은 데뷔 이후 가장 높은 탈삼진율과 가장 낮은 볼넷 허용률을 동시에 기록했다. 규정이닝에 오직 8이닝 모자란 136이닝을 소화하면서 그는 평균자책점 2.98을 기록했다. ‘만일’ 그가 규정이닝을 소화했다면 린드블럼에 이어 평균자책점 2위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광현을 평상시에 무리하게 쓰지 않은 구단의 결정은 해피 엔딩으로 돌아왔다. 힘을 비축한 에이스는 포스트시즌에서 1선발로 나서서 맹활약했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는 구원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54km/h에 이르는 강속구를 던지며 승리를 직접 확정 지었다.
OPS 1을 넘긴 제이미 로맥도, 국내 대졸 최초로 담장을 40번 이상 넘긴 한동민도 MVP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SK의 안방마님 이재원을 MVP로 꼽고 싶다. 고작(?) OPS 0.9를 넘긴 이재원을 간과할 수 없는 근거는 아래 표에 있다.
10개 구단 체제였던 이래 KBO리그는 OPS 평균이 0.8에 육박했지만 이는 수비 능력이 우선시되는 포지션일수록 낮아진다. 따라서 수비가 가장 어렵다고 평가 받는 포수는 OPS 0.7만 넘겨도 평균에 해당한다. 이는 양의지, 강민호같이 공수를 겸비한 몇 안 되는 포수가 높은 평가를 받은 이유기도 하다. 올해 이재원은 본인이 바로 그 포수에 해당함을 몸소 성적으로 증명했다.
포스트시즌 도중에 발꿈치 뼈에 멍이 드는 부상을 입었음에도 분투한 것 또한 조명할 가치가 있다. 시즌 중에 아쉬웠던 26.7%의 도루 저지율을 뒤로하고 12번의 도루 시도 가운데 5번을 저격에 성공했다.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는 번트 동작에 뒤이어 홈런을 때려내면서 시리즈 우세에 못을 박았다.
발전한 선수 – 김태훈, 노수광
2009년 1차 지명을 받은 김태훈은 그 동안 높은 기대에 못 미치는 투수였다. 하지만 불과 1년 사이에 그는 팀은 물론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전천후 자원으로 발돋움했다. 못내 아쉬웠던 SK 불펜에서는 7~8회를 확실하게 책임졌고, 김광현이 이닝 관리를 위해 로테이션을 거를 때 선발로도 곧잘 나섰다.
단지 ‘평균 이상’에 불과했던 그의 빠른 공과 슬라이더는 각각 4km/h, 8km/h가 늘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비시즌 동안 김광현에게 전수받았다는 슬라이더다. 올해 김태훈이 슬라이더를 던졌을 때 타자들은 무려 45.6%의 헛스윙률(헛스윙/스윙)을 기록했다. 세밀한 제구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코치진의 합류도 오히려 그가 자신 있게 공을 뿌리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좋아진 구위와 자신감을 바탕으로 김태훈은 작년보다 이닝을 훨씬 많이 소화하는 동시에 더욱 많은 삼진을 잡아냈다.
2017년 4월, SK와 기아는 4:4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SK에서 기아로 넘어간 이명기와 김민식이 2017시즌 KIA의 우승에 일조했지만, 반대급부로 넘어온 노수광은 당시까지 큰 활약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러나 올 시즌 그는 트레이드의 승패를 섣불리 평가하지 말라는 교훈을 알려줬다. 준수한 타격, 민첩한 주루 그리고 탄탄한 수비 삼박자를 자랑하며 SK가 가장 필요했던 외야수 겸 1번 타자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노수광은 높은 0.383의 출루율을 바탕으로 SK 타선이 생산해내는 홈런의 가치를 높였다.
아쉬웠던 선수 – 산체스, 최정
시즌 초까지만 하더라도 앙헬 산체스에 ‘아쉬움’이라는 수식어가 붙일 사람이 있었을까. 그러나 산체스는 시즌을 거듭하면서 점점 실망을 안겼다. 8월 12일 기아 상대로 0.1이닝 동안 10실점을 한 경기는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 자체였다. 10월부터 포스트시즌까지는 결국 불펜으로만 나서게 됐다.
물론 이는 산체스의 부상 이력을 살펴봤을 때 어느 정도 계산 내의 행보였다. 2015시즌 후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서 2016시즌을 건너뛰고 2017시즌에 복귀해 고작 67.2이닝만을 던졌다. 바꿔 말해 2018시즌부터 풀타임 선발을 소화할 만한 체력을 갖출 수는 없었다. SK 프런트는 산체스에게 시즌 막판 휴식을 부여하고 불펜으로 전환시키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OPS 0.915를 기록한 주전 3루수를 아쉽다고 표현하는 건 우승팀만이 부릴 수 있는 호사가 아닐까. 그러나 그 선수가 다름 아닌 ‘최정’이라면 이해 못 할 일만은 아니다. 올해로 만 31세가 된 최정은 예전보다 컨택에 어려움을 겪으며 전반적인 성적이 떨어졌다. 그의 삼진비율은 올해 규정타석을 소화한 선수들 가운데 3위에 해당한다. 이런 부진은 뚜렷한 전조증상 없이 찾아왔기에 누구보다 본인이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한국시리즈 6차전에 나온 극적인 동점포는 그가 내년에 다시 반등하리라는 신호 아니었을까.
각종 선입견을 극복하다
2018시즌 SK 와이번스는 ‘야구계의 뿌리 깊은 선입견’에 결정적인 어퍼컷을 날렸다. 세간에서는 ‘한 방’에 의존하는 야구는 한계가 있다고 주의를 했고, 홈런 능력에도 불구하고 타율이 낮았던 로맥과의 계약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있었다. 그러나 SK 구단은 최적의 타구 각도 및 타구 속도에 대해 일찌감치 객관적으로 연구했다. ‘일정 각도로 강한 타구를 날릴 수 있는 능력’은 타율보다 안정적이며, 예측이 가능하다. 보란 듯이 로맥은 올 시즌에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수비에 대한 선입견 또한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올 시즌 SK의 야수진은 116개의 실책을 범하며 그 부문 2위에 올랐다. 종종 선보인 수비 시프트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인플레이 타구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처리하는지,’ 즉 ‘수비 효율(DER: Defensive Efficiency Ratio)’을 살피지 않은 게으른 분석에 기인했다. 이에 따르면 SK 수비 능력은 좋은 쪽으로 2위였다.
SK의 불펜에 대한 평가 또한 높지는 않았다. 서진용의 성장은 더뎠고 김주한은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시즌을 일찍 마쳤다. 박정배와 윤희상은 필승조로 시작했으나 아쉬움을 남겼다. 실제로 정규시즌에 SK는 58%의 세이브 성공률로 리그 7위에 머무르는데 그쳤다.
하지만 2일 혹은 3일마다 휴식일이 주어지는 포스트시즌 단기전은 다른 이야기였다. 김태훈과 정영일, 김택형, 그리고 산체스를 전면에 앞세운 SK의 소방수들은 포스트시즌 통틀어서 2.84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어느 팀보다 단단한 모습을 보여줬다. 야구계의 많은 전문가들이 뒷문이 헐겁다는 기존 이미지를 근거로 한국시리즈에서 SK의 열세를 예측했지만, 비룡은 이마저도 타파한 것이다.
잔치는 끝났다
우승의 기쁨에 취해있을 팬들에게 너무 야박한 말일까. 그러나 우승팀 SK에게도 오프시즌에 당면한 과제가 적지 않다. 우선 감독의 교체다. 2년 임기를 마친 힐만은 우승을 끝으로 미국으로 돌아갔고 그동안 단장직을 수행하던 염경엽이 감독을 맡게 됐다. 염경엽은 지난 2013년부터 2016년까지 4년간 넥센 감독으로서 팀을 성공적으로 가을야구로 이끈 바 있다. 과연 그가 감독으로서의 첫 우승을 SK에서 맛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선수 구성에도 변화가 있다. 우선 지난 4년간 최고의 활약을 펼친 메릴 켈리가 MLB로 향하면서 팀과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일찌감치 켈리의 역수출을 예감한 SK는 캐나다 국가대표팀 출신의 94년생 우완 투수 브록 다익손을 영입했다. 하지만 여전히 선발투수 한 자리와 3루수, 그리고 포수는 정해지지 않았다. 산체스의 후반부 부진을 체력 부족으로 해석할 지, 아니면 본모습으로 해석할 지에 따라 선발투수의 가닥은 잡힐 것이다. 이재원과 최정은 FA자격을 취득했다. SK와 두 선수 사이의 협상을 따라가는 것도 스토브리그의 재미일 것이다.
우승하기가 무섭게 여러 과제를 껴안은 SK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어느 구단보다 확고한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를 활용해서 타자들에게는 이상적인 발사각을, 야수들에게는 수비 시프트를, 투수들에게는 빠른 공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약 10년 전에 이룩한 왕조의 흐릿한 향기에 취해있지 않고 세대교체를 훌륭하게 이뤄냈다. 동시에 ‘스포테인먼트’라는 기치를 내세워 팬들을 매료시켰다. 올바른 방향을 아는 팀은 어느 난관이 오더라도 꿋꿋이 전진할 것이다. 역대 5번째 업셋을 이룩한 2018시즌처럼 말이다.
사진 출처=SK 와이번스 홈페이지 제공
야구공작소
박광영 칼럼니스트 / 에디터=이제금, 박승종, 이예림
기록 출처: STATIZ.COM, 스포츠투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