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스프링 캠프가 한창이던 2월,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학고재 갤러리에선 야구와 관련된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렸다. 바로 ‘미리 보는 한국야구박물관’ 전시회다. 이번 전시엔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보관 중이던 야구 관련 기념품 192점이 등장했다. 주요 선수들의 사인볼과 유니폼을 비롯해 과거 야구용품이나 트로피 등 한국야구 100여 년을 돌아볼 수 있는 전시품도 있었다. 입장료 수익은 전액 야구발전기금으로 기부됐다.
전시는 2월 12일(화)부터 24일(일)까지 진행됐다. 갤러리를 찾은 야구팬들은 전시 기획 자체엔 호평을 보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과거의 야구 관련 사료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전시라고 평가했다. 아쉬움도 있었다. 유료 관람이라기엔 다양하지 못한 전시품과 2주가 채 되지 않는 짧은 전시 기간은 채우지 못한 갈증을 남겼다.
‘미리 보는 한국야구박물관’ 주최자인 우중건 학고재 부사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야구박물관 개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계속 연기된다고 들었다”며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소중한 유물 중 일부라도 소개하고자 전시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좋은 취지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기존의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이번 전시품은 야구박물관에서 팬들과 만나야 했다. 이미 개장하고도 남았어야 하는 박물관은 제대로 된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논란만 덕지덕지 붙었다.
공중에 떠버린 한국야구박물관
한국야구박물관은 지난 2014년 부산광역시가 KBO와 체결한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을 위한 협약서’에서 시작됐다. 부산시 기장군이 약 1,850㎡의 부지를 제공하고, 유치에 적극적이었던 부산시가 100억 원가량의 사업비를 투자하는 계획이었다. 개장 후 운영은 KBO가 맡기로 했다.
야구박물관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협약서를 체결하기 전부터 기장군과 군 의회 간의 갈등으로 잡음이 생겼고, 체결 후에도 예산 문제로 진행이 미뤄졌다. 2017년엔 구체적인 개관 일자(2019년 8월 23일)까지 잡으며 계획에 청신호가 켜진 듯했지만, 시작조차 쉽지 않았다. 이듬해 부산시의회가 2019년도 시 예산안에서 야구박물관 건설비용을 전액 삭감하며 건립 여부는 안개 속으로 빠졌다.
건설 비용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박물관 운영 비용이다. 부산시가 운영 비용까진 부담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히자 KBO는 연간 20억 원에 달하는 비용에 부담을 느꼈다.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과정에서 보유금을 대부분 써버려 재정 형편이 여유롭지도 않았다. 결국 KBO와 지자체의 이른바 ‘주판알 튕기기’ 때문에 한국야구박물관은 아직도 협약서 속에만 존재하고 있다.
부산시의회는 사업을 재검토한다고 밝혔고, KBO는 야구박물관 업무의 주관부서를 바꿨다. 모두가 진전 없이 시간을 버리는 동안 귀중한 한국야구와 관련된 자료는 야구회관 지하 1층에 잠들어 있다. 그렇게 묶여 있는 자료가 약 5만여 점으로,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것의 250배가 넘는다.
그럼에도, 꼭 있어야 하는 야구박물관
한국야구박물관은 야구계와 팬의 오랜 염원이다. 실제로 이번 전시회에 자료를 기증한 명단을 보면 이를 느낄 수 있다. 장태영, 박현식 등 해방 직후의 야구인부터 백인천, 선동열, 최동원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선수의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비교적 최근 선수인 박명환이나 2011년 창단한 NC 다이노스의 이름도 있다. 이처럼 야구계에선 야구박물관 건립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탰다. 팬들 역시 전시장을 찾아오며 앞으로 건립될 박물관에 대한 기대를 표출했다.
하지만 현실은 우울하기만 하다. 야구박물관 자료수집위원회는 2012년부터 2017년 1월까지 전시 자료를 모으고 해산했다. 한국야구인명사전을 편찬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위해 동분서주한 홍순일 전 자료수집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전설적인 선수들을 설득해 물품을 수집했다. 다들 아쉬워하면서도 야구박물관에 전시되는 것이 더욱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기꺼이 귀중한 물품을 내놨다. 그런데 아직도 박물관에서 야구 관련 물품을 보지 못하니 우스갯소리로 ‘사기당한 것 아니냐’고 한다”고 말했다. 야구인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아카이빙(Archiving)’에 소홀했다. 시대를 주름잡은 영화의 원본 필름이 밀짚모자의 장식으로 쓰이고, 전설적인 TV 쇼 프로그램의 영상 테이프를 재활용하는 참사도 빈번했다. 야구계도 마찬가지다. 수년 전에 언론을 통해 아마추어 야구 기록지나 기념품이 목동야구장 창고에 방치돼 있음이 드러났다. 그나마 KBO의 경우 자료보관소에 항온•항습 장치를 설치했다. 그렇지만 전산처리 중인 기록지의 행방이 묘연해진 일도 있었다고 하니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순 없다.
늦었지만, 아직은 바로잡을 수 있다. 한국야구 110여 년의 역사가 담긴 자료는 어두운 수장고에 잠들어 있기 위해 야구회관으로 온 것이 아니다.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모인 이 자료를 언제까지고 어둠 속에 둘 순 없다. 언제쯤 우리는 이 자료를 밝은 곳으로 꺼낼 수 있을까?
야구공작소
양정웅 칼럼니스트 / 에디터=조예은
전시는 2월 12일(화)부터 24일(일)까지 진행됐다. 갤러리를 찾은 야구팬들은 전시 기획 자체엔 호평을 보냈다. 평소에는 보기 힘든 과거의 야구 관련 사료들을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전시라고 평가했다. 아쉬움도 있었다. 유료 관람이라기엔 다양하지 못한 전시품과 2주가 채 되지 않는 짧은 전시 기간은 채우지 못한 갈증을 남겼다.
‘미리 보는 한국야구박물관’ 주최자인 우중건 학고재 부사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야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야구박물관 개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계속 연기된다고 들었다”며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소중한 유물 중 일부라도 소개하고자 전시회를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좋은 취지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한편으론 씁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기존의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이번 전시품은 야구박물관에서 팬들과 만나야 했다. 이미 개장하고도 남았어야 하는 박물관은 제대로 된 시작도 하지 못한 채 논란만 덕지덕지 붙었다.
공중에 떠버린 한국야구박물관
한국야구박물관은 지난 2014년 부산광역시가 KBO와 체결한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 건립을 위한 협약서’에서 시작됐다. 부산시 기장군이 약 1,850㎡의 부지를 제공하고, 유치에 적극적이었던 부산시가 100억 원가량의 사업비를 투자하는 계획이었다. 개장 후 운영은 KBO가 맡기로 했다.
야구박물관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협약서를 체결하기 전부터 기장군과 군 의회 간의 갈등으로 잡음이 생겼고, 체결 후에도 예산 문제로 진행이 미뤄졌다. 2017년엔 구체적인 개관 일자(2019년 8월 23일)까지 잡으며 계획에 청신호가 켜진 듯했지만, 시작조차 쉽지 않았다. 이듬해 부산시의회가 2019년도 시 예산안에서 야구박물관 건설비용을 전액 삭감하며 건립 여부는 안개 속으로 빠졌다.
건설 비용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박물관 운영 비용이다. 부산시가 운영 비용까진 부담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히자 KBO는 연간 20억 원에 달하는 비용에 부담을 느꼈다.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과정에서 보유금을 대부분 써버려 재정 형편이 여유롭지도 않았다. 결국 KBO와 지자체의 이른바 ‘주판알 튕기기’ 때문에 한국야구박물관은 아직도 협약서 속에만 존재하고 있다.
부산시의회는 사업을 재검토한다고 밝혔고, KBO는 야구박물관 업무의 주관부서를 바꿨다. 모두가 진전 없이 시간을 버리는 동안 귀중한 한국야구와 관련된 자료는 야구회관 지하 1층에 잠들어 있다. 그렇게 묶여 있는 자료가 약 5만여 점으로,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것의 250배가 넘는다.
그럼에도, 꼭 있어야 하는 야구박물관
한국야구박물관은 야구계와 팬의 오랜 염원이다. 실제로 이번 전시회에 자료를 기증한 명단을 보면 이를 느낄 수 있다. 장태영, 박현식 등 해방 직후의 야구인부터 백인천, 선동열, 최동원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선수의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비교적 최근 선수인 박명환이나 2011년 창단한 NC 다이노스의 이름도 있다. 이처럼 야구계에선 야구박물관 건립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힘을 보탰다. 팬들 역시 전시장을 찾아오며 앞으로 건립될 박물관에 대한 기대를 표출했다.
하지만 현실은 우울하기만 하다. 야구박물관 자료수집위원회는 2012년부터 2017년 1월까지 전시 자료를 모으고 해산했다. 한국야구인명사전을 편찬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위해 동분서주한 홍순일 전 자료수집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전설적인 선수들을 설득해 물품을 수집했다. 다들 아쉬워하면서도 야구박물관에 전시되는 것이 더욱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기꺼이 귀중한 물품을 내놨다. 그런데 아직도 박물관에서 야구 관련 물품을 보지 못하니 우스갯소리로 ‘사기당한 것 아니냐’고 한다”고 말했다. 야구인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아카이빙(Archiving)’에 소홀했다. 시대를 주름잡은 영화의 원본 필름이 밀짚모자의 장식으로 쓰이고, 전설적인 TV 쇼 프로그램의 영상 테이프를 재활용하는 참사도 빈번했다. 야구계도 마찬가지다. 수년 전에 언론을 통해 아마추어 야구 기록지나 기념품이 목동야구장 창고에 방치돼 있음이 드러났다. 그나마 KBO의 경우 자료보관소에 항온•항습 장치를 설치했다. 그렇지만 전산처리 중인 기록지의 행방이 묘연해진 일도 있었다고 하니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순 없다.
늦었지만, 아직은 바로잡을 수 있다. 한국야구 110여 년의 역사가 담긴 자료는 어두운 수장고에 잠들어 있기 위해 야구회관으로 온 것이 아니다.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 모인 이 자료를 언제까지고 어둠 속에 둘 순 없다. 언제쯤 우리는 이 자료를 밝은 곳으로 꺼낼 수 있을까?
야구공작소
양정웅 칼럼니스트 / 에디터=조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