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공작소] 3번째 재창단, 모교로 돌아온 ‘로맨틱 올드스쿨’ 경기상고 최덕현 감독을 만나다
입력 : 2019.04.0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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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프로시절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노력만큼 나오지 않는 성적에 맘고생도 심했지만, 야구를 그만두고 시작한 보디빌딩은 열심히 한 만큼 몸에 보이는 변화가 매력적이었습니다. 성취감도 느꼈고, 그 성취감이야 말로 진짜 행복이라는 걸 느꼈죠”

-“우리 선수들도 그래요, 꼭 야구 선수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야구를 곁에 둘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야구 지도자, 구단 스태프도 있고 전력분석원이나 체육학과 졸업 후 운동에 관련된 일을 할 수도 있죠. 학생들이 생각을 좀 더 넓게 길게 가졌으면 합니다”

-“맡은 분야를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코치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면 감독은 팀 분위기부터 선수들이 나아가야할 방향까지 제시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아주 행복한 피로감에 젖어 있습니다”

-“투구 수 제한이요? 신생 팀 입장에서 불리할 수 있겠지만 멀리 보았을 때 선수들의 보호차원에서 반대할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더 많은 선수를 기용해 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 합니다. 여러 선수들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본인들이 열심히만 해준다면요. 올해 정말 많은 투수들을 기용해 볼 생각입니다”

-“고교 선수들에게도 웨이트 트레이닝은 근력 향상과 부상 방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인력의 부족으로 아직까지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프로그램을 짜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경기 상고는 신생 팀입니다. 이건 분명히 약점이죠. 하지만 저희는 그 어떤 팀보다도 야구를 하면서 행복한 아이들과 끈끈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팀입니다. 개인이 아닌 팀을 위해 항상 ‘Only One Team’ 이 되려는 노력이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팀 케미스트리 만큼은 그 어떤 팀에도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스포탈코리아] 1923년 처음으로 문을 연 뒤, 올해로 개교 96년째를 맞는 경기상고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1993년 폐부 이후 26년 만 재창단. 그리고 그 해 11월 대한야구 소프트볼협회의 최종 승인을 얻었다.

다시 부활한 경기상고의 초대 사령탑은 63회 졸업생으로 OB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최덕현 감독이 맡게 되었다. 백지에서 시작된 선수단 구성은 2학년 전학생 17명과 1학년 신입생 9명 등 총 26명으로 마쳤다.

본격적인 준비를 끝낸 경기상고는 25일 서울시장기를 시작으로 4월 고교 주말리그에서 본격적인 플레이를 시작한다.

많은 동문들의 도움 덕에 창단 과정이 수월하게 지나갔다는 얘기와 함께, 표정에서부터 부담감보다는 설렘과 기대가 가득해 보이던 최덕현 감독과의 인터뷰 내용을 글로 담아보려고 한다.

“재창단 축하 드립니다. 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한 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상고 63회 졸업생이고 OB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경기상고 야구부 감독 최덕현이라고 합니다.

“감독님의 야구관이 궁금합니다. 야구와 함께하며 느끼셨던 것 중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

야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후배 선수들에게 심어주려 노력 중입니다.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은퇴한 후 보디빌딩 선수에 꿈을 두고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선수 시절에도 정말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만큼의 실력을 그라운드에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보디빌딩은 제가 열심히 운동한 만큼 그게 몸의 변화로 바로 나타난다는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고, 입상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왕 할 거라면 자신들이 정말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했으면 좋겠고, 그렇게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 작은 실적이라도 낼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감독님의 야구관을 바탕으로 경기 내적인 부분(타격/투수/수비)중에서 가장 중요시하시는 부분이 궁금합니다”

저는 평소에도 팀의 수비를 가장 중요시 생각합니다. 매 경기 불 같은 타격을 선보일 수도 없거니와, 투수들이 한 점도 안 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수비력이 뒷받침된다면 매 경기 최고의 모습이 아닐지라도 어려운 상황을 넘기는 힘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저희 경기상고는 주로 1,2학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아직 경험이 부족합니다.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당황하지 않도록 일단 수비력에 중점을 두고 훈련 중입니다.

“올해부터는 감독이라는 자리에서 야구를 경험하시게 됐어요. 본인 내적의 변화나 뭔가 야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코치의 덕목은 본인이 맡은 파트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독은 그게 아니더라구요, 팀의 전체적인 모든 것을 총괄해야 하는 자리에요. 선수들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시해 주고, 팀워크를 맞출 수 있도록 이끌고 나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다는 거죠. 팀의 분위기와 하고자 하는 마음,열정은 정말 중요하니까요.



모교로 돌아온 최덕현 경기상고 감독


“신생팀의 사령탑을 맡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셨을 것 같아요. 책임감과 부담감이 공존하실 것 같은데 경기 상고를 고르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부담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입니다. 그래도 경기상고는 제 모교이고, 마음 한구석으로는 재창단을 했으면 하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야구인에게 모교 야구부가 사라지는 건 정말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감독으로 선임되었을 때 정말 기뻤습니다. 보디빌딩을 하면서도 꼭 한 번 다시 야구계로 돌아오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마음만으로는 안 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습니다. 창단 조건 중에 선수 15명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총동문 야구부 후원회 안형진 회장님의 지휘 아래 저의 성실함과 강한 책임감을 알고 계신 주위 감독님과 코치님 그리고 학부모님들의 도움으로 어렵지 않게 선수 수급을 할 수 있었고, 창단식도 잘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팀에서 좋은 선수들을 많이 배출시켜서 경기상고 선수들을 이곳 저곳에서 찾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앞에서도 여쭤봤지만 감독직을 맡기 전에 여러 방면에서 야구와 함께하셨습니다. 그때의 경험들이 지금 선수들을 지도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여러 가지 경험을 해 본 점이 지금 저와 함께 팀을 이끌어주는 젊은 코치들에게 많은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도방법을 공유할 수도 있고, 선수들에게도 다양한 얘기를 해주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 경험을 살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지도방법으로 우리 선수들이 야구를 보다 잘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금 냉정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엘리트 야구의 절대 목표는 프로 지명을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과 중심에 대한 우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고교야구 감독으로서’ 이러한 어려움에 대한 고민이나 다른 방향성, 철학이 있으실까요?”

사실 입시나 프로에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고3이 되면 스트레스와 부담감 때문에 제대로 실력을 선보이지 못한 채 끝까지 집중하지 못하고 포기하는 선수들이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선수들이 절실하게 최선을 다해 야구를 해야 하지만 좋은 결과가 따르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물론 좋은 성적을 거두고 프로팀, 대학 팀으로 진학하는 것이 최고의 결과겠죠. 하지만 꼭 프로선수가 아니더라도 야구와 함께 하는 길은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선수시절의 경험을 살려 지도자의 길을 걷거나 구단직원이 될 수도 있고, 전력분석가가 될 수도 있죠. 프로 구단이 아니더라도 체육학과로 진학해서 여러 관련 분야에 종사할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선수들은 학업과 야구를 병행하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열심히 하고 있나 불시 방문을 하기도 합니다(웃음). 상고 수업과정의 장점은 사회 생활에서 쓰임새가 많은 과목들이 많다는 점이거든요. 적어도 우리 선수들은 ‘어른 아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로에서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도하는 선수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교야구에는 이 개념이 얼마나 접목 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근력과 파워를 보강하기 위해 트레이닝을 합니다. 이 두 가지는 야구에서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고교야구에서는 아직 웨이트 트레이닝이 실질적으로 많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훈련량으로 인해 어린 선수들이 웨이트 트레이닝에 할애할 시간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인력이 부족해요. 웨이트 트레이닝은 선수들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전문 지식 없이 지도하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죠.

“그럼 감독님의 경험을 토대로 올해는 경기상고만의 차별화 된 몸 관리 프로젝트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그 경험을 제자들에게 어떻게 녹여 내실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선수들에게 효과적인 트레이닝을 시키기 위해 제가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료들을 포트폴리오로 남겨서 코치들과 공유하고 선수들을 안전하게 지도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야구를 잘하기 위해서는 유연성, 몸의 가동성, 골반 유연성, 회전, 순간 스피드 등과 같은 몸의 움직임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선수가 다치고 난 뒤의 사후대처보다 부상 예방 및 보호가 더욱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걸 실천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훈련 방법이 필요하구요. 그래서 시즌 중에는 선수들에게 몸을 잘 움직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비 시즌 때는 몸 만들기와 힘 키우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고교 야구에서 투구 수 제한이 실시되었습니다. 현장에서 가장 피곤한 부분 중에 하나가 투수들의 이닝 및 투구 수 관리라고 들었습니다. 투구 수 제한 규정에 대한 감독님의 솔직한 입장이 궁금합니다”

<고등학생의 경우 1일 최다 투구 수를 105개로 제한키로 했고, 76개 이상은 4일 휴식, 61~75개는 3일 휴식, 46개~60개는 2일 휴식, 31개 이상 45개까지는 1일 휴식>

저희 같은 신생팀은 조금 불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 차원에서, 선수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는 당연히 지켜야 할 좋은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또 고교야구에 늘 따라다녔던 수식어가 ‘투혼’으로 포장된 선수들의 혹사였는데 이런 식으로 투구 수를 규정으로 제한한다면 그러한 혹사를 막을 수 있겠죠. 그 동안 기회를 못 받던 선수들이 새롭게 빛을 볼 수도 있을 거구요. 물론 본인들이 열심히만 해준다면 저는 언제든 새로운 얼굴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 있습니다.

“신생학교 감독이라는 입장에서, 고교야구 팀 개수 증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평소에 가지고 계셨던 본인만의 철학이 있는지 궁금합니다”(일본은 약 4,000여개의 고교팀이 있는데 한국에는 2019년기준 대회 참가 팀이 딱 80여개. 정확히 50배 차이가 난다)

당연히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중학교 선수들은 많은데 고등학교 팀이 적다 보니 한쪽으로 몰리는 경향이 생깁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팀이 조금 더 많이 생긴다면 자연스럽게 경쟁이 생겨 아마추어 야구의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팀들의 숫자도 늘려서 지금보다 더 경쟁하는 구도를 만든다면 선수들의 기량 발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저는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써 팀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수층이 넓어지면 그만큼 원석을 발굴할 확률도 높아집니다. 그런데 선수 부족으로 폐부되는 학교도 더러 나오곤 합니다. 내실을 다지는 것도 중요해 보입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합니다”

팀 숫자만큼 내실을 다지는 것 또한 당연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실을 다지는 문제는 역시 저희 지도자들이 더욱 노력해서 인식을 바꿔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팀의 올해 성적에 대한 얘기도 잠깐 해보겠습니다. 신생 팀의 입장에서 기존의 강호들과 대등하게 맞붙기 위한 전략이나 대비책 같은 것이 있을까요”

전략은 당연히 있습니다. 전략 없이 경기에 임할 수는 없으니까요. 일단, 저희 팀은 3학년 없이 1,2학년들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저는 선수들은 하나의 팀으로 묶는 과정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선수 개개인이 본인들의 야구를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구성원들이 목표를 가지고 하나의 팀이 된다면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대처할 힘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이런 것을 강조하지 않고 저부터 행동으로 선수들에게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처음에는 어색해 하던 선수들도 점점 저의 뜻에 공감해주었습니다. 먼저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팀워크가 넘치는 끈끈한 팀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그게 저의 올해 전략입니다.

“그렇다면 올 시즌 라이벌로 생각하시는 팀, 꼭 잡아보고 싶은 팀이 있다면”

서울 고등학교를 꼭 한 번 잡아보고 싶습니다. 무언가 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제가 감독 생활 이전에 코치로 근무했던 곳이기도 하고 좋은 추억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올해 좋은 경기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올 시즌 임하는 각오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희 경기상고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팀워크’입니다. 개인보다는 팀을 위하는 팀, 정말 신생팀이지만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그런 인상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올 한 해 저도 선수들도 정말 후회 없이 야구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그런 2019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게 저의 각오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경기고등학교와의 연습 시합을 관전할 수 있었다. 크게 소리치며 몸을 푸는 선수들의 모습만으로도 최덕현 감독의 마지막 한마디가 전해지는 모습이었다. 올 시즌 끈끈한 팀워크를 갖춘 경기 상고의 비상을 기대해보자.

야구공작소
송동욱 칼럼니스트 / 에디터 송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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