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인천] 김현서 기자= 박철순, 선동열, 이승엽, 류현진, 이대호, 린드블럼의 공통점은? KBO리그 역대 정규리그 MVP 수상자들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즌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나면 이들의 뒤를 이을 새로운 MVP가 탄생하게 된다.
매 시즌 영광의 주인공을 보면서 때로는 그리운 얼굴들이 생각나는 야구팬들도 있을 것이다. 기자는 수많은 최우수 선수들 가운데 프로야구 역사상 이적생(당해 연도) 최초 MVP를 받았던 김상현(40)이 떠오른다.
김상현은 프로 입단 후 거포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입단 팀 해태 타이거즈와 두번째 팀 LG 트윈스에서 터질 듯 끝내 터지지 않으며 2군을 전전했다. 그런 와중에 운명의 트레이드가 찾아왔고 2009년 4월 고향 팀 KIA로 돌아간 김상현은 121경기에서 타율 0.315, 36홈런 127타점을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선수로 거듭났다. 또한 KIA의 통산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도 이끌었다. 그야말로 김상현의 해였다. 시즌이 끝난 직후에는 각종 시상식에서 홈런왕, 타점왕 수상은 물론 리그 MVP까지 거머쥐었다. 당시 다수의 언론이 김상현을 ‘2009년판 신데렐라’라고 불렀을 정도로 인생 역전을 이뤘다.
한때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스포탈코리아가 2009 MVP 김상현을 만나 선수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Q : 오랜만이다. 그동안의 근황이 궁금하다.
A: 임의탈퇴 신분일 때 프로 무대로 복귀하기 위해 독립 구단에 잠깐 있었다. (폼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만들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복귀가 무산되면서 다른 일을 알아보다가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시작하게 됐다. 현재는 아카데미에서는 엘리트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Q : 독립 구단 ‘저니맨 외인구단’에서 뛰었을 때, 팀 분위기나 비하인드를 풀자면.
A: 선수들의 분위기는 되게 좋았다. 친구처럼 잘 지내고. 그런데 다시 프로에 가고 싶어 하는 선수들이 모여서 운동을 하는 곳인데 (간절함에 비해) 운동량이 많이 부족해 보였다. 그 부분에 대해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도 쉽게 따라가지 못하더라. 안타까웠다.
Q: 감독 겸 선수로 있었는데 선수로만 뛰었을 때와 다른 점은.
A: 감독 겸 선수를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다. (선수로서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내가 타석에서 못 치고 나오면 후배들의 아쉬워하는 표정을 봐야 하니까.(웃음)

Q : 근황은 여기까지. 야구 인생에서 황금기는 언제라고 생각하나.
A: 힘든 것부터 이야기하자면 LG에 있었을 때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은 상황에서 정성훈 선수와 이진영 선수가 FA로 LG에 왔고(2009년),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에게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타격에서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코치님께 스스로 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매일 새벽 2시까지 연습했다. 그 선수들보다 파워 면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기술적인 면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보려고 연습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시즌 개막 전) 1차 캠프 연습 경기에 나갔는데 잘 쳤다. 생각보다 성적이 좋으니까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2차 캠프 명단에서 제외됐다. 받아들였지만, 마음의 상처는 크게 받았다. 옛날 기사를 찾아보면 야구 그만두고 당구장 차린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결국 2군에서 시즌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LG에 계셨던 황병일 코치님(당시 KIA)이 연락이 오셔서 "몸은 괜찮냐, 어떠냐"고 물어보시더라. 그래서 "코치님, 수비는 모르겠는데 타격은 진짜 괜찮습니다"라고 말씀드렸는데 곧바로 그날 저녁에 KIA로 트레이드가 됐다. 나에겐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 거니까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고, 2009시즌에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Q. 홈런을 잘 치게 된 비결도 있을까.
A: 혼자 했다기보다는 당시 KIA 타격 코치님들과 타격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이해가 잘 됐다. 나에게 잘 맞는 타격폼을 찾아서 그 방향으로 계속 연습하다 보니 좋은 결과로 이어졌던 것 같다.
Q. 홈런왕의 기운을 얻기 위해서 배트를 달라고 했던 선수가 있나.
A: (김)현수가 형님 너무 잘 치니까 배트를 하나 달라고 하더라. 나보다 야구를 더 잘하는 동생이지만, 후배가 달라고 하니까 안 줄 수 없더라. 갖고 있는 배트를 줬는데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한 타석 만에 부러졌다고 하더라. (웃음) 현수는 900g짜리 배트를 쓰고, 나는 860g짜리 쓰다 보니 헛돌았던 것 같다. 40g 차이는 엄청나니까.
Q : 혹시 2013년 기아 시절 딱 한 번 LCK포 터졌던 날도 기억하나.
A: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2013시즌은 트레이드됐던 것만 기억난다. (웃음)
Q: 'LC' 이범호, 최희섭과 홈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A: (이)범호와는 동기지만 친분은 없었고 일본 갔다가 KIA로 오면서부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범호가 오면서 수비포지션을 바꿔야 했는데 그때 범호가 나를 생각해서 코치님들한테 본인은 어느 자리에 가도 상관없다고 말하더라. 마음은 고마웠지만 내가 외야수로 이동했다. (웃음)
(최)희섭이형과는 고교 시절부터 알고 지냈지만 KIA에서 같이 뛰면서 많이 친해졌다. 뒤에서 내가 형을 받쳐주니까 희섭이 형이 나를 많이 고마워했고 나도 형이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다.

Q : ‘빠던(배트 플립)’이 찰진 것으로 유명하다. 혹시 남몰래 연습? 아니면 본능적?
A: 배트 플립이 되는 이유가 팔로스루(타자가 배팅한 후 몸의 회전 방향으로 타격 자세를 끌고 가는 동작) 때문이다. 볼이 배트 중심에 맞으면 느낌이 크게 오니까 더 앞으로 힘을 주다 보니 그 탄력에 배트가 풀려버리게 되는 건데 맞는 느낌이 좋다 보니까 나도 모르게 슬슬 놓더라.(웃음) 솔직히 연습도 많이 했다. 배트 플립 그 자체를 연습했다기 보다는 어렸을 때 우상이 많았다. 장성호 선배도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고, 이병규 선배의 부드러운 타격폼도 멋있게 보여서 자세를 많이 따라 했었다. 그러다가 이종범 선배 타격 자세를 봤는데 배트 플립을 되게 자주 되셨다. 왜 저런 형태가 나올 수 있을까? 생각하고 공부하다 보니 결론은 팔로스루였다.
Q : 그리고 선수 시절 일명 '통신 3사 팀'을 모두 거쳤는데 현재 이용하는 통신사는 무엇인지.(웃음)
A: 현재는 S사를 쓰고 있다. 선수 시절에는 팀을 옮길 때 마다 통신사를 바꿨고 다른 선수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 통신사 팀에 있으면서 좋았던 적이 딱 한번 있었는데 KT에 있을 때였다.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갈 때 데이터를 주더라. 톡이나 영상 통화를 무제한으로 할 수 있어서 좋았던 기억이 있다.(웃음)
Q : 각 구단 마다 팀 컬러가 있듯이 분위기도 다를 것 같다. 본인과 가장 잘 맞았던 팀은.
A: 아무래도 전라도 출신이다 보니까 기아 쪽으로 많이 기우는 것 같다. 해태에 입단해서 LG로 트레이드 됐을 때 많이 아쉬웠지만, LG에서 다시 KIA로 트레이드 됐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 LG가 싫어서 좋았던 게 아니라 이 팀에서 잘하고 싶었는데 팀 컬러에 기가 눌려서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실제로 못하기도 했지만. KIA는 고향 팀이다 보니 더 편한 마음으로 운동할 수 있었다.
영상 촬영, 편집= 김형준 PD
▶인터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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