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 있어도 타자 안 시켜요'' 거포 유망주도 투수하는 고교야구, 나무배트 도입 20년이 바꿔놨다 [긴급진단①]
입력 : 2024.02.1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타뉴스 | 김동윤 기자]
LG 김범석. 김범석은 경남고 재학 시절인 2022년, 나무 배트 도입 후 처음으로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첫 고교 선수가 됐다.
LG 김범석. 김범석은 경남고 재학 시절인 2022년, 나무 배트 도입 후 처음으로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첫 고교 선수가 됐다.
"과연 KBO에 제2의 박병호, 이대호가 나올 수 있을까요."

지난해 목동야구장을 찾은 한 KBO 구단 고위관계자 A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교야구 경기를 지켜보며 한 말이다.

2024년은 한국 고교야구에 나무 배트가 도입된 지 20년이 되는 해다. 2004년 대한야구협회(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국제 무대 흐름에 따라 고교야구에 나무 배트를 전격 도입했다. 그해 국제야구연맹(현 국제야구소프트볼연맹)이 18세 이하 청소년 국제대회에서 나무 배트를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기 때문. 취지는 좋았다. 선수들이 국제무대 및 KBO리그 진출 시 나무 배트에 빠르게 적응하게 하고, 강한 타구로 인한 부상 빈도를 낮출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나무 배트의 도입은 현시점에서 득보다 실이 조금 더 큰 모양새다. 일단 거포의 존재가 사라졌다. 나무배트 도입 후 2022년 경남고 김범석(20·2023년 1R 7번 LG)이 10개 홈런을 치기 전까지 한 시즌 두 자릿수 홈런을 치는 고등학생이 없었다. 2004년 이후 고교 통산 최다 홈런이 휘문고 출신 신민철(21·2022년 2차 3R 두산)의 13개일 정도다. 강호들이 모이는 전국대회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해서, 1~2개만 쳐도 홈런왕이 됐다. 지난해 황금사자기에서 서울고 여동건(19·2024년 2R 12번)이 홈런 1개로 대회 홈런왕으로 뽑힌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재의 나무 배트는 2004년 이전에 쓰이던 배트들보다 반발력이 낮다. 그뿐 아니라 나무 배트는 알루미늄 배트보다 스윗 스팟의 범위가 좁아 정확한 타격이 어려워 장타를 뽑아낼 확률이 줄어들었다. 자연스레 타자 유망주들은 콘택트에 집중하게 됐다. 반대로 마운드에서는 어느 정도 디셉션(숨김 동작)과 제구력이 뒷받침되면 타자를 맞춰 잡을 수 있어 평균 시속 130㎞대 에이스나 사이드암 피처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유망주들의 '투수 쏠림화'다. 최근 아마야구에는 투고타저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과거 톱급 투수 유망주의 기준이었던 시속 150㎞의 빠른 공은 1라운드 지명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 지난해만 해도 10여 명의 선수들이 150㎞를 던졌고, '2024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번부터 9번까지 모조리 투수가 지명받았다.

반면 타자 쪽에서는 거포 유형은 고사하고 전체 1번급 유망주도 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중학교 때까지 장타를 곧잘 날리던 톱급 타자 유망주들이 고등학교 진학 시 투수로 진로를 확정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아예 시작부터 투수만 시키려는 학부모들도 적지 않다. 이에 KBO 구단 고위관계자 A는 "요즘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재능이 있다 싶으면 학부모들이 타자가 아닌 투수를 시키려 한다. 타자는 안 시킨다"고 아쉬워하며 "타자가 투수보다 비교적 신경 쓸 것이 많다. 아무리 타격을 잘하더라도 수비를 못하면 지명 순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T 박병호./사진=뉴스1
KT 박병호./사진=뉴스1

아마야구의 투·타 불균형은 KBO리그와 한국 야구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나무 배트 도입 세대들이 프로에 첫 진입한 2007년 이후 KBO리그 토종 홈런왕은 이대호(42·은퇴), 최형우(41·KIA 타이거즈), 박병호(38·KT 위즈), 최정(37·SSG 랜더스), 김재환(36·두산 베어스) 등 대부분 알루미늄 배트를 조금이라도 경험해 본 선수들이었다. 타고투저가 심했던 2017~2020년 무렵에도 김하성(29·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강백호(25·KT) 외에는 20홈런 이상 치는 1990년대생 타자를 보기 힘들었다.

거포의 실종은 투수들의 국제 경쟁력 약화로도 이어진다. 2013년부터 시작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세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의 실패를 두고 지난해 3월 일본 매체 풀카운트는 "한국이 고교야구에서 나무 배트를 사용한 이후 거포는 사라지고 이기기 위한 잔기술만 늘었다. 이는 투수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쳐 좋은 투수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 때문에 나무 배트에서 다시 알루미늄 배트로 다시 돌아가자는 목소리도 차츰 커지고 있다. 정확히는 미국처럼 비목재 배트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목재 배트는 합금(알로이), 탄소섬유(컴포짓), 하이브리드 등 나무가 아닌 재료로 만든 것이다. 여러 나무를 섞어 단가를 낮춘 혼합목재 배트도 대안으로 떠오른다. 미국의 경우 기존 야구계에서 우려하는 나무 배트로 전환 시 적응 문제, 안전 문제 등을 2011년 비목재 배트가 목재 배트와 유사한 성능을 내도록 강제하는 BBCOR(Batted Ball Coefficient Of Restitution) 규제를 도입하면서 상당수 해결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알루미늄 배트'라는 부정적 이미지에 묶여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가 이달 28일 오후 2시 서울 더 케이 호텔에서 개최할 '18세 이하 대회 사용 배트 관련 공청회'는 이 부분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 공청회에는 선수, 현장 지도자, 학부모, 공인 업체 및 관계자 등이 참가하는 가운데 목재, 비목재 배트의 정확한 정의와 도입 시 장단점 등에 대해 논의할 토론의 장이 될 전망이다.

[긴급진단] 고교야구 나무배트 20년

① "재능 있어도 타자 안 시켜요" 거포 유망주도 투수하는 고교야구, 나무배트 도입 20년이 바꿔놨다
② "엄마 죄송해요" 비싼 나무배트 부러질까 맘껏 스윙도 못했다, 고교 타자 유망주의 아픔 '비목재 배트'가 해결할까
③ "알루미늄 쓰면 투수인 우리 애는요" 비목재 배트 향한 불편한 시선, 공청회 통해 해소될까



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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