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후광 기자] “은퇴를 결심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했다. 남들보다 2~3배 더 했다고 자부한다.”
오재원(39)은 지난 2022년 10월 8일 키움 히어로즈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두산 베어스 구단의 배려 아래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다. 선수단 전체가 경기 전 오재원 은퇴 기념 티셔츠를 착용했고, 구단으로부터 은퇴기념 사진 및 유니폼 액자, 꽃다발을 받았다. 전광판에서 오재원의 16년 프로생활이 정리된 영상이 송출된 가운데 오재원은 팬들 앞에서 직접 은퇴사를 밝히는 시간까지 가졌다.
당시 오재원은 “은퇴를 결심하기 전까지 최선을 다했다. 남들보다 2~3배 더 했다고 자부한다. 나보다 연습량이 많고 열심히 하는 선수는 김재환 1명뿐이다. 2009년부터 한 번도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다. 그런 부분을 인정해주셔서 감사하고 마지막에 성적이 좋지 않은 부분은 사과하고 싶다”라고 커리어에 남다른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최선을 다했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라는 말이 가장 많이 하고 쉬운 표현이다.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런 모습을 조금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무한한 사랑을 보내주셨던 ‘최강 10번타자’ 두산 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고 팬들을 향한 당부의 메시지도 남겼다.
그런데 약 2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남들보다 2~3배는 더 했다는 게 야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점이 생겼다. 마약류 상습 복용 혐의로 구속된 것도 모자라 지난 2021년부터 두산 후배들에게 수면제를 대리 처방시켰기 때문이다.
KBO(한국야구위원회)에 따르면 오재원의 전 소속팀이었던 두산 구단은 소속 선수 8명이 과거 오재원에게 수면제를 대리 처방해 건넨 사실을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신고했다.
두산 관계자는 지난 22일 OSEN과의 전화통화에서 “오재원 사태가 터진 뒤 구단 자체적으로 1, 2군을 통틀어 대리 처방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파악한 내용을 절차에 따라 4월 초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신고했고,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현재 구단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모두 마친 상태다”라고 밝혔다.
오재원은 프로야구 현역으로 뛰던 2021년부터 후배들에게 대리 처방을 강요했다. 자진 신고한 8명의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당시 오재원이 주로 2군급 선수들만 골라 심부름을 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채널A에 따르면 수년간 후배들에게 대리처방을 강요하며 폭행과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자진 신고한 A선수는 “되게 무서운 선배였어요. 팀에서 입지가 높은 선배님이시고 코치님들도 함부로 못 하는 선수여서 괜히 밉보였다가 제 선수 생활에 타격이 올까 봐…”라고 밝혔다.
우승 캡틴에게 성대한 은퇴식까지 열어줬던 두산은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구단 내 그 어떤 직원도 오재원의 대리 처방 협박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뒤늦게 이를 파악했더니 현역 선수 8명이 무더기 징계를 받을 처지에 놓였다. 이들이 아무리 2군급 선수라 할지라도 만일 8명이 출장정지 등의 징계를 받아 이탈한다면 1, 2군 모두 전력 손실이 어마어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KBO는 향후 경찰의 수사를 지켜본 뒤 징계 등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두산 관계자는 “피의자 신분이 확인되면 곧바로 엔트리에서 해당 선수들을 제외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김연실 부장검사)는 지난 17일 “오재원을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특정범죄 가중처벌 위반(보복협박 등), 주민등록법·건강보험법 위반, 특수재물손괴,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라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오재원은 지난 2022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필로폰을 투약하고, 지난해 4월 지인의 아파트 복도 소화전에 필로폰 약 0.4g을 보관한 혐의를 받는다.
또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89차례에 걸쳐 지인 9명으로부터 향정신성의약품인 스틸녹스정 2242정을 수수하고, 지인 명의를 도용해 스틸녹스정 20정을 매수한 혐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인이 자신의 마약류 투약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려 하자 망치로 지인의 휴대전화를 부수고 협박하거나 멱살을 잡는 혐의도 적용됐다.
경찰은 이에 앞서 지난달 10일 오재원과 함께 있던 한 여성의 신고로 오재원을 마약 투약 혐의로 임의동행해 조사했다. 당시 오재원은 신고한 여성과 함께 마약 간이 시약검사에서 음성이 나와 귀가했지만 경찰의 추가 단서가 확인되며 19일 체포됐다.서울중앙지법 김미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1일 오후 마약류관리법 위반 및 대리처방 혐의를 받는 오재원의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미경 부장판사는 “도망할 우려가 있다”라고 구속 사유를 밝혔다.
오재원은 21일 오후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포승줄에 묶인 채 서울중앙지법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역 시절 그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했고, 감정 표현도 거침없었지만 이날은 ‘마약 투약을 언제부터 했나’, ‘선수 시절에도 했나’, ‘증거를 숨기기 위해 탈색하고 제모한 게 맞나’, ‘수면제를 대리 처방받은 사실이 있나’ 등을 묻는 취재진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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