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 김동윤 기자]
"부모님은 제 승리가 기적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거든요."
지난 1일 대전 한화전에서 박민호(32·SSG 랜더스)가 757일 만에 승리를 거뒀을 때 가장 놀란 건 빵집을 하시는 아버지였다.
박민호의 아버지가 기적이라고 표현할 만한 경기였다. 박민호가 5회 말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할 때만 해도 SSG는 1-6으로 지고 있었다. 노시환의 투런포를 치고 하위 타선도 계속해서 터지는 등 흐름 자체가 한화의 것이었다.
하지만 박민호가 한화의 그 기세를 조금씩 누그러트리기 시작했다. 첫 두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것을 포함해 5회 말을 삼자범퇴로 끝냈다. 6회 말에는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준 뒤 노시환-안치홍-채은성으로 이어지는 한화 중심 타선을 범타로 돌려세우며 반전의 서막을 알렸다.
SSG 타자들은 이때부터 힘을 내기 시작했다. 7회 초 고명준이 중전 안타로 출루했고 이지영, 최지훈이 볼넷을 얻어 만루를 만들었다. 추신수가 좌익수 뜬 공 타구로 한 점을 만회했고 최정이 볼넷으로 다시 만루를 만든 뒤 한유섬이 좌중간을 가르는 적시 2루타로 주자를 일소했다. 여기에 기예르모 에레디아가 우중간 1타점 적시타에 상대 실책을 유발하는 과감한 주루 플레이로 홈까지 파고드는 원맨쇼를 펼쳐 8-6 역전을 만들었다. 이후 끝까지 동점 허용 없이 경기를 8-7로 마무리 지으면서 박민호는 얼결에 승리 투수가 됐다. 2022년 4월 5일 수원 KT전(1이닝 무실점) 이후 2년 만이었다.
2일 취재진과 만난 박민호는 "나도 승리 투수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형들이 별걸 다 하던데 그라운드 홈런 같은 플레이도 하고 참 고마웠다. 꼭 이기고 싶은 경기였는데 이길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결코 기적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누구든 홈런을 칠 수 있는 SSG는 몇 점 차 경기를 뒤집는 데 익숙한 팀이었다. 그러한 모습을 수년간 봐온 박민호였기에 오히려 태연했고, 형들의 활약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선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실제로 박민호는 똑같은 장소, 똑같은 상대에게 비슷하게 승리투수가 된 적이 있다. 때는 2021년 6월 19일 대전 한화전으로 SSG가 3-5로 지고 있던 6회초 최정-한유섬-제이미 로맥-정의윤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이 4타자 연속 홈런, 일명 백투백투백투백 홈런으로 최종 스코어 7-5로 역전승한 경기였다.
박민호는 "부모님은 내 승리가 기적이라고 표현하셨다. 특히 아버지가 놀라신 것 같은데 그 정도까진 아닌 것 같다. 3년 전에도 여기서 백투백투백투백 홈런으로 비슷하게 이긴 기억이 있다. 어제(1일) 승리가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기적까진 아니다. 우리 타자들이 얼마나 잘 치는데요"라고 웃었다.
극적인 승리 후 박민호는 진심 어린 수훈 선수 인터뷰로 화제가 됐다. 1일 경기 후 박민호는 "지난해 야구 인생에 마침표를 찍을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부모님과 아내가 옆에서 변함없이 응원해주고 도움을 줘서 이렇게 오늘 승리 투수를 할 수 있는 날이 돌아왔다. 감사의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고 뭉클한 심정을 전했었다.
기사를 통해 인터뷰가 화제 되자,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왔다는 후문. 하지만 지난해 은퇴를 고민한 것도 이날의 승리가 뜻깊었던 것도 모두 사실이었기에 진심 어린 인터뷰가 나올 수 있었다. 이에 박민호는 "내가 실수한 것 같다. 매니저님한테 한마디 한 게 난리가 났네요"라고 쑥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2년 동안 경기에 많이 못 나갔다. 1군에서 한 달 동안 못 나간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시간이 내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야구하기 전부터 문학구장에 많이 가고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했는데 이제 '내가 좋아했던 그 야구라는 한 페이지를 덮어야 하나'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런 날도 있다"고 솔직한 속내를 꺼내놓았다.
박민호는 2014 KBO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 전체 33순위로 SK(현 SSG)에 입단했다. 입단 6년 차인 2019년부터 2021년까지 144경기 9승 2패 20홀드 4세이브, 평균자책점 2.89로 필승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차츰 입지가 좁아졌고 지난해에는 1군 10경기 출장에 그쳤다.
강화에 오래 머물면서 은퇴와 현역 연장을 두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준 것이 부모님과 지난해 12월 결혼한 아내였다. MBTI(성격 유형 검사) 중 INTP라 T(이성적) 성향이 강한 아들에게 알맞은 조언으로 정신을 재무장하게 했다.
박민호는 "아버지가 빵집을 하시니까 지난해 아버지께 '빵이나 만들까'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야구나 하라'고 하셨다. 그걸 듣고 '아, 이것도 안 먹히는구나' 생각이 들어서 다시 (야구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실 난 T라서 '힘내라, 괜찮다'는 말보단 '야구나 해라' 이런 악의 없는 팩트 폭력이 더 도움이 된다. 물론 계속 때리기만 하면 나도 사람인지라 상처받는데 그때마다 아내가 '힘내라'고 응원해 줘서 도움이 된다"고 미소 지었다.
인터뷰를 통해 울림을 준 건 팬만이 아니었다. 박민호는 1일 경기 승리 후 "강화도에서 함께한 후배들이 너무 떠올랐다.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겠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후배들도 1군 무대에서 (언젠가)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 앞으로도 좋은 경기력을 이어가 팀에게 많은 보탬이 되고 싶다"고 후배들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었다.
이때의 이야기를 2일 꺼내면서 지나가던 정준재(21)를 데려와 열심히 하는 후배라 소개한 박민호다. 정준재는 상인천초-동인천중-강릉고 졸업 후 동국대에 진학해 얼리 드래프트로 2024 신인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50순위로 SSG에 지명된 우투좌타의 발 빠른 내야수다.
박민호는 "지금 강화(SSG 퓨처스 팀 홈구장)에서 훈련을 엄청 열심히 하고 있다. 다들 어리다 보니 힘들고 지칠 텐데 내가 뭐 (대단한 선수는) 아니지만, 너희도 할 수 있다고 동기 부여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젠 선수로서 다시 나아갈 일만 생각하고 있다. 박민호는 "마침표란 말은 지난해 기준의 감정이었고 올해는 아니다. 목표도 따로 세우지 않고 그냥 팀에서 등판하라면 나가고, (상대와) 싸워서 이길 준비만 하고 있다. 강화에서 열심히 한 훈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앞으로도 꾸준하게 그 루틴을 이어가려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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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박민호가 2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대전의 명물 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민호는 경기도 시흥에서 빵집을 하시는 아버지를 둬 '빵'민호라고도 불린다. /사진=김동윤 기자 |
지난 1일 대전 한화전에서 박민호(32·SSG 랜더스)가 757일 만에 승리를 거뒀을 때 가장 놀란 건 빵집을 하시는 아버지였다.
박민호의 아버지가 기적이라고 표현할 만한 경기였다. 박민호가 5회 말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등판할 때만 해도 SSG는 1-6으로 지고 있었다. 노시환의 투런포를 치고 하위 타선도 계속해서 터지는 등 흐름 자체가 한화의 것이었다.
하지만 박민호가 한화의 그 기세를 조금씩 누그러트리기 시작했다. 첫 두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것을 포함해 5회 말을 삼자범퇴로 끝냈다. 6회 말에는 선두타자에게 볼넷을 내준 뒤 노시환-안치홍-채은성으로 이어지는 한화 중심 타선을 범타로 돌려세우며 반전의 서막을 알렸다.
SSG 타자들은 이때부터 힘을 내기 시작했다. 7회 초 고명준이 중전 안타로 출루했고 이지영, 최지훈이 볼넷을 얻어 만루를 만들었다. 추신수가 좌익수 뜬 공 타구로 한 점을 만회했고 최정이 볼넷으로 다시 만루를 만든 뒤 한유섬이 좌중간을 가르는 적시 2루타로 주자를 일소했다. 여기에 기예르모 에레디아가 우중간 1타점 적시타에 상대 실책을 유발하는 과감한 주루 플레이로 홈까지 파고드는 원맨쇼를 펼쳐 8-6 역전을 만들었다. 이후 끝까지 동점 허용 없이 경기를 8-7로 마무리 지으면서 박민호는 얼결에 승리 투수가 됐다. 2022년 4월 5일 수원 KT전(1이닝 무실점) 이후 2년 만이었다.
2일 취재진과 만난 박민호는 "나도 승리 투수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형들이 별걸 다 하던데 그라운드 홈런 같은 플레이도 하고 참 고마웠다. 꼭 이기고 싶은 경기였는데 이길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아버지처럼 결코 기적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누구든 홈런을 칠 수 있는 SSG는 몇 점 차 경기를 뒤집는 데 익숙한 팀이었다. 그러한 모습을 수년간 봐온 박민호였기에 오히려 태연했고, 형들의 활약을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선 자부심마저 느껴졌다. 실제로 박민호는 똑같은 장소, 똑같은 상대에게 비슷하게 승리투수가 된 적이 있다. 때는 2021년 6월 19일 대전 한화전으로 SSG가 3-5로 지고 있던 6회초 최정-한유섬-제이미 로맥-정의윤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이 4타자 연속 홈런, 일명 백투백투백투백 홈런으로 최종 스코어 7-5로 역전승한 경기였다.
박민호는 "부모님은 내 승리가 기적이라고 표현하셨다. 특히 아버지가 놀라신 것 같은데 그 정도까진 아닌 것 같다. 3년 전에도 여기서 백투백투백투백 홈런으로 비슷하게 이긴 기억이 있다. 어제(1일) 승리가 놀라운 일이긴 하지만 기적까진 아니다. 우리 타자들이 얼마나 잘 치는데요"라고 웃었다.
2024 스프링캠프 당시 박민호(맨 오른쪽). /사진=SSG 랜더스 제공 |
극적인 승리 후 박민호는 진심 어린 수훈 선수 인터뷰로 화제가 됐다. 1일 경기 후 박민호는 "지난해 야구 인생에 마침표를 찍을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부모님과 아내가 옆에서 변함없이 응원해주고 도움을 줘서 이렇게 오늘 승리 투수를 할 수 있는 날이 돌아왔다. 감사의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고 뭉클한 심정을 전했었다.
기사를 통해 인터뷰가 화제 되자,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왔다는 후문. 하지만 지난해 은퇴를 고민한 것도 이날의 승리가 뜻깊었던 것도 모두 사실이었기에 진심 어린 인터뷰가 나올 수 있었다. 이에 박민호는 "내가 실수한 것 같다. 매니저님한테 한마디 한 게 난리가 났네요"라고 쑥스러워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2년 동안 경기에 많이 못 나갔다. 1군에서 한 달 동안 못 나간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시간이 내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며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야구하기 전부터 문학구장에 많이 가고 초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했는데 이제 '내가 좋아했던 그 야구라는 한 페이지를 덮어야 하나'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이런 날도 있다"고 솔직한 속내를 꺼내놓았다.
박민호는 2014 KBO 신인드래프트 2차 3라운드 전체 33순위로 SK(현 SSG)에 입단했다. 입단 6년 차인 2019년부터 2021년까지 144경기 9승 2패 20홀드 4세이브, 평균자책점 2.89로 필승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차츰 입지가 좁아졌고 지난해에는 1군 10경기 출장에 그쳤다.
강화에 오래 머물면서 은퇴와 현역 연장을 두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준 것이 부모님과 지난해 12월 결혼한 아내였다. MBTI(성격 유형 검사) 중 INTP라 T(이성적) 성향이 강한 아들에게 알맞은 조언으로 정신을 재무장하게 했다.
SSG 박민호(오른쪽)가 2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신인 정준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동윤 기자 |
박민호는 "아버지가 빵집을 하시니까 지난해 아버지께 '빵이나 만들까'라고 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야구나 하라'고 하셨다. 그걸 듣고 '아, 이것도 안 먹히는구나' 생각이 들어서 다시 (야구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사실 난 T라서 '힘내라, 괜찮다'는 말보단 '야구나 해라' 이런 악의 없는 팩트 폭력이 더 도움이 된다. 물론 계속 때리기만 하면 나도 사람인지라 상처받는데 그때마다 아내가 '힘내라'고 응원해 줘서 도움이 된다"고 미소 지었다.
인터뷰를 통해 울림을 준 건 팬만이 아니었다. 박민호는 1일 경기 승리 후 "강화도에서 함께한 후배들이 너무 떠올랐다.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겠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후배들도 1군 무대에서 (언젠가) 좋은 경기를 할 수 있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주고 싶다. 앞으로도 좋은 경기력을 이어가 팀에게 많은 보탬이 되고 싶다"고 후배들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었다.
이때의 이야기를 2일 꺼내면서 지나가던 정준재(21)를 데려와 열심히 하는 후배라 소개한 박민호다. 정준재는 상인천초-동인천중-강릉고 졸업 후 동국대에 진학해 얼리 드래프트로 2024 신인드래프트 5라운드 전체 50순위로 SSG에 지명된 우투좌타의 발 빠른 내야수다.
박민호는 "지금 강화(SSG 퓨처스 팀 홈구장)에서 훈련을 엄청 열심히 하고 있다. 다들 어리다 보니 힘들고 지칠 텐데 내가 뭐 (대단한 선수는) 아니지만, 너희도 할 수 있다고 동기 부여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젠 선수로서 다시 나아갈 일만 생각하고 있다. 박민호는 "마침표란 말은 지난해 기준의 감정이었고 올해는 아니다. 목표도 따로 세우지 않고 그냥 팀에서 등판하라면 나가고, (상대와) 싸워서 이길 준비만 하고 있다. 강화에서 열심히 한 훈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아 앞으로도 꾸준하게 그 루틴을 이어가려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동윤 기자 dongy291@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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