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축구환상곡] 엘클라시코,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입력 : 2012.01.2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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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한준 기자= 주제 무리뉴 감독의 49번째 생일은 우울했다. 생일을 맞이하는 순간(현지 시간 26일 자정) 쏟아진 것은 축하 문자 세례가 아닌 탈락을 알리는 휘슬 소리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코파 델레이 8강 2차전에서 ‘숙적’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에 합계 1무 1패로 뒤져 탈락했다.

일주일 전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바르사 선수단으로부터 마드리드 베르나베우 경기장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선물 받았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도 무리뉴 감독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을 것이다. 적지인 캄노우에서 열린 경기였음에도 레알 마드리드는 주도적이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역전 드라마를 이루기 까지 딱 한 골 만이 모자랐다.

그렇지만 이날도 주인공은 바르사였다. 사실 엄밀히 따지면 현지시간으로 25일 밤에 열린 2차전이 열린 날은 바르사의 부주장 차비 에르난데스의 생일이었다. 일주일 전과 마찬가지로 바르사 선수들은 승리 자축 파티와 생일 파티를 동시에 진행할 것이다. 아마 마드리드에는 파티가 없을 것이다.



▲ 벤제마-이과인 투톱 대신 외칠-카카 콤비 

베르나베우에서의 연속된 엘클라시코 더비에서 레알 마드리드는 무기력하게 패했다. 연이은 패배에 엘클라시코 더비에 대한 기대감은 줄어들었다. 이제 팬들은 늘 바르사가 승리하는 싱거운 승부를 예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리뉴 감독은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 사람이다. 페페를 전진시켜 트리보테 (3인 중앙 미드필드) 시스템을 시도했다가 경기를 장악 당한 무리뉴 감독은 2차전 경기에서 공격에 무게 중심을 둔 경기를 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리고 실제로 강한 전진 압박과 공격적인 자세로 임했다.

그러나 공격진의 구성 방식은 예상과 달랐다. 최근 경기에서 좋은 콤비네이션을 보인 카림 벤제마와 곤살로 이과인의 투톱이 아니라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 메주트 외칠과 카카를 동시에 기용했다. 지난 해 11월 부상이 재발하며 또 다시 컨디션 회복에 시간을 보내야 했던 카카의 선발 출전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1차전과 마찬가지로 무리뉴 감독은 또 한번 예상치 못한 카드를 꺼냈다.

외칠과 카카의 개인 기량은 바르사 미드필드진에 뒤지지 않는다. 두 선수 모두 볼 관리, 운반 능력과 탁월한 중거리 슈팅 능력을 갖췄다. 둘은 세련된 터치로 볼을 소유하며 호날두와 이과인의 투톱에 볼을 공급했고, 이들의 동선에 따라 직접 드리블 돌파와 슈팅 시도로 바르사 골문을 두드렸다.

최선의 수비는 공격이다. 볼 소유 자체가 상대의 공격 기회를 차단하는 수비가 된다. 외칠과 카카를 중심으로 레알 마드리드가 소유와 공격을 전개하자 경기 양상은 대등해졌다. 강한 전진 압박을 구사하며 바르사가 하프라인을 쉽게 넘을 수 없게 저지한 뒤 시도한 과감한 공격으로 전반전은 레알 마드리드가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1차전에서는 중원 수비를 강화하고 벤제마와 이과인을 동시에 기용했다가 2선 연결 고리가 약해 연계 플레이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투톱과 호날두는 고립됐고, 미드필드진은 수동적인 자세로 경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외칠과 카카라는 빼어난 역량을 가진 창조자들의 동시 기용으로 1차전의 숙제를 해결했다.

무리뉴 감독은 후반전에 벤제마, 에스테반 그라네로, 호세 카예혼을 투입했다. 전반전에 이과인의 결정력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경기 결과는 뒤집힐 수 있었다. 이과인은 여러 차례 문전에서 좋은 기회를 맞았지만 부담감 탓인지 평소보다 무딘 마무리를 보였다. 외칠의 슈팅이 골대를 강타한 것도 아쉬웠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선수로 평가 받는 외칠은 입단 이후 엘클라시코 더비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호날두의 골도 외칠의 도움이었다.

카카는 체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발빠른 카예혼과 교체됐다. 골이 필요한 레알 마드리드는 라스를 빼고 그라네로를 투입해 카카의 이탈로 인한 중원 창조성 부족을 채워 넣었다. 그라네로는 바르사 선수들 못지 않은 키핑력과 전개력, 슈팅력을 갖춘 선수다. 카카와 그라네로는 무리뉴 감독에게 확실한 주전 자리를 보장 받지 못한 이들이다. 하지만 이번 엘클라시코에선 예상 외로 중용됐다. 무리뉴 감독이 바르사를 상대로 중원을 포기해선 안된다는 교훈을 확실히 얻었기 때문이다.

▲ 호세 핀토, 마드리드가 추격할 수 있었던 이유

기본적으로 레알 마드리드가 공격적인 축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방에서의 강한 전진 압박 덕분이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의 강한 전진 압박 구사는 새로운 일이 아니다. 매 경기마다 시도해왔다. 바르사를 상대하는 다른 팀들도 유사한 방식으로 나선다.

경기 초반부터 바르사가 레알 마드리드의 공세에 최근 그 어느 때보다 휘청인 이유는 호세 핀토 골키퍼 때문이다. 바르사는 골키퍼도 전체 패스 연결 과정에 항상 가담한다. 골키퍼, 최종 수비, 풀백,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공격수까지 모두 짧은 패스를 주고 받으며 볼을 전진시킨다.

이를 통해 바르사는 다른 팀 보다 한 명이 더 많은 11명의 필드 플레이어를 보유한 것처럼 수비진영에서부터 탈압박과 상대의 체력 고갈, 패스 루트 다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바르사 유소년 출신인 빅토르 발데스 골키퍼는 수 차례 단련을 통해 필드 플레이어 수준으로 볼을 컨트롤하고 있다. 하지만 발데스 역시 아직까지 짧은 패스를 시도하다 실수를 범하는 일이 있다. 출전 기회가 제한적인 핀토의 경우 안정성이 더 크게 부족했다.

수비진의 백패스를 이어받고 다시 앞으로 내주는 과정에서 핀토는 흔들렸다. 레알 마드리드 공격수들이 맹수처럼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핀토아 아니라 발데스였다면 레알 마드리드 공격의 기회 창출은 조금 더 어려웠을지 모른다. 핀토가 흔들리자 수비진의 심리적 부담도 평소보다 가중됐고, 이는 팀 전체의 균형과 안정성에 문제를 야기했다. 레알 마드리드에 분명한 어드벤티지다.

무리뉴 감독의 레알 마드리드가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지난 해 코파 델레이 결승전에서도 핀토가 골문을 지켰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팀의 후보 골키퍼 핀토에게 코파 델레이 대회 만큼은 확실하게 출전 기회를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바르사는 일종의 핸디캡을 안고 경기를 했다. 무리뉴 감독과 레알 마드리드는 핀토를 집중공략하며 이를 적절히 이용했다.



▲ 리오넬 메시, 마드리드가 극복할 수 없었던 차이

레알 마드리드가 공격적으로 나섰지만 이것이 수비의 비중을 줄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1차전과 마찬가지로 측면 수비가 불안한 마르셀루는 선택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수비 가담을 요구했다.

페페는 본래 자리인 센터백으로 나섰고, 라스 디아라가 중원에서 바르사 공격진을 괴롭히는 역할을 맡았다. 바르사가 레알 마드리드 페널티 에어리어로 향하면 포지션을 막론하고 모두가 자기 진영으로 빠르게 달려들어와 협력 수비를 펼쳤다. 수비 숫자가 평소보다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핀토 공략과 중원 강화로 바르사와 팽팽하게 공방전을 벌이자 전방 공격수로 나선 메시는 평소보다 볼을 잡을 기회가 적은 편이었다. 많은 이들이 메시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생각을 했다. 전방에서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수비까지 열심히 가담하는 호날두와 비교했을 때 메시가 화면에 잘 잡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메시는 레알 마드리드가 극복할 수 없는 차이였다. 전반 43분 페드로 로드리게스의 선제골은 메시가 밥상을 다 차려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골이 차곡차곡 자신감을 쌓아가던 레알 마드리드의 멘탈 붕괴를 유도했다. 메시는 중원 부근에서 볼을 이어받아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질주했다. 레알 마드리드 수비 여럿이 에워쌌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전진했다. 수비를 자신에게 몰아두고 완벽한 타이밍에 정교한 패스로 노마크 상태의 페드로에게 패스했다.

호날두 역시 메시만큼 빠른 속력으로 드리블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심한 압박 상황에서 볼을 짧게 치고 가며 유지하는 것은 할 수 없다. 그는 강한 완력으로 수비 한 두 명을 무너트리고 나갈 수 있지만 메시처럼 전후좌우를 에워싸고 압박을 가하는 와중에 볼을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연결하는 기술은 아직 익히지 못했다.

외칠은 메시만큼 볼을 잘 다루지만 그만큼 속력이 빠르지 않고 카카는 전성기 시절에 가능했으나 지금은 폭발력과 추진력이 예전만 못하다. 메시의 경이로운 개인 능력이 팽팽하던 승부의 균형추를 흔들어 놓았다.

메시의 돌파는 파울이 아니면 막을 수가 없다. 전반 추가 시간에 나온 다니 아우베스의 추가골 역시 시발점은 메시였다. 메시가 왼쪽 측면을 파고들다 얻어낸 파울로 프리킥을 얻었고, 이 프리킥을 통한 문전 혼전 상황에서 아우베스의 골이 터졌다. 메시는 이날 득점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으나 바르사가 기록한 두 골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천하의 무리뉴도 메시 봉쇄법으로 파울 외의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레알 마드리드 역시 슈퍼스타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호날두는 엘클라시코 더비에서 연속 득점에 성공했고, 지난 해 12월 베르나베우에서의 악몽을 지울 수 있을만한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재 스코어를 따진다면 메시에 한 수 아래다. 3년 연속 발롱도르 수상 결과가 이미 말해주고 있다.



▲ 판정 논란, 감정 충돌...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가?

이번 엘클라시코에서도 어김없이 판정 논란이 있었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민감한 충돌 상황, 거친 플레이에 대한 경고와 퇴장 판정의 일관성이 지적됐다. 어느 한 팀만 편파 판정으로 손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두 팀 모두 억울한 장면이 있었다. 주심도 사람이기 때문에 생기는 오심이다.

하지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쪽은 역시 패자인 레알 마드리드다. 이날 레알 마드리드의 주장 이케르 카시야스는 격하게 판정에 항의하며 경고를 받았고, 경기 후에도 주심을 향해 독설을 던지며 흥분했다.

그러나 나머지 선수들은 대체로 추가 징계와 부정적인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 주심의 판정에 박수와 악수로 답했다. 무리뉴 감독 혹은 클럽 차원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이미지가 1차전 당시 페페의 행동으로 악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 막판 라모스는 퇴장 판정을 받고 평소와 달리 웃으며 악수한 뒤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이 행동이 호의를 담은 악수가 아니라는 것은 세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알 것이다.

사력을 다해 뛰고도 분루를 삼킨 레알 마드리드가 악당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렇다고 멋진 플레이로 골을 만들어 낸 바르사가 악당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다. 페페를 향해 “살인자!”라는 야유를 외치고 욕설을 퍼붓는 바르사 팬들을 보면 바르사 측이 악당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바르사 선수들에 과격한 파울을 일삼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이 악당으로 보인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 팬들도 욕설을 하고, 바르사 선수들도 파울을 한다.

오심이 벌어지면 각자의 편에서 상대가 비호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바르사 측은 카탈루냐가 차별을 받고 있다고 여기고, 레알 마드리드 측은 캄노우 경기장에서 바르사가 홈 어드벤티지를 누린다고 여긴다. 그렇게 감정이 충돌한다. 원래 더비전은 그런 감정 충돌로 인해 탄생하는 법이다. 이러한 감정 충돌 사이에 선은 누구이고 악은 누구인가? 아름다운 축구가 선인가, 승리하는 축구가 선인가?

경기장 위에서, 관중석에서, 경기방 밖에서, 그리고 온라인 상에서 피터지는 더비 혈전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안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내가 있고 상대가 있을 뿐이다. 엘클라시코 더비는 바르사와 레알 마드리드 양 팀에 교훈을 남겼다. 전술적으로도 세계 축구계에 교훈을 주었다. 하지만 가장 큰 교훈을 준 것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한 마디다. “축구는 오락일 뿐”이라는 것이다. 멋진 경기를 즐겼다면 그것으로 축구는 가치를 다했다. 물론 계속해서 승리하지 못하고 있는 마드리디스타에겐 씨알도 안먹힐 소리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바르사, 과연 레알 마드리드와 무리뉴 감독은 ‘미션 임파서블’에 성공할 수 있을까?

사진=ⓒBPI/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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