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성 감독, '최고참' 이운재에게 불호령...왜?
입력 : 2012.02.2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광양] 윤진만 기자= 대선배이자 감독이라도 선수단 최선임을 나무라는 일은 드물다. 후배들 앞에서 면을 세워주는 게 일종의 예의로 받아 들여진다. 하지만 반드시 지켜져야 할 통념은 아니기에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최고참의 권위를 잠시 무너뜨리면서 팀이 대의를 이룰 수 있다면 감독은 이 방법을 사용한다. 전남 드래곤즈 정해성 감독(54)이 K리그에서 손꼽히는 베테랑 이운재(39)를 꾸짖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25일, 정해성 감독은 광양에서 비공개로 열린 자체 연습경기를 마치고 선수단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이운재를 향해 호통쳤다. 평소 쉽게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이운재는 팀 내 최선임이자 정 감독과는 2002 한일 월드컵부터 인연을 이어왔다. 2011년 수원과 작별하고 자신을 따라 전남에 입단한 이운재에 대한 고마움을 수 차례 드러냈던 바 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작심한 듯 “시즌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렇게 해서 되겠느냐”는 내용으로 성냈다. 얼굴을 붉힌 상태로 할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 후배 선수들은 이운재의 눈치를 보며 그 자리에서 얼어 붙었다. 훈련장엔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정해성 감독은 이운재를 콕 집어서 혼낸 이유를 26일 밝혔다. 과정은 대략 이렇다. 정해성 감독은 일본 전지훈련과 광양 훈련을 점검하는 의미에서 주전과 비주전으로 팀을 나눠 비공개 자체 연습경기를 했다. 경기 내용은 좋았다. 양팀 선수들은 정규리그를 방불케 하듯이 거친 몸싸움을 펼치는 등 강한 승부욕을 발동했다. 문제는 후반 종료 직전 벌어졌다. 0-0 상황에서 종료 2분여를 남기고 주전팀이 실점하면서 경기가 비주전팀의 1-0 승리로 끝났다. 정해성 감독의 얼굴은 급격히 굳었다. 그는 회초리를 꺼내 들었다.

정해성 감독은 “치고 받고 잘했다. 내용이 좋았다. 그런데 경기를 2분 25초인가 남기고 가상의 1군 팀에서 역습 상황에서 실점을 했다. 나이 많은 선수들이 비기는 상황이면 이 상황을 유지하던지 어떻게 해서든 이기려고 했어야 하는데 집중력을 잃고 맥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 작년 우리가 왜 이길 경기를 못 이기고 졌는지 생각해보라고 이운재를 향해 대놓고 화냈다. 밑에 선수들에게 화내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신세대답게 지도자의 꾸지람도 ‘시크’하게 넘기는 일부 젊은 선수들의 행동 방식을 감안해 감독보다 무서운 선배를 이용해 선수단 전체에 자극을 주려는 의도다.



이운재는 자존심이 상할 법했지만 프로 무대에 이골이 난 선수답게 대처 방안을 잘 알고 있었다. 후배를 모아 군기를 잡지 않고 “감독님이 왜 그러셨는지 잘 한번 생각해보자”고 나지막이 말하고는 상황을 끝냈다. 불똥이 튈 까 걱정하던 후배들은 경계심을 풀고 감독과 대선배의 조언을 가슴 속에 새겼다. 막내 뻘인 프로 3년 차 미드필더 김영욱(21)은 “감독님께선 우리 팀이 일본 전지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들떠서 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이)운재형에게 소리를 지른 거 같다. 그러나 우리는 좋게 생각하고 있다. 운재형도 ‘우리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면서 자기 자신부터 돌아보고 남은 시간 마무리 훈련 잘해서 강원전에 좋은 모습 보이자’고 말해주셨다. 좋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26일 오전 훈련과 오후 팬즈데이에서 만난 이운재는 전날 일은 잊은 듯 시종일관 밝은 모습이었다. 발야구 대회에선 코치와 더불어 선수들에게 프로야구 룰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고 대회 중에는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던 정해성 감독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약간의 힌트만 줘도 정답을 외치는 베테랑 제자가 기특하다는 표정이었다. 이운재는 팬즈데이를 마치고 “시즌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분위기 추스리고 처음 시작하는 마음가짐으로 하자는 뜻에서 그렇게 하신거다. 마음에 두지 않는다. 후배들도 잘 알아들었으리라 생각한다“고 정해성 감독의 채찍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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