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올 시즌 국내축구는 어느 해 보다 깊은 침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프로축구의 관중기근 형상에 시달리며 흥이 나지 않는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프로축구가 텅 빈 운동장에서 경기를 해야만 하는 눈물겨운 일도 있다.
이처럼 국내축구가 인기를 잃어가는 것은 한두 가지 요인에 의해서 라기 보다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
프로축구가 없는 아마추어만의 시절은 그 나름대로 흥미 거리가 있었으며, 국가대표팀이 전체적인 흐름을 리드해 나갔다. 월드컵 및 올림픽 예선대회 등 굵직한 국제경기가 있을 때면 수만 명이 운집, 최고인기 종목으로서의 영광을 지켜왔다. 더불어 각급 축구대회도 국제대회에 쏠린 관심의 여파로 관중을 모을 수 있었다.
프로축구가 출범하면서 새로이 슈퍼리그라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혼성리그가 창설되어, 경기방식이 새롭다는 점에서 대대적인 선풍을 일으켰으나, 폭발적인 인기는 서서히 식어 가더니 프로만의 리그전으로 대부분 전환해 버렸다.
이와 같은 프로축구의 하락은 결과적으로 각급 아마추어 동반인기하락이라는 새로운 상황만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축구는 최고의 기술 수준을 가진 선수들의 실력을 겨루는 마당으로 축구팬들이 여기에서 흥미를 갖지 못한다면 그보다 한수 아래인 아마추어에 대한 관심도 따라서 저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진축구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요소는 운동장을 찾는 관중에게 볼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기대를 걸었던 프로축구가 축구팬들의 무관심으로 결국 축구전반에 걸쳐 찬바람을 맞게 됨으로써 한국축구의 뿌리인 아마추어 축구도 힘을 잃고 말았다. 자기 모교의 명예를 위해서 애교심, 더나가 애국심의 산 교육장이었던 운동장에서 학생과 일치되어, 지면 눈물을 흘리고 승리하면 함께 웃고 지내는 것은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에서 시급한 것은 프로, 아마추어가 공생 할 수 있고, 공동 발전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어쩌면 국내 프로축구가 팬들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현상은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든 면에서 약세화 또는 무리한 이원화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건강한 프로는 튼튼한 아마추어라는 뿌리 위에서만 존재 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국의 아마추어와 프로가 총망라한 FA컵, 가까운 일본의 아마추어와 프로가 총망라한 JFA컵은 금년 92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참여하는 FA컵을 실시하고는 있다. 그러나 영국과 일본과 같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통합 컵의 시너지를 우리는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은 프로와 아마추어 경기를 많이 계획하고 실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아마추어 가족들을 관중으로 확보하고, 숨겨진 아마추어 선수가 부각되며, 획기적인 경기방법으로 프로와의 경기를 통한 아마추어의 경기력, 경제력 향상을 꾀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팬들의 아마추어에 대한 관심을 쏟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그동안 축구를 멀리 했던 팬들을 다시 그라운드로 불러 모을 수 있다면 프로축구의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전한 프로는 튼튼한 아마추어라는 뿌리 위에서만 존재 할 수 있다.
글쓴이 박경호 선생은 1930년 황해도 해주 태생으로 1946년 월남하여 경신중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956년~1958년 대표선수로 활약했으며 제1회아시안컵 우승 멤버다. 1969년 모교인 경희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 한양공고 건국대 육사 서울대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KBS 축구해설위원,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로 활약했으며 일본 오이타 클럽 기술고문으로 10년 넘게 활동했다.
프로축구의 관중기근 형상에 시달리며 흥이 나지 않는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프로축구가 텅 빈 운동장에서 경기를 해야만 하는 눈물겨운 일도 있다.
이처럼 국내축구가 인기를 잃어가는 것은 한두 가지 요인에 의해서 라기 보다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
프로축구가 없는 아마추어만의 시절은 그 나름대로 흥미 거리가 있었으며, 국가대표팀이 전체적인 흐름을 리드해 나갔다. 월드컵 및 올림픽 예선대회 등 굵직한 국제경기가 있을 때면 수만 명이 운집, 최고인기 종목으로서의 영광을 지켜왔다. 더불어 각급 축구대회도 국제대회에 쏠린 관심의 여파로 관중을 모을 수 있었다.
프로축구가 출범하면서 새로이 슈퍼리그라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혼성리그가 창설되어, 경기방식이 새롭다는 점에서 대대적인 선풍을 일으켰으나, 폭발적인 인기는 서서히 식어 가더니 프로만의 리그전으로 대부분 전환해 버렸다.
이와 같은 프로축구의 하락은 결과적으로 각급 아마추어 동반인기하락이라는 새로운 상황만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축구는 최고의 기술 수준을 가진 선수들의 실력을 겨루는 마당으로 축구팬들이 여기에서 흥미를 갖지 못한다면 그보다 한수 아래인 아마추어에 대한 관심도 따라서 저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진축구가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제일 중요한 요소는 운동장을 찾는 관중에게 볼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기대를 걸었던 프로축구가 축구팬들의 무관심으로 결국 축구전반에 걸쳐 찬바람을 맞게 됨으로써 한국축구의 뿌리인 아마추어 축구도 힘을 잃고 말았다. 자기 모교의 명예를 위해서 애교심, 더나가 애국심의 산 교육장이었던 운동장에서 학생과 일치되어, 지면 눈물을 흘리고 승리하면 함께 웃고 지내는 것은 이제는 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오늘 이 시점에서 시급한 것은 프로, 아마추어가 공생 할 수 있고, 공동 발전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어쩌면 국내 프로축구가 팬들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현상은 프로와 아마추어가 모든 면에서 약세화 또는 무리한 이원화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건강한 프로는 튼튼한 아마추어라는 뿌리 위에서만 존재 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영국의 아마추어와 프로가 총망라한 FA컵, 가까운 일본의 아마추어와 프로가 총망라한 JFA컵은 금년 92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참여하는 FA컵을 실시하고는 있다. 그러나 영국과 일본과 같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통합 컵의 시너지를 우리는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은 프로와 아마추어 경기를 많이 계획하고 실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아마추어 가족들을 관중으로 확보하고, 숨겨진 아마추어 선수가 부각되며, 획기적인 경기방법으로 프로와의 경기를 통한 아마추어의 경기력, 경제력 향상을 꾀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팬들의 아마추어에 대한 관심을 쏟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같은 방식으로 그동안 축구를 멀리 했던 팬들을 다시 그라운드로 불러 모을 수 있다면 프로축구의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전한 프로는 튼튼한 아마추어라는 뿌리 위에서만 존재 할 수 있다.
글쓴이 박경호 선생은 1930년 황해도 해주 태생으로 1946년 월남하여 경신중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1956년~1958년 대표선수로 활약했으며 제1회아시안컵 우승 멤버다. 1969년 모교인 경희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 한양공고 건국대 육사 서울대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KBS 축구해설위원, 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로 활약했으며 일본 오이타 클럽 기술고문으로 10년 넘게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