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스페셜9 제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한국팀 선수에 앞서 한국계 선수가 먼저 메달을 땄다.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러시아의 빅토르 안이 동메달을 획득한 것이다. 그는 단거리에 강하다는 평가가 있어 1000m 등 다른 세부종목에서 더 좋은 성적을 올릴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빅토르 안은 한국 쇼트트랙의 대표적 존재였던 안현수와 동일인물이다.
지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3관왕을 차지했던 안현수 선수는 2008년 무릎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아울러 대표팀 내의 ‘한체대-비한체대’ 파벌싸움에 휘말린 데다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소홀한 대접을 받았고,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 출전조차 못하게 되자 섭섭한 마음이 깊었다고 한다. 2011년 그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러시아로서는 자국에서 벌어지는 소치올림픽에서 종합우승을 노리기 위해서는 그동안 노메달에 그쳤던 쇼트트랙 종목을 급하게 강화할 필요가 있었고, 그 기관차 역할을 할 선수로 안현수가 안성맞춤이었다.
맨 처음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에 귀화해서 이름까지 바꿨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우리나라에서의 반응은 다소 부정적이었던 것 같다. 지난번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사격의 진종오, 양궁의 기보배 선수가 각각 2관왕이 됐지만 우리나라 선수가 올림픽에서 다관왕이 되는 것은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니다. 2006년 안 선수가 한국 남자선수 최초로 3관왕이 됐을 때 국민 모두가 열광했고, 그는 손기정과 양정모, 김수녕으로 이어지는 올림픽스포츠 영웅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런 안현수가 조국을 버리고 외국 선수로 뛴다는 소식이 한국 스포츠팬들에게 반갑게 받아들여졌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이 미묘하게 바뀌는 조짐이 나타났다. 초장에는 안 선수를 ‘애국심 없는 배신자’ 내지는 ‘집을 버린 자식(Prodigal son)’으로 질타하던 여론이, 소치올림픽 직전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동정 내지 공감과 뒤섞여 미지근하고 착잡한 반응으로 진화했다. 이윽고 안 선수가 메달 도전에 나선 10일 실시된 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는 한국 선수보다 빅토르 안을 응원하겠다는 응답이 다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는 물론 과학적 여론조사가 아닌 온라인상의 선착순 인기투표와 비슷한 유사 설문조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여론의 추이를 거칠게나마 가늠해 볼 수 있는 한 지표인 것도 사실이다.
온라인 여론조사가 “한국 선수를 적극 응원하겠지만 빅토르 안이 메달 따는 것도 박수를 보내겠다는 쪽이 많다”는 결론이라면 안현수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짧은 기간 중 부정에서 중립, 중립에서 호의로 바뀌어 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주로 20~3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에 국한된 것일 수도 있다. 50대 이상의 나이든 세대는 이런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경우가 적을 뿐더러, 국가관이나 애국심 등 의식문제에 이르러서는 상당히 경직되고 고정된 견해를 갖는 사람이 많은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 가운데 세대 간의 격차가 최근 더 두드러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서 세대 간 정치성향이 갈린 이후 최근 걱정스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젊은 세대가 노년세대에 대해 느끼는 실망과 위화감이다. 부모님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부모님 또래 세대를 보면 너무 편협하고 일방적이어서 싫다는 것이다. 또 아무리 둘러봐도 존경할 만한 어른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불평도 들린다. 노년세대 가운데 어버이연합이나 참전동지회처럼 극단적 보수그룹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을 뿐 온건 합리적인 견해나 사회문제에 대한 리버럴한 입장은 표명되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노인이라면 지혜와 경험을 떠올렸는데 지금은 억지과 강압이 먼저 연상된다는 비판이다.
이념과 정치에 관한 한 젊고 늙은 세대를 막론하고 폭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각자 다양한 의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 등 사회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표출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노년세대가 젊은 세대 못지않게 대범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옛말에 ‘초나라 인재를 진나라가 쓴다(楚材晉用)고 했는데 안현수면 어떻고 빅토르 안이면 또 어떻다는 말인가.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가서 그 나라의 대표가 되는 것은 긍정적 측면이 많고, 앞으로 후진을 위해 개척을 한다는 뜻도 있다. 우리가 당장 안현수를 국가대표선수로 쓸 것도 아닌데 굳이 아까워 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또 경쟁을 해야 한다면 정정당당히 겨루면 그만이다.
스포츠 선수들의 해외진출에 대해 전반적으로 진취적 생각을 갖는 것이 좋다고 본다. 다만 국민의 의무인 병역을 면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적포기를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이를테면 국내 테니스 선수가 대만 등 외국에 진출해서 활동하는 것은 적극 권장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문제는 테니스협회와 테니스 관계자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젊은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허용할 뿐 아니라 그들의 경험과 자산을 활용할 수 있도록 유대를 돈독히 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할 듯하다. 글로벌 시대에 국적이나 일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는 문화적 정체성이 문제가 될 뿐이다. 이병효(코멘터리 발행인)
지난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3관왕을 차지했던 안현수 선수는 2008년 무릎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아울러 대표팀 내의 ‘한체대-비한체대’ 파벌싸움에 휘말린 데다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소홀한 대접을 받았고,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 출전조차 못하게 되자 섭섭한 마음이 깊었다고 한다. 2011년 그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러시아 국적을 취득했다. 러시아로서는 자국에서 벌어지는 소치올림픽에서 종합우승을 노리기 위해서는 그동안 노메달에 그쳤던 쇼트트랙 종목을 급하게 강화할 필요가 있었고, 그 기관차 역할을 할 선수로 안현수가 안성맞춤이었다.
맨 처음 안현수 선수가 러시아에 귀화해서 이름까지 바꿨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우리나라에서의 반응은 다소 부정적이었던 것 같다. 지난번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사격의 진종오, 양궁의 기보배 선수가 각각 2관왕이 됐지만 우리나라 선수가 올림픽에서 다관왕이 되는 것은 쉬운 일도, 흔한 일도 아니다. 2006년 안 선수가 한국 남자선수 최초로 3관왕이 됐을 때 국민 모두가 열광했고, 그는 손기정과 양정모, 김수녕으로 이어지는 올림픽스포츠 영웅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런 안현수가 조국을 버리고 외국 선수로 뛴다는 소식이 한국 스포츠팬들에게 반갑게 받아들여졌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이 미묘하게 바뀌는 조짐이 나타났다. 초장에는 안 선수를 ‘애국심 없는 배신자’ 내지는 ‘집을 버린 자식(Prodigal son)’으로 질타하던 여론이, 소치올림픽 직전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동정 내지 공감과 뒤섞여 미지근하고 착잡한 반응으로 진화했다. 이윽고 안 선수가 메달 도전에 나선 10일 실시된 한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는 한국 선수보다 빅토르 안을 응원하겠다는 응답이 다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는 물론 과학적 여론조사가 아닌 온라인상의 선착순 인기투표와 비슷한 유사 설문조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여론의 추이를 거칠게나마 가늠해 볼 수 있는 한 지표인 것도 사실이다.
온라인 여론조사가 “한국 선수를 적극 응원하겠지만 빅토르 안이 메달 따는 것도 박수를 보내겠다는 쪽이 많다”는 결론이라면 안현수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짧은 기간 중 부정에서 중립, 중립에서 호의로 바뀌어 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주로 20~3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에 국한된 것일 수도 있다. 50대 이상의 나이든 세대는 이런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경우가 적을 뿐더러, 국가관이나 애국심 등 의식문제에 이르러서는 상당히 경직되고 고정된 견해를 갖는 사람이 많은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 가운데 세대 간의 격차가 최근 더 두드러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2012년 대선에서 세대 간 정치성향이 갈린 이후 최근 걱정스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젊은 세대가 노년세대에 대해 느끼는 실망과 위화감이다. 부모님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부모님 또래 세대를 보면 너무 편협하고 일방적이어서 싫다는 것이다. 또 아무리 둘러봐도 존경할 만한 어른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불평도 들린다. 노년세대 가운데 어버이연합이나 참전동지회처럼 극단적 보수그룹들이 목청을 높이고 있을 뿐 온건 합리적인 견해나 사회문제에 대한 리버럴한 입장은 표명되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노인이라면 지혜와 경험을 떠올렸는데 지금은 억지과 강압이 먼저 연상된다는 비판이다.
이념과 정치에 관한 한 젊고 늙은 세대를 막론하고 폭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각자 다양한 의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안현수 선수의 러시아 귀화 등 사회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표출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노년세대가 젊은 세대 못지않게 대범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옛말에 ‘초나라 인재를 진나라가 쓴다(楚材晉用)고 했는데 안현수면 어떻고 빅토르 안이면 또 어떻다는 말인가.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가서 그 나라의 대표가 되는 것은 긍정적 측면이 많고, 앞으로 후진을 위해 개척을 한다는 뜻도 있다. 우리가 당장 안현수를 국가대표선수로 쓸 것도 아닌데 굳이 아까워 할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또 경쟁을 해야 한다면 정정당당히 겨루면 그만이다.
스포츠 선수들의 해외진출에 대해 전반적으로 진취적 생각을 갖는 것이 좋다고 본다. 다만 국민의 의무인 병역을 면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적포기를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이를테면 국내 테니스 선수가 대만 등 외국에 진출해서 활동하는 것은 적극 권장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문제는 테니스협회와 테니스 관계자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젊은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허용할 뿐 아니라 그들의 경험과 자산을 활용할 수 있도록 유대를 돈독히 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할 듯하다. 글로벌 시대에 국적이나 일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를 잊지 않는 문화적 정체성이 문제가 될 뿐이다. 이병효(코멘터리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