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의 특급 신인이 '푸른 옷' 한기주가 되기까지
입력 : 2018.03.27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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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150km를 상회하는 빠른 공, 다양한 변화구 활용 능력, 선발로서 게임을 끝까지 책임지는 경기 운영 능력까지. 광주 동성고 시절 ‘괴물 투수’ 한기주는 이 모든 것을 갖춘 선수였다. 봉황대기 33이닝 연속 무실점, 51이닝 연속 무 자책 등 각종 기록을 쏟아낸 괴물 투수인 그를 메이저리그 팀에 뺏기기 싫었던 기아 타이거즈는 역대 최고인 ‘10억’의 계약금을 안기며 그를 품었고, 그는 ‘FA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고 입단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 가장 큰 기대를 받던 신인 선수는 굴곡의 프로생활을 보내다가 푸른색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유니폼을 입기까지, 그의 프로 생활엔 빛과 어둠이 너무나 극명했다.


'괴물 신인', '10억팔'의 짧았던 영광의 시간



<한기주의 입단 이후 2006년-2009년까지의 주요 기록>


역대 최고의 계약금을 받은 신인 선수답게 세간의 관심을 끌며 시작한 데뷔 첫 시즌,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전반기 31개의 삼진을 잡는 동안 사사구를 32개 내주면서 제구에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고, 긴 이닝을 소화하지 못해 선발 로테이션에서 하차했다. 하지만 후반기 구원 투수로 보직을 옮기며 놀라운 반전을 보여줬다. 47개의 삼진을 잡는 동안 20개의 사사구를 내줄 정도로 제구력이 안정됐으며, 전반기 3할에 육박하던 피안타율은 1할대로 내려갔다. 그 결과 고졸 신인으로서 좋은 성적인 10승, 3점대 초반 방어율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괴물 신인’의 타이틀을 앗아간 류현진과 12승을 거둔 장원삼의 등장으로 신인왕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순수 고졸 신인이 10승을 거둔 것은 이 해의 류현진과 한기주가 마지막이었다.

이듬해 마무리로 보직을 바꾼 한기주는 승승장구했다. 비록 팀은 하위권을 맴돌았지만, 1999년에 팀을 떠난 임창용 이후 최초로 2년 연속 25세이브를 기록했다. 두 시즌간 보여준 모습을 바탕으로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됐으며, 당대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을 제치고 국가대표 마무리 투수로 낙점됐다. 하지만 영광은 거기까지였다. 대표팀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한기주는 미국전 블론 세이브를 시작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그런 그에게 온갖 질타가 쏟아졌다.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부진은 이어졌으며, 다음 시즌에는 결국 마무리 자리에서 내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부진을 베이징 올림픽의 후유증이라 생각했지만 원인은 따로 있었다. 고교시절부터 프로 데뷔 후까지 끝없이 계속된 혹사가 그의 팔에 누적되고 있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기아

기아는 한기주의 팔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 정재공 전 단장은 인터뷰에서 한기주가 중학 시절부터 특급 선수로서 너무 많은 공을 던짐에 따라 입단 전부터 팔꿈치 인대 3개 중 2개는 90%이상 손상된 상태였다고 밝혔다. 수술이 시급한 상태였지만 ‘10억’의 계약금이 주는 부담감 때문인지 한기주와 기아는 수술 대신 재활을 선택했다. 단, 구원투수로서 무리한 이닝을 소화하지 않는다는 전제였다. 하지만 당시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서정환 전 감독은 그를 선발로테이션에 합류시켰고, 후반기엔 구원투수로서 마구잡이로 기용했다. 특히 그 해 9월에 한기주가 정상급 기량을 보여줌에 따라 서감독은 너무나도 잔인할 정도로 그를 마운드에 올렸다.

4강 싸움이 심화되던 시기인 9월 1일부터 10월 2일까지 한기주는 순수 구원 투수로 18경기에 나서서 41.2이닝을 소화했다.(2006시즌의 한기주 이후 순수 구원투수로서 한달 동안 40이닝 이상 투구한 선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연투는 물론, 18경기 중 13경기에서 2이닝 이상을 투구하며 멀티 이닝까지 소화했다. 뿐만 아니라 순위싸움이 끝나지 않았던 롯데 자이언츠와의 마지막 4연전, 서정환 감독은 모든 경기에 그를 무리하게 투입했다. 더블헤더를 포함해 3일간 열린 4경기에서 그는 8.1이닝을 소화, 125개의 공을 던지며 단 한 점의 점수도 허용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무리한 기용 속에서도 한기주는 제 몫을 다 해냈다.

9월 한달 동안 한기주가 41.2이닝을 소화하며 기록한 자책점은 단 4점으로, 팀이 가을 야구의 마지막 티켓을 획득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짧은 가을 야구의 대가로 한기주의 팔은 더욱 망가지고 있었다. 이상을 느낀 그는 시즌 종료 후 수술 의사를 밝혔으나 현장에서는 마무리 투수를 잃을 수 없다며 거부했다. 조범현 감독이 부임한 2008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베이징 올림픽 승선 등을 이유로 수술 요청은 거부됐고, 결국 2009시즌 우승 후에야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1년간의 재활 끝에 돌아온 한기주에게 더 이상 150km를 넘는 빠른 공은 없었다. 오히려 계속 되는 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손가락 수술부터 투수로서는 가장 치명적이라는 어깨 회전근 수술까지, 그는 기나긴 재활의 늪에 빠지며 총 5번의 수술대에 올랐다. 그 사이 그를 무리하게 기용했던 지도자들은 팀을 떠났고, 한기주에게 남은 것은 강속구를 잃은 팔 뿐이었다.



1669일만의 선발 승, 그러나 그를 울린 피 홈런



<긴 재활 끝에 돌아온 한기주, 그에게 예전 같은 강속구는 없었다.(사진=OSEN)>


2012시즌을 끝으로 마운드를 떠났던 한기주는 기나긴 재활의 늪을 건너 2015시즌에 돌아왔다. 예전 같은 강속구는 없었지만 다시 돌아온 그는 기교파 투수로 전환을 알렸고 그의 모습에 팬들은 감격했다. 그리고 2016시즌, 더 이상 아프지 않음을 증명하듯 그는 개막 엔트리에 포함됐다. 4월 23일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는 1668일만의 선발 승을 거두며 부활을 알리는 듯 했다. 하지만 현저히 느려진 그의 공은 타자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특히 두드러진 문제는 피 홈런이었다. 5월 6일 고척돔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는 만루홈런 2개를 허용하며 역대 3번째 ‘한 경기 만루홈런 두 방 허용’의 주인공이 됐다. 이후 선발 로테이션에서 탈락했지만 구원 등판에서도 피 홈런은 이어졌다. 6월 14일 마무리로 등판한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김재환에게 2사 후 동점 3점 홈런, 그리고 에반스에게 역전 홈런을 허용하며 ‘2016시즌 스탯티즈가 선정한 가장 결정적인 장면 1위’의 불명예 주인공이 됐다. 2016시즌 에 그는 56.2이닝 동안 11개의 홈런을 허용, HR/9(9이닝 당 홈런 개수) 1.75개로 50이닝 이상을 소화한 투수 중 3위를 기록했다.

원래 빠른 공을 던지던 한기주는 피 홈런을 두려워하던 투수가 아니었다. 신인이던 2006년에는 140이닝에서 8개의 홈런만을 허용했으며, 마무리로 활약한 2년간은 단 5개만 허용했다. 그러나 느려진 그의 공은 타자들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2016시즌을 끝으로 다시 1군 마운드에 서지 못했고, 지난 시즌 기아 타이거즈 우승의 순간에도 그는 그라운드에 없었다.


야구 선수 한기주, 그가 반면교사로만 남지 않길 바라며

2017시즌 종료 후, 한기주와 이영욱의 1:1 트레이드가 발표됐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출발하고자 하는 한기주의 요청으로 붉은 유니폼의 한기주는 삼성 라이온즈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새 출발을 하게 됐다. 그는 구단으로부터 재활을 권유 받았지만 스프링 캠프 참여를 자처하면서 부활을 위한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스프링 캠프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개막 엔트리 진입에 성공했고, 개막전에서 두산을 상대로 1점차 리드를 지켜내며 부활에 청신호를 켰다.

한기주가 수술대에 오른 이후로 기아 타이거즈를 비롯한 많은 구단들은 신인 선수의 몸 상태에 이상이 의심되면 곧바로 조치를 취했다. 제 2의 한기주를 만들지 않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한기주는 짧은 영광의 시기를 지나 팬들에게는 아픈 손가락으로, 구단에게는 ‘10억’의 반면교사로 남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길 바란다. 너무나 잘 던졌기에 혹사를 당했고, 그로 인해 무너졌지만 그의 나이는 이제 겨우 31세이다. 기량을 보여준다면 충분히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나이이기에 올 시즌 그가 보란듯이 부활하길 바란다. 훗날 그를 되돌아 봤을 때 혹사로 무너진 투수가 아닌, 삼성 라이온즈에서 멋지게 부활한 선수이자 재기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길 기대한다.


기록 출처: STATIZ

야구공작소
이승찬 칼럼니스트 / 에디터=이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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