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성공 신화 속, 소수의 희생자는 감추어지기 마련이다. 불편한 진실은 신화가 깨지고 나서야 재조명된다. 혹은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야구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구단의 성공 속에서 소수의 희생자들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 선수들은 조용히 사라졌을 뿐이다. 신화가 깨어진 뒤에서야 간간이 재조명될 뿐이다. 그 규모에 비해 드러나는 부분은 작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투혼은 시즌 전체의 이닝, 등판 횟수 정도로만 약간의 편린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혹사는 단순히 한 시즌에 몇 이닝을 소화했고, 몇 경기에 등판했는지 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인간의 몸은 꾸준한 활동의 반복 속에서 오는 부하보다 순간적인 과부하에 취약하다. 투수의 경우, 속근과 근막의 유연성이 중요한 만큼 순간적인 과부하는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떤 두 투수가 같은 이닝을 던졌다고 가정해보자. 주기적으로 100개씩 던진 선수와 200개씩 던지고 휴식을 취한 선수 중 누가 더 많은 부담이 되었을지는 자명하다. 그렇기에 어떤 투수가 혹사를 당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선 세부 기록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난 3년 동안 두산 베어스의 대장정은 성공의 연속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2등 콤플렉스를 깬 우승은 팬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이 신화 속에서 가려져 있는 비극 역시 존재했다. 이는 마치 최근 2주간 좋은 성과 속에서 어린 두산 불펜 투수들의 혹사 논란이 벌어졌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최근 일들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뿐이다.
2015년 여름의 함덕주
최근 논란의 중심인 함덕주는 이미 첫 풀타임 시즌 때 혹사를 겪었다.
함덕주, 2015년: 68경기(10위) / 61.2이닝(25위) / 총 투구 수 1270
(포스트시즌: +2.1이닝 / 투구 수 +64)
시즌 전체 성적으로 보면 함덕주에게 부과된 짐의 양은 많지 않아 보인다. 총 투구 수만 1200개가 넘어 다소 많을 뿐 충분히 문제없다고 여겨지는 수치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나누어 보았을 때는 다르다. 2015년의 함덕주는 프로무대가 아직 익숙하지 않을 20세였기에 처음에는 큰 책임이 주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전반기까지 함덕주는 81경기(35등판) 동안 22.2이닝만을 던졌을 뿐이다.
문제는 함덕주가 프로에 완전히 적응한 듯 보이던 후반기부터였다. 마침 두산은 NC, 넥센과 2위 자리를 두고 혈투를 벌이고 있을 시기였다. 함덕주는 전쟁터의 후방에서 최전방으로 보내졌다. 3연투, 한 경기 30개 이상 투구 등 불펜 운영에 있어서 주의가 필요한 모든 제한들은 함덕주에게 더 이상 적용되지 않았다. 3연투의 세 번째 경기에서 40구를 넘게 던지게 하는 운영이 8월 중에만 두 번이나 있었다. 시즌 마지막 2주 남짓한 기간 동안은 무려 10경기에 등판하여 14이닝 동안 270개의 공을 던졌다. 웬만한 선발 투수가 같은 기간 동안 던졌을 투구 수를 능가하는 수치였다.
결국 함덕주는 후반기 총 63경기 동안 33등판 39이닝, 789구, 30구 이상 투구한 횟수 8경기, 40구 이상 투구한 횟수 3경기라는 기록을 남겼다. 보통의 불펜 투수들이 한 시즌 동안 1000구 정도의 피칭을 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함덕주는 두 달 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거의 한 시즌 분량을 소화한 셈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함덕주는 정규 시즌을 큰 문제없이 버텨내며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있어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포스트 시즌이 되자, 참사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는 더 이상 2015년 여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은 것은 3km/h 가까이 떨어진 구속과 제구가 전혀 되지 않는 팔뿐이었다.
2016년 봄의 정재훈
2015년 2차 드래프트에서 마지막 순번으로 정재훈이 지명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미안함과 반가움을 느꼈겠지만, 적어도 기대감은 없었을 것이다. FA 보상 선수로 이적하기 전 34세의 정재훈은 이미 노쇠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롯데에 이적하고 난 뒤엔 자취를 감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6년 봄 정재훈은 무덤덤한 반응들을 곧바로 놀라움으로 바꿔주었다. 삼진을 연신 잡아내는 포크볼은 전성기 때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반등은 즉시 혹사로 이어졌다.
정재훈 2016년 주요 기록: 46경기(42위) / 52.1이닝(33위) / 총 투구 수 833
일견 평범한 수치로 보이지만, 이 기록 속에는 들춰내야 할 많은 부분이 있다.
전년도 셋업맨 역할을 수행했던 함덕주가 무너진 상황에서 ‘굴러들어온 복’이었던 정재훈은 함덕주가 했던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처음에는 전 해 1군에서 던지지 못했던 설움을 푸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만이 남았다. 4월 한 달간 정재훈은 김성근 감독 시절 내내 혹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권혁, 송창식, 박정진을 넘어 불펜 이닝 1위에 당당히 자리했다. 특히 송창식은 ‘오재원 고의 삼진’으로 이슈가 되었던 문제의 벌투를 했던 달이었는데, 정재훈은 그런 송창식의 이닝마저 넘었다. 이는 등판했던 13경기 중 멀티 이닝을 던진 경기가 9경기나 되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5월에는 그나마 적은 이닝을 던지게 되어 불펜 이닝 1위 자리에선 내려왔지만 권혁, 송창식, 장민재의 한화 3인방에 이은 4위였다. 이 시점에서 30이닝을 넘게 던진 불펜 투수는 이 네 명뿐이었다. 물론 한화의 불펜 운영과 다르게 정재훈의 등판은 각각 한 경기씩 살펴보았을 때는 분명 나올 만한 상황이긴 했다. 그가 등판했던 경기들 대부분은 4점 차 이하로 리드하고 있어 ‘불펜 에이스’가 등장할 필요가 있었다. 2016년의 두산이 압도적인 팀이었던 만큼 그런 경기나 너무나 많았던 것이 문제였다. 등판할만한 상황이었던 것과 별개로 정재훈의 체력은 점점 고갈될 수밖에 없었다.
함덕주가 단기간의 심각한 혹사를 두 달 남짓 버티고 나서 무너졌던 것처럼 정재훈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이 다가오자 정재훈은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공이 급격히 맞아나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볼넷 억제 역시 되지 않았다. 그 탓에 이전까지 한 개도 없었던 블론 세이브를 두 달 사이에 5개나 범하게 되었다. 5월까지 부과되었던 이닝에 비하면 그 뒤로는 평범한 수준의 양으로 등판하였지만, 다른 승리조 불펜들이 마땅치 않은 탓에 경기력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꾸준히 올라왔던 것에 따른 결과였다.
이런 와중에 정재훈은 8월 3일, 박용택의 강습 타구에 맞고 팔뚝이 부러지는 불운 속에 정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투구 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 같은 류의 부상이 아닌, 타구로 인한 사고였던 만큼 당연히 복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 해가 정재훈의 마지막이 되었다. 재활 도중 발병한 어깨 부상이 그를 붙잡고 만 것이다. 복귀 과정에서 생긴 부상이었던 만큼 이 역시 단순한 불운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016년 그가 책임졌던 수많은 순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그가 쥐었던 마지막 공은 팔뚝이 부러진 상황에서 반대쪽 팔로 던지려 했던 그 투혼의 공이 되고 말았다.
2017년 모든 계절의 김강률
앞선 2년간 두산의 불펜 에이스들에게 가해진 혹사가 기록 속에서 감춰질 수 있었다면, 김강률의 경우엔 누가 봐도 혹사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강률 2017년 주요 기록: 70경기(3위) / 89.0이닝(2위) / 총 투구 수 1492
(포스트시즌: +7.2이닝 / 투구 수 +107)
김강률은 2015년 당시 함덕주와 비슷하게 시즌 초반엔 다소 편안한 상황에서 던지다, 후반기부터 중용되었다. 하지만 함덕주는 전반기 중요도가 낮은 상황에서 기용되었을 때는 많은 이닝을 던지지 않은 반면, 김강률은 처음부터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6월이 지나 필승조로 승격될 무렵, 이미 김강률의 투구 이닝은 40이닝을 넘어가고 있었다.
불펜의 중심을 맡게 된 후로는 2015년 함덕주만큼은 아니어도 투구의 강도를 더 끌어올렸다. 8월부터 선두 기아를 매섭게 추격했기에 김강률의 역할은 막중했다. 8월부터 25경기에 등판해서 그 가운데 멀티 이닝을 책임진 경기가 무려 16번이나 있었다. 그 때문에 김강률은 6월부터 월간 등판 순위, 이닝 순위에서 5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김강률은 시즌 끝까지 버텼다. 김강률은 한국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도 2.1이닝 동안 41구를 소화하며 건재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결국 함덕주의 2015년 이후 상황과 비슷한 과정이 되고 있다. 김강률은 올해 한 경기에서 평균 구속이 140km/h 초반 대로 떨어지기도 하는 등, 평균 구속이 2km/h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연일 난타를 맞고 있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오늘을 살펴보기
함덕주는 다행히 부활했지만 힘든 재활 과정을 겪었다. 정재훈은 은퇴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김강률은 부진의 늪에 빠져있다. 이들 모두 과부하 속에서 한 해를 지냈고, 이후 나쁜 미래를 겪게 되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결과론적 해석이긴 하다. 오히려 반대로 이를 철저하게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태형 감독 체제에서 이런 혹사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되짚어봐야 할 점이다. 함덕주는 한 번 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등판들을 하고 있고 곽빈과 박치국은 새내기로서 쉽지 않은 양의 피칭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지금) 승리를 쌓아놓으면 나중에 함덕주를 더 관리해줄 수 있다, 엔트리에서 빼줄 수 있다”고 말하며 ‘두산만의 관리 방식’으로서 선수들을 지킨다고 했다. 이와 같은 말처럼 추후 관리를 통해 최종적인 기록에선 혹사로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끝까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큰 시련을 겪는 선수가 생기더라도, 새로운 신화가 한 번 더 써진다면 혹사의 기억은 자연스럽게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그들이 던졌던 수많은 공들은 결국 자신들의 ‘몸의 기억’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화려한 성적 속에 감춰진 이들의 혹사를 기억하고 보편적인 혹사론 속에서 이에 대해 질타할 수 있어야 한다. 김태형 감독은 “이길 수 있을 때 이겨야 한다”는 신념을 얘기하며 목표점에 최단경로로 도달하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김태형 감독의 선택은 오히려 현재의 길을 최단경로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두산만의 관리 방식 역시 시작조차 못하게 될 상황이 오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의 승리는 원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목소리들이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될 소리임을, 알아야만 한다.
기록 출처: STATIZ
야구공작소
김준호 칼럼니스트
야구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구단의 성공 속에서 소수의 희생자들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 선수들은 조용히 사라졌을 뿐이다. 신화가 깨어진 뒤에서야 간간이 재조명될 뿐이다. 그 규모에 비해 드러나는 부분은 작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투혼은 시즌 전체의 이닝, 등판 횟수 정도로만 약간의 편린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지난 3년 동안 두산 베어스의 대장정은 성공의 연속이었다. 오랫동안 이어져 온 2등 콤플렉스를 깬 우승은 팬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이 신화 속에서 가려져 있는 비극 역시 존재했다. 이는 마치 최근 2주간 좋은 성과 속에서 어린 두산 불펜 투수들의 혹사 논란이 벌어졌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최근 일들은 과거에 있었던 일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뿐이다.
2015년 여름의 함덕주
최근 논란의 중심인 함덕주는 이미 첫 풀타임 시즌 때 혹사를 겪었다.
함덕주, 2015년: 68경기(10위) / 61.2이닝(25위) / 총 투구 수 1270
(포스트시즌: +2.1이닝 / 투구 수 +64)
시즌 전체 성적으로 보면 함덕주에게 부과된 짐의 양은 많지 않아 보인다. 총 투구 수만 1200개가 넘어 다소 많을 뿐 충분히 문제없다고 여겨지는 수치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나누어 보았을 때는 다르다. 2015년의 함덕주는 프로무대가 아직 익숙하지 않을 20세였기에 처음에는 큰 책임이 주어지지 않았다. 실제로 전반기까지 함덕주는 81경기(35등판) 동안 22.2이닝만을 던졌을 뿐이다.
문제는 함덕주가 프로에 완전히 적응한 듯 보이던 후반기부터였다. 마침 두산은 NC, 넥센과 2위 자리를 두고 혈투를 벌이고 있을 시기였다. 함덕주는 전쟁터의 후방에서 최전방으로 보내졌다. 3연투, 한 경기 30개 이상 투구 등 불펜 운영에 있어서 주의가 필요한 모든 제한들은 함덕주에게 더 이상 적용되지 않았다. 3연투의 세 번째 경기에서 40구를 넘게 던지게 하는 운영이 8월 중에만 두 번이나 있었다. 시즌 마지막 2주 남짓한 기간 동안은 무려 10경기에 등판하여 14이닝 동안 270개의 공을 던졌다. 웬만한 선발 투수가 같은 기간 동안 던졌을 투구 수를 능가하는 수치였다.
결국 함덕주는 후반기 총 63경기 동안 33등판 39이닝, 789구, 30구 이상 투구한 횟수 8경기, 40구 이상 투구한 횟수 3경기라는 기록을 남겼다. 보통의 불펜 투수들이 한 시즌 동안 1000구 정도의 피칭을 하는 것을 고려한다면, 함덕주는 두 달 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거의 한 시즌 분량을 소화한 셈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함덕주는 정규 시즌을 큰 문제없이 버텨내며 팀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있어 큰 공헌을 했다. 하지만 포스트 시즌이 되자, 참사를 내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시즌에는 더 이상 2015년 여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남은 것은 3km/h 가까이 떨어진 구속과 제구가 전혀 되지 않는 팔뿐이었다.
2016년 봄의 정재훈
2015년 2차 드래프트에서 마지막 순번으로 정재훈이 지명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미안함과 반가움을 느꼈겠지만, 적어도 기대감은 없었을 것이다. FA 보상 선수로 이적하기 전 34세의 정재훈은 이미 노쇠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롯데에 이적하고 난 뒤엔 자취를 감춘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6년 봄 정재훈은 무덤덤한 반응들을 곧바로 놀라움으로 바꿔주었다. 삼진을 연신 잡아내는 포크볼은 전성기 때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반등은 즉시 혹사로 이어졌다.
정재훈 2016년 주요 기록: 46경기(42위) / 52.1이닝(33위) / 총 투구 수 833
일견 평범한 수치로 보이지만, 이 기록 속에는 들춰내야 할 많은 부분이 있다.
전년도 셋업맨 역할을 수행했던 함덕주가 무너진 상황에서 ‘굴러들어온 복’이었던 정재훈은 함덕주가 했던 역할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처음에는 전 해 1군에서 던지지 못했던 설움을 푸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만이 남았다. 4월 한 달간 정재훈은 김성근 감독 시절 내내 혹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권혁, 송창식, 박정진을 넘어 불펜 이닝 1위에 당당히 자리했다. 특히 송창식은 ‘오재원 고의 삼진’으로 이슈가 되었던 문제의 벌투를 했던 달이었는데, 정재훈은 그런 송창식의 이닝마저 넘었다. 이는 등판했던 13경기 중 멀티 이닝을 던진 경기가 9경기나 되었던 것이 크게 작용했다.
5월에는 그나마 적은 이닝을 던지게 되어 불펜 이닝 1위 자리에선 내려왔지만 권혁, 송창식, 장민재의 한화 3인방에 이은 4위였다. 이 시점에서 30이닝을 넘게 던진 불펜 투수는 이 네 명뿐이었다. 물론 한화의 불펜 운영과 다르게 정재훈의 등판은 각각 한 경기씩 살펴보았을 때는 분명 나올 만한 상황이긴 했다. 그가 등판했던 경기들 대부분은 4점 차 이하로 리드하고 있어 ‘불펜 에이스’가 등장할 필요가 있었다. 2016년의 두산이 압도적인 팀이었던 만큼 그런 경기나 너무나 많았던 것이 문제였다. 등판할만한 상황이었던 것과 별개로 정재훈의 체력은 점점 고갈될 수밖에 없었다.
함덕주가 단기간의 심각한 혹사를 두 달 남짓 버티고 나서 무너졌던 것처럼 정재훈도 마찬가지였다.
여름이 다가오자 정재훈은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공이 급격히 맞아나가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볼넷 억제 역시 되지 않았다. 그 탓에 이전까지 한 개도 없었던 블론 세이브를 두 달 사이에 5개나 범하게 되었다. 5월까지 부과되었던 이닝에 비하면 그 뒤로는 평범한 수준의 양으로 등판하였지만, 다른 승리조 불펜들이 마땅치 않은 탓에 경기력이 예전 같지 않은 상황에서도 꾸준히 올라왔던 것에 따른 결과였다.
이런 와중에 정재훈은 8월 3일, 박용택의 강습 타구에 맞고 팔뚝이 부러지는 불운 속에 정규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투구 능력에 문제가 생기는 것과 같은 류의 부상이 아닌, 타구로 인한 사고였던 만큼 당연히 복귀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 해가 정재훈의 마지막이 되었다. 재활 도중 발병한 어깨 부상이 그를 붙잡고 만 것이다. 복귀 과정에서 생긴 부상이었던 만큼 이 역시 단순한 불운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016년 그가 책임졌던 수많은 순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그가 쥐었던 마지막 공은 팔뚝이 부러진 상황에서 반대쪽 팔로 던지려 했던 그 투혼의 공이 되고 말았다.
2017년 모든 계절의 김강률
앞선 2년간 두산의 불펜 에이스들에게 가해진 혹사가 기록 속에서 감춰질 수 있었다면, 김강률의 경우엔 누가 봐도 혹사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강률 2017년 주요 기록: 70경기(3위) / 89.0이닝(2위) / 총 투구 수 1492
(포스트시즌: +7.2이닝 / 투구 수 +107)
김강률은 2015년 당시 함덕주와 비슷하게 시즌 초반엔 다소 편안한 상황에서 던지다, 후반기부터 중용되었다. 하지만 함덕주는 전반기 중요도가 낮은 상황에서 기용되었을 때는 많은 이닝을 던지지 않은 반면, 김강률은 처음부터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6월이 지나 필승조로 승격될 무렵, 이미 김강률의 투구 이닝은 40이닝을 넘어가고 있었다.
불펜의 중심을 맡게 된 후로는 2015년 함덕주만큼은 아니어도 투구의 강도를 더 끌어올렸다. 8월부터 선두 기아를 매섭게 추격했기에 김강률의 역할은 막중했다. 8월부터 25경기에 등판해서 그 가운데 멀티 이닝을 책임진 경기가 무려 16번이나 있었다. 그 때문에 김강률은 6월부터 월간 등판 순위, 이닝 순위에서 5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김강률은 시즌 끝까지 버텼다. 김강률은 한국 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도 2.1이닝 동안 41구를 소화하며 건재함을 보여줬다.
하지만 결국 함덕주의 2015년 이후 상황과 비슷한 과정이 되고 있다. 김강률은 올해 한 경기에서 평균 구속이 140km/h 초반 대로 떨어지기도 하는 등, 평균 구속이 2km/h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 회복되지 않고 있으며 연일 난타를 맞고 있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오늘을 살펴보기
함덕주는 다행히 부활했지만 힘든 재활 과정을 겪었다. 정재훈은 은퇴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김강률은 부진의 늪에 빠져있다. 이들 모두 과부하 속에서 한 해를 지냈고, 이후 나쁜 미래를 겪게 되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결과론적 해석이긴 하다. 오히려 반대로 이를 철저하게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태형 감독 체제에서 이런 혹사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되짚어봐야 할 점이다. 함덕주는 한 번 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등판들을 하고 있고 곽빈과 박치국은 새내기로서 쉽지 않은 양의 피칭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태형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지금) 승리를 쌓아놓으면 나중에 함덕주를 더 관리해줄 수 있다, 엔트리에서 빼줄 수 있다”고 말하며 ‘두산만의 관리 방식’으로서 선수들을 지킨다고 했다. 이와 같은 말처럼 추후 관리를 통해 최종적인 기록에선 혹사로 보이지 않게 할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끝까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큰 시련을 겪는 선수가 생기더라도, 새로운 신화가 한 번 더 써진다면 혹사의 기억은 자연스럽게 모두의 기억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그들이 던졌던 수많은 공들은 결국 자신들의 ‘몸의 기억’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화려한 성적 속에 감춰진 이들의 혹사를 기억하고 보편적인 혹사론 속에서 이에 대해 질타할 수 있어야 한다. 김태형 감독은 “이길 수 있을 때 이겨야 한다”는 신념을 얘기하며 목표점에 최단경로로 도달하는 것을 가장 중시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 김태형 감독의 선택은 오히려 현재의 길을 최단경로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두산만의 관리 방식 역시 시작조차 못하게 될 상황이 오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방식의 승리는 원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목소리들이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될 소리임을, 알아야만 한다.
기록 출처: STATIZ
야구공작소
김준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