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지는 경기 시간, 빨리 퇴근하는 팀의 비밀은?
입력 : 2018.10.1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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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완연한 가을 속에 KBO리그 역시 포스트시즌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아직 정규시즌 순위가 완전히 판가름 나지는 않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윤곽은 드러난 상태다. 혹시 매번 비슷한 순위표를 확인하는 것에 질린 사람이 있다면, 여기 색다른 순위표가 있다.



2018년 9월까지 팀별 평균 경기시간 순위


사실 위 표는 올해 팀 성적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그저 올해 개막부터 9월까지 팀당 평균 경기시간이 짧은 순서대로 나열했을 뿐이다. 흔히 야구계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은 본인의 업무와 관련된 경기가 빨리 끝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들 한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 SK는 가히 행복 전도사 수준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최단 시간을 기록한 SK와 최장시간을 기록한 롯데의 평균 경기시간 차는 무려 15분에 이른다. 물론 3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인 야구 경기에서 15분은 적은 차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는 아직도 하고 있네?”라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야구 경기에서 시간을 잡아먹는 행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닝 중 투수 교체, 볼넷 허용, 비디오 판독, 실책, 관중 난입 등 그날 경기시간을 좌지우지할 요소는 무수히 많다. 다른 외부 요인 개입 없이 단순히 점수가 많이 나서 경기가 길어질 때도 있다. 그 외에 투수들의 투구 간격, 투수코치의 마운드 방문 등도 이유가 된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는 경기 외적인 요인보다는 경기 내적인 요인에 집중했다. KBO리그 투수들의 투구 간격과 같은 자료를 구할 수 없었던 탓도 있지만, 순수하게 어떤 경기상황이 경기시간에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고자 했다. 최초로 고려한 경기상황 변수는 총 15개였다.1)

1) 타자의 경우 경기당 득점, 삼진, 볼넷, 안타, 홈런, 인플레이 타구, 병살타. 투수의 경우 경기당 실점, 탈삼진, 볼넷 허용, 피안타, 피홈런, 인플레이 타구 허용, 병살타 유도. 그리고 야수의 실책.


‘볼넷 허용’은 결정적, ‘득실점’은 글쎄



통계 모델링2)으로 선정된 주요 기록(2018년, 경기당 개수)


올해 한정으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볼넷 허용이었다. 사실 그다지 놀라운 결과는 아니다. 생각해보면 볼넷은 발생 가능한 타격 및 투구 결과 중에서 소요시간이 굉장히 ‘긴’ 편에 속한다. 한 타자에게 적어도 4개 이상의 공을 던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볼넷 허용은 아웃카운트를 얻지 못하고 상대의 공격이 계속 이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요인이 볼넷 허용이라면 올해 롯데가 팬들을 가장 오래 붙잡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롯데 투수진이 헌납한 경기당 3.86개의 볼넷은 10개 구단 중 가장 많았다. 반면 최단 경기시간 1위에 오른 SK의 경우 경기당 2.92개로 넥센에 이어 두 번째로 적었다. 더불어 최소 볼넷 허용 상위 네 팀은 모두 최단 경기시간 5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예상외로 득점과 실점은 경기시간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난타전이 무조건 장기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당장 경기시간이 가장 짧았던 SK의 경기당 득점은 5.79점으로 최다 3위에 해당한다. 반대로 경기당 득점이 각각 9, 10위인 한화와 NC는 되려 경기 시간이 긴 축에 속했다. 이처럼 점수 자체보다는 그 과정이 경기시간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 변수 선정은 최고 집합 선택(best subset selection) 기법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단 하나의 비결은 없다



2007년 ~ 2018년 경기당 볼넷 허용과 평균 경기시간 분포 그래프


하지만 누적된 통계는 사뭇 다른 말을 한다. 2007년부터 2018년까지3) 12년간 팀별 평균 경기시간 자료를 조사한 결과, 경기시간과 직결되는 결정적인 기록은 존재하지 않았다. 즉 올해와 같이 볼넷 허용이라는 단 하나의 기록이 평균 경기시간 전체를 좌우하지 않았다. 위 그래프를 보면 사실상 볼넷 허용과 경기시간 사이의 상관관계를 찾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5년만 끊어서 봤을 때도 결과는 같았다.

그나마 경기시간과의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하려면 여러 기록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했다. 통계적 다중 선형 회귀 모형으로 실험한 결과, 타자의 삼진, 볼넷, 인플레이 타구 수, 병살타와 투수의 탈삼진, 볼넷 허용, 인플레이 타구 허용까지 총 7개의 기록이 선정됐다. 이 기록 조합은 경기시간을 63% 정도 설명할 수 있었다. 그다지 강력한 관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상관은 있는 수준이다.

결국, 올해 SK의 최단 경기시간 1위 비결에는 타자들의 적당히 적은 삼진과 인플레이 타구, 투수들의 인플레이 타구 억제도 함께 숨어 있었던 셈이다. 반대로 롯데가 기록한 최장 경기시간에는 투수들의 많은 볼넷 허용과 함께 많은 탈삼진이 있었고, 타선의 적지 않은 삼진과 적은 병살타 수도 한몫했다고 할 수 있다.

3) 2018년은 9월까지의 자료


빨리 집에 가는 방법?

경기상황이 경기시간을 100% 해석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역시 경기 외적인 요소의 개입일 것이다. 한 번에 5분의 시간을 뺏을 수도 있는 비디오 판독이나, 이닝 중간에 투수를 교체할 때마다 걸리는 시간 등 경기상황보다 시간 단위가 큰 외부 요소들이 산재한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조기 귀가에 최적화된 라인업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타자가 삼진과 볼넷이 적으면서 인플레이 타구도 적은데, 그 와중에 병살타까지 많기란 분명 쉽지 않다. 마찬가지로 어떤 투수가 삼진과 볼넷이 모두 적으면서 인플레이 타구까지 효과적으로 억제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행여 그런 선수가 존재하더라도 1군 무대에서 살아남기 좋은 조건은 아니다.

오늘 보러 갈 야구경기가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면 볼넷이 적게 나오고 병살타가 많이 나오길 바라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보다는 양 팀 타자들이 모두 초구에 홀린 듯 반응하거나 심판들이 칼같이 공명정대한 판정을 내리길 바라는 편이 더 낫다. 물론 경기가 시작한 지 4시간이 넘어가고 있다면, 그때부터는 그 무엇도 큰 의미는 없겠지만 말이다.


야구공작소
장원영 칼럼니스트 / 에디터=박기태, 김혜원


*기록 출처: 스포츠투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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