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온도와 습도는 야구공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공은 덥고 건조할수록 잘 날아가고 춥고 습할수록 잘 날아가지 않는다. 하드볼 타임즈의 칼럼에 따르면 온도가 2.8°C 낮아질 때마다 반발계수는 0.5% 낮아지고 습도가 5%P 오를 때마다 반발계수가 1.2% 낮아진다고 한다.
온도와 습도에 따른 공의 변화를 실제 경기에 활용할 수 있을까? 우선 공의 온도를 조절해 경기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위 칼럼에서는 공의 온도와 습도가 변화하는 속도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중 온도의 반감기는 30분에 불과하다. 경기 전에 공의 온도를 10도 높여 놓았더라도 30분만 지나면 5도가 내려간다는 뜻이다. 뜨거워진 공을 만진 심판이 수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덤이다.
반면 습도는 반감기가 4.2일이다. 습도를 10%P 높여 놓았다면 4.2일이 지나야 5%P만큼 원래대로 돌아온다. 한 경기가 벌어지는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아 활용 가능성이 있다.
습도 5%P당 반발계수가 1.2% 차이 난다고 생각하면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다. 우리나라의 여름 평균 습도는 60~80% 정도인데 이때 습도를 10%까지 낮추면 공의 반발계수가 12% 이상 높아진다. 올 시즌 공인구의 반발계수가 0.4134~0.4374에서 0.4034~0.4234로 바뀐 것을 생각하자. 반발계수가 12%, 약 0.05가량 높아지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습도 문제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콜로라도 로키스는 2002년부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2018년부터 공을 습하게 보관해 홈런을 줄였으며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18년부터 모든 공을 공기가 조절되는 밀폐 공간에 보관하도록 권고했다. 권고 온도는 21°C , 습도는 50%다.
하지만 아직 KBO에는 습도와 관련된 제한이 없다. 그렇다면 KBO리그에서 각 구단이 공의 습도를 조절해 이득을 취할 수 없을까? 규정상 가능한지,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알아보자.
규정상 가능할까?
구단이 공의 습도를 조절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격 때는 ‘마른’ 공을 쓰고 수비 때는 ‘젖은’ 공을 쓰는 것이고, 둘째는 경기 내내 같은 공을 쓰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러나 첫 번째는 규정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실행하기 어렵다.
2019 리그규정, 야구규칙, 야구규약을 통틀어 온도나 습도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공격과 수비 때 각각 다른 공을 주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불공정행위다. 적발되는 순간 2019 야구규약 부칙 제 1조 ‘총재는 ~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도 제재를 내리는 등 적절한 강제조치를 할 수 있다’에 따라 모종의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공격과 수비 때 서로 다른 습도의 공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공수 교대마다 심판이 공을 새로 보충받아야 한다. 하지만 공 보충 시점은 구단에서 결정할 수 없다. 지난 6월 11일 잠실 롯데-LG 경기에서 주심이 공을 전달받은 상황을 직접 확인해 본 결과는 아래와 같다.
2~9회 동안의 기록으로,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공 보충이 이뤄진 시점이다. 공을 보충하는 시점은 일정하지 않았고, 초와 말이 모두 끝나야 보충하는 경우도 많았다. 상대 공격 때 사용한 젖은 공이 우리 공격 때까지 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볼 보이와 배트걸을 매수해야 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다음으로 경기 내내 같은 공을 쓰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총재가 임의로 제재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어떤 규정을 고려할 수 있을까? 습도와 관련된 명문 규정은 없지만 몇 가지 관련된 규정은 있다.
1. 야구규약 148조 8항에서는 ‘기타 위 각 호의 유사한 행위로서 경기의 공정성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부정행위로 보고 제재할 수 있게 한다. 공지되지 않은 공의 습도 조절이 경기의 공정성을 손상시키는 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기타 각 호’는 주로 승부조작이나 고의 패배에 관한 내용이다. 습도 조절이 이와 유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2. KBO 경기사용구 규정 제 4조에서는 제조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습도 조절로 제조 기준을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수분 함량이 극도로 적어지거나 많아지면 중량 기준에 미달하거나 초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경기구 제조 업체에 적용되는 것이지 보관 구단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3. KBO 경기사용구 규정 제 5조에서는 KBO 소속 심판위원만이 야구장에서 경기사용구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야구공 상자를 뜯지 않은 채 외부 습도만 조절한 것을 봉인을 손상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확대 해석에 가까워 보인다.
4. KBO 경기사용구 규정 제 6조에서는 구단에 공급된 공에 대해 수시로 검사를 실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검사 항목에는 반발계수도 포함되어 있다. 습도로 반발계수를 조절한 것이 발각될 수도 있지 아닐까?
그러나 이 규정에서 검사 방법으로 지정한 ‘야구공 시험방법 및 요구조건(KISS T 0003-2015)’을 확인한 결과, 검사 전에 검사를 진행하는 스포츠용품시험소에서 자체적으로 공의 습도를 조절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습도에 변화를 준 공이 검사를 당하더라도 검사하는 측에서 친절하게 습도를 표준 습도로 조절해 준 뒤에 검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시검사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공수 때 같은 공을 쓴다면 크게 문제가 될 규정은 없어 보인다.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규정상 가능해도 실제로 구현할 수 없으면 탁상공론이다. 적은 예산으로 습도 조절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진행했다. 다만 습도를 높이든 낮추든 한쪽만 가능하면 자연히 다른 쪽도 가능할 것이므로 낮추는 쪽만 실험했다.
먼저 KBO 경기사용구가 어떻게 보관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경기사용구는 KBO에서 지급받아 각 구단에서 관리한다. 공은 한 상자에 12개씩 담겨 보관되고, 12개의 공은 각각 4개에 한 묶음으로 총 3개의 비닐(*포장 재료를 통상 비닐이라고 부르지만 과학적으로는 부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용어를 ‘비닐’로 통일한다)에 싸여 있다.
‘습도볼’ 제작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공이 비닐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봉인을 훼손하지 않고 공을 ‘적시거나’ ‘말리려면’ 바깥 공기를 습하게 하거나 건조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때 비닐 안까지 습도가 전달될까?
일반적으로 물은 비닐을 통과할 수 없지만 수증기는 통과할 수 있다. 비닐의 소재에 따라 수증기가 투과되는 정도가 다른데, 아래는 소재에 따라 수증기와 산소가 투과되는 정도를 나타낸 것이다.
야구공 포장 비닐이 이 중 어떤 재질인지 확인하기 위해 공인구 생산업체인 스카이라인 고객센터에 문의했지만 명확한 답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야구공 포장지가 손으로 잡아당기면 잘 늘어나고 찢어진다는 것을 고려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비닐인 LDPE로 실험을 진행했다.
준비물 : 구멍 뚫린 아크릴 상자(15cm*15cm*15cm), 실리카겔 500g, 습도계 2개, LDPE 소재 지퍼백, 셀로판 테이프
아크릴 상자 내부는 외부와 차단되어 습도가 낮게 유지되는 밀폐 공간 역할을 한다. 먼저 아크릴 상자 내부의 습도를 낮추기 위해 실리카겔 500g을 넣는다. 실리카겔은 흔히 김 포장에 많이 들어가는 건조제다. 나중에 아크릴 상자의 구멍을 막으면 내부 공기가 건조해진다.
이어 아크릴 상자 내부의 습도를 측정하기 위해 습도계 하나를 상자 안에 넣는다. 또한 아크릴 상자의 건조한 공기가 비닐 안까지 퍼질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퍼백에 다른 습도계를 넣는다. 밀봉을 위해 지퍼백 입구를 셀로판 테이프로 한 번 더 막고 상자 안에 넣는다.
마지막으로 아크릴 상자 위쪽의 구멍을 테이프로 막고, 시간에 따른 습도 변화 양상을 관찰한다. 아크릴 박스는 해가 들지 않는 실내에서 상온에 보관했다.
아크릴 상자의 습도는 아주 빠르게 내려갔다. 처음에 55%였던 습도가 30분도 지나지 않아 습도계가 측정할 수 있는 최저 습도인 20%까지 내려갔고, 실제로는 그 미만으로 내려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닐 내부의 습도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내려갔지만 나쁘지 않은 속도였다. 2시간이 지났을 때 10%P가량 내려갔고 약 20시간 뒤에는 측정 가능한 최저 습도인 20%를 기록했다. 외부 습도를 낮추니 비닐 내부 습도도 낮아진 것이다. 반대로 비닐 내부를 습하게 하려면 실리카겔을 넣는 대신 가습기를 가동하면 된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았다. 아크릴 상자 16,300원, 실리카겔 15,180원, 지퍼백 2,000원, 습도계 26,260원(2개) 등이다. 특정한 습도를 맞출 필요 없이 무조건 습도를 낮추기만 하면 되므로 비싼 장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경기사용구를 박스째 건조시키려면 더 큰 밀폐공간과 더 많은 실리카겔이 필요하겠지만 큰 비용은 들지 않을 것이다.
정리하면 물리적으로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어떤 구단이 활용하면 좋을까
간단하게는 투수와 타자의 뜬공/땅볼(FO/GO) 유형이 반대인 팀이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뜬공 타자, 땅볼 투수로 구성된 팀이라면 공을 말려서 비거리를 늘리는 것이 유리하고 그 반대인 팀은 공을 적셔서 비거리를 줄이는 것이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7월 1일 기준 KIA는 투수 FO/GO에서 타자 FO/GO를 뺀 값이 0.16로 독보적으로 높다. 투수가 허용하는 뜬공에 비해 타자가 치는 뜬공이 적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라면 공을 습하게 해 뜬공의 비거리를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키움, SK, NC는 투수가 허용하는 뜬공에 비해 타자가 치는 뜬공이 많다. 이런 팀들은 공의 습도를 낮춰 뜬공의 비거리를 높이는 편이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트래킹 데이터를 활용하면 더 세밀한 분석이 가능하다. 팀 타자들이 담장을 아슬아슬하게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 공을 말리고, 팀 투수들이 아슬아슬하게 담장을 넘는 타구를 많이 맞았다면 공을 적시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홈구장 크기나 팀 수비력, 투수에 따라 젖거나 마른 공에 대해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여기부턴 구단 분석팀의 몫이다.
습도는 분명히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른 제한이 없는 지금, 먼저 활용하는 팀이 있다면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과연 KBO에서 ‘습도볼’을 볼 수 있을까?
야구공작소
오연우 칼럼니스트 / 에디터= 조예은 /도움=박주현, 한민희, 호동해
온도와 습도에 따른 공의 변화를 실제 경기에 활용할 수 있을까? 우선 공의 온도를 조절해 경기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위 칼럼에서는 공의 온도와 습도가 변화하는 속도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중 온도의 반감기는 30분에 불과하다. 경기 전에 공의 온도를 10도 높여 놓았더라도 30분만 지나면 5도가 내려간다는 뜻이다. 뜨거워진 공을 만진 심판이 수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덤이다.
반면 습도는 반감기가 4.2일이다. 습도를 10%P 높여 놓았다면 4.2일이 지나야 5%P만큼 원래대로 돌아온다. 한 경기가 벌어지는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아 활용 가능성이 있다.
습도 5%P당 반발계수가 1.2% 차이 난다고 생각하면 그리 크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다. 우리나라의 여름 평균 습도는 60~80% 정도인데 이때 습도를 10%까지 낮추면 공의 반발계수가 12% 이상 높아진다. 올 시즌 공인구의 반발계수가 0.4134~0.4374에서 0.4034~0.4234로 바뀐 것을 생각하자. 반발계수가 12%, 약 0.05가량 높아지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습도 문제를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콜로라도 로키스는 2002년부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2018년부터 공을 습하게 보관해 홈런을 줄였으며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2018년부터 모든 공을 공기가 조절되는 밀폐 공간에 보관하도록 권고했다. 권고 온도는 21°C , 습도는 50%다.
하지만 아직 KBO에는 습도와 관련된 제한이 없다. 그렇다면 KBO리그에서 각 구단이 공의 습도를 조절해 이득을 취할 수 없을까? 규정상 가능한지, 물리적으로 가능한지 알아보자.
규정상 가능할까?
구단이 공의 습도를 조절해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2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격 때는 ‘마른’ 공을 쓰고 수비 때는 ‘젖은’ 공을 쓰는 것이고, 둘째는 경기 내내 같은 공을 쓰는 것이다. 첫 번째 방법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러나 첫 번째는 규정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실행하기 어렵다.
2019 리그규정, 야구규칙, 야구규약을 통틀어 온도나 습도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그러나 공격과 수비 때 각각 다른 공을 주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불공정행위다. 적발되는 순간 2019 야구규약 부칙 제 1조 ‘총재는 ~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도 제재를 내리는 등 적절한 강제조치를 할 수 있다’에 따라 모종의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공격과 수비 때 서로 다른 습도의 공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공수 교대마다 심판이 공을 새로 보충받아야 한다. 하지만 공 보충 시점은 구단에서 결정할 수 없다. 지난 6월 11일 잠실 롯데-LG 경기에서 주심이 공을 전달받은 상황을 직접 확인해 본 결과는 아래와 같다.
2~9회 동안의 기록으로,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공 보충이 이뤄진 시점이다. 공을 보충하는 시점은 일정하지 않았고, 초와 말이 모두 끝나야 보충하는 경우도 많았다. 상대 공격 때 사용한 젖은 공이 우리 공격 때까지 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볼 보이와 배트걸을 매수해야 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다음으로 경기 내내 같은 공을 쓰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총재가 임의로 제재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어떤 규정을 고려할 수 있을까? 습도와 관련된 명문 규정은 없지만 몇 가지 관련된 규정은 있다.
1. 야구규약 148조 8항에서는 ‘기타 위 각 호의 유사한 행위로서 경기의 공정성을 손상시키는 행위’를 부정행위로 보고 제재할 수 있게 한다. 공지되지 않은 공의 습도 조절이 경기의 공정성을 손상시키는 행위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기타 각 호’는 주로 승부조작이나 고의 패배에 관한 내용이다. 습도 조절이 이와 유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2. KBO 경기사용구 규정 제 4조에서는 제조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습도 조절로 제조 기준을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수분 함량이 극도로 적어지거나 많아지면 중량 기준에 미달하거나 초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경기구 제조 업체에 적용되는 것이지 보관 구단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3. KBO 경기사용구 규정 제 5조에서는 KBO 소속 심판위원만이 야구장에서 경기사용구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야구공 상자를 뜯지 않은 채 외부 습도만 조절한 것을 봉인을 손상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확대 해석에 가까워 보인다.
4. KBO 경기사용구 규정 제 6조에서는 구단에 공급된 공에 대해 수시로 검사를 실시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검사 항목에는 반발계수도 포함되어 있다. 습도로 반발계수를 조절한 것이 발각될 수도 있지 아닐까?
그러나 이 규정에서 검사 방법으로 지정한 ‘야구공 시험방법 및 요구조건(KISS T 0003-2015)’을 확인한 결과, 검사 전에 검사를 진행하는 스포츠용품시험소에서 자체적으로 공의 습도를 조절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습도에 변화를 준 공이 검사를 당하더라도 검사하는 측에서 친절하게 습도를 표준 습도로 조절해 준 뒤에 검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수시검사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리하면 공수 때 같은 공을 쓴다면 크게 문제가 될 규정은 없어 보인다.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규정상 가능해도 실제로 구현할 수 없으면 탁상공론이다. 적은 예산으로 습도 조절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진행했다. 다만 습도를 높이든 낮추든 한쪽만 가능하면 자연히 다른 쪽도 가능할 것이므로 낮추는 쪽만 실험했다.
먼저 KBO 경기사용구가 어떻게 보관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경기사용구는 KBO에서 지급받아 각 구단에서 관리한다. 공은 한 상자에 12개씩 담겨 보관되고, 12개의 공은 각각 4개에 한 묶음으로 총 3개의 비닐(*포장 재료를 통상 비닐이라고 부르지만 과학적으로는 부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용어를 ‘비닐’로 통일한다)에 싸여 있다.
‘습도볼’ 제작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공이 비닐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봉인을 훼손하지 않고 공을 ‘적시거나’ ‘말리려면’ 바깥 공기를 습하게 하거나 건조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때 비닐 안까지 습도가 전달될까?
일반적으로 물은 비닐을 통과할 수 없지만 수증기는 통과할 수 있다. 비닐의 소재에 따라 수증기가 투과되는 정도가 다른데, 아래는 소재에 따라 수증기와 산소가 투과되는 정도를 나타낸 것이다.
야구공 포장 비닐이 이 중 어떤 재질인지 확인하기 위해 공인구 생산업체인 스카이라인 고객센터에 문의했지만 명확한 답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야구공 포장지가 손으로 잡아당기면 잘 늘어나고 찢어진다는 것을 고려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비닐인 LDPE로 실험을 진행했다.
준비물 : 구멍 뚫린 아크릴 상자(15cm*15cm*15cm), 실리카겔 500g, 습도계 2개, LDPE 소재 지퍼백, 셀로판 테이프
아크릴 상자 내부는 외부와 차단되어 습도가 낮게 유지되는 밀폐 공간 역할을 한다. 먼저 아크릴 상자 내부의 습도를 낮추기 위해 실리카겔 500g을 넣는다. 실리카겔은 흔히 김 포장에 많이 들어가는 건조제다. 나중에 아크릴 상자의 구멍을 막으면 내부 공기가 건조해진다.
이어 아크릴 상자 내부의 습도를 측정하기 위해 습도계 하나를 상자 안에 넣는다. 또한 아크릴 상자의 건조한 공기가 비닐 안까지 퍼질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지퍼백에 다른 습도계를 넣는다. 밀봉을 위해 지퍼백 입구를 셀로판 테이프로 한 번 더 막고 상자 안에 넣는다.
마지막으로 아크릴 상자 위쪽의 구멍을 테이프로 막고, 시간에 따른 습도 변화 양상을 관찰한다. 아크릴 박스는 해가 들지 않는 실내에서 상온에 보관했다.
아크릴 상자의 습도는 아주 빠르게 내려갔다. 처음에 55%였던 습도가 30분도 지나지 않아 습도계가 측정할 수 있는 최저 습도인 20%까지 내려갔고, 실제로는 그 미만으로 내려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닐 내부의 습도는 상대적으로 천천히 내려갔지만 나쁘지 않은 속도였다. 2시간이 지났을 때 10%P가량 내려갔고 약 20시간 뒤에는 측정 가능한 최저 습도인 20%를 기록했다. 외부 습도를 낮추니 비닐 내부 습도도 낮아진 것이다. 반대로 비닐 내부를 습하게 하려면 실리카겔을 넣는 대신 가습기를 가동하면 된다.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았다. 아크릴 상자 16,300원, 실리카겔 15,180원, 지퍼백 2,000원, 습도계 26,260원(2개) 등이다. 특정한 습도를 맞출 필요 없이 무조건 습도를 낮추기만 하면 되므로 비싼 장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경기사용구를 박스째 건조시키려면 더 큰 밀폐공간과 더 많은 실리카겔이 필요하겠지만 큰 비용은 들지 않을 것이다.
정리하면 물리적으로도 문제는 없어 보인다.
어떤 구단이 활용하면 좋을까
간단하게는 투수와 타자의 뜬공/땅볼(FO/GO) 유형이 반대인 팀이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뜬공 타자, 땅볼 투수로 구성된 팀이라면 공을 말려서 비거리를 늘리는 것이 유리하고 그 반대인 팀은 공을 적셔서 비거리를 줄이는 것이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7월 1일 기준 KIA는 투수 FO/GO에서 타자 FO/GO를 뺀 값이 0.16로 독보적으로 높다. 투수가 허용하는 뜬공에 비해 타자가 치는 뜬공이 적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라면 공을 습하게 해 뜬공의 비거리를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키움, SK, NC는 투수가 허용하는 뜬공에 비해 타자가 치는 뜬공이 많다. 이런 팀들은 공의 습도를 낮춰 뜬공의 비거리를 높이는 편이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트래킹 데이터를 활용하면 더 세밀한 분석이 가능하다. 팀 타자들이 담장을 아슬아슬하게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 공을 말리고, 팀 투수들이 아슬아슬하게 담장을 넘는 타구를 많이 맞았다면 공을 적시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홈구장 크기나 팀 수비력, 투수에 따라 젖거나 마른 공에 대해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여기부턴 구단 분석팀의 몫이다.
습도는 분명히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른 제한이 없는 지금, 먼저 활용하는 팀이 있다면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과연 KBO에서 ‘습도볼’을 볼 수 있을까?
야구공작소
오연우 칼럼니스트 / 에디터= 조예은 /도움=박주현, 한민희, 호동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