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인천] 김현서 기자= "현대가 해체되지 않았다면,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제2의 야구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요?"
2002년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하며 프로 데뷔. 그해 9승 5무 4홀드 28세이브를 기록하며 신인왕과 구원왕을 동시에 석권. 수준급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보여주며 이름보다 더 유명한 별명 ‘조라이더’ 탄생. 이어 2004년 사상 초유의 한국시리즈 9차전에 마무리로 등판해 ‘빗속의 혈투’ 끝에 팀의 승리를 지켜내며 한국시리즈 MVP 차지. 이후 ‘조용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한국시리즈 9차전’.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발돋움했지만, 부상에 발목 잡히며 뜻하지 않게 찾아온 긴 시간의 공백. 그리고 그사이 친정팀 현대는 해체. 2009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로 복귀했으나 또 다시 부상으로 이듬해 현역 생활을 마감. 선수 생활은 짧았지만, 누구보다 강렬했던 ‘조라이더’ 조용준(42)을 만나 근황을 물어봤다.
Q.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현재 인천에 위치한 조라이더 베이스볼 아카데미에서 엘리트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고요. 얼마 전부터는 사회인 야구단도 만들어서 선수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Q. 사회인 야구팀 ‘조라이더 베이스볼 클럽’ 소개도 부탁드려요.
“지난 2020년 8월에 팀원을 모집하기 시작해서 만 7개월째 운영을 하고 있어요. 캐치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공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선수들이 모였는데 6개월 동안 훈련하다 보니까 지금은 실력이 늘어서 어느 정도 팀다운 모습이 그려지고 있어요. 오는 3월 20일 첫 경기를 하는데 다행히 전패는 당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사회인 리그 마운드에 서는 모습 기대해봐도 될까요?
"제가 얼마 전에 어깨를 다쳤어요. 던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지만, 부상에서 회복한다면"
Q. 야구 말고 다른 일을 생각해 보신 적은요?
“야구 말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 은퇴한 선수들이 레슨장을 많이 운영하다 보니까 경쟁이 나름 치열해요. 거기에다가 최근에 코로나바이러스도 터졌고요. 아마 다들 힘들 거예요. 그래서 작년에 아버지한테 2년 정도 뒤에 야구를 그만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어요. 처음으로. (이제는) 야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들더라고요.”
Q. 만약 야구계를 떠나게 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요즘 골프 치는 게 재밌어서 스크린 골프장을 차리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골프 연습을 하면서 손님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스크린 골프예요.”
Q. 국문과 출신인데 서점 운영은 어떠세요?(웃음)
“서점이요?(웃음) 저는 무늬만 국문과고. 사실 뭐 대학교도 연세대 이야기하는데 제가 연세대를 공부로 간 것도 아니고. 그냥 공부 쪽은 저와 거리가 넘사벽인 것 같은데.(웃음)”
Q. 프로 지도자나 해설위원으로 복귀할 가능성은 없으신가요?
“해설위원은 모르겠어요. 제의가 들어와도 제가 할 것 같다는 생각 안 해봤는데, 프로나 아마추어에 지도자 자리가 있다면 할 생각은 있어요.”
Q. 인기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입담과 예능감을 뽐내셨는데, 개인 채널을 운영하실 생각은요?
“생각은 한번 해봤어요. (출연하니까) 재밌더라고요. 주변에서도 얘기를 많이 해요. 저희 팀원들도 채널을 만들어보자고 제의도 하고요. 근데 항상 제가 하는 말은 유튜브를 하려면 일주일에 1~2편은 꼬박꼬박 업로드해야 하고, 부지런해야 하고, 편집도 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재밌는 콘텐츠가 생기면 할 생각은 있어요.”
Q. 지금부터는 선수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게요. 먼저 별명 ‘조라이더’ (조용준+슬라이더)로 많이 알려져 있잖아요.
“처음에는 오그라들었죠. ‘뭐야, 그게!’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불리다 보니까 익숙해졌어요. 사실 선수시절에는 크게 감흥 없었는데 은퇴하고 나니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용준’ 하면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조라이더’ 하면 ‘아~ 슬라이더 잘 던지는 분’으로 얘기 하더라고요. 별명이 되게 무섭다는 것을 느꼈고, 지금은 만족해요.”
Q. 그렇다면 한국야구 최고의 슬라이더는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선동열 선배님. (웃음) 일단은 국보급이라는 타이틀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요. 선동열 감독님은 변화구뿐만 아니라 경기 운영이나 여러 면에서 역대급으로 손에 꼽을 수 있는 분인 것 같아요.”
Q. 그리고 ‘조라이더’로 불리다 보니까 현대 출신 조용훈 선수와 헷갈려 하는 팬들이 많더라고요. (웃음)
“저희 어머니도 헷갈려 하셨어요. 어머니가 프로야구 중계 시간에 항상 현대 경기를 틀어 놓으시는데 용훈이가 올라올 때 ‘우리 아들 나왔다’고 하면서 보시는 거예요. 용훈이 배번이 또 57번이에요. 저는 51번이고. 카메라가 멀리서 잡으면 57번이 51번으로 보이나 봐요. 거기에다가 걔도 말랐고 저도 호리호리했고. 많이 혼동하시더라고요.”
Q. 2002년, 현대 마무리로 활약하며 김진우 선수를 제치고 신인왕 차지하셨는데 비하인드가 있다면요?
"저는 사실 신인왕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Q. 입단할 때부터 어마어마하셨잖아요?
“그때는 저보다 김진우가 더 어마어마했죠. 그래서 별생각 안 했는데. 시즌 막판에 신인왕 얘기가 조금씩 나오더라고요. 당시에 진우하고 저하고 막상막하였어요. 누가 더 낫다 이런 것도 없이. 그러다가 시즌 중간에 2002 부산 아시안게임을 나가게 됐는데 중국전에 선발이었던 진우가 초반에 많이 흔들리면서 무너졌어요. 그 뒤에 바로 제가 올라가서 안정을 시켜놓은 거죠. 기자분들이 그 경기를 보고 관록에서는 확실히 김진우보다는 조용준이 낫다고 생각하셔서 점수를 많이 주셨던 것 같아요.”
Q.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경기, 200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9차전 ‘빗속의 혈투’인데요.
“전례가 없었잖아요. 무승부 경기가 세 번이나 나왔고. 무조건 이겨야 해! 잡아야 해! 점수 안 줘야 해! 이런 생각밖에 없었어요. 나중에 진만이 형 쪽으로 뜬공이 떠서 하늘을 봤는데 비가 하도 많이 떨어져서 끝까지 공을 못 보겠더라고요. 근데 그걸 놓쳤잖아요. 아무래도 그 이후부터 집중력이 더 높아진 것 같은, 기억이 잘 나진 않아요. 어떤 정신으로 경기를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Q. 현대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이었잖아요. 이후 팀이 해체됐는데,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현대 해체 후 넥센에서 뛰었는데, 사실 넥센하고는 마무리가 좋지 않았어요. 되게 개운치 않게, 찝찝하게 팀을 나왔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잘하기도 했고, 오랜 시간 몸담았던 현대라는 팀이 머릿속에 딱 박혀있었는데 그 팀이 없어졌으니까 아쉬웠죠.
한 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요. ‘만약에 현대가 지금까지 있다면, 내가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제2의 야구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요즘에는 많이 무너졌는데, 대부분 구단들은 아직까지 프랜차이즈 스타들을 코치로 채용하고 있거든요. 지금 현대 출신 선수들을 보면 전부 뿔뿔이 흩어져 있어요. 염경엽 감독님, 이숭용 구단주님 등 모두 다 흩어져있어요. 현대가 있었다면 이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같이 야구를 하고 있을 거고, 그 안에 나도 껴있을 텐데… 제일 아쉽죠. 모구단이 없어졌으니까.”
Q. 현대 출신 선수들과의 모임은 있나요?
“5년 전에 딱 한 번 있었는데 그때 30명 가까이 왔었어요. 프런트 직원분들도 오셨고요. 지금 현장에 있는 분들은 자주 보니까 상관없는데 아예 야구를 접고 다른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어요. 현대가 해체되고 거의 10년 만에 갑자기 추진돼서 만났는데 기억이 새록새록 하더라고요. 그날 다들 술도 많이 마셨고요. 시간이 지난 후, 유니폼 벗고 만나니까 반갑더라고요.”
Q. 모임이 계속 유지되지 않는 이유는요?
“누군가가 앞장서서 해야 하는데 다들 바쁘잖아요. 그리고 가끔씩 보면 괜찮은데, 자주 마주치면 또 옛날 (좋지 않은) 감정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딱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는 않아요.(웃음)”
Q.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했는데, 가장 아쉬운 점은요?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현대 시절에 최고의 주가를 달리다가 부상 때문에 야구를 그만둔 거잖아요. 내가 실력이 없어서, 야구를 못해서가 아니라 본의 아니게 부상 때문에 야구를 그만두고 나니까 그 후에 FA 제도라든가 여러 가지 혜택이 점점 좋아지더라고요. 저는 (환경이) 좋아지기 전에 그만뒀거든요. 그런 점이 아쉽죠"
Q. 2011년 간암 판정을 받고 수술하셨는데,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떤가요?
“지금 (수술한 지) 10년이 지났는데, (보통) 5년 정도 지나면 완치 판정을 받아요. 정확히 몇 프로 뗐는지는 얘기를 안 해주셨는데 절반 이상 절제 한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야구 선수가 아니라 그냥 동네 아저씨예요. 어디서든 (팬들이) 말 걸면 대답하고 말장난도 치고요. 꼬마부터 어른까지 나이와 상관없이 되게 털털해지더라고요. 정말 동네 아저씨처럼. 아직까지 다가와 주시는 팬분들한테 항상 똑같아요. ‘다 같은 인간인데요.’ 이러면서. 그래도 잊지 않고 응원해주시는 팬들에게 감사하죠. 나중에 재밌는 콘텐츠 있으면 유튜브를 통해 웃음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상= 전수연PD
사진= 유튜브 채널 KBS N 영상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