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과 균형추 맞췄어” 카리스마+지도력 장착 울산에 핀 ‘홍명보 꽃’
입력 : 2022.10.09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울산] 이현민 기자= 지독한 악연을 끊었다.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 홍명보 감독이 울산현대 지휘봉을 잡은 후 트라우마를 깨고 있다.

전북현대 앞에만 서면 작아졌던 울산이 ‘홍 카리스마와 지도력’ 덕에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울산에 홍명보 꽃이 활짝 피었다.

울산은 8일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전북과 하나원큐 K리그1 2022 35라운드에서 바로우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지만, 후반 추가시간 아담의 페널티킥과 헤더로 2-1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이로써 승점 72점으로 선두를 달렸고, 2위 전북(승점64)과 승점을 8점 차로 벌렸다. 남은 3경기에서 1승만 챙겨도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짓는다. 17년 만에 리그 정상이 진짜 눈앞이다.

이날 경기 전 홍명보 감독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긴장 되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긴장은 안 된다”고 시원하게 답했다. 제 아무리 홍명보라도 우승을 사실상 확정지을 수 있는 경기였던 만큼 떨릴만했는데 어느 때보다 냉정, 침착했다.

‘지금 이 순간이 지도자로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느냐고 묻자 “나의 지도자 생활보다 우리 울산에 중요한 경기다. 내가 울산으로 오기 전에 전북과 구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 균형추를 맞췄다. 미래적으로 긍정적인 일”이라고 자신보다 팀의 역사를 위해 매진할 뜻임을 분명히했다.

사실상 결승전, 뚜껑이 열렸다. 울산은 초반부터 전북을 몰아쳤다. 주도했지만, 간결하면서 위협적인 슈팅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지난 5일 FA컵 4강처럼 바로우에게 한 방을 얻어맞았다. 조금씩 흔들렸다. 꼬인 실타래는 잘 안 풀렸다. 후반 29분 풀백인 김태환을 빼고 마틴 아담을 투입하는 강수를 뒀다. 허리를 느슨하게 풀고 후방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하면서 투톱을 가동했다. 계속 두드려도 안 열렸다. 전북의 몇 차례 역습에 위기를 맞았지만, 상대 공격수들의 영점 조준이 안 됐다. 위기 순간 수문장 조현우의 선방도 곁들여졌다.

총 슈팅수만 23개, 이 중에 유효슈팅 18개. 답답했다. 예전 같으면 이대로 무너질 수 있었다. 선수들은 시즌 내내, 특히 9월에 접어들면서 ‘홍명보의 정신적 무장 메시지’를 계속 들었다. 주장인 이청용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사력을 다해 뛰었다. 주심의 휘슬이 울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후반 추가시간, 이청용의 슈팅이 상대 선수의 팔을 맞고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레오나르도가 FA컵 4강 퇴장 속죄포를 위해 욕심낼 수 있었지만, 아담에게 키커를 양보했다. 아담이 자신 있게 왼발로 마무리했다. 이어 추가시간의 추가시간. 이규성의 코너킥을 아담이 헤딩골로 마무리했다. 보고도 믿기 힘든 드라마 같은 역전승. 호랑이굴을 가득 메운 팬들이 마침내 포효했다. 전북을 앞에 두고 ‘잘 가세요~’를 불렀다.

아담의 역전골이 터진 순간 홍명보 감독도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와 마냥 아이처럼 좋아했다. 마치 2002 한일 월드컵 8강, 스페인전에서 승부차기를 마무리하며 4강을 확정지었을 때만큼이나 해맑았다. 선수들과 얼싸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홍명보 감독은 “우선, 경기장을 찾아주신 많은 팬에게 기쁨을 드려 행복하다. 우리팀 선수들이 좋을 때나 안 좋을 때 격려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도 고맙다”면서, “우리나 전북에 중요한 경기였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승리를 했다. 지난해 이 시기에 전주에서 2-3으로 졌다. 그때 상황을 되돌려줬다. 물론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승리는 오늘까지만 즐기겠다. 다가올 경기를 잘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침착했어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까지 연령별 대표팀을 시작으로 여러 팀을 지휘해봤는데 오늘이 첫 번째로 짜릿한 승리다. 두 번째는 아시안게임에서 이란에 4-3으로 이겼을 때다. 울산 팀의 것이 나의 것(커리어 사상 최고)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바라던 골(승리)”이라고 환히 웃었다.

홍명보 감독은 부임 후 축구 스타일과 분위기 개선에 집중했다. 선수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주며 당근과 채찍을 가했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최후의 웃는 자가 승자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9부 능선을 넘었다. 그럼에도 트로피를 확실히 들어 올리는 순간까지 들뜨지 않았다. 결정적일 때마다 울산의 발목을 늘 잡았던 앙숙 포항스틸러스와 격돌한다. 11일 오후 3시 포항스틸야드다. 홍명보 감독의 친정팀이기도 하다.

그는 “포항은 내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뛰었던 팀이다. 지금은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아직 경기를 하지 않았다. 전북전 승리는 오늘까지만 즐기겠다. 포항전까지 많은 시간이 없다. 잘 준비하겠다”며 냉정함을 유지했다.

울산 관계자는 “이제 포항에 가서 잘 마무리해야죠”라며 그동안 맺힌 한이 많은 듯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적진에 깃발 꽂을 준비를 마쳤다.

사진=울산현대,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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