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작’ 조정석 흑화는 최대훈 고명 탓?..안타깝고 안쓰러운.. [김재동의 나무와 숲]
입력 : 2024.02.05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OSEN=김재동 객원기자] “아기씨, 동부승지가 또 파직을 당했습니다. 이번으로 올해만 벌써 세 번 쨉니다. 선대왕께서 손수 심으신 복사나무 한 그루 살리는 일이 어찌 이리도 어려울까요? 전하의 진노가 하루가 다르게 깊어지시니 모두가 한 마음으로 죽은 나무에 꽃이 피길 바라고 있지만 그런 날이 오기는 할런지요...”

tvN 토일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 중 궁궐 색장나인으로 들어간 분영(김보윤 분)이 강희수(신세경 분)에게 보낸 동향보고서다.

이 서찰을 보면 선대왕 이선(최대훈 분)의 뒤를 이어 보위에 오른 이인(조정석 분)이 괜히 흑화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 나무에 대해선 1화에서 강항순(손현주 분)이 서찰로 이인에게 친절하게 설명한 바 있다. “오늘 대군 자가와 포로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전하께서 손수 복사나무를 골라 후원에 심게 하셨습니다. 동부승지에게 따로 대군 자가를 보듯 살뜰히 보살피라는 어명까지 내리셨습니다.”

그 나무가 시들어 죽어가니 애꿎은 동부승지들만 갈려나가고 급기야 의주판관으로 나가 있던 김명하(이신영 분)까지 불러들여 나무를 돌보게 한다.

이런 이인이고 보면 진한대군 시절 접수한 “원자를 보위에 올려라!”는 이복형 이선의 고명을 잊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고명대로 나이 어린 원자를 보위에 올려봤자 수렴청정하게 될 왕대비(장영남 분)와 중신들 등쌀에 군주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만무. 특히 이선 독살의 혐의가 의심되는 왕대비라면 그 어린 목숨조차도 위태로울 수 있다. 차라리 스스로 왕위에 올라 친모인 왕대비의 욕심을 주저앉히고 간신배들을 척결한 후 조카를 보위에 올리기로 작정한 것은 아닐까.

또 그것이야말로 3년 넘도록 중전과 후궁들을 독수공방시키며, 끼고돈다는 동상궁에게서조차 후사를 보지 않는 이유일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형 이선 사후 이인의 행보는 급작스러웠다. 먼저 동상궁을 회유해 고명을 왜곡했다. 이어 조카에게 가장 악영향을 끼칠 조카의 외숙 김종배(조성하 분)를 용상에 오르기 전 손수 베어버렸다. 그렇게 신하 누구의 도움도 없이 보위에 올랐다.

직접 피를 묻히며 누구에게 빚진 것 없이 보위에 오른 이인은 신하들에게 다만 두려움만 안기는 군주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친모인 왕대비에겐 손에 들어오지 않는 아들이 되었으며 내명부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지아비가 되었다.

그런 이인이지만 정작 처치곤란은 친모인 왕대비 박씨(장영남 분)와 외숙 박종환(이규회 분)이다. 특히 계비로 들어와 왕대비가 된 어머니는 형 이선으로 하여금 보위에 오르기까지 목숨의 위협을 느끼게 만든 핍박의 주인공이다. 제 핏줄 아닌 어린 손자 문성대군(홍준우 분)에게 언제 흉수를 뻗칠지 모른다. 천륜이 있는 탓에 다만 끊임없이 힘을 빼놓는 수밖에 없다.

누구와도 거리를 두고 있는 이인이 유일하게 즐기는 바둑을 두고자 기대령을 뽑았다. 살아있는 권력과 오랜 시간을 보낼 자. 기대령 강희수는 권력을 탐하는 이들에겐 가장 매력적인 장기말이 아닐 수 없다. 왕대비는 물론 영부사 박종환도, 부원군 오욱환(엄효섭 분)도 강희수를 끌어들이려 안달이다. 그를 의식해 이인은 강희수에게 누구도 뒷배로 들이지 말라고 어명을 내린 바 있다.

4일 방영된 6회에선 수싸움이 제법 치열했다. 이인이 훈련도감으로 행차한 날 왕대비가 나섰다. 하지만 대비전으로 불러들이기엔 아들이지만 서슬 퍼런 이인이 두렵다. 강희수를 중궁전으로 불러들이라 중전 오씨(하서윤 분)에게 명했다. 탈이 나도 중전 선에서 마무리 지을 요량이었다.

한편 이인을 끌어내리려는 강희수에게도 대통을 이을 문성대군의 안위는 중요했다. 분영을 통해 문성대군을 위협하는 대비전의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판에 이인이 훈련도감으로 행차했다.

강희수는 이것이 기대령에게 접근하려는 모리배들을 적발하려는 이인의 수이면서 아울러 자신을 시험하려는 일석이조임을 눈치챘다. 곧이은 중궁전의 부름은 대비의 계략임도 간파했다. 그래서 중전에게 문성대군을 이용한 면피의 계책을 알려준다.

이때 강희수 역시 일석이조의 수를 두었다. 김명하를 역모에 끌어들이기 위해 이종사촌 동생인 장령공주(안세은 분) 및 문성대군과의 만남을 이미 약조해 두었다. 중전 오씨에게는 이인이 들이닥쳤을 때 문성대군이 바둑을 두고 싶어했다고 핑계대라 일러주었다. 강희수의 포석은 그대로 적중, 결국 그 해프닝으로 왕대비 박씨만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수싸움이 끝나고 이인은 강희수에게 문성대군의 바둑을 가르치라 명했고 강희수는 그걸 핑계 삼아 김명하와 사촌동생들의 만남을 주선함으로써 김명하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아울러 뒷배를 두지말라는 어명 때문에 중전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 이인의 입에서 “너는 내 사람. 내가 지켜주겠다.”는 다짐도 끌어냈다.

이런 와중에 이인 심중의 일단도 드러났다. “어찌하여 문성대군의 청을 들어준 것이옵니까?” 강희수가 물었을 때 “나도 그만할 때 바둑을 배웠다”고 넘겼지만 문성대군을 정적이 아닌 조카로 바라보는 모습을 선보였다.

한편 이인-강희수-김명하의 삼각관계는 심각한 수준의 애증으로 인해 여느 삼각관계에 비해 한층 복잡하게 전개됐다.

여전히 강희수를 남자로 알고 있는 이인은 강희수에게 끌리는 감정의 정체를 우정 정도로 규정짓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형과 조카에 대한 의리를 앞세워 그 우정을 배신했다. 그런 주제에 강희수와 김명하의 친밀한 모습엔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낀다.

반면 강희수는 이인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배신당했다. 복수를 다짐하고 있지만 여전히 연모의 정을 끊어내진 못한 듯하다. 저 좋다는 김명하는 거짓 공초로 친구 홍장(한동희 분)을 죽게 만들었다. 물론 자신을 위한 고육지책임은 이해하지만, 그리고 ‘타도 이인’이란 한 배는 탔지만 그 마음을 받아들일 순 없다.

김명하에게 이인은 아버지 김종배를 죽인 원수다. 게다가 연적이기도 하다. 자신이 은애하는 강희수가 이인을 좋아하고 있음은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강희수를 좋아하며 죄책감도 느낀다. 강희수를 위하려다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궁궐 한 귀퉁이에서 김명하는 격정에 휩싸여 강희수를 안고 만다. 강희수는 김명하를 끌어들이기 위해 그 액션을 용인한다. 그리고 우연찮게 그 모습을 이인이 보고 만다.

어쨌거나 이인의 흑화가 이선의 고명을 따르기 위함이면 혀를 뽑네, 목을 치네, 눈을 부라리며 강희수를 겁박하는 모습조차 안쓰러워진다.

그는 분명 백성들의 고초에 의분을 일으키던 인물였다. 안개처럼 뿌옇게 내리는 몽우를 아련하게 바라볼 줄 아는 사내였다. 개울을 훑어 조약돌을 건네며 신의를 약조하던 남자기도 했다. 그런 이인의 흑화가 그 같은 이유 탓일 듯 싶어 벌써부터 안타깝다.

/zaitung@osen.co.kr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