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KT 위즈의 시즌 초반 행보가 힘겹다. 시즌 전 LG 트윈스, KIA 타이거즈와 ‘3강’ 후보로 꼽혔지만 믿었던 마운드가 흔들리면서 최하위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외야수 강백호(25)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나서 눈길을 끈다.
KT는 지난달 29~31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을 모두 패했다. 개막 4연패로 시작한 뒤 28일 수원 두산 베어스전에서 박병호의 끝내기 안타로 첫 승을 신고했지만 다시 3연패로 1승7패, 순위는 10위까지 떨어졌다.
특히 3-14 대패를 당한 31일은 참사에 가까웠다. 지난해 15승을 거두며 2년 연속 재계약한 좌완 외국인 투수 웨스 벤자민이 3이닝 11피안타(2피홈런) 1사구 4탈삼진 11실점으로 난타당했다. 지난해 4월20일 수원 SSG 랜더스전 6이닝 6실점이 개인 최다 실점이었는데 이날은 한 이닝에만 7점을 내줬다.
2회에만 안타 6개와 몸에 맞는 볼 1개 포함 7실점을 허용했다. 2사 1,2루에서 이도윤에게 1타점 2루타, 문현빈에게 2타점 적시타, 요나단 페라자에게 안타, 채은성에게 1타점 적시타, 노시환에게 스리런 홈런으로 5연속 안타를 쉴 새 없이 맞았다. 3회에도 벤자민은 김태연에게 2루타, 이도윤에게 1타점 3루타, 문현빈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더니 페라자에게 우월 투런 홈런을 얻어맞고 추가 4실점했다. 외국인 투수로는 이례적으로 두 자릿수 실점을 하고 교체됐다.
실투도 몇 개 있었지만 이날 벤자민의 공이 크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최고 151km, 평균 148km 직구(36개) 중심으로 슬라이더(18개), 커터(11개), 체인지업(6개), 커브(1개)를 구사했다. 실투가 있긴 했지만 한화 타자들이 보더라인 낮게 잘 제구된 슬라이더, 커터를 기다렸다는 듯 받아치면서 벤자민을 무너뜨렸다.
벤자민을 11실점 하도록 내버려둬야 할 만큼 KT 마운드 사정이 좋지 않았다. 지난주 6경기 중 4경기에서 선발투수가 5회를 버티지 못하면서 불펜 자원을 소모했다. 필승조였던 손동현이 구위 저하로 2군에 내려가기도 했다.
일찌감치 승부가 한화 쪽으로 기울면서 KT로선 맥없는 경기가 됐다. 하지만 지는 경기라도 그냥 흘려보낼 순 없었다. 이강철 KT 감독은 선발로 2경기 던진 신인 원상현을 벤자민에 이어 투입했다. 원상현은 2이닝 2피안타 1볼넷 4탈삼진 무실점으로 불펜 테스트를 받았다. 지난해 시즌 후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삼성에서 온 우완 투수 문용익도 이날 1군 콜업과 함께 6회 구원등판, 1이닝을 무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막고 이적 신고를 했다.
가장 큰 실험은 1-13으로 뒤진 8회말 수비에서 나왔다. 이날 4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했던 강백호가 포수 마스크를 쓰고 대수비로 깜짝 투입된 것이다. 선발 포수 장성우에 이어 4회부터 교체 투입된 백업 포수 김준태가 부상이 아닌데도 강백호로 안방이 교체됐다.
이강철 감독이 시범경기 때 강백호의 포수 기용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었는데 이날 실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ABS(자동투구판정시스템)가 도입되면서 포수의 프레이밍 가치가 사라지고, 블로킹과 송구 능력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장성우를 뒷받침할 백업 포수가 약해 고민이었던 이 감독은 농반진반으로 고교 시절 투수에 포수까지 겸한 강백호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아이디어를 언급하기도 했다.
강백호의 포수 출장은 지난 2019년 4월20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 2021년 9월25일 잠실 두산전에 이어 이날이 3번째. 앞서 2경기에선 포수 엔트리를 모두 소진하면서 어쩔 수 없이 강백호가 마스크를 써야 했다면 이날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예사롭지 않은 포수 출장이었다.
투수 박영현, 이선우와 배터리 호흡을 맞춘 ‘포수’ 강백호는 1이닝을 수비했다. 원바운드된 공도 미트 방향을 바꿔 받아내며 안정된 블로킹 능력을 보여줬다. 임종찬에게 적시타를 맞은 뒤 우익수 김민혁의 홈 송구가 옆으로 크게 빠지자 몸을 날려 슬라이딩 캐치를 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포수 수비를 봤지만 크게 어색하지 않고 전반적인 움직임이 꽤 민첩했다. 송구 능력을 보여줄 기회는 없었지만 투수 출신 강백호의 강견은 포수로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KT는 도루 저지율이 지난해 10위(17.2%), 올해 8위(16.7%)로 낮은 팀이기도 하다.
KT는 주전 포수 장성우가 올 시즌 초반 타격감이 저조하다. 34세의 베테랑 선수로 긴 시즌 체력 관리도 해줘야 한다. 만약 강백호가 포수로서의 비중을 늘린다면 지명타자 자리에 문상철이 들어와 타선도 극대화할 수 있다. 1루수 박병호, 외야수 멜 로하스 주니어도 문상철과 함께 지명타자를 나눠 맡는 식으로 자리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강백호 개인적으로도 포수를 같이 한다면 선수 가치가 엄청나게 상승할 것이다. 대참사 속에 ‘포수 강백호’ 실험에 나선 이강철 감독에게 과연 어떤 복안이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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